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이해준 감독이 지난 20년간 만든 영화들



이해준 감독

<백두산>이 개봉 4주차에 접어들며 (1월 12일 기준) 8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신과 함께> 시리즈의 김용화 감독이 이끄는 덱스터가 제작한 <백두산>은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계에 입문한 이해준 감독이 촬영감독으로도 활동하는 김병서 감독과 함께 공동연출한 영화다. 재난의 상황에서도 틈만 나면 유머를 건드리는 방향에서 이해준 감독의 코미디를 향한 의지가 돋보인다. <백두산>을 연출하기까지, 지난 20여년 간 이해준 감독이 이야기를 만든 영화들을 소개한다.


신라의 달밤 2001

이해준은 서울예대 광고창작학과 동기였던 이해영과 동거동락 하며 시나리오 작가 콤비로 활약했다. <신라의 달밤>은 이해준-이해영이 만든 이야기가 처음 극장가에 개봉된 작품이다. 다만 그들의 버전은 ‘원안’에 그쳤다. 원안은 소심한 고등학교 지리 교사인 영준이 이발소 면도사인 주란을 좋아하고, 사채업자이자 조폭인 기동이 출소해 주란에게 치근덕대면서 삼각관계를 이루는 포근한 드라마였다고. 김상진 감독의 전작 <주유소 습격사건>(1999)의 시나리오를 쓰고 훗날 <연가시>, <판도라> 등을 연출하는 박정우 작가는 영준과 기동의 이름과 주란의 직업을 바꿔, 막돼먹은 체육 교사인 기동(차승원)과 젠틀한 조폭인 영준(이성재)이 동네 분식집을 운영하는 주란(김혜수)을 좋아하는 코미디로 탈바꿈 했다.


품행 제로 2002

<신라의 달밤>을 어정쩡하게 떠나보내고 로맨스 영화의 각색을 지지부진하게 붙들고 있던 이해준-이해영은, 김지운 감독의 제안으로 인터넷용 단편영화 <커밍아웃>(2000)을 작업한 뒤 서서히 충무로 제작사의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다. <품행 제로>는 영화를 연출한 조근식 감독과 정진완-이지형 작가가 쓴 시나리오 ‘명랑만화와 권법소녀’를 이해준-이해영이 수정/보완하면서 최종고가 되었다. 두 사람은 80년대의 분위기를 한껏 살리고, 주인공 중필(류승범)을 목표 없이 어슬렁거리다가 원치 않는 패싸움에 휘말리는 상황으로 설정해, ‘품행 제로’라는 제목까지 제안했다. 마돈나와 신디 로퍼의 취향 대립 구도를 김승진의 ‘스잔’과 박혜성의 ‘경아’로 바꾼 것도 그들의 몫이었다.


안녕! 유에프오 2004

<안녕! 유에프오>는 듀오가 아닌 트리오 체제로 만들어진 시나리오다. 이해준과 이해영은 1997년 여름, 전직 DJ 출신 버스기사와 UFO가 남자친구를 데려갔다고 믿는 여자의 로맨스 ‘UFO를 기다리며’의 초고를 써냈지만 개봉은커녕 시나리오조차 마무리되지 못했다. 오랫동안 표류하던 이야기는 박신양, 이미연 주연의 <인디안 썸머>(2001)를 쓴 김지혜 작가가 투입되면서 결국 <안녕! 유에프오>의 시나리오로 완성됐다. 버스기사 상현(이범수)이 어릴 적 UFO를 통해 딱 한번 세상을 본 적이 있는 선천적 시각장애인 경우(이은주)를 위해 라디오 방송의 DJ인 척하면서 사랑을 키워간다는 이야기. 초기 시나리오에선 조용필의 ‘친구여’가 영화 속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데, 조용필의 섭외가 불발되면서 전인권의 ‘행진’으로 교체됐다.


아라한 장풍대작전 2004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 <피도 눈물도 없이>(2002)를 통해 액션 전문 감독으로 명성을 쌓은 류승완 감독은 무술과 SF를 접목한 야심작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연출했다. 그동안 한 명의 작가의 도움을 받아 시나리오를 직접 써왔지만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2005년 <미스터 주부퀴즈왕>의 감독으로 데뷔하는 유선동, <군함도>(2017)까지 류승완 감독 여러 영화 스토리보드를 도맡아온 은지희, 그리고 각색에 참여한 이해준-이해영 듀오의 힘을 빌려 완성됐다. 자신의 힘을 나쁜 사람을 혼내주기 위해 경찰이 된 상환(류승범)은 ‘아라치’ 의진(윤소이)과 그의 일행 ‘칠선’의 설득으로 ‘마루치’가 되기로 마음먹고 훈련을 거듭해 흑운(정두홍)과 대적한다.


남극일기 2005

임필성 감독의 데뷔작 <남극일기>는 2005년 봄 개봉됐지만, 사실 2002년 말 개봉한 <품행 제로>의 시나리오에 착수하기도 전부터 작업이 이루어졌다. 당시엔 90년대 중반부터 최고의 주가를 기록하던 한석규가 출연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고. <남극일기>는 듀오가 아닌 이해준 홀로 참여해, 임필성-봉준호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썼다. 귀신이나 살인자 같은 특정한 공포의 주체에 기대지 않고, 대원들이 남극이라는 극한의 상황에 미쳐간다는 설정을 밀어붙인 탓에 난해하다는 평이 잇따랐고 흥행에도 실패했다.


천하장사 마돈나 2006

2000년대 들어 해마다 한편 꼴로 작업한 시나리오가 영화화 되는 쾌거를 거둔 이해준-이해영 듀오는 2006년 감독 데뷔작 <천하장사 마돈나>를 발표했다. 3년 전 TV에서 여고생 씨름부 이야기를 보던 중 1시간 만에 시놉시스를 써서, 여자가 되는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씨름선수가 되는 동구의 이야기가 되었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순간의 미세한 뉘앙스에 따라 작품의 질감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스스로도 이야기가 너무 좋아 남 주기 아까워서 직접 연출까지 맡았다. 무엇보다 캐릭터를 그려내는 데에 특출난 재능을 발휘해온 이해준-이해영 콤비는 주인공 동구(류덕환)를 비롯한 씨름부 선배들(이언, 문세윤, 수파사이즈, 윤원석)과 감독(배윤식), 동구의 아빠(김윤석)와 엄마(이상아), 동구가 사랑하는 일본어 선생님(초난강)까지 반짝반짝 빛나는 인물들을 내세워 원하는 걸 위해 결코 좌절하지 않는 ‘소녀’의 영화를 완성했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훌륭한 만듦새는 이해영과 이해준의 다음 ‘연출작’을 위한 발판이 됐다.


김씨 표류기 2009

<천하장사 마돈나> 이후 이해준-이해영 듀오는 각자의 길을 갔다. 이해준은 강우석 감독이 기획하고 <천하장사 마돈나>의 프로듀서 김무령이 제작을 맡은 <김씨 표류기>를, 이해영은 이준익 감독이 운영하는 타이거픽쳐스에서 제작하는 <페스티발>(2010)을 준비했다. 감독 솔로 데뷔는 이해준이 1년 반 가량 빨랐다. <김씨 표류기>는 자살기도가 실패로 돌아가 한강 밤섬에 불시착한 남자 김씨가 무인도에 적응해 살아간다는 한국판 <캐스트 어웨이> 같은 이야기에 방 안에서 자신만의 일상을 영위하는 여자 김씨가 3년 만에 바깥 세상으로 나오는 설정을 더한 이야기다. 코미디에서 시작해 결국 뜨거운 감동을 자아내는 솜씨가 무르익었다. 손익분기점 절반에도 못 미치는 세일즈를 기록했지만, <지구를 지켜라!>(2003)와 함께 ‘마케팅이 망친 수작’이라는 재평가를 받고 있다. 서사만큼이나 이미지도 꽤나 훌륭한데, <김씨 표류기>를 찍은 김병서 촬영감독은 10년 뒤 이해준과 함께 <백두산>을 공동연출 하게 된다.


나의 독재자 2014

김성훈 감독의 <끝까지 간다>(2013)에 각색으로 참여한 걸 제외하면, 이해준의 필모그래피는 <김씨 표류기> 이후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나의 독재자>의 키워드는 남한과 북한, 아버지와 아들이다. 이해준은 남북 정상회담이 추진되던 2007년 가상 회담을 위해 대화 상대를 연기하는 가게무샤라는 보직을 알게 됐고,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 한 장을 떠올리고는 오랫동안 뇌리에 박혀 있던 아이디어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 20년 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일성의 대역 오디션에 합격해 회담이 무산된 후에도 그 역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무명배우 성근(설경구)과 그의 아들 태식(박해일) 두 부자의 이야기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부러 클리셰를 배제했던 <천하장사 마돈나>와 <김씨 표류기>와 달리, 자신의 취향을 접어두고 보편적인 감상 포인트를 고려하고 연출했지만 <나의 독재자>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골든슬럼버 2017

<골든슬럼버>는 강동원으로부터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사카 고타로의 원작소설을 접한 그는 2010년 당시 <전우치>, <초능력자>를 작업(하고 이후에 <두근두근 내 인생>, <검은 사제들>, <마스터>를 연달아 제작)한 영화사 집 측에 소설을 추천하고 종종 개발 중인 시나리오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영화사 집에서 <감시자들>(이 영화 역시 <백두산>의 김병서 감독이 공동연출을 맡았다), <마스터>를 연달아 성공시킨 조의석 감독과 이해준이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을 토대로 각본을 썼고, 노동석 감독을 포함한 6명의 작가의 각색을 거쳐 택배기사 건우(강동원)가 하루아침에 유력 대선후보의 암살범으로 몰려 도주하는 이야기가 됐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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