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에 대한 갈증으로 개그 먼저 시작했다! 한때 코미디언, 지금은 믿보배 4인!

넓은 의미에서 코미디언들은 연기자 카테고리에 포섭된다. 콩트, 상황극을 통해 정극보다는 짧지만 한 단위의 희극을 연기해야 하는 엄연한 희극’배우’다. 정극 배우들이 ‘코미디 영화’에서 희극 연기를 하듯, 요즘 코미디언들, 다양한 매체에서 정극 배우 못지않은 ‘메서드 연기’ 펼친다. 인물의 보편적 특징을 섬세히 포착해 ‘신도시 미시’나 ‘다나카’를 연기하는 그들을 보면 ‘미쳤다!’라는 감탄만 나온다. 결만 다를 뿐, 이렇듯 코미디언, 배우 공히 연기가 중점이 되는 직업이므로 서로 간에 통하는 것이 많다. 그래서인지 요즘 영화에는 ‘한때 코미디언, 지금은 배우’들의 활약이 도드라진다. 오늘은 끊임없는 도전으로 충무로 희극인 전성시대를 연 배우를 정리했다. 최근 왕성한 활동으로 눈길을 끈 배우를 우선했다.

‘저 배우 어디서 봤더라?’ <한산: 용의 출현>을 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언급하는 배우가 있다. 바로 이순신(박해일 분) 장군의 옆을 지키는 오른팔 송희립 장군을 연기한 윤진영이다. 윤진영은 SBS 7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코미디언으로 2013년 <환상거탑>과 <푸른거탑>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로 들어선다. 이후 드라마 <신의 퀴즈 시즌 4> 영화 <잡아야 산다> <악녀> <블랙머니> 등을 거치며 내공을 쌓더니 2022년 <올빼미> <경관의 피> 그리고 <한산: 용의 출현>로 마침내 빛을 봤다. 코미디언 출신이니 명랑한 감초 역할을 한 것 아니냐고? 윤진영은 웃음기 싹 뺀 연기로 <한산>의 주된 정서인 ‘충정’을 묵직하게 그려낸다. 관객의 몰입을 100% 끌어올린 ‘윤진영’의 송희립에 기존에 각인된 코미디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새로운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개척해온 배우 윤진영. ‘천의 얼굴’로 충무로 희극인 전성시대를 이끌 대표주자로 감히 꼽아본다.

정성화를 뮤지컬 배우로 아는 대중이 많겠지만, 그의 시작은 개그맨이었다. 1994년 SBS 3기 공채 코미디언으로 데뷔해 당대 최고 인기를 누리던 ‘틴틴파이브’의 멤버로 활약했지만 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했다. 전역 후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사고뭉치 석사과정생 정만수로 얼굴을 비친 것을 계기로 정성화는 연기자의 길로 들어선다. 2004년에는 뮤지컬 <아이 러브 유>로 다시 한번 연기 영역을 넓힌다. 단역에서부터 내공을 쌓아온 그는 <맨 오브 라만차> <레 미제라블> <킹키부츠>등의 주인공을 맡으며 명실상부 최고의 뮤지컬 배우로 인정받는다.

이런 정성화에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영웅>이다. 2009년 초연 이후 14년 동안 해외 공연을 포함해 9시즌 연속 안중근 의사에 캐스팅됐다. 뮤지컬 <영웅>을 영화로 제작할 때 다른 인물을 떠올리기 어려웠던 던 이유다. 윤제균 감독은 의심 없이 안중근 의사 역에 정성화를 낙점했고, 오랜 기간 한 인물을 연기하며 깊어진 내공은 스크린에 고스란히 펼쳐진다. 그의 차기작은 <도그데이즈>. 반려견을 통해 연결된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위로하며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배우 ‘김윤진’과 부부로 호흡한다. 

2022년은 그야말로 김신영의 해였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 비중 있는 역할로 깜짝 출현하더니, 전국 노래자랑으로 국민 MC로 등극했다. 김신영은 <헤어질 결심> 후반부에서 ‘해준’(박해일)의 새로운 후배 ‘연수’ 역으로 등장해 특기인 경상도 사투리로 무장하고 웃음만 주는 연기가 아닌 극의 후반부를 끌고 가는 중심인물의 조력자로서 활약했다. 

개인적으로 <헤어질 결심>으로 박찬욱이 제75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것보다 ‘김신영’이 영화에 주요 역할로 출연한 것이 더 충격이었다. 그녀는 의외의 캐스팅이라는 호불호 섞인 여론을 희극 연기로 착실히 쌓아온 내공으로 덮어버렸다. 그렇게 김신영은 어느새 ‘믿보배’가 되었고, 극의 무거워진 분위기를 풀면서도 다른 배우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튀지 않는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박찬욱, 봉준호도 인정한 ‘연기 천재’ 김신영. 차기작 소식은 아직이지만, 영화배우로의 그녀의 행보 뜨겁게 응원한다. 

SNL의 ‘주현영’도 좋지만, 나의 원픽은 역시 ‘정이랑’이다. 2005년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로 데뷔한 정이랑은 ‘SNL 코리아’에 합류하며 번뜩이는 재치와 뛰어난 연기로 큰 사랑을 받는다. 특히 귀에 꽂히는 딕션과 다채로운 단어 구사 능력 선보인 ‘욕쟁이 할머니’ 연기는 모두가 인정하는 그의 인생캐. ‘연기에 대한 갈증으로 개그 먼저 시작했다’라는 그는 배우 활동도 병행해 왔다.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 <보그맘>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영화 <헬머니> <미성년> <귀신> 등에 출연하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2022년 정이랑은 영화 <아네모네(Anemone: A Fairy Tale for No Kids)>를 통해서 오롯한 배우로 한 뼘 더 성장한다. <아네모네>(감독: 정하용)는 전직 격투기 선수 출신인 용자(정이랑)가 복권 당첨 꿈을 꾼 후 남편(박성진)에게 복권 심부름을 시킨 후 실제로 복권 당첨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는 블랙 드라마로 2022 태국 국제필름페스티벌(International Thai Film Festival)에서 감독상을, 일본 유바리국제영화제에서 경쟁 부문 최고 상인 그랑프리와 평론가상 시네가상 수상작으로 동시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활동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놀라운 연기 보여준 배우 정이랑. 앞으로는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더 많이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TMI로 정이랑은 드라마 <더 글로리> ‘매 맞지만 명랑한 년’ 연기로 화제를 모은 배우 ‘염혜란’과 닮은꼴로 유명하다. 그 인연으로 영화 <미성년>에서 모녀로 함께 특별출연했다. 당시 공개된 사진 속 두 사람은 실제 모녀처럼 꼭 닮아 있다. 

포스트의 마지막은 코미디언으로 오해받는 배우를 소개하며 끝을 맺겠다. 놀랍게도 정상훈은 코미디언 출신이 아니다. 1998년 청춘시트콤 <나 어때>로 데뷔한 정상훈은 드라마와 뮤지컬로 꾸준히 활동했지만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런 그가 ‘SNL코리아’의 ‘양꼬치엔 칭따오’ 캐릭터로 20년 무명 생활 끝, 유명 코미디언(?)으로 인생 역전한다. 인지도가 생기자 배우로의 활동도 더 늘었다. 그는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 <어게인 마이라이프> 등에서 호연을 펼치며 ‘그 동안 뜨지 못한게 이상하다’라는 반응을 끌어냈다. 최근 영화 <데시벨>에서는 테러 사건에 동행하게 된 특종 취재 기자 역을 맡으며 코믹한 감초연기부터 극 후반부의 묵직한 질문까지 던지며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