55년 전 <악마의 씨>가 여전히 유효한 호러영화인 이유

<악마의 씨>의 원제는 ‘로즈마리의 아기’ Rosemary’s baby다. 가장 큰 스포일러는 한국에서 붙인 제목임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영화<악마의 씨>(1968) 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의 미국

지난 세기의 60년대는 여러가지 의미로 풍요로웠고 어떤 분수령의 위치였다. 1968년의 혁명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시대정신은 개인이 삶의 주인이라는 의식에 대한 첫 발로였다. 프랑스에서 시작한 68혁명의 가장 큰 의의는 기존 기득권층이 아닌 젊은이의 의지와 힘으로 큰 변화가 시작했다는데에 있다. 혁명을 일으킬 당시는 금방 진압됐기에 실패한 혁명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이 미완의 성공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양 세계대전을 지나며 평화와 윤리에 관한 정의와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아져 갔고, 인간의 존엄에 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됐다. 엄숙주의가 타파되는 동시에 자유주의에 대한 열망 또한 올라갔다. 자유와 저항, 혁명의 정신은 고취되었다. 당연히 부작용 또한 터져나왔다.

찰스 맨슨

인더스트리얼 메탈밴드, 마릴린 맨슨에 대하여 들어보았을 것이다. 시대를 호령했던 배우, 마릴린 먼로와 살인분야에서 호령한 찰스 맨슨을 합성한 밴드명이다. 찰스 맨슨은 당시의 높아져가는 자유도에 자신을 추앙하는 사이비 종교를 만들고, 추종자 히피(기성 통념을 부정하고 인간성 회복, 자연으로의 귀의를 주장하며 탈사회적으로 행동하던 무리들)들에게 어떤 음악 프로듀서를 죽이게끔 지시한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이미 이사간 뒤였고, 그 집은 영화감독 로만 폴라스키가 거주했다. 당시에 폴란스키는 작업으로 런던에 가 있었으나, 집에 있던 만삭의 아내가 희생당했다. 시기상으로 그 때는 젊은 폴란스키가 단 한편의 호러 오컬트 무비로 출세가도를 달리던 때 였다. 협잡꾼들은 그런 영화를 만들었으니 벌을 받았다고 수군거렸다. 그 영화가 바로 <악마의 씨>다.

이래뵈도 밤에 불끄고 못 주무시는 스타일이시다.

평범해서 더 무서운

중세시대의 암울한 분위기의 ‘마녀’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악마의 씨>에선 모기 눈알을 거대한 솥에 넣어 저주의 스프를 우려내는 꼬부랑 코를 가진 마녀가 아니라, 당시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뉴욕의 흔한 부유층이 저지르는 사람들이 마녀처럼 등장하여 주인공에게 영향을 끼친다.

유명한 아파트 브램포드에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취향을 가졌으며 사회 지도층과의 밀접한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이웃으로 출현하여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웃들이 등장한다는 면에서 이런 인물들이 현실에서 진짜 존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장치는 피가 난자하고 칼을 휘두르는 고전적인 장치로써가 아니라 현실적 면에서 호러영화의 중요한 결을 품고 출발한다. 영화 속처럼 악마를 숭배하는 인물이 아니더라도 극 중의 로즈마리(미아 패로우 분)가 이용 당하는 모습을 보면 나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이 심기는 것이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브램포드 아파트의 실제 이름은 다코다 빌딩이다. 이는 실제 뉴욕의 센트럴 파크 앞에 있는 건물로써, 가수, 작가, 정치인등 뉴욕의 엘리트들이 모여서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오프닝에서 보여지는 아주 긴긴 패닝 쇼트(엔딩에서도 수미쌍관 된다)는 이 커다란 건물 조차도 무난한 도시의 일부로 보이게 한다. 그런데 평범한 줄만 알았던 건물의 내부에선 상상못할 끔찍한 일이 도사리고 있었다.

실제 다코다는 존 레논의 거주지로 유명했다.

엄격한 카톨릭 집안 출신의 로즈마리는 남편(존 카사베츠)과 함께 브램포드로 이주한다. 로즈마리라는 이름 자체에서 성모 마리아와의 연관을 찾을 수 있는데, 성모가 쉬어가기 위해 하얀색 로즈마리 얼겅이 위에서 외투를 걸치자 파랗게 변한 것에 관한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로즈마리는 훗날 사탄을 품은 암흑의 성모 마리아가 될 것에 관한 암시를 이름에서부터 보여준다.

그들에게 접근하는 옆집의 캐스트뱃 노부부는 친절하다. 캐스트뱃 부인은 젊은 로즈마리의 출산 계획에 대해 지나친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저녁식사에 초대하며 사실상 미스터 캐스트뱃이 남편에게 속삭인 제의는, 아내의 자궁을 빌린 악마의 수태였을 것이다. 아내인 로즈마리가 무스로 만든 약에 중독된 틈을 노려 사탄과 동침하도록 협조하고, 뒤이은 동료의 추락으로 성공에 다가간다.

로즈마리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처럼 주변 상황에 대해 무지하다. 그녀는 이웃과 산부인과 의사가 제공하는 수상한 음식과 약을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몸은 점점 이상한 신호를 보낸다.

화려한 복장으로 의문의 음료를 먹이는 캐스트뱃 부인은 마치 독버섯 같다는 인상을 준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탈출을 하는 로즈마리, 그러나 다시 끌려와 출산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를 보러 온갖 사탄 숭배자들이 몰려든다. 마치 동방박사의 경배가 이루어지듯, 아파트는 공포로 물든다. 때는 1966년 6월, 사탄교회가 원년으로 삼는 666의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아기를 악마에게 빼앗긴 로즈마리는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며 희미하게 미소짓는다. 카메라는 건물을 비추며 다시 도시의 전경을 보여준다. 어디에서나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처럼 말이다.

홀로코스트를 겪었던 감독

자국의 이득을 위하여 악마같은 존재를 총통으로 내세웠던 독일, 곧이은 폴란드로의 침공, 그리고 유년기의 폴란스키가 겪은 아우슈비츠의 비극. 관객은 <악마의 씨>의 수상한 이웃을 보며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감독은 보아왔다. 악마보다 더 악마같은 존재가 대중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당선됐으며, 그가 자행해온 인종의 청소를 말이다.

그 말도 안되는 사람들의 압박속에 주인공은 결국 무릎꿇고 마는 태세를 보인다. 그녀조차도 악마에 세뇌된 것일까? 아마 주변에서 그렇게 잠식해 들어온다면 엄마가 자식을 내놓을 정도로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모든 세뇌의 시작은 우매함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들의 욕망이 그릇된 지도자를 뽑았고 역사상 최악의 비극을 낳았다.

폴란스키 감독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 또한 비슷했던 것 같다. 자유의 껍데기를 쓰고있는 사회지만 온갖 음모론과 지도층의 의문스러운 죽음, 정보기관의 세뇌 실험등으로 얼룩진 당시 사회를 보며, 홀로코스트의 지난 날이 다시 자행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요상한 행동을 하는 평범한 이웃을 보여줌으로써, 은폐와 조작을 일삼는 당시 정치와 연루된 언론을 꼬집으려했던 태도도 보인다.

그러면 로즈마리처럼 희생에 무릎 꿇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폴란스키 감독은 권력의 허수아비가 되지 않으려면 최면에서 깨어나 늘 자주적 판단을 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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