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로 배우 얼굴 젊게 만드는 디에이징, 득일까 실일까?



<카지노>

2022년 12월부터 2023년 1월까지, 8주 동안 이어진 드라마 <카지노>가 시즌 1의 막을 내렸다. <카지노>는 ‘카지노의 왕’ 차무식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를 아우르는 누아르 드라마. 한 인물의 인생을 통째로 돌아보는 구성이기에 주인공 차무식을 연기한 최민식에게 디에이징 기술이 사용됐다. <카지노>는 외모 디에이징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로 AI 음성합성기술로 목소리까지 디에이징했는데, 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함과 동시에 디에이징 기술의 한계를 보여줬다. 이미 할리우드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영화계의 방향을 바꾸고 있는 디에이징, 이 신기술이 정말 산업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는지 고심해 볼 타이밍이 아닌가 싶다.


디에이징이란
<엑스맨: 라스트 스탠드> 디에이징 전(왼쪽), 후

먼저 디에이징 기술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겠다. 디에이징, ‘De-aging’은 CG 기술을 활용해 배우의 연령대를 낮추는 기술을 이른다. 보통 배우를 더 나이 들게 만드는 기술은 분장을 활용, 물리적으로 실현할 수 있었지만 디에이징은 CG 기술이 정교해진 최근에야 정착했다. 물론 최근도 ‘보편적으로 사용된 시점’ 기준이지, 할리우드에선 2006년 영화 <엑스맨: 라스트 스탠드>에서 처음 사용했으니 근 20년은 된 기술이긴 하다. 2008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2010년 <트론: 새로운 시작> 등이 디에이징을 활용하면서 이 기술의 가능성을 보였다. 



<캡틴 마블>에서 디에이징을 적용한 사무엘 L. 잭슨


(왼쪽부터)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에게 디에이징 기술을 사용한 <아이리시맨>

디에이징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작품은 2019년 <캡틴 마블>과 <아이리시맨>. <캡틴 마블>은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닉 퓨리 역의 사무엘 L. 잭슨의 연령대를 낮춰야 했다. 영화 전체에 젊은 시절 닉 퓨리로 출연하니까 다른 배우로 대체할 수 있었으나 사무엘 L. 잭슨의 존재감과 그가 마블 영화에서 가지는 입지를 고려하면 디에이징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아이리시맨>은 암살자 프랭크 시런의 일대기를 다루며 1975년부터 2000년대까지를 그린다. 영화가 긴 세월을 다루기에 주연 배우들 모두 디에이징 기법으로 중년기부터 노년기까지를 소화했다. 이 영화도 인물들의 중장년기를 중심으로 그리기에 원한다면 다른 배우를 기용할 수 있었지만…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겐 이 영화가 갱스터·마피아 영화를 종합하면서 동시에 ‘매듭’을 짓는 영화였고, 그래서 (자신처럼) 이 장르에서 금자탑을 쌓은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에게 각 캐릭터의 모든 연령대를 온전히 맡기고자 디에이징을 활용했다.



<아이리시맨> 로버트 드 니로 디에이징 전(왼쪽), 후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신기술
마블 영화에서의 디에이징은 유니버스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도 유효했고, 관객들에게도 스타들의 젊은 모습을 다시 보는 즐거움을 안겨줬다(왼쪽부터 <앤트맨>,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디에이징은 확실히 21세기의 영화계 판도를 바꿀 만한 신기술 중 하나다.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시각적인 체험을 한 단계 확장했으니까. 제아무리 명배우라도 외형으로 보이는 나이보다 어린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명배우들의 젊은 모습은 그의 과거 출연작에서 만날 수 있는 추억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디에이징은 배우에게 폭넓은 연령대의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돌려줬다. 

연출하는 감독 입장도 디에이징이 획기적이긴 마찬가지. 연령대별 배우를 캐스팅한다면 그들 각자의 연기를 하나의 캐릭터로 보이도록 디테일한 디렉팅이 필요한데, 디에이징을 활용하면 한 배우가 많은 연령대를 소화할 수 있으니 적어도 연기 때문에 캐릭터가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또 같은 캐릭터라는 이유로 닮은 꼴을 찾아야 하는 수고도 덜 수 있다.



인간과 인간을 복제한 프로그램이란 설정으로 1인 2역을 디에이징으로 해결한 <트론: 새로운 시작>

산업적 측면에서 보자. 일단 영화를 팔아야 하는 제작사·배급사에게 디에이징은 또 하나의 셀링 포인트다. ‘명배우가 한 캐릭터의 인생을 연기한다’, ‘지금의 기술력으로 젊어진 명배우’나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부분. 관객(우리) 입장에서도 디에이징이란 신기술이 궁금하든, 그 신기술의 힘을 빌린 배우의 호연을 궁금하든 다른 영화에 비해 궁금한 요소가 하나는 더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사랑한 명배우가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할 때, 그 캐릭터에게 흠뻑 빠질 수 있는 것도 긍정적인 요소.


장점에 비해 한계도 명확한


<카지노>의 디에이징

그러나 다시 <카지노>로 돌아가보자.(첨언하자면 <카지노>가 예시인 건 단지 이 드라마가 최신작이기 때문이지, 작품의 완성도나 기술력을 왈가왈부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시청자들은 <카지노>의 디에이징을 보고 감탄하기보단 어딘가 이상하고 어색하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디에이징이 보완하는 부분은 배우의 얼굴, (이번에 도입된 신기술을 포함해도) 목소리 정도에서 그치기 때문이다. 이제 환갑이 된 노년 최민식의 신체, 자세, 움직임은 아무래도 ‘중년 차무식’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사실 이건 <카지노>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할리우드의 <캡틴 마블>도, <아이리시맨>도 배우들이 격하게 움직이는 장면은 모두 어색하다고 지적받았다. 젊은 닉 퓨리의 보기만 해도 숨이 찬 추격 장면, 잘나가는 암살자 프랭크 시런의 버벅대는 걷어차기는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관객들에게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디에이징의 한계를 보여주는 <아이리시맨> 장면. 신체 움직임에서 로버트 드 니로의 나이가 보인다.


즉 디에이징은 배우의 젊은 시절을 어느 정도 구현할 수 있을 뿐, 당연히 그의 젊은 시절을 그대로 가져오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그 나이대의 평균적인 모습, 그 시절 배우의 이미지와도 거리가 있고 그게 관객에게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한 캐릭터의 일관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디에이징이 오히려 관객을 작품에서 멀어지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디에이징은 실제 그 나이대 배우들에게 배역에 도전할 기회조차 뺏는 것이다. 10대든, 20대든, 30대든 그 나이대의 배우는 널리고 널렸다. 아역 배우는 그런 배우들 사이에서 걸출한 실력자를 발굴할 수 있는 기회인데, 디에이징은 그 발굴의 기회마저 박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디에이징이 정말 완벽한 기술도 아니기에 기우에 가까운 고민이긴 하나, 아주 극단적인 예시를 생각해 보자. 만일 <대부>를 제작하던 시절 디에이징이 있었다면, 말론 브란도가 비토 콜레오네의 젊은 시절도 연기했을 것이고, 우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대부 2>에서 젊은 비토 콜레오네를 연기한) 로버트 드 니로의 명연을 놓쳤을지 모른다. <샤인>에서의 노아 테일러나, <러브 앤 머시>에서의 폴 다노나.

<대부> 시리즈가 이미 두 배우로 완성한 하나의 캐릭터 서사를 보여준 바, 디에이징이 굳이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

디에이징이란 도구, 그리고 전조


결국 돌고 돌아 도달하는 결론은 ‘디에이징은 도구’라는 것이다. 아직 완벽한 기술이 아니거니와 장점과 단점이 명백하기에 제작진·연출자의 목적에 맞느냐 아니냐로 사용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적당하다. 한 인물의 장대한 서사나 복잡한 감정선을 위해 디에이징을 선택하든, 아니면 한 캐릭터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완전히 변화한 모습을 위해 2인 1역을 선택하든, 만드는 사람이 리스크와 리턴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디에이징은 분명 영화의 표현 방식을 넓혀줄 수단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디에이징은 좀 더 유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디에이징의 부흥은 앞으로 더 발전한 기술이 가져올 뜨거운 감자의 전조일 것이다. 관객의 눈에 가장 익숙한 배우, 인격체로서의 배우를 좌지우지하는 기술 디에이징은 곧 (21세기 초부터 끊임없이 제시된) 가상 배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니까. 3D의 태동이 3D가 영화에 득인가 아닌가로 의견이 나뉘고, 그린스크린 CGI의 보편화가 영화적 진일보인가 아닌가로 갑론을박이 오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논쟁이 ‘디에이징'(을 필두로 배우 관련 CGI 기술들)으로부터 시작될 여지가 희미하게나마 느껴진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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