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영화? ‘호러 코미디’ 근본! <고스트 버스터즈>의 의외로 촘촘한 설정

유독 향수를 부르는 영화가 있다. 이건 ‘인생 영화’를 거론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기준은 그다지 특별할 것 없지만 분명하다. 먼저 과거의 영화여야 하고, 어느 정도 대중적 흥행 성적을 거뒀어야 하며, 감상자가 해당 작품이 개봉했을 당시의 문화를 향유했어야 한다. 그런 영화들은 수 년에서 수십 년이 흐른 후 다시 관람을 하는 이들을 재빨리 과거로 데려간다. 여기서 발생하는 개인적 추억과 집단적 기억의 혼재는 매우 복잡한 감정을 안기곤 한다. 특히 요즘처럼 오리지널 시나리오 고갈의 반대 급부로 옛 은막의 영광을 소환하려는 움직임이 만연한 시대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까 <백 투 더 퓨쳐>를 보고 마티(마이클 J. 폭스)의 밴드가 드러난 캘빈 클라인 팬티를 따라 입던 사람이라면, 영화 재개봉 소식을 듣고 당시의 자신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2020년대로 접어들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무드가 유행하기 전까지 ‘레트로’, 혹은 ‘뉴트로’라 불렸던 흐름의 주인공은 1980년대였다. 언급한 <백 투더 퓨처> 트릴로지를 비롯해 <터미네이터> 시리즈 등과 함께 당대를 풍미한 영화로 거론되는 건 <고스트 버스터즈>다. 시대 보정을 걷어내고 본다면 조악하기 그지 없는 촬영 기술이나 비이성적 내러티브, 은은하게 깔린 차별과 혐오의 정서들이 약점으로 지적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고스트 버스터즈>가 나머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명작 반열에 오른 이유는 시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극 중 유령퇴치회사인 ‘고스트 버스터즈’ 로고와 레이 파커 주니어가 부른 동명의 OST는 여전히 시대 그 자체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좀 더 영화적으로 말하자면, <고스트 버스터즈>처럼 1980년대에 등장한 키치한 느낌의 작품들은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장르를 개척했다. 이전에 ‘호러 코미디’라 불릴 만한 영화들이 아예 부재했다고 할 순 없으나, 장르를 대중화하고 정착화하며 새 문법을 쓴 건 <고스트 버스터즈>다. 고작 3000만 달러를 들여 만든 영화는 북미에서만 8배에 가까운 흥행 수익을 냈고, 속편들을 비롯한 여러 미디어 믹스들을 탄생시켰으며, 아직도 두터운 마니아 층을 보유 중이다.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초심리학을 연구하다 대학에서 쫓겨난 과학자 3명이 유령 퇴치 회사를 만들어 뉴욕에 나타난 악령과 대결한다. 공립도서관과 콜롬비아 대학교를 비롯한 뉴욕 시내가 이름 변경 등 별도의 각색 없이 그대로 배경이 되는데, 영화의 비현실적 요소는 오로지 유령의 존재 뿐이다. 피터(빌 머레이) 3인방은 현실의 뉴요커이자 너드이지만, 동시에 작품 속에만 있는 ‘고스트 버스터즈’이기도 하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영화는 의외로 설정에 공을 들였다. 실제로 초심리학이 다루는 ESP(초감각적 지각)이나 PK(염력) 연구는 피터의 등장 장면에 나오는 투시 카드 테스트 등으로 반영됐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단순히 유령의 몸을 빨아 들이는 진공청소기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고스트 버스터즈’가 쓰는 장비 설정에도 과학적 근거가 제법 촘촘히 들어간 편이다. 우선 모든 것은 이곤(댄 애크로이드)과 레이(해럴드 레이미스)가 직접 발명했다. ‘고스트 버스터즈’가 메고 다니는 가방과 여기에 연결된 호스 같은 것은 ‘양성자(프로톤) 팩’인데, 유령에게 양성자 빔을 쏘는 장치다. 모양 상으론 흡입이 아닌 분사 도구란 소리다. 유령은 마이너스(-) 에너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밧줄처럼 뿜어져 나오는 양성자 빔으로 붙잡을 수 있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한다. 다만 양성자 빔 줄기가 맞닿으면 엄청난 폭발의 위험이 있으며, 포획 과정에서도 유령이 아닌 실제 사물에 발사되면 영구적 손상이 발생한다. 재밌는 건 양성자 팩의 호스 말고도 ‘고스트 버스터즈’의 작업복에 달려 있는 가는 관이 있는데, 팬들은 유령이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팀원들이 지릴(?) 경우를 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유령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양성자 빔을 계속 쏘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어딘가에 가둬야 하는데, 이때 쓰이는 것이 ‘뮤온 트랩’이다.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이 프로톤 팩을 써서 유령을 붙잡고 있으면, 한 사람은 이를 트랩으로 넣는다. 작은 박스 형태의 트랩 속 유령은 ‘고스트 버스터즈’ 사무실 지하에 설치한 고전압 봉쇄 장치로 이송되는데, 이 장치의 전원이 끊길 경우 유령들은 탈출할 수 있다. 이 밖에 레이가 밑도끝도 없이 들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PKE 계측기는 말 그대로 PKE(Psychokinetic Energy), 염동력을 측정하는 장치다. 과학 장비 뿐만 아니라, 이들의 작업복과 캐딜락을 개조해 만든 ‘엑토1’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빌런 서사도 탄탄하다. <고스트 버스터즈>는 기원전 6000년경 숭배된 수메르 신화의 파괴신 고저(Gozer)를 최종 악당으로 설정하는데, 영화가 나오기 전에도 뉴욕에 고저를 섬기는 컬트 집단이 존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저는 두 부하 키마스터와 게이트키퍼가 짐승의 형태로 변신해 만날 때 인간 세상에 소환되는데, <고스트 버스터즈> 역시 이를 그대로 따른다. 애초에 과학자들이 구약과 신약으로 대화하는 모습이 나오는 영화인 만큼 곳곳에 종교적 요소들이 배치돼 있지만, 그저 비현실적 설정을 종교의 영역으로 떠넘기는 모습은 아니다. 파괴신 고저가 레이의 상상 속 ‘스테이 퍼프트 마시멜로맨’으로 강림한 장면만 봐도 그렇다. 이 영화에서 로고 만큼 인상적인 이미지로 남은 마시멜로맨은 속편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재등장했다. 다만 여기서 조마조마했던 건, ‘고스트 버스터즈’의 머릿 속 이미지로 나타난 고저가 혹여라도 전체 관람가의 범위 밖일까 우려됐기 때문이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여러 문화적 상징과 과학적 근거들을 버무려 ‘호러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 섞어 낸 <고스트 버스터즈>는 분명 수작이지만, 그럼에도 용서할 수 없는 저질 조크도 잊을 만하면 나온다. 이 같은 정신적(?) 빌런 역할은 주인공 피터가 담당한다. 대표적인 건 처음 뉴욕도서관에서 유령을 발견한 사서의 정신병력을 확인하며 굳이 생리 중이냐고 질문하는 대목. ‘고스트 버스터즈’의 유령 퇴치 사업이 성공 가도를 달릴 때 차이나타운의 의뢰인이 선물로 포장도 하지 않은 베이징덕을 줄에 꿰어 건네는 장면 역시 <고스트 버스터즈>의 시대가 향유한 개그 코드를 보여 준다.


칼럼니스트 라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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