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로 31년 만에 첫 주연! 당신이 모르는 이정은의 영화 같은 이야기

내가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협업으로 얻은 명예라는 걸 알았다

윌엔터테인먼트

배우 이정은은 잘난 체하지 않는다. 끝없이 겸손하다. 영화 <기생충>으로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고도,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로 안방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고도 전혀 동요가 없다. 함께한 동료들 덕분이라며 공을 돌릴 뿐이다. 이정은은 “그런(주목받는) 작품만 계속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잠깐 롤스로이스를 탄 듯한 기분을 느끼다가도 작품을 위해 지하철을 타듯이 답사하고 연구하는 것의 반복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대학 시절부터 연기를 공부한 이정은이 영화 주연이 되기까지 꼬박 31년이 걸렸다.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을 하였으나 대중이 그를 알아본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배우 이정은에 대해 우리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모아봤다.

1987년, 배우 이정은의 시작

태어날 때부터 연기만 했을 것 같은 이정은이지만, 그는 사실 연기를 할 생각이 크게 없었다. 1970년생 이정은은 대학 입시를 두 달 정도 남겨 놓고 갑자기 연극영화과 진학을 결심했다고 밝혔는데, 이한열 열사의 죽음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정은은 최근 한 방송에서 “한양여고 출신이다. 당시 옆이 한양대였다. 여름에 한창 데모가 많았는데, 데모하면 단축 수업도 하고 너무 행복했다. ‘왜 그럴까’라는 의문이 들었던 1987년에 이한열 열사가 돌아가시는 걸 보고 뜨거운 젊음은 학문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설명했다.

배우가 카메라 공포증?

한양대학교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했던 이정은은 1991년 연극 <한여름 밤의 꿈>으로 배우로서 처음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연기는 녹록치 않았다. 이 시기에 이정은은 단역으로 출연한 영화에서 NG를 자주 내면서 카메라 울렁증까지 생겼다고. 이후 이정은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연기보다 연극 연출에 집중했다고 한다.

<와니와 준하>

이정은은 연기를 시작한 지 약 10년이 지난 뒤에야 첫 영화 <불후의 명작>을 찍었다. 두 번째 영화는 대학 동기였던 김용균 감독의 작품 <와니와 준하(2001)>였다. 영화 <기생충(2019)>으로 미국 아카데미까지 들었다 놨다한 이정은이지만, 2001년 이정은은 ‘발연기’ 논란의 주인공이었다. 혹독한 영화 데뷔를 치른 이정은은 이후 무려 8년 동안이나 영화를 찍지 못했다. 아무도 안 불렀기 때문이다. 이정은은 어떻게 하면 다시 영화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독립 영화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고, 1년에 20편의 독립 영화를 찍기도 했다. 이때 이정은은 못 고칠 것만 같았던 카메라 울렁증도 극복했다. ‘무명시절’ 네 글자로 치부될 수 있는 그 시절에 대해 이정은은 이렇게 말한다.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실패를 하든 어떻든”

이정은의 연기 제자는 톱스타!

한때 연기 선생님이었던 이정은의 제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아는 톱스타 이효리다. 이효리가 SBS 드라마 <세잎클로버(2005)>로 연기에 처음 도전했을 때 이정은이 그를 지도했다. 이정은은 한 방송에서 제자 이효리에 대해 “상황 몰입도가 굉장히 뛰어나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자꾸 웃는다. 그래도 그때부터 꽤 연기를 잘 하는 학생이었다. 감수성도 예민하다”라며 칭찬한 바 있다. 연기 사제지간 이정은과 이효리는 17년 만에 다시 만난다.

<서울체크인> 이효리를 보고 반가워하는 이정은

5월31일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서울체크인> 티저 영상에서 엄정화의 주선으로 이정은과 이효리가 만난다. “두 사람 처음에 어떻게 만났어?” 엄정화의 질문에 이효리는 “언니에게 과외를 받았어”라고 답한다. 이정은은 “이효리가 나를 키웠어”라며 반가움을 전한다.

안 팔아본 것 없는 판매왕

영화 <카트>

유명하지 않은 배우로 살기란 참 팍팍하다.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오지 않는 배우 이정은 또한 마찬가지였다. 1년에 겨우 20만원을 번 적도 있었다는 이정은은 40세가 될 때까지 연기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연기 학원 레슨이 꽤나 큰 수입원이었는데, 이정은은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이정은은 연기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와 생각이 오만해지는 걸 느끼고 나서는, 고생을 사서하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이정은은 야채도 팔고 김밥도 팔고 녹즙도 팔고 돈까스 집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안 해본 일이 없는 이정은은 마트 판매왕을 할 정도로 먹고사는 일에 열과 성을 다했다.

노동은 삶의 예술이에요. 그걸 우습게 보면 안 돼요. 그래서 먹고사는 데에만 필요한 일을 하더라도 늘 나라는 존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강동원과 춤바람이 났던 그 시절

아르바이트생 이정은이 다시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43살 때다. 이정은은 역할이 크든 작든 맡은 연기를 충실히 수행했다. 그 시절 이정은이 출연했던 영화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검사외전(2016)

선거운동원

택시운전사(2017)

황태술 아내

군함도(2017)

부인회 회장

변호인(2018)

아파트 주인

의외로 서울 토박이

배우 이정은은 사투리 연기가 일품이다. 이정은은 사투리를 흉내내지 않고 진짜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처럼 말을 하는데, 토박이들도 깜빡 속을 정도다. 부산 출신 배우 송강호도 속았다. 송강호는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 <변호인>을 촬영할 당시에 이정은이 주스(juice)를 “쥬씨”라고 발음하는 것을 보고 놀라면서 (아마도 동향 사람을 만나 기쁜 마음으로) “고향이 부산이냐?”라고 물었다고. 송강호의 기대와 달리 이정은은 서울 출신이다.

서울 출신 이정은은 최근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제주도에서 생선 가게를 운영하는 정은희 역을 맡았다. 이번에도 제주 사람을 흉내내지 않는다. 일찌감치 캐스팅을 확정 지은 이정은은 이 역할을 위해 제주도로 먼저 가서 현지 주민들에게 사투리를 배웠다고 알려졌다. 경상도, 제주도뿐만이 아니다. 이정은은 영화 <택시운전사(2017)>와 <자산어보(2021)>에서는 전라도 사람이었고, <미성년(2019)>에서는 충청도 사람이었다.

“한 번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어요”

연극과 뮤지컬에서 드라마, 영화까지 온갖 장르를 드나들며 차곡차곡 배우로서 내공을 쌓은 이정은은 2022년 영화 <오마주>로 마침내 첫 단독 주연의 자리에 올랐다. <오마주>는 아내이자 엄마이자 영화감독인 지완이 한국의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인 홍은원 감독의 작품 <여판사> 필름을 복원하며 자신의 인생까지 되돌아보는 과정을 그렸다. 여성 영화인에 대한 어떤 존경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를 부여잡고 있던 지완과 오랜 무명 생활에도 연기를 놓지 않은 이정은은 어딘가 많이 닮았다. 이정은의 첫 주연작이 <오마주>인 것부터 영화 같은 스토리다. 이정은은 영화 개봉 전 인터뷰에서 “글쎄요. 난 한 번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어요. 내가 혼자 살고 있었으니 주변에서 누가 포기하라고 조언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요. 누구도 지지해 주지 않으면 선택은 두 가지에요. 그냥 계속하던가 아니면 그만하던가. 전 그때 계속 하는 걸 선택했어요”라고 말했다. 이정은의 선택은 과연 옳았다. 조금 늦었지만 수많은 이들이 이정은의 연기를 보며 울고 웃고 있으니 말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배우 이정은은 이제 연기만 생각하지 않는다. 앵글 밖 수많은 영화인들에게까지 시선이 간다.

이제 어떤 자리에 가면 말이 없는데 골몰하는 친구들이 먼저 눈에 들어와요. 수면 아래에서 계속 물장구를 치면서 작품을 만들 생각으로 눈을 반짝이는, 빛을 내게 해 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이요. <오마주>에서는 유령이 된 홍 감독이 그런 존재인데, 현실에서는 이왕이면 살아 있을 때 그 빛을 발견하고 개발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그런 선배가 되고 싶어요

씨네플레이 도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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