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여러모로 유의미한 캐릭터다. 이전까지는 현실 기술과는 거리가 있긴 하지만 과학에 기초한 능력이 주였고, <어벤져스 2: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통해 등장한 ‘스칼렛 위치’ 완다 막시모프(엘리자베스 올슨)가 염력을 선보이기는 했으나 마법의 영역이라기에는 초능력에 가깝게 묘사되었으므로, MCU 세계관에 본격적인 마법을 선보인 캐릭터가 바로 닥터 스트레인지였던 셈이다.
드라마 <셜록>의 주인공 셜록 홈즈 역으로 잘 알려져 있던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캐스팅 소식부터 좀 남다른 시작이었다. MCU의 캐스팅은 이미 스타 반열에 오른 배우들보다는 대체로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기용하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인데. 초반 이 캐스팅 의도에 대해서는 히어로의 시작을 그리는 만큼 캐릭터에 좀 더 잘 몰입할 수 있도록 새로운 얼굴들을 기용하는 방향을 선호한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이미 꽤나 유명한 배우였고, 그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에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리기도 했다.
드디어 공개된 <닥터 스트레인지>는, 시놉시스만 단순하게 보면 얼핏 평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MCU에 처음으로 소개된 마법이라는 소재를 화려한 CG로 선보인 데다, 죽지 않고(아니 그건 아니지만) 살아나 도르마무에게 거래를 요청하는 끈질김까지 흥미로운 지점을 다수 갖추고 있는 영화였다. 이후 시작된 대사건 ‘인피니티 워’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열쇠 역할을 했고,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는 직접적으로 활약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이 회자된 히어로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이런 이름값에 비해서는 2편이 꽤 늦어진 셈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빚어진 전 세계적인 팬데믹 사태가 주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제작 일정이 실제로 늦어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2018년 6월에 제작 확정 소식이 들려왔지만 2020년 감독 하차 소식이 들려왔고, 각본이 수정되는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팬데믹 사태로 작년 초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2021년 여름 드디어 촬영을 종료하고, 연말 재촬영을 거쳐 드디어 지난달 일본 마블 스튜디오를 통해 공식 시놉시스가 공개됐다.
*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 <완다비전>의 주요 내용 스포일러가 다소 있습니다. 주의 부탁드립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지금까지 다수의 MCU 무비에 모습을 드러내 왔는데, 소서러 수프림으로서 원작에서부터 세계관 내 최강자 반열에 이름을 올리곤 했던 캐릭터이니 MCU에서도 여전히 히어로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감초 역할을 했다. 원작에서는 세계관 내의 지도자이자 인피니티 스톤의 소유자들로 구성된 강력한 조직인 ‘일루미나티’의 일원이자 가장 위대한 마법사여서 MCU에서 이런 입지를 일부 계승해 활용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토르의 잔에 맥주를 채워 주고, 로키를 어린애 다루듯 (심지어 좀 귀찮아하기까지 했다) 하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모습은 본인의 타이틀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명장면으로 꼽힌다. 이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는 압도적인 타노스의 힘에 밀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타임 스톤을 이용해 14,000,605개의 미래를 본 끝에 이길 수 있는 실낱같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등장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는데,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많은 도움을 받으며 성장 중이었던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톰 홀랜드)의 새로운 멘토로서 등장한 것이었다. 아이언맨이 그랬던 것처럼 끈끈한 맛을 보여준다기보다는, 같이 싸웠던 동료임을 인정해주는 듯 여전히 어린애 취급을 하는 듯(…)하면서도 작품 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결론적으로 피터 파커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멀티버스를 건드리는 바람에 혼돈이 생겼고, 이 때문에 초래된 사태가 바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펼쳐질 스토리라인의 주요한 토대가 될 예정이다. 지난달 말인 23일 일본 디즈니 스튜디오를 통해 닥터 스트레인지 시리즈의 2번째 타이틀인 이 영화의 시놉시스가 공개된바,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로키>, <완다비전>과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통해 본격적으로 제시되기 시작한 멀티버스를 구체적으로 다룰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MCU는 4페이즈의 주요한 테마로 ‘멀티버스’를 낙점해 더 넓은 세계관으로의 확장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등장한 캐릭터들 중에서 멀티버스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있고, 차원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존재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유일하다. 스페셜 예고편이 공개될 만큼 4페이즈의 전체 타이틀 중에서도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듯한데. 아무래도 다크 디멘션 등 다양한 차원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으며, 스승이었던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튼)으로부터 일찍이 멀티버스의 개념과 실체에 대해 배웠으니 4페이즈의 주요 스토리라인을 이끌어가기에는 최적의 캐릭터였을 것이다.
여기에 닥터 스트레인지를 도와줄 조력자 역할로, 강렬한 모습으로 돌아와 <완다비전>을 통해 비전(폴 베타니)과의 끝나지 않은 로맨스를 선보였던 ‘스칼렛 위치’ 완다 막시모프가 출연할 예정이다. <완다비전>에서 비전을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한 완다가 자신의 능력으로 한 마을을 멈춰진 시공간 속 TV 프로그램처럼 만들고, 모든 마을 사람들을 정신 지배하면서 비전과 둘 사이의 자식까지 스스로 창조해냈다. 이 과정에서 MCU에서는 한 번도 쓰인 적 없었던 별칭인 ‘스칼렛 위치’로서 각성하게 되었으며, 시리즈의 종장에서는 완연한 마법사의 풍모를 풍기고 있었다.
작중에서 잠시 나온 내용에 의하면, 완다 막시모프 즉 스칼렛 위치는 마녀들 사이에서는 신화적인 존재로 여겨지던 전설의 마법사로서 마녀들의 고대 마법서에 예언으로 적혀 오래도록 내려오고 있었다. 마법사 중 하나였던 애거사는 완다를 공격해 능력을 빼앗으려 했지만 실패했고, 대신 완다는 ‘스칼렛 위치’로 완전히 각성해 마법의 힘을 얻고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 되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붉은 에너지장을 활용한 염력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한 존재였지만, 이제는 현실 조작은 물론 마녀들의 마법까지 자유롭게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대마법사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성장한 완다 막시모프가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 등장해 닥터 스트레인지를 돕게 된다는 점은 꽤 매력적이다. 마법 능력으로는 남부럽지 않을 만큼 최강의 실력자인 두 사람이 서로를 도우며 다시금 히어로로서의 면모를 선보이게 될 텐데, 이 두 사람의 싸움은 아무래도 일반적인 형태의 액션은 아닐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MCU를 통틀어 봐도 눈에 띄는 강자인 두 사람이 상대할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재미있는 점은, 공개된 시놉시스에 의하면 닥터 스트레인지가 완다의 도움을 받으면서까지 상대해야 할 적은 바로 또 다른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점이다. 가장 강한 마법사이자 가장 현명한 존재인 ‘닥터’ 스티븐 스트레인지가 자기 자신을 상대해야 하는 셈인데, 워낙 강한 존재라 그런지 이런 점조차 꽤나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요소인 듯하다. MCU 세계관의 스티븐 스트레인지와 동일한 능력-혹은 더 강한 능력-을 가진 소서러 수프림의 목표가 ‘평화’가 아닌 ‘정복’이라면? 혹은 ‘멸망’이라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는 TV 시리즈 <로키>가 그러했듯이 여러 명의 스트레인지가 나와 각자의 비슷한 듯 다른 삶, 즉 ‘멀티버스’ 속 닥터 스트레인지들을 보여주면서 더 많은 관객들에게 얼핏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는 다중우주의 개념을 알려주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알고 보면 별거 아니지만 멀티버스라는 말, 다중우주라는 말이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지는 데다가 실제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기보다는 히어로 코믹스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제시된 개념이기도 하기에.
멀티버스 기준으로는 마블 코믹스 속 세계관도 수십수백 가지로 나뉘며-그들 하나하나가 하나의 ‘우주’이므로-, 우리가 흔히 MCU라고 부르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역시 하나의 우주다. 어른의 사정 때문이기는 하지만 MCU와 연계되지 않는 여타의 마블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TV 시리즈들 역시 별도로 하나의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셈인데. 그래서 MCU의 확장은 더 의미가 있다. 멀티버스의 개념이 도입되면 이제까지 세계관이 이어지지 않아 실사화 프로젝트로 만나보기 어려웠던 다양한 캐릭터들을 다시금 만날 수 있는 가능성도 생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완다비전>에 다시금 등장했던 폭스사의 <엑스맨> 시리즈의 퀵실버라든지.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아니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 속내는 알 수 없지만, 근래 공개된 MCU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 이 평행우주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제까지 ‘서론’이었다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는 비로소 ‘본론’의 장을 펼칠 생각인 것은 아닐까.
페이즈 4의 전체 흐름이 아니더라도, MCU의 방향성이 아니더라도 닥터 스트레인지의 팬들에게는 참 유의미한 작품이 될 것이다. 무려 6년 만에 2편이 개봉하는 셈이기 때문인데. 아무래도 솔로 무비 시리즈가 제시되었을 때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더 많은 서사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음은 분명하지 않은가. 이미 MCU 세계관에서나 어벤져스에게나 필수 불가결한 강자로 자리 잡은 닥터 스트레인지이지만 그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더 풀어야 할 게 많았다.
가장 강력한 마법사이자 가장 지혜로운 존재, MCU 세계관의 소서러 수프림으로서 그가 맞닥뜨리게 될 문제는 무엇일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첫 영화였던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자신을 수없이 희생해 가며 인내로 거머쥐었던 도르마무에 대한 승리,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보여준 역할, 그리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가장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역할까지 MCU의 닥터 스트레인지는 번역에 희생되었을지언정 한 번도 관객을 실망시킨 일은 없었다.
오만한 신경외과의가 가장 큰 무기였던 양손을 잃고, 모든 것을 잃은 상태에서 스승을 만나 더 큰 깨달음을 얻으며 마법사로 거듭난 닥터 스트레인지,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거쳐 히어로가 된 ‘닥터’는 장장 6년 만에 다시금 자신만의 이야기를 꺼내 들 예정이다. 이야기의 베일이 벗겨지는 올해 5월까지, 부디 별일 없기를.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