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메이커> 이선균, “흥미진진한 선거판 이야기를 스타일리시하게 담았다”

이선균.

같은 곳을 바라보지만 가는 방법은 서로 다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선거에서 이겨야 하지만 김운범(설경구)은 대의와 정의가 우선이다. 반면, 그를 돕는 참모 서창대(이선균)는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라도 불사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한 인간에 대한 동경과 변혁에 대한 욕망이 충돌하는 지점에 서 있던 서창대의 선택은 기어이 한국 근현대정치사의 지형을 요동치게 만들고 만다.

서창대라는 인물의 모티브를 제공한 엄창록은 정치사에 미친 거대한 흔적에 비해 남아 있는 기록은 많지 않다. 故 김대중 대통령 자서전의 짧은 언급과 그를 아는 이들의 입을 통해 쓰여진 몇몇 언론 기사가 전부다. 이선균은 그의 행적이 담긴 작은 조각들을 모아 기반을 세우고 깊은 고민을 통해 입체적인 캐릭터를 엮어냈다. 실존 인물이라는 부담을 덜어내고 그 만의 서창대를 탄생시킨 것이다. 지난 12월 13일 언론배급시사회 직후 만난 이선균과의 대화를 전한다.


<기생충>(2019) 이후 <킹메이커>로 오랜만에 영화로 관객들을 만난다. 오랜 시간 기다려 개봉하는 영화이기도 한데, 소감이 듣고 싶다.

영화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개봉을 너무나도 기다렸다. 코로나로 인해 개봉과 연기가 반복되다 보니 걱정도 많았다. 애타는 만큼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곧 개봉하게 되어 반갑고 다행이다. 코로나가 2년이 넘게 지속될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우리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도 모두 힘든 시간을 겪어 내고 있는데 이런 침체된 분위기를 넘어 <킹메이커>가 극장 부활의 신호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킹메이커>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변성현 감독님이 감사하게도 대본을 주셨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합류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일동 웃음) 설경구 선배님과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아내(전혜진 배우)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을 두 분과 함께 했기 때문에 팀워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워낙 강한 팬덤을 자랑하는 <불한당> 팬분들이 보시기엔 내가 이 팀에 억지로 낀 것 같아 보일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걱정도 조금은 있었다. 그런데 막상 함께하기로 하니 모두들 환대해주시고 도와주셔서 잘 촬영할 수 있었다.

설경구 배우가 변성현 감독에게 이선균 배우를 추천했다고 들었다.

맞다. 그것도 너무 감사했다. (웃음)

<킹메이커> 이선균, 설경구.

변성현 감독 말로는 이선균 배우가 대본을 받아가곤 바로 답을 주지 않았다고 하던데.

방금 말한 부담도 있었지만, 당시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한창 찍고 있던 중이라 피드백이 늦어진 점이 있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웃음) <나의 아저씨> 촬영 때 극장 안에서 아이유씨와 통화하는 장면이 있었다. 아주 중요한 장면인데 그 극장 안에서 상영하던 작품이 바로 2018년에 디지털로 리마스터링되어 재개봉한 설경구 선배의 <박하사탕>이었다. ‘이거 진짜 운명처럼 하란 이야긴가’ 생각이 들었는데 한 일주일쯤 뒤에 헤어샵에서 변성현 감독을 만났다. 헤어 스타일을 좀 바꿔보려고 이곳저곳 다니다가 우연히 만난 거다. 운명처럼 우연이 겹쳤던 것 같아서 ‘이건 정말 꼭 하라는 이야기구나’ 확신이 왔다. 내가 이런 걸 좀 믿는 편이다. (일동 웃음)

설경구 배우와는 처음 연기를 함께했다. 가까이서 지켜본 설경구 배우는 어떻던가.

내가 생각하던 것과 똑같았다. 극중에서 서창대가 김운범을 바라보며 어떤 꿈을 꾸었던 것처럼, (설)경구 형님은 내겐 그런 분이다.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했지만 우리 또래 배우들은 모두 나 같을 거다. 어릴 때 경구 형님 공연하시는 걸 보며 자라서 항상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그런 분과 함께 연기한다는 것이 영광이기도 했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후배들에게 저런 선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해주는 그런 분이다.

이선균 배우는 자타공인 애주가다. 촬영이 코로나 전이어서 함께 술자리도 많이 가졌겠다.

변 감독님이 우리집에 2박 3일 동안 잡혀 있던 적이 있었다. (일동 웃음) 밖에서 먹다가 집에 와서 먹고, 그러면서 아이디어 회의도 했다. 어떨 땐 레퍼런스로 삼을 영화를 함께 보며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새벽에 가려고 하는데 다른 이를 불러서 또 아침까지 먹고, 애들 학교 보내고 좀 자다가 해장하고 이제 정말 가야지 하다가 또 반주로 먹고. 이런 식으로 며칠을 먹은 적이 있는데 결국 어느 날 아침에 도망가시더라. (일동 웃음) 그때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실존 인물을 연기한 것은 처음 아닌가. 이전 작업과는 준비 과정이 조금 달랐을 것 같다.

경구 형님만큼 큰 부담은 없었다. 서창대의 모티브가 된 엄창록이란 인물에 대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다. 故 김대중 대통령 자서전에 한 줄 정도 언급된 ‘엄창록은 선거의 귀재였다’는 말이 이 영화의 시작이다. 변 감독님이 그 한 줄을 읽고 이 인물이 너무 궁금했다고 하더라. 선거의 귀재라고 하는데 우리는 왜 모르고 있을까 하는 궁금함이 먼저 생겼다. 이북 출신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 이유 때문에 똑똑하고 통찰력 있음에도 앞에 나설 수 없진 않았을까 생각도 했다. <킹메이커>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서 고증에 대한 염려는 덜했던 것 같다.

<킹메이커> 조우진.

군부독재를 위해 복무하는 이 실장은 제갈량의 지략과 조조의 리더십을 갖춘 자라는 이후락을 모티브로 했다. 이 실장을 연기한 조우진 배우가 그 모습을 잘 표현했고, 서창대와의 심리적 대결도 눈에 띈다.

조우진 배우의 연기는 정말 놀라웠다. 개인적으로 팬이기도 하다. (웃음) 조우진 배우가 워낙 연기를 잘하니까 함께 하면 어떨까 하는 궁금함도 있었다. 사실 대본에 나와 있는 이 실장은 이렇게 입체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캐릭터를 가지고 와 떡하니 보여주더라. 리딩 때도 그렇게 읽지 않았는데 갑자기 촬영 현장에서는 마치 뱀 같이 연기를 한다고 할까. 상대를 휘감는 능력에 정말 감탄하며 연기했던 것 같다.

서창대가 처음 김운범을 찾았을 때는 세상을 바꾸려는 순수함으로 그를 도왔다. 선거에 계속 당선되는 동안에도 서창대는 그림자의 역할 뿐이었다. 신민당 후보로 목포에 출마하며 어려움에 봉착하자 김운범은 서창대를 다시 찾는데 이때의 서창대는 처음과는 다른 마음을 가진 것 아닌가 싶다.

인간이기 때문에 보상에 대한 기대가 있지 않았을까. 그러면서도 김운범이라는 큰 그릇에 대한 존경과 동경, 이북 출신이라는 심리적 위축 같은 것도 함께 있었을 것 같고. 어쩔 수 없이 복잡한 인물이 될 수밖에 없다.

<킹메이커> 이선균, 설경구.

그림자로서의 존재. 욕망을 가진 자에겐 너무 힘든 자리 아닐까. 이선균은 어떤가. 욕망을 드러내는 편인가.

나는 어떤 꿈이나 목표를 크게 갖고 가는 편이 아니다. 현실에 충실하고 지금 하는 일을 후회 없이 하자는 쪽이다. 내가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해 운 좋게 20년 가까이 계속 연기를 하고 있고, 기회도 조금씩 넓게 주어지고 있어서 그걸 그냥 잘해나가고 싶은 거다.

한 인간의 인격에 대한 동경을 넘어 감정의 동화까지 엿보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다 드러내지 않는 이선균의 연기가 그 경계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것 같다. 이 경계의 감정을 어떻게 만들어갔나.

그런 것을 신경 쓰며 연기를 했던 건 아니다. 그렇게 보였다면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잘 설계한 덕분이다. 서창대와 김운범에겐 감정의 딜레마가 있다. 김운범에게 서창대는 아픈 손가락 같은, 그러니까 무언가 인정을 해주고 싶지만 마냥 그럴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서창대는 김운범이란 인물을 통해 대의를 이루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둘의 관계가 단순하게 합쳐지지는 않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 관계가 영화에서는 흥미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연기와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리액션이 뛰어난 배우라는 평가도 받는다. 이는 주연 배우로서도 주변 인물의 역할을 극대화해 전체적인 극의 균형을 맞추는 장점이 있다.

그런 평가도 좋다. 예전부터 나는 내 캐릭터가 어떻게 보일까보다는 상대 배우와 어떻게 호흡할까를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다.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할 걸 하는 후회도 가끔은 있지만 그것보다 그 신에서 주고받는 대화, 그리고 그 호흡과 분위기로 관객들을 설득시키면 된다고 생각한다.

목소리야말로 이선균 배우의 시그니처다. 안정되고 설득력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다.

내 목소리가 특징이 있기 때문에 그게 두드러지는 거잖나. 그 부분에 대한 부담은 당연히 있다. 울림이 많아서 대사를 전달하는데도 조금 부족한 점이 있는 것 같고. 아직도 캐릭터마다 두드러지지만 신경 쓰이지 않게 연기할까 고민하며 연기하는 편이다. 물론 큰 변화를 주지는 못하겠지만 (웃음)

지금까지 연기해 오면서 아쉬웠던 게 있다면 무엇일까.

예전에는 로맨틱 코미디의 달달한 연기, 그 연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좀 부끄러웠었다. 지금 아무도 그걸 기억하시지 못하겠지만. (웃음) 한때 짧은 시간이었지만 로맨틱 장르의 파이를 대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그 수식어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지나고 나니까 후회되는 것도 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덮일 거고 또 그 시기만 할 수 있는 장르였는데 왜 굳이 빨리 도망가려 했을까. 좀 즐기면서 더 잘해볼 걸 그랬다. (웃음)

(시계방향순) 이선균과 <화차>(2012)에 함께 출연한 박해준, 진선규, 이희준, 김민재.

박해준, 진선규, 이희준, 김민재 등 이선균이 추천한 배우들이 정말 대단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변영주 감독님이 어느 프로그램에 나가 그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이슈가 돼서 이런 질문을 받는데 그건 내가 뭘 꽂아주고 그런 건 절대 아니다. 그 친구들이 워낙 그 이전부터 훌륭한 배우였고 능력도 출중했다. 학교 다닐 때도 그게 다 보였기 때문에 내가 추천한 거다. 어쩌면 당시에 내가 그 친구들을 위해서 그랬다기보다는 내 작품을 위해 추천했던 것 같다. 얘들도 잘되면 좋겠지만 이들의 능력을 내가 알고 있으니까 그걸 통해 우리 영화도 훨씬 신선하게 보일 수 있었으니까. ‘어? 저 배우 누구지?’ 이런 것도 아주 중요하지 않나. (웃음) 어쨌든 너무 좋다.

최근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배우는 누군가.

이제 함부로 추천을 못 하겠더라. 저 당시만 해도 내가 학교 졸업한 지 얼마 안 됐고, 내가 또 한예종 1기여서 책임감 같은 게 좀 심했을 때였다. (일동 웃음)

대선이 코앞이다. 정치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을 것 같다. 관객들이 어떻게 영화를 봐주셨으면 좋겠나.

우리 영화는 정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아주 스타일리시한 시대극이고 흥미진진한 선거판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또 서로 같으면서도 다른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당시의 정치 상황을 잘 모르시더라도 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없더라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장르 영화로 부담 없이 즐기셨으면 좋겠다.

촬영을 마친 작품도, 촬영 중인 작품도 있다.

개봉을 기다리는 작품이 몇 개 있다. 이하늬, 공명 배우와 함께한 코미디 <킬링 로맨스>가 있고, 김태곤 감독님이 연출하고 주지훈 배우와 김희원 형, 문성근 선배님과 찍은 재난 블록버스터 <사일런스>도 있다. 재난 영화는 안 해봤던 장르여서 기대가 크다. 지금 촬영 중인 영화는 추창민 감독의 <행복의 나라>다. 조정석, 유재명 배우와 함께하는 작품인데 팀 분위기가 너무 좋다. 지금 2/3 정도 촬영을 마친 상태다.


글 · 씨네플레이 심규한 기자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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