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첫 오스카 남우주연상 시드니 포이티어, <라스트 픽쳐 쇼>의 피터 보그나노비치 감독 별세

흑인 첫 오스카 남우주연상 시드니 포이티어 별세

<들판의 백합>(1963) 시드니 포이티어(왼쪽).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할리우드 명배우 시드니 포이티어가가 지난 1월 7일(현지 시각) 9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27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태어난 시드니 포이티어는 1949년 <노 웨이 아웃>을 통해 할리우드에 데뷔한 이래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 차별 문제를 다룬 영화에 주로 출연했다. 그의 첫 주연작 <흑과 백>(1958)은 서로의 손목에 수갑으로 연결된 흑인과 백인 탈옥수의 이야기다. 서로 탐탁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협력해야 하는 이들의 상황을 통해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다룬 작품이다. 시드니 포이티어는 이 작품으로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는 못했다.

시드니 포이티어에게 흑인 최초의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안긴 작품은 <들판의 백합>(1963)이다. 그는 영화에서 애리조나를 여행하던 중 동독을 탈출한 다섯 명의 수녀를 돕는 퇴역 군인을 맡아 종교, 인종을 넘어선 따뜻한 감동을 선사했다.

<흑과 백>(1958)의 시드니 포이티어(오른쪽).

하지만 그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도 있었다. 백인들이 좋아하는 전형적이고 모범적인 흑인 역할을 주로 해온 점과 영화 외적인 영역에서의 흑인 민권 운동에 적극적인 참여가 부족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시드니 포이티어는 2000년 오프라 윈프리쇼에 출연해 흑인 배우로서 엄청난 책임감을 느꼈고, 다른 이들을 위해 내가 해야할 것이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01년 영화 <트레이닝 데이>로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두 번째 흑인 배우가 된 덴젤 워싱턴은 “나는 항상 시드니를 쫓아 달려왔다”며 그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시드니 포이티어는 베를린국제영화제, 골든글로브시상식, 영국아카데미시상식 등을 수상하며 배우로서의 명성을 날렸고, 2002년 아카데미 공로상과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시민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 자유 메달’을 받기도 했다

이밖에 미국 국적과 함께 영연방 국가인 바하마 국적을 가진 그는 1974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고,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주일본 바하마 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이미 제작 중이란 보도가 이어졌다. 해외 매체 <버라이어티>는 지난 1월 8일 보도를 통해 애플이 시드니 포이티어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라고 밝혔다. 오프라 윈프리가 제작 책임을 맡았고, 이미 1년 이상 포이티어의 가족들과 함께 제작해 왔다는 내용이다.


<라스트 픽쳐 쇼>의 피터 보그나노비치 감독 별세

영화 <캣츠>(2001) 피터 보그나노비치 감독(왼쪽)과 커스틴 던스트.

1970년대 미국영화계의 가장 유명한 감독으로 손꼽히던 <라스트 픽처 쇼>(1971)의 피터 보그나노비치 감독이 지난 1월 6일(현지 시각) 새벽 향년 8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피터 보그나노비치 감독은 <대부>(1972)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죠스>(1975)의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미국에서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든 이른바 ‘뉴 할리우드’ 세대를 이끈 스타 감독이다. 그는 20대를 넘기기 전에 이미 존 포드, 하워드 훅스, 오슨 웰즈,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에 대한 전기를 썼고, <필름 컬쳐> <무비>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했던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감독이기도 하다. 그는 1950년대 텍사스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누구나 겪어봤을 것 같은 이야기를 펼친 영화 <라스트 픽처 쇼>를 비롯해 배우 라이언 오닐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함께한 코미디 영화 <왓츠 업 덕>(1972), 1930년대 공황기를 배경으로 한 중년 남자와 소녀의 우정을 담은 영화 <페이퍼 문>(1973) 등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라스트 픽처 쇼>는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을 비롯해 총 8개 부문에 오르며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2살로 젊은 거장의 탄생을 알린 셈이다.

하지만 이후의 작품들은 평단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고전 할리우드의 문법을 답습하며 모방자의 모습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제프 브리지스.

짧은 전성기에 비해 오랜 침체기를 겪은 피터 보그나노비치 감독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해 할리우드 영화계는 심심한 애도를 표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해외 매체 <데드라인>을 통해 “그는 멋지고 훌륭한 에술가였다. 마지막 15분 동안 관객들이 갈채를 터트리던 <라스트 픽처 쇼> 시사회를 잊지 못한다”며 “그가 영원히 우리의 박수갈채에 전율을 느끼며 영원히 행복하게 잠들길 바란다”고 명복을 빌었다.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2006)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트위터를 통해 “소중한 친구이자 영화계의 챔피언”이었다고 찬사했고, 피터 보그나노비치의 대표작<라스트 픽처 쇼>를 통해 이름을 알린 배우 제프 브리지스 또한 “마음이 아프다”는 말과 함께 “그는 우리에게 놀라운 영화와 함께 영화 제작자로서의 재능과 통찰력을 남겼다”는 말을 트위터를 통해 전했다.


씨네플레이 심규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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