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사용 매뉴얼

<타짜: 원 아이드 잭>

‘박정민 사용 매뉴얼’에 대해 종종 상상한다. 작품을 받으면 연출이 기대하는 것에 한술 더 떠 인물의 삶에 잠입하는 습성을 지닌 박정민은, 캐릭터와의 혼연일체가 팔자인 양, 작품과 함께 자신의 능력 게이지를 업그레이드해 왔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피아노 천재 연기를 위해 한 번도 쳐 본 적 없는 악기를 이물감 없이 마스터하고, <변산>에선 신들린 힙합 스웨그(swag)를 감쪽같이 습득하고, <타짜: 원 아이드 잭>에서는 현란한 카드 기술을 선보이며 ‘빙의’라는 뜻을 사전적 의미를 시전하더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선 짧은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나타나 다시 한번 인구에 화자 될 변신을 보여줬다.

타인의 삶을 정거장처럼 옮겨 다니며 변신하는 게 배우라지만, 박정민의 놀라움은 자주 그 변신의 예상 범위를 넘어선다는 데 있다. 근성도 노력도 사용 매뉴얼 종류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 배우에게 영화계가 더 많은 고난도 미션을 안기길 바라는 건 관객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다.

<그것만이 내 세상>

박정민을 더 쳐다보게 되는 것은 그가 예상하는 것 이상의 에너지를 보여왔다는 결과 때문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일련의 결과물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그에겐 스스로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진정 모르겠다는 사람 특유의 겸손함이 있다. 그는 자신의 노력을 사람들이 몰라주며 어쩌나 하는 조바심보다, 초월적인 노력의 시간을 남들이 별나게 보거나 매스미디어가 과대 해석(사실 과대 해석이 아니다)해서 과하게 칭찬하면 어쩌나 하는 근심이 더 크다. 이는 ‘배우가 노력하는 건 당연한 것이지, 칭찬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 하는 듯한 그의 연기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인간 됨됨이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보인다.

실제로 인터뷰로 만났던 박정민은 스타도 유명인도 아니었다. 적어도 그 스스로는 그렇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2016년 출간한 산문집 ‘쓸 만한 인간’에서 자신에 대해 “가끔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당신의 평범한 옆집 남자”라고 했을까. 그는 늘 자신이 열등감이 많은 인간이라고, 재능이 뛰어난 배우는 아니라고 스스럼없이 말해왔다. 그러나 이젠 안다.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듯한 그의 화술은 유약함을 드러내는 부정적 언사라기보다 이 배우의 지금을 만든 거대한 힘이자 다짐들임을. 어떤 열등감은 사람을 좀먹지만 어떤 열등감은 사람을 성장시키는데, 박정민이 보유한 열등감의 종류는 명백히 후자다. 그에게 열등감은 자아도취라는 마약에 대한 면역제이고, 성장의 동력이며, 자기 객관화의 거울인 셈이다. 그래서다. 자신의 부족함을 고발하고, 자책하고, 반성하는 ‘자칭 옆집 남자’를 인간으로서도 응원하게 되는 건.

박정민에게 영화란 단순히 개인의 즐거움을 투사하는 곳이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가꾸고 살찌워 나가고 싶은 영역이기도 하다. 언제고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점점 영화를 대하는 제 마음의 형태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껴요. ‘내가 이 영화로 덕을 보겠어!’라는 마음이 사라지고 ‘이 영화를 어떻게 하면 잘 만들 수 있을까’란 책임감이 커지는 상황이에요.” 이것은 그의 절친한 동료인 이제훈에게서도 발견되는 면모인데, 그들의 생각을 이어준 건 짐작하겠지만 독립영화 <파수꾼>이다.

<파수꾼>

2010년 개봉해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파를 안긴 <파수꾼>의 성취는 단순히 그 영화에서 끝나지 않았다. <파수꾼>을 시작으로 한국 독립영화들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의 영화들에 개봉의 기회가 열렸고, 이를 통해 신인 감독과 배우들이 발굴됐고, 그것에 자극받은 새로운 인재들이 영화판으로 유입돼 충무로를 한층 풍부하게 했다. 그러니까 <파수꾼>은 2010년대 유의미한 성과를 이어간 독립영화 횃불의 도화선이었고, 파수꾼이었다. 일련의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이들이 어떤 마음을 가졌을지는 자명하다. 그 시간 안에서 얻었을 기쁨과 자긍심. 그리고 그것이 자라 책임감이라는 울타리를 쳤을 터였다.

박정민을 이야기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편의 영화는 <동주>다. <동주>에서 박정민은 과정은 아름다웠으나 결과가 남아있지 않은 사람, 그래서 역사에서 잊힌 송몽규를 연기했다. 이준익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동주>는 “결과가 아름다운 윤동주를 통해서 과정이 아름다웠던 송몽규를 보여주는” 영화다. 무수히 많은 이 땅 위의 송몽규들을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송몽규를 만난 이후 박정민은 앞서 언급했던 과정이 너무나 아름다운 인물들, 그러니까 피아노 치는 진태와 래퍼 학수와 현란하게 카드를 다루는 도일출과 비밀병기 유이를 만났다. 그가 영화적 애정을 감추지 못했던 <사바하>의 정나한과 <사냥의 시간>의 상수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과정의 아름다움을 보여 준 <동주>와 이후 그의 선택의 인과 관계를 정확하게 계량화하지는 못하지만, 그리고 그것이 명확하게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완전히 무관한 일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박정민에게서 과정의 중요성을 믿는 자의 얼굴이 자주 목격되기 때문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박정민은 <동주>로 영화제 신인상을 받은 것과 관련해 에세이에 이렇게 썼다. “가끔씩 이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그저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 상이 그 순간을 조금은 뒤로 미룰 수 있을 것도 같다.” 그 순간을 미루며 배우로서 자신을 단련해 온 박정민은 최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로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이 상이 배우 박정민에게 또 어떤 의미로 남을까. 수상소감으로 어렴풋하게 예감할 뿐이다. 그는 시상대에 올라 절친했던 고(故) 박지선을 추모하며 말했다. “만약 상을 탄다면 괜찮냐고 물어 봐주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하늘에서 보고 있는 누나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앞으로 더욱 열심히 최선 다해서 연기하겠다고 얘기해 주고 싶었어요.” 근래 나는, 이토록 강력한 다짐의 언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


글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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