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상은 그들을 ‘교사’라 부르지 않습니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박홍열&황다은 감독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스틸컷. 사진 제공=㈜스튜디오 그레인풀

서울 마포구 성산동 일대에 자리잡은 성미산 마을은

꽤 알려진 25년차 공동체 마을이다.

이곳의 ‘도토리 마을 방과후’는 교사, 아이, 부모가 함께 만들며,

초등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0명의 아이들과

5명의 교사들이 먹고, 놀고, 배우며 생활한다.

갑작스레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치자

학교는 문을 닫았지만, 이곳은 운영시간을 늘린다.

코로나19가 지속되자 마을 방과후 교사들이

할 수 있는 건 점점 줄지만, 해야 할 일은 늘고

아이들의 일상을 지켜주기 위해

이들의 고민은 점점 더 깊어만 간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공동감독 박홍열&황다은)는 코로나19로 학교가 문을 닫는 상황에서 아이들과 학부모를 지켜준 ‘도토리 마을 방과후’(이하 도토리) 교사들의 고군분투를 담은 영화이다. 도토리에 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이자 조합원인 황다은 시나리오 작가와 박홍열 촬영감독은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을 공동연출하면서, 공적인 ‘돌봄’과 ‘교육’ 사이에서 분투해왔지만 사회적으로 호명 받지 못하는 교사이자, 10년을 일해도 1년의 경력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돌봄 노동자인 마을 방과후 교사들을 처음 스크린에 담았다. 황다은, 박홍열 공동감독을 만나 돌봄, 교육, 마을공동체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황다은&박홍열 공동감독. 사진 제공=㈜스튜디오 그레인풀

도토리 이야기를 영화화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궁금해요.

황다은 감독(이하 황): 두 살 터울 아이 둘을 도토리에 보냈어요. 큰애는 졸업해서 중3이 되었고요, 둘째가 도토리에서 6년을 채우고 올해 졸업합니다. 꽤 오랫동안 도토리 생활을 한 건데, 정작 선생님들 현실을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자각이 왔어요. 도토리에는 전체 조합원 교육이 있거든요. 왜 우리가 도토리에 모이고, 어떤 가치를 실천하는지 되새기는 자리죠. 거기서 선생님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직업란에 기타로 표시해야 한다’, ‘도토리에서 일한 경력은 사회적으로 인정이 안 된다’, ‘가족에게조차 내 직업을 설명하기 어렵다’라는 이야기를요. 충격적이었죠. 그래서 도토리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는 도토리 선생님들의 고충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마음이 컸습니다.

박홍열 감독(이하 박): 도토리에 온 지 얼마 안 된 선생님들이 더 있고 싶어도 미래를 보면 경력 산정이 안 되니 남기 어렵다고 말하는데, 그런 고민이 있는지 정말 몰랐어요. 그래서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를 통해 일차적으로는 선생님들이 자신의 직업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구조적으로 사회에서 이들을 호명하는 작업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죠. 둘째로는 교사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돌봄 교사들을 소환하자는 의미에서 영화화를 결심했습니다.

영화를 찍겠다고 했을 때 교사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설득 과정에서 갈등은 없었는지 궁금해요.

박: 다큐멘터리 제작에는 관계성이 중요해요. 저희는 이미 5년 동안 선생님들을 알던 사이었잖아요. 그게 큰 힘이 되었죠. 학생, 학부모, 교사를 교육의 3주체라고 하는데, 도토리는 진짜거든요. 정말 긴밀해요. 흔쾌히 수락해주셨어요. 회의가 길어지면 카메라를 두고 귀가했는데, 다음날 되면 선생님들이 촬영한 카메라를 집 앞에 두고 가실 정도였다니까요(웃음).

황: 물론 어려운 일이죠. 교사의 내밀한 공간을 마음껏 열어준 거니 정말 감사한 일이고요. 영화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마을 방과후 교사라는 대표성을 띄고 사명감을 갖고 용기를 내주신 거 같아서 고마웠어요. 그래서인지 시사회에 참석한 마을 방과후 교사들은 보면서 울기도 하고, 공감을 많이 하더라고요. 후원도 해주시고, 밤 12시 넘어서 응원 문자 보내주는 분도 있어요.

영화 촬영한다고 하니 아이들은 좋아하던가요?

박-촬영하면서 카메라도 돌봄을 받는다고 느꼈다고 할까요? 제가 뒷걸음질하면 아이들이 카메라를 보지 않으면서 ‘조심해!’라고 말해주고요. 풀숲에 들어가서 촬영하면 ‘벌레 있다’ 이렇게 말해주기도 했죠. 저학년 아이들이 카메라 만지려고 하면 고학년 아이들이 그러지 말라고 하기도 했고요. 3년 동안 카메라가 오히려 아이들의 돌봄을 받은 거 같습니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스틸컷. 사진 제공=㈜스튜디오 그레인풀

본격적으로 도토리에 대해 질문드릴게요. 우선, 공동육아요. 많이 들어보긴 했는데,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황: 사회적부모협동조합이라고 해서 조합원의 출자금과 조합비를 모아서 공동 운영하는 시스템입니다. 교육의 3주체 중 교육은 선생님들이 전적으로 맡고요, 운영은 부모들이 번갈아 해요. 교육소위원회, 시설소위원회, 재정소위원회 등 나눠진 소위에서 활동하죠. 정기적으로 소위 모임을 하면서 그때그때 이슈들을 논의해요.

도토리의 교육적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황: ‘아이가 아이답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가치를 실천하는 곳’입니다. 아이들의 놀 권리, 일상속에서 스스로 배울 권리, 어른과 아이 그리고 형과 동생이 서로 더불어 자랄 권리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으는 곳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네요.

운영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황: 학기 중에는 정오부터 저녁 6시까지입니다. 방학 중에는 오전 8시부터 문을 열어요. 통상 저녁 7시까지는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주세요. 맞벌이 부부들에게 힘이 되죠. 코로나19 상황이 발생했을 때, 특히 저학년 돌봄 문제가 심각했잖아요. 그때도 도토리가 긴급돌봄을 하면서 학부모들이 한숨 돌렸죠.

박: 조합원 중에 인디밴드가 있는데요. 이 가정이 올해 앨범을 낼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도토리가 있어서에요. 낮에 아이들을 안심하게 맡아주니 마음껏 곡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거죠(웃음).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스틸컷. 사진 제공=㈜스튜디오 그레인풀

초등학교 방과 후 공동육아라고 하니,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박: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말씀드릴게요. 아이들 하원하러 가면 어른들이 내 아이를 부르기 전에 다른 아이를 먼저 불러요. 그러니까 이 마을에 60명의 어른이 있다면, 그 어른들이 매일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거죠. 저는 이게 참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성인이 되어서 사회에 나가면 우리는 끊임없이 존재증명을 해야 하잖아요. 아이들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서로 이름 부르고, 기운을 주고받는 거죠. 아이도 어른을 부를 때 별명으로 불러요. 제 별명은 오가피인데, 아이들이 ‘오가피, 어디가?’ 이렇게 말하거든요(웃음).

맞아요. 영화에서 보니 ‘논두렁’, ‘보름달’ 등 정겨운 별명으로 교사, 학생이 서로를 부르더라고요.

황: 자기 이름은 스스로 정할 수 없잖아요. 별명은 자기 바람이 들어갈 수도 있고, 또 누군가가 지어줄 수도 있어요. 논두렁은 예전 대안학교에서 농사 활동을 할 때 농부들이 새벽부터 밤까지 걷는 논두렁에서 감흥을 받아서 지은 별명이에요. 오솔길은 탄탄대로, 포장도로가 아니라 사람들이 다녀서 내는 길이죠. 저는 하수오에요. 약재에서 따왔습니다(웃음).

박: 별명을 부르고, 아이와 어른 사이에 평어를 쓰는 문화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직업, 나이 상관없이 대등하게 만날 수 있는? 30대 초반 학부모와 50대 중반 학부모가 서로 평어로 대화하고 별명을 부릅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거죠.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더라고요.

그런 문화가 정착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겠죠?

박: 25년이 되었다고 해요. 도토리는 전국 최초 마을 방과후입니다. 마을 안에 다양한 형태의 공동육아 공동체가 있어요. 우리 마을에도 4개가 있었는데, 2017년에 도토리 방과후(1~3학년)와 성미산 방과후가 통합되면서 1~6학년 그러니까 초등 전 학년을 아우르는 도토리 마을 방과후가 된 거죠. 규모도 커졌고요.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스틸컷. 사진 제공=㈜스튜디오 그레인풀

도토리에서는 학년별 교육이 이뤄지나요?

황: 학년별로 ‘해냄’ 활동이 있습니다. 1학년은 하원 연습을 해요. 학교 마치고 혼자 도토리까지 올 수 있도록 선생님과 연습하기도 하죠. 자전거 활동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하는 활동이에요. 행주산성까지 두발자전거 라이딩을 하는 거죠. 통합 활동도 물론 있고요. 식구가 10명인 대가족을 상상하면 이해가 쉬울 건데요, 첫째부터 막내까지 함께 어울리잖아요. 밥 같이 먹다가 각자 공간에서 놀기도 하는 것처럼요. 마을과 연계해서 상황에 맞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함께 모이는 시간이 많은 거 같은데, 그럴 때는 몇 학년에 눈높이를 맞추시나요?

박: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놀이를 생각해보세요. 학년이 중요하지 않잖아요. 놀이는 학년을 초월해서 이뤄지는 게 더 많죠. 그럴 때는 형, 누나가 동생을 챙겨주기도 하고요. 나이를 떠나서 싸우기도 합니다. 뛰어놀면서 관계를 배우니까, 친구에 대한 배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죠.

황: 감동적이었던 게 1학년 때 두발자전거 배우면서 힘들어했던 아이들이 3, 4학년이 되면 동생들을 가르쳐줘요. 행주산성에서 먼저 기다렸다가 동생들이 도착하면 축하해주고요. 모둠회의 때 주뼛대던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 더 의젓해지고 잘하더라고요. 자기도 형, 누나들처럼 되고 싶다고요. 졸업해서 중학생이 된 아이가 저희 여행에 와서 초등학생과 함께 피구를 했는데, 어찌나 감동이었던지요.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스틸컷. 사진 제공=㈜스튜디오 그레인풀

도토리에서 아이들은 수학도 영어도 아닌 일상을 배웁니다. 공교육 돌봄 체제와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황: 보통 마을 방과후 교사라고 말하면, ‘어느 학교 나가세요?’, ‘뭐 가르치세요?’라는 질문이 돌아와요. 학교 방과후 교사는 돌봄이라기보다는 프로그램인 거죠. 코딩을 배운다거나, 요리, 바둑을 배우러 다니는 거죠. 이런 걸 교육이라고 하면 스펙 쌓기에 필요한 것들로 선택하는 경우도 많고요. 도토리는 고정된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아이들을 안정적으로 돌보고, 곁을 지키면서 더불어 지내는 놀이 교육을 제공하는 거죠. 특정 프로그램으로 무언가 익히는 게 아니라, 일상 안에서 배움이 저절로 이뤄진다는 겁니다. 설거지하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간식 도우미로 동생들을 챙기기도 하고요. 생활 안에서 아이들이 관계를 배워요. 놀이 안에서 심신의 체력을 키우고요. 여기서 익혔던 것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큰 힘이 된다는 졸업생이 많습니다. 중학생쯤 되면 사춘기가 세게 오는데, 여기 아이들은 배려심이 생겨서 좀 덜 심하게 겪는 거 같기도 해요.

간혹 아이들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도토리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나요?

박: 놀이를 하다 내가 이겼네 아니네 하는 분쟁이 생길 수도 있죠. 좋은 걸 툭툭 치는 걸로 표현하는 아이도 있고, 그런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있고요. 다만, 도토리 선생님들은 기본적으로 ‘아이들은 끊임없이 변한다’고 생각하세요. 아이들 성향이 다 달라요. 매년 변하고요. 분쟁도 한 장면으로 분절해서 보는 게 아니라, 함부로 개입하지 않고 큰 시간 단위에서 전체적으로 아이를 바라봅니다. 이 아이가 어던 상황이었고 어떤 마음이었는지요. 필요할 때는 부모님과 그 상황에 대해 상의하기도 하죠.

황: 공동육아가 항상 이상적인 건 아니에요. 갈등도 물론 있죠. 다른 곳과 다른 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기 위해 서로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이야기한다는 거죠.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스틸컷. 사진 제공=㈜스튜디오 그레인풀

영화를 보면서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도토리에서 강조하는 ‘놀이’였어요. 초등학생들에게 왜 놀이가 중요한 거죠?

황: <오징어게임>을 보세요. 놀이에 모든 것이 들어있잖아요(웃음). 일단 초등 성장기 아이들은 실컷 놀아야 체력적으로도 근력이 생겨요. 놀이 속에서 아이들이 관계를 배우고, 버티는 힘도 생깁니다. 진정한 사회생활의 축약본이 아이들 놀이 같아요. 놀면서 협상도 하고요, 말도 못 꺼내던 아이들이 형, 누나에게 대들어보기도 하거든요. 아이들 생애 역사에서 정말 중요한 사건이잖아요. 크면서 동생을 받아들이는 성장도 있고요. 아이들이 어른처럼 사고체계를 형성해가는 시기이기도 한데, 놀이 안에서 그 모든 것이 발현되는 것 같습니다. 놀이를 먼저 배운 고학년이 저학년에게 전수해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배움이 일어나기도 하니까요. 아이들만 노는 게 아니에요. 선생님도 부모도 그 안에서 같이 놀아요. 일일교사로 참여하면서 아이들 덕분에 신나게 놀다 보면, 그 안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도 만나고, 아이들과 새로운 관계도 만들어져요.

그렇게 놀이가 중요한데, 정작 어른들은 놀 줄을 몰라요. 우리 사회가 점점 각박해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박: 놀이를 배워야 하는 사회가 되었어요. 슬픈 일이죠. 예전에 화곡동에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왔는데 충격이었어요. 이 마을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더라고요. 점점 아이들이 놀 공간이 사라지니, 안전을 생각하는 부모 입장에서는 학원을 보내고 싶지 않아도 결국 아이들이 서로를 만나 놀 수 있는 학원을 보내야 해요. 도토리에는 불안한 부모를 대신해 교사들이 골목골목을 지키고 있고, 정말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찾아다니며 놀아요. 제가 대학에서 강의할 때 1,2학년 중에 우울증을 앓거나 공황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부모님 사랑은 넘치게 개별적으로 받았지만, 마음의 병이 해소되지 않는 거예요. 앉아서 SNS만 해요. 미디어 속 세상을 보며 더 마음의 병이 깊어지고요.

황-공동체에서 사라지는 아쉬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죠. <오징어게임>에서 나오는 ‘깍두기’도 사실 배려의 개념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고요. 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던 시절이 있었죠. 그 모든 것이 프로그램이 되었고, 외주화되었습니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돈을 내고 놀이를 배우고, 학원에 가서 관계를 배우죠. 저녁이 없는 빡빡한 삶을 사는 부모는 너무 바쁘고요. 그러다 보니, 이렇게 공동육아, 마을 방과후 같은 시스템으로 애써 예전을 구현하려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스틸컷. 사진 제공=㈜스튜디오 그레인풀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지만요. 땅 파고 놀고 나뭇가지 들고 노는 교사들의 어린 시절 모습을 2023년의 아이들에게 교육하는 것이 혹시 강요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박-사회가 아무리 고도화하더라도 결국 마지막 결정은 사람이 하죠. 소통이 안 되면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놀이를 알아야 해’라고 강박적으로 알려주는 게 아니에요. 자연스럽게 ‘놀 사람?’ 해서 이뤄지거든요. 도토리에서 놀이는 학습이나 배움보다는 끊임없는 관계 형성에 가깝습니다. 그러면서 소통하는 방법을 깨우치는 거고요.

황: 우리 안에 있는 놀이 본능이라고 할까요, 그런 원형을 지키려는 의지 같아요. 스티브 잡스나 빌게이츠, 일론 머스크도 자녀들에게 일반적인 교육을 안 시켰다고 하잖아요. 전자기기도 안 주고요. 교육 측면에서 어떤 강요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이 사회가 이상적으로 유지되려면 철학이 필요하잖아요. 특히 초등학생 시기는 반드시 애써 지켜줘야 하는 시기이고요. 도토리 아이들은 귀가하는 7시까지 핸드폰을 못 써요. 그런 강제는 오히려 좋다고 봐요. 혼자 학원 차로 이동하면서 유튜브 시청하는 것보다는, 관계 안에서 노는 거니까 좋은 강제라고 봐요.

아이들을 위해 24시간을 보내죠. 그런데 도토리의 교육이 오롯이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확신은 어디에서 옵니까?

황: 온전히 아이들만을 위한 건 아닌 거 같아요.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물어보거든요. 어른도 아이와 어울리면서 같이 성장하는 거죠. 아이와 어른이 함께 무럭무럭 매일 같이 놀고, 배우고, 성장해나갈 수 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죠. 도토리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 공간에 있는 기분이에요. 어른이 되면 변하기 힘들잖아요. 그런데 도토리에서는 어른도 성장하니까요.

박: 사실 공동육아라고 해서 학부모들이 거창한 뜻을 품고 도토리를 찾는 경우는 드물죠. 처음에는 아이를 맡기러 오는 겁니다. 그렇게 6년을 보내면서 끊임없이 다른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문화에 스며들어요. 공동체의 힘이 언제 발휘될까요? 일상보다는 힘들 때에 더 잘 드러나는데요. 예를 들어 저희가 코로나19 자가격리를 2주 했는데, 문앞에 반찬통이 스물일곱개 놓여 있었습니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영화를 찍었다고 하니, 조합원 학부모 한 분이 포토샵으로 포스터도 만들어주시고요. 누가 시켜서 그런 게 아니에요. 누군가가 힘들 때 나누는 경험이 쌓인 거죠. 정말 재밌는 건 아이들이 이걸 배운다는 거예요. 평상시 놀 때는 서로 안 지려고 하는데, 누가 힘들다고 하면, 진심으로 위로해주죠. 공동체는 혜택을 보려는 곳이 아니라 나누는 곳이란 걸 배운 거예요.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스틸컷. 사진 제공=㈜스튜디오 그레인풀

어른들도 성장하고,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배운다니 정말 의미가 있네요. 놀이가 왜 중요한지 잘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놀이 말고 공부하고 싶다는 아이는 없나요? 그러니까 이 질문은 대안학교들에게 제기되는 학습결손 문제입니다.

황: 저희가 놀기만 하는 건 아니에요(웃음). 놀이가 강조되긴 했지만. 그 안에서 책도 읽고. 글쓰기도 하고. 모아서 작은 문집도 내기도 하고. 신문도 만들었어요. 저학년 때는 사교육을 지양하는데,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그런 욕구들이 나타나요. 둘째가 6학년 때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조합원 학부모 중에 이공계 출신 아빠들이 방학에 ‘아빠수학’ 수업을 했어요. 또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아이들이 하루 20분씩 줌으로 만나 책도 함께 읽고, 일상 영어 표현들도 찾아보더라고요. 자발자발적으로 시작한 모임인데요. 저녁에 같이 줌으로 만나 책을 읽자고 하면서 시작됐고, 모인 김에 교과서에 나오는 영어 말고 생활 속에서 본인들이 자주 쓰는 영어 표현을 찾아보며 근황도 나눠요. 몇 년 하더니 동생들에게도 전수해줬고요. 이게 ‘마포숏폼동아리공모전’에 출품해 대상을 받아 상금으로 100만원도 받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 아이들은 스스로 도서관 가자고 약속을 잡아요. 배우고 싶은 과목이 있으면 학원을 보내달라고도 하고요. 그만큼 놀았으니 이제는 공부해야지 하는 마음도 있는 거 같아요(웃음). 자발성, 밀고 나가는 힘이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도토리에 교사는 몇 명인가요?

황: 상주 교사는 5명이에요. 오래 일한 교사는 적어요. 호봉이 올라가서 급여가 조합원에게 부담될까봐 그만둬야 하나 생각하는 분들도 있어서 안타깝죠. 아이들과 너무 잘 지내는데,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 그만두는 분들도 많았어요. 저희가 채용 공고가 잦았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 새로 선생님이 오시면 오히려 애들이 먼저 물어요. 언제까지 있을 거냐고요.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그만두는 교사는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하는데, 아이들은 오히려 쿨해요. ‘놀아줘서 고마워’라면서요(웃음).

조합원은 총 몇 명인가요?

황: 학년별로 10명 정도 있다고 보면 되어요. 60명 정도인데, 형제자매의 경우가 있다 보니, 60가구는 아니고요. 조합비가 매년 달라지는데, 더 안 높이려고 애쓰죠. 너무 비용이 높으면 이 일을 하는 취지에 안 맞거든요. 오고 싶어도 부담되면 못 오니까요. 그래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도토리 같은 방과후 기관이 훨씬 많아지고, 지원도 받게 되면 진입장벽이 낮아지게 되고, 그러면 더 많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돌봄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박: 저희는 마을 방과후를 ‘터전’이라고 부르는데요. 운영이 불안한 터전들이 많아요. 도토리는 학부모들의 조합비로 운영돼요. 도토리는 그래도 안정적인 편인데, 다른 마을 방과후를 보면 무리해서 아이들을 받으려고 하는 상황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매년 등원하는 아이 수가 운영비와 직결되니까요. 교사들도 무리해서 급여를 올리지 못하는, 그러니까 학부모와 교사가 서로 미안한 구조가 되더라고요.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스틸컷. 사진 제공=㈜스튜디오 그레인풀

조금 더 교사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영화에서 도토리를 ‘아이들이 모였다가 어른들이 더 신나는 곳’이라고 소개하셨는데, 너무 교사들 분위기가 무거워요.

박: 처음 영화 편집본 러닝타임이 4시간 반이었어요(웃음). 술 안 마셔도 재밌게 노는 사람들 있잖아요. 학부모들 씬이 많았는데, 이분들이 정말 흥이 많거든요. 그런데 그런 부분을 부각하면 관객에게 이 영화의 진심이 닿지 않을 거 같았어요. 그래서 학부모 부분을 덜어냈고요. 이 영화로 마을 방과후 교사를 호명하는 것이 목표였다 보니, 전략적으로 선택한 거죠. 그러다 보니, 회의하는 선생님 모습이 많이 담겼고, 특히나 코로나19가 오면서 더 상황이 안 좋아진 부분들도 들어가면서, 전체적으로 영화 분위기가 조금 무겁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가장 궁금했던 건데요. 아이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사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듯한. 그런데 정작 교사 본인에게는 본받을 어른의 모습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교사들이 더 답이 없는, 결론이 나지 않는 회의를 되풀이하는 거 같기도 하고요. 속된 말로 ‘맨 땅에 헤딩’하는 느낌이랄까요. 안타까웠죠.

황: 선생님들은 동료 교사가 어른이라고 말하시더라고요. 함께 해서 의지가 된다고요. 엄청 끈끈해요. 부득이하게 떠나간 선생님들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아요. 서로에게 배운다고 해요. 아이들이 스승이기도 하다고 해요. 무심히 하는 말 속에서 철학적인 깨우침을 얻기도 한다고요. 선생님들은 매번 겪지만, 부모는 모든 게 처음이에요. 그걸 무한 반복하는 거라 선생님들이 더 대단하신 거고요.

박: 어떤 교사라는 나름의 상은 있겠지만, 정형화된 건 아니에요.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거기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면서요. 그런데 지금 기자님 질문처럼 학부모는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명확한 걸 요구하죠. 왜 이런 거 안해줘요? 왜 핸드폰 쓰면 안 되나요? 왜 내 아이를 빨리 하원시키면 안 되나요? 이렇게 질문하면서요(웃음). 저도 이걸 이해하기까지 3년 쯤 걸린 거 같네요.

저는 이 영화의 가장 큰 화두가 ‘지속가능성’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선생님들이 직업란에 표기할 항목도 없이, 경력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자신을 갈아넣어야 하는 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 않잖아요.

황: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영화로 마을 방과후 교사들이 사회적 호명을 받을 수 있다면, 자신의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사람들이 알아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통해 마을 방과후 교사들의 자긍심이 높아지고, 그들의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도록 내적인 힘을 줄 수 있으면 더더욱 좋겠고요. 둘째로는 다짐만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잖아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경력도 인정돼야 하고요.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다고 해서 비전문가는 아니잖아요. 마을 방과후 교사들 잘하고 있다는 인정을 넘어 적절한 지원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 더 말씀드리면 도토리의 놀이 교육이 공교육에도 적용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스틸컷. 사진 제공=㈜스튜디오 그레인풀

도토리는 정부 지원을 받고 있나요?

박: 비인가라 지원이 없죠. 저희 마을에 공동육아 하는 구립 성미어린이집이 있는데요. 여기는 정부 지원이 되다 보니까, 우리끼리는 ‘3대가 덕을 쌓아야 아이를 보낼 수 있다’라는 우스갯소리도 해요. 이런 선택지를 국가가 더 줄 수 있다면, 초등 방과후에도 지원해줄 수 있다면 교육의 기회가 더 확장되지 않을까요? 정부의 돌봄 정책 중에 키움세터에서 방과후 돌봄을 하는데, 이미 잘 운영되고 있는 비인가 마을 방과후에도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원해주면 좋겠습니다.

영화에서 쌀 씻고 밥 안치는 장면이 영화 초반에 두 번 나와요. 길게 보여주기도 하고요. 어떤 의미를 부여한 장면일까요?

박: 영화적으로는 리듬을 만드는 장치였어요. 이 영화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일상이잖아요. 밥을 먹기 전에 누군가는 정성스럽게 쌀을 씻어야 밥이 지어지는 것처럼요. 도토리라는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갓 지어 뜨끈한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밥보다, 그 전에 밥을 짓기 위해 행해진 무수한 행위라는 거죠. 그것이 우리의 일상이고 삶이니까요. 확장하면, 돌봄이라는 것 역시 과거에는 여성의 몫이었죠. 가치 평가를 받지 못했던 돌봄이 사회에 나오면서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것도 이런 장면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오는 시간대가 다 다른데, 한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도토리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정말 맛있는 밥 냄새를 선물해주고 싶었다고요.

아이들이 어떻게 크면 좋겠다고 바라세요?

박: 세상에 어떤 절대적인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그 관계 안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사회에서 어른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 노력하는 거잖아요. 저는 아이들이 불안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실패해도 괜찮다고 늘 아이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황: 나에서 너로, 너에게서 우리로 확장하는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요. 자기의 품을 기꺼이 내줄 수 있고, 나눔도 받을 수 있으면 더 좋겠고요. 요즘 SNS 보면 부캐도 많고,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정작 자신이 누군지 몰라요. 이건 자신만 봐서도 몰라요. 남도 봐야 하고 우리 안에서 생각해봐야 잘 보이죠.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어른이 되면 좋겠습니다.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세요.

황: 듣기도 생소한 마을 방과후 선생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돌봄 노동자를 사회적으로 호명하고 소환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봐요. 보이지 않는 순간에서도 애쓰는 순간이 다 있잖아요. 곁을 나눠주고 살아가는 존재를 떠올려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의 의미도 느껴지고요. 꼭 극장에서 영화를 보시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함께 나눴으면 해요. 저희가 GV를 서른한 번 합니다! 꼭 극장에서 뵈어요!

박: 우리 모두 외롭고 불안합니다. 그런 우리의 영혼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는 영화입니다. 또 하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게 드리고 싶은 이야기에요.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이기도 하거든요. 극장에서 보시고 다큐멘터리에 대한 답을 찾아보셔도 재밌을 겁니다.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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