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 0순위 천만배우이자 최고의 스캔들 메이커 ‘박강’(권상우 분).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만끽하고 있지만,
정작 크리스마스이브에 끌어안을 것이라고는 시상식 트로피뿐.
유일한 친구이자 뒤처리 전문 매니저 ‘조윤’(오정세 분)을 붙잡아
거하게 한잔하고 택시를 잡아탄다.
다음날 아침, 낯선 집에서 깨어난 ‘박강’에게
생전 처음 보는 꼬맹이 둘이 안겨오고,
성공을 위해 이별했던 첫사랑 ‘수현’(이민정 분)이 잔소리를 폭격하며
등짝 스매싱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매니저 ‘조윤’이 천만배우가 되어
그가 있어야 할 톱스타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데….
하룻밤 사이, 인생이 180도 뒤집어졌다!
속이 뒤집히는 ‘박강’은 불현듯,
지난밤 택시 기사가 무심코 건넨 한마디가 떠오르는데…
“만약에 선택을 바꿀 기회가 생긴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돈 많고 개념 없는 안하무인 톱스타와 그의 뒤처리를 전담하는 극한직업 매니저. 가깝고도 먼 두 남자의 인생이 하룻밤 사이에 180도 ‘스위치’된다.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상상이 현실로 벌어지는 영화 <스위치>가 새해 극장가를 찾는다.
무명의 연극배우 시절부터 동고동락한 절친이자 동시에 톱스타와 매니저라는 애증의 관계를 통해 환장의 티키타카를 선보일 배우 권상우와 오정세는 ‘인생 스위치’라는 설정에 대해 “거울을 보는 듯한 미묘한 느낌이 재미있었다. 영화 한 편으로 두 가지 맛을 느낄 수 있을 것”(권상우), “극과 극의 두 인물이 서로 스위치 됐을 때 벌어지는 상황이 관객들에게 유쾌하게 다가갈 수 있을 영화”(오정세)라며 영화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민정 배우 역시 “권상우와 오정세의 역할 뒤바뀜이 주목해야 할 관전 포인트”라고 밝혀 기대감을 더했다.
<청풍명월>(감독 김의석, 2003) 조감독을 시작으로 <10억>, <덕혜옹주> <탐정: 더 비기닝> 각색 작업을 거쳐 <그래, 가족>(2017)로 입봉한 마대윤 감독이 <스위치>에서 메가폰을 잡았다. 평소 현실과 다른 세계, 다른 인생을 다룬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는 마대윤 감독은 “실제로 함께 연기를 시작하다 한 명은 톱스타가 된 친구 사이를 본 적이 있는데 굉장히 흥미로웠다”라며 <스위치>를 기획한 배경을 설명했다. 마대윤 감독을 만나 영화 <스위치>의 뒷이야기와 촬영 현장에서 배우 권상우, 오정세, 이민정의 케미스트리에 대해 들어봤다.
2023년 1월 4일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새해를 여는 첫 한국영화인데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첫 영화로 개봉하는 게 기분도 좋고 설레기도 해요. 영화 개봉을 앞두고 시사회 초대도 해야 하고, 여기저기 연락도 돌리고 있는데요. 다들 새해에는 한국영화가 잘 되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첫 포문을 여는 <스위치>는 밝고 유쾌하며 따뜻한 감동이 있는 영화니 많이들 극장에 오셔서 보셨으면 합니다.
영화를 보니 <스위치>는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마법 같은 영화’더라고요. 개봉일이 좀 아쉬웠어요. 크리스마스에 개봉했더라면 하는?
<스위치>의 원래 제목이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어요. 영화에서 같은 제목의 그림도 나오거든요. 크리스마스 개봉을 계획으로 작업했는데, 배급 일정은 감독 혼자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물론 크리스마스에 개봉했어도 좋았겠지만, 나름대로 2023년 새해 첫 한국영화이니 의미가 있다고 봐요.
또 2022년 크리스마스를 의미 있게 보내지 못한 분들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점에서 관객들이 <스위치>로 지난 크리스마스를 추억하고, 감동도 느끼면 좋겠어요. 사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존경하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님의 영화 <아바타2: 물의 길>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것만도 영광이긴 합니다(웃음).
영화를 보면서 니콜라스 케이지(잭 캠벨 역)와 티아 레오니(케이트 레이놀즈) 주연의 <패밀리맨>(감독 브렛 래트너, 2000)이 바로 떠오르더라고요. 설정도 니콜라스 케이지는 월스트리트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투자전문 벤처기업가고, 연인과 공항에서 헤어졌던 설정도 비슷하죠. 눈 내리는 날 사건이 발생하는 것도요. <패밀리맨>을 보고 참고하셨는지 궁금해요.
<패밀리맨>은 물론 예전에 봤죠. <스위치>의 출발점은 스크루지 같은 캐릭터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각성을 하는 건데, 그러면서 스토리 줄기는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처럼 신분이 바뀌는 거였어요.
그렇다면 <스위치>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설정이죠. 톱스타와 매니저가 바뀐다는 설정. 그러면서 연말에 맞는 감성적인 이야기로 만들어보자는 것에 <스위치>만의 차별점이 있다고 봐요.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를 보면 사실 익숙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워낙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이 만들어져서 익숙해졌다고 봐요. <스위치>는 내러티브 자체는 심플하지만 감정선이 더 풍부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패밀리맨>에서 기억에 남는 명대사가 “난 우리 둘이 어떻게 살 것인지를 봤어. 그래서 난 ‘우리’를 택하겠어”였어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스위치>에서 명대사는 뭘까요?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하는 대사라고 할까요.
감독 입장에서 명대사라고 꼽기는 좀 그렇고요(웃음). 지금 생각나는 대사는 마지막 밤 이민정 배우 대사네요. ‘오늘도 내일 같았으면 좋겠다’라는. 그러지 못할 거란 걸 알고 있던 권상우 배우의 표정이 정말 마음에 들었거든요. 사실 이 대사는 촬영장에서 이민정 배우가 고민해서 만든 대사에요.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 대사를 해보면 어떻겠느냐 했는데, 듣는 순간 너무 좋았어요. 제가 쓴 대사가 아니어서 그런지 더 기억에 남네요. 또 권상우 배우 대사 중에는 ‘이 마법에서 결코 깨어나고 싶지 않아’라고 둘이 나란히 앉아서 하는 대사도 기억나요. 크리스마스 택시 기사가 ‘행복하시죠?’라고 묻는 대사도 좋았고요. 아들 로하(김준 분)가 ‘둘이 사귀어?’라고 했던 대사도 떠오르네요(웃음).
영화에서 박강(권상우)은 두 인생을 살아본 후 돈보다 우리 그리고 가족과의 행복이 더 소중하단 것을 깨닫게 되죠. <패밀리맨>에서 케이트는 “내가 아는 잭 캠벨은 2,400불짜리 양복을 안 입어도 멋있는 사람이었어”라고 말해요. <스위치>에서 공수현(이민정 분) 역시 “당신 조금 떴다고 이러는 거야?”라며 박강(권상우 분)을 타박하죠. 좀 이상적인,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장면이었어요. 감독님 생각하기에 인생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가요?
그렇게 느낄 수도 있어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애초부터 심플한 내러티브 안에서 풍부한 감정을 끌어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기자님도 말씀하셨지만, <스위치>는 마법 같은 이야기잖아요. 그러다 보니 너무 리얼리티로 들어가기는 어려웠어요. 물론 수현 입장에서는 조금 더 깊은 세계로 들어갈 수도 있죠.
하지만 두 시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관객들에게 명징한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방식이 맞지 않았나 싶어요. 사실 시나리오 기획 단계에서도 기획팀과 그런 논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두 배우의 다툼 씬이, 그러니까 영화에서 한 번은 꺾어야 하는 지점인 건 맞는데, 너무 깊이 들어갈 수는 없었던 거죠. 선택의 문제였다고 봐요. 굳이 약점이라고 하기보다는 심플하게 내러티브를 운반하기 위한 선택이었던 거죠.
몸이 바뀐 박강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현실적이더라고요. 우리네들 일상의 모습처럼 짠하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다시 톱스타로 돌아간 후 으리으리한 집에서 가족을 이루는 모습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은 어떤 모습인가요?
이상적인 가족이라….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현실과 영화는 다르잖아요. 저도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지만, 이상적인 가족이란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정말 현실적으로 돈보다는 사랑이라는 교과서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는 감독 입장에서 매력이 없잖아요. 감정을 끌어내기 위한 선택적인 요소 속에서 영화가 그려지거든요. 가족의 모습은 너무 다양하다고 봐요. 누가 이런 말을 했는데 인상적이었어요. ‘고달픔이 있었기에 행복했고, 그 고달픔이 자신의 인생을 만들었다’고요. 가족 안에 그런 모습들이 다 있지 않을까 싶어요.
크리스마스 택시 기사의 정체가 이민정 배우의 사진 장면으로 밝혀집니다. 극중 중요한 부분이라 고민이 많으셨을 거 같은데, 혹시 다른 버전으로 찍은 게 있었나요?
영화에서 나오는 버전이 시나리오 그대로입니다. 실제 촬영에서는 조금 더 찍기도 했고, 편집하면서 분량을 좀 덜어내기도 했지만, 여러 버전으로 찍지는 않았어요. 촬영 현장에서 권상우 배우에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했고, 찍기도 했지만 실제 편집에서는 시나리오 설정 그대로 갔죠.
감독님에게 만약 크리스마스 택시가 도착한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음, 20대 정도로요? 영화감독 말고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네요. 평범한 회사원 어떨까요?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안정적인 그런 인물로 살아보고 싶네요.
의외네요! 다들 톱스타와 영화 찍는 감독님의 삶을 부러워할 거 같은데요?
아니에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바꾸자고 하면 바꿀 수도 있어요(웃음).
감독님에게 크리스마스는 어떤 의미인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 선물은요?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었으니 추억도 많고 기억도 많아야 하는데, 사실 저한테는 그런 기억이 별로 없어요. 영화에서 박강이 이런 대사를 하잖아요. ‘이번이 내 인생 첫 번째 크리스마스’라고요. 스크루지도 그렇죠. 매번 크리스마스가 오면 투덜대기만 하다, 유령을 통해 환상 속에서 여러 상황을 되돌아보고 각성해 마침내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조카와 따뜻하게 보내죠. 박강에게, 스쿠르지에게 그런 버전의 첫 크리스마스였던 것처럼, 저 역시 이번 영화가 크리스마스의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내년부터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TV에서 볼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지 않을까요? 크리스마스에 개봉은 못했지만요(웃음).
배우 이야기를 해볼게요. 탑스타 ‘박강’ 역으로 처음부터 권상우 배우를 점찍으셨던 건가요? 인연은 <탐정: 더 비기닝>(감독 김정훈, 2015) 때부터고요?
<탐정: 더 비기닝> 각색에 참여하긴 했지만, 사실 각색자가 배우를 만나긴 어렵죠. 연출했던 김정훈 감독이랑 제가 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권상우 배우와 인연이 있던 건 아니었고요. 시나리오 초고가 나왔을 때 제작사 대표님이 ‘박강’ 역에 권상우 배우가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주셨죠.
일고 수정할 때부터는 아예 권상우 배우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 작업을 했어요. 떠올리면서 쓰니 더 잘 써지더라고요. 시나리오 이고 쯤 됐을 때, 권상우 배우에게 제안을 했죠. 권상우 배우가 OK 했고요. 감독으로서는 가장 원했던 배우에게만 시나리오를 건냈고, 그렇게 ‘원픽’으로 캐스팅했습니다.
권상우 배우를 보면서 정말 코믹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권상우 배우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요? 또 <스위치>에서는 어떻게 그 장점들을 담으셨는지 궁금해요.
권상우 배우는 사실 굉장히 다양한 장르를 거친 배우입니다. 20대 젊은 나이에 <천국의 계단>(2003, SBS)에서 슬픈 역할을 했고, 한류스타이기도 했죠. 이후 <탐정> 시리즈로 복귀하면서 일상 코미디로 확장했고요. 또 액션하면 <말죽거리 잔혹사>(감독 유하, 2004)나 <신의 한수: 귀수편>(감독 리건, 2019)을 빼놓을 수 없잖아요? 엄청나게 다양한 장르를 한 배우였죠.
<스위치>에서 ‘박강’의 직업도 톱스타 배우입니다. 역할도 많아요. 연극도 하고, TV 재연배우도 하고요. 이런 다채로운 역할을 하기에 권상우만한 배우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실제 촬영에서도 그랬고요. <스위치>로 권상우의 연기 커리어를 집대성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권상우 배우가 촬영 현장에서 <서프라이즈> 재연배우로 귀신 분장을 하면서 ‘제가 별걸 다 하네요’라며 웃더라고요. 안중근 역할도 했고요. 두 시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서 권상우 연기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기 위해 시나리오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스위치>에서는 배우 권상우의 모든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권상우 배우에게 촬영 현장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씀이 있나요?
사실 디렉션을 많이 주진 않았어요. 권상우 배우가 촬영에서 했던 연기의 느낌이 제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상상했던 것과 거의 다르지 않았거든요. 한두 번 정도? 웃음이 계속 터지는 포인트들 사이에서 한 번쯤은 자신을 돌아보는 장면이 있어야 하니까, 그럴 때 감독으로 톤 조절을 한 적은 있습니다. 너무 과장해서 코미디를 하면, 유머가 억지스러워지거나 눈물을 쥐어짜는 장면이 될 수 있으니까요. 최대한 담백하게 찍으려고 했기에, 디렉션도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권상우 배우를 보세요. 이미 본인이 톱스타고, 현실에서는 두 아이의 아빠이며, 무명 시절을 겪어봤을 거잖아요. <스위치>의 톱스타 ‘박강’이 느끼는 모든 감정을 다 느껴봤을 테니, 연기하기가 편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오정세 배우 역할이 약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긴 한데, 생각해보면 넘치지 않게 참 강약 조절을 잘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오정세 배우는 애드리브를 정말 많이 했어요. 그래도 거의 대본에 있는 상황 안에서 끝에 한마디씩 덧붙이는 게 주특기인 것 같더라고요. 상황, 감정은 똑같은데, 그때그때 느끼는 대로 애드리브를 했어요. 저도 모니터를 보면서 이해가 되면 편하게 넘어갔죠. 가끔 좀 이 장면은 웃기고 싶은데, 아이디어가 없어서 고민될 때 오히려 오정세 배우에게 요청하기도 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이었나요?
마지막 크리스마스 택시 장면이었죠. 후시 녹음 전날 밤까지 아무리 고민해도 마땅한 게 없는 거예요. 오정세 배우에게 전화했더니 ‘제가 생각해서 갈게요’라더라고요. 다음날 녹음실에서 제가 준비한 걸로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느낌이 안 살았어요. 그러다 오정세 배우가 자기가 준비한 거 해보겠다고 하는 거예요. 한 번에 OK 했습니다! 너무 웃겼어요. 관객들도 웃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죠. 자세한 대사는 극장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웃음).
권상우, 오정세 배우의 케미스트리가 정말 좋았을 거 같아요. 특히 목욕탕 씬이 압권이었죠! 대본 대로 간 건지, 여러 버전을 찍으셨는지 궁금해요.
대본 상황은 다 있었죠. 두 배우 사이에 약간 그런 브로맨스 같은 것들은 있었으면 했어요. 목욕탕 씬에서 두 배우가 대사들을 조금씩 변주했어요. 상황만 목욕탕이었던 거죠. 테이크마다 배우들이 조금씩 자연스럽게 바뀌었고, 저는 감독으로서 그중에 가장 재밌었던 순간을 포착하려 노력했죠. 계산된 연기보다는요. 사실 지금은 뭐가 애드리브고 뭐가 시나리오 대사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날 정도에요(웃음).
애드리브 이야기가 나와서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두 번째 껍데기집 씬도 정말 웃음이 빵 터졌는데, 여기도 애드리브이었나요? 손흥민 부분과 말 타는 장면도요. 맞다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였는지도 궁금해요.
다 애드리브였어요. 정말요. 다 상황에 없던 거였어요. 바꾸려면 바꿀 수 있다 정도가 시나리오였거든요. ‘컷!’ 안 하면 두 배우가 재밌게 잘하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제가 컷을 잘 안했습니다(웃음).
영화에서 이민정 배우 역이 결코 작지 않죠. 중심을 잘 잡아주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이민정 배우가 현장에서 정말 유쾌한 성격이에요. 권상우 배우도 한 인터뷰에서 ‘이민정 배우는 대장부 같다’라고 했던데, 제가 봐도 털털하고 현장에서 쾌활한 이미지에요. 사실 <스위치>에서 제가 지향한 건 웃음과 감동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권상우 배우는 웃음과 감동 모두, 오정세 배우는 감동을 담당한다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아 글쎄 이민정 배우가 자기도 좀 웃기고 싶다는 거예요(웃음). 진지한 장면은 진지하게 했지만, 웃음을 주는 장면도 잘 살렸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이쁜 선물 받은 걸 후회하는 거야?”라는 대사가 있는데, 사랑스러운 모습을 잘 어필한 연기를 했습니다.
이민정 배우 대사 중에 재밌던 게 실제 남편인 이병헌 배우를 언급한 장면이었죠. 현실감과 더불어 영화적인 상상력이 돋보였어요. 이병헌 배우는 실제로 만나셨어요?
아뇨. 안타깝게도 이병헌 배우를 만나지는 못했어요. 이민정 배우가 캐스팅되기 전부터, 그러니까 시나리오 단계부터 이병헌 배우는 있었죠. 기억에 남는 건 이민정 배우가 시나리오 읽다가 이병헌 배우에게 ‘오빠가 시나리오에 나와’라고 했대요. 그랬더니 ‘뭐? 어떻게 나오는데?’라고 해서 설명해줬더니 좋아했다고 하더라고요. 영화는 시나리오 버전보다 애드리브가 조금 더 추가되긴 했습니다. 사실, 이민정 배우가 이병헌 배우와 통화하는 것만 뒤에서 들은 적이 있는데, 이병헌 배우님, 한번 만나 뵙고 싶습니다!(웃음)
가장 찍기 어려웠던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택시 장면이었죠. 권상우 배우의 감정을 그대로 카메라야 담아야 하는 장면이었거든요. 이 장면은 특수촬영이 가능한 스튜디오에서 찍었어요. 보통 그린 매트를 놓고 찍으면 공간감을 못 느끼죠. 또 실제 레카차에서 찍으면 소음이 들어가고요. 그래서 배경 화면이 가상현실처럼 흐르는 최첨단 스튜디오에서 촬영했습니다. 연기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어요. 배우도 테이크를 여러 번 가면 지치잖아요. 권상우 배우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애증, 회한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드러나야 하는 장면이라 힘들었습니다.
가장 즐거웠던 장면은요?
오정세 배우가 하와이에 가서 미녀들과 노는 장면이 있는데, 이걸 여수의 한 리조트에서 찍었어요. 거의 촬영 막바지였거든요. 촬영 마치고 전 스태프들이 여유롭게 즐겼죠. 그 모습을 보며 흐뭇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영화 찍으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첫 번째 목표는 웃음과 감동을 같이 주자는 것이었어요. 두 번째 목표는 억지웃음과 억지 감동은 지양하자는 것이었죠. 과도한 카메라 워킹이나 기술적인 장치보다는, 웃음과 감동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유쾌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렇기에 배우들의 연기에 더 집중하고 싶었고, 그런 연기를 끌어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화면비가 1.85:1이에요. 배우들이 편하게 관객을 바라볼 수 있는, 그렇게 멋 부리지 않은 화면을 만들기 위해 촬영감독과 많이 논의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제부터는 감독님 이야기를 조금 여쭤보고 싶습니다. 필모그래피를 보니 <눈길>(1999), <하루…하루>(2000)를 연출하셨고요. 둘 다 단편영화였어요. 이후 <청풍명월>(2003) 각색, 조감독을 하셨고요, 영화 입봉작이 <실제상황>(2000)으로 나오던데, 이건 김기덕 감독 영화였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그때는 시퀀스 감독이라고 했어요. <실제상황>의 에피소드마다 단편 감독들이 다 있었죠. 김기덕 감독이 총감독이셨고요. <그래, 가족>(2017)이 데뷔작입니다.
실제 데뷔까지 꽤 오래 걸린 거네요. 중간에 <10억>(감독 조민호, 2009), <간첩>(감독 우민호, 2012), <탐정: 더 비기닝>(감독 김정훈, 2015), <더폰>(감독 김봉주, 2015), <덕혜옹주>(감독 허진호, 2016) 각색에 참여하셨어요. 각색을 오래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건지도 궁금합니다.
제 필모그래피에 특히 각색이라는 타이틀로 올라간 영화가 많긴 하죠. 사실 제가 썼던 작품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늘어지기도 했고, 결국 엎어지진 적도 있거든요. 제 영화가 안 나오는데 계속 잡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 사이에 각색 작업에 많이 참여하게 된 거죠. 모든 영화를 공들여 작업했다 보니, 특별히 애정이 있다는 작품은 따로 없어요.
그렇군요. 각색했던 영화들을 보면 장르물이나 액션 영화에 대한 갈망이 있는 거 같기도 합니다. 어떤 영화를 찍고 싶으세요? 마음속에 둔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청풍명월>로 조감독을 한 후에 연출 제안이 들어온 적이 있었어요. 그때가 30대였는데, 제 주변에 있던 또래 감독들 대부분이 미스터리 스릴러물을 좋아했던 거 같아요. 왜 그렇잖아요. 영화 좋아하다 보면, 형사도 나오고, 총도 나오고 액션도 있는 영화 좋아하게 되는 것처럼요. 저도 그런 스릴러, 어두운 시나리오를 많이 썼죠.
어두운 미스터리 스릴러를 좋아하는 분이 따뜻하고 유쾌한 <스위치>를 찍으셨네요(웃음).
저를 오랫동안 알아 온 사람은 사람들은 ‘이렇게 인간미 없는 놈이 어떻게 이런 휴먼드라마를 찍었느냐’고 농담도 해요(웃음). 지금은 다양한 영화를 좋아해요. 끊임없이 넷플릭스도 보고 있고요. 그런데 점점 행복한 영화에 눈이 가더라고요. <어바웃 타임>(감독 리차드 커티스, 2013) 같은 영화 한 편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스위치>의 원제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연말연시에 행복한 영화를 해보겠다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죠. 그러다 제작사와 이야기가 돼서 이번에 <스위치>를 연출하게 된 겁니다.
언제부터 영화감독의 꿈을 꾸셨나 궁금해요.
고2 때였던 거 같아요. 음. 지금 돌이켜 보니, <비 오는 날의 수채화>(감독 곽재용, 1989)를 보고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거 같네요. 너무 좋았거든요. 요즘은 유튜브에 전체 영화를 30분 분량으로 줄여서 보여주는 채널들이 있던데, 문득 잠이 안 올 때 다시 보면 그 시절의 감성이 살아나죠. 물론 30대에는 미스터리 스릴러 시나리오를 쓰면서 사람 죽이는 장면도 많이 넣었지만요(웃음). 요즘은 밝은 영화도 많이 좋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해서 본격적으로 연출을 공부했고요.
어떤 감독에게 영향을 받았나요?
좋은 영화를 찍는 감독이라면 모두 좋아해요. 어릴 때 그러니까 영화를 막 좋아서 찾아보던 시절에는 할리우드 영화는 하나도 안 봤어요. 타르코프스키, 키에슬롭스키 감독의 영화들을 찾아봤어요. 겉멋만 잔뜩 들어서요(웃음). 그러다가 지금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아바타 2: 물의 길> 감독이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1998)을 보고 ‘와, 이게 영화네!’ 했어요. 그때부터 상업영화의 매력에 빠져서 할리우드 영화를 보기 시작했죠.
감독님에게 영화란 무엇인가요?
저에게는 현실이죠. 직업이고 일이고요. 그리고 그렇게 점점 덤덤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또 맞다고 생각하고요. 이게 현실적인 표현이고, 좀 다르게 말하자면 저는 지금도 극장 가는 걸 너무 좋아합니다. 두 시간 동안 다른 모든 일을 잊고 꿈을 꿀 수 있다는 거, 정말 좋잖아요? 두 시간 동안의 자유. 그래서 제게 영화는 일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순간에는 가장 좋아하는 취미생활입니다.
어떤 영화를 찍고 싶으세요?
그렇게 친한 친구는 아닌데요, 동네에서 장사하고 있는 친구가 하나 있어요. 제가 어려운 시나리오 쓰면서 고민할 때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머리 쓰지 말고 꿈과 희망을 주는 영화를 만들어, 스티븐 스필버그처럼’이라고요(웃음). 그게 참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영화 세계가 참 다양하잖아요. 그런데 꿈과 희망을 주는 영화를 만들라는 친구의 말이 좀 웃기긴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좀 유쾌하고 웃음도 있고 감동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물론 30대에 썼던 스릴러 시나리오들로도 영화를 만들고 싶긴 합니다(웃음).
차기작으로는 무얼 준비 중이신지 궁금해요.
웹소설 <죽은 남편이 돌아왔다>를 8회 분량으로 찍을 계획이에요. 지금 시나리오 작업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스위치>는 2023년을 포문을 여는 첫 한국영화입니다. 웃음과 감동이 함께 있는 영화니까 가족, 친구와 함께 극장에 오시면 <스위치>가 주는 유쾌함과 행복한 상상에 빠져들 수 있을 거예요. 극장에서 만나요!
윤상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