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살인의 추억>에 영감 줬다고? ‘스릴러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가 말하는 <큐어>

일본 호러 영화의 걸작 <큐어>(1997)가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한국에 처음 개봉한다. 목이 X자로 잘린 연쇄살인을 담당하는 형사 타카베(야쿠쇼 코지)는 가해자가 모두 자기도 모른 채 최면에 걸린 듯 살인을 저질렀다는 걸 깨닫는다. 머잖아 범인 마미야(하기와라 마사토)가 잡히고 타카베는 도통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그에게 점차 휘말려간다. 봉준호는 <살인의 추억>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며 <큐어>를 생애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손꼽았고, <드라이브 마이 카>의 하마구치 류스케는 <큐어>가 “우리 시대 최고의 일본영화”이고 “어느 누구도 마미야 만큼 흥미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라며 존경을 바친 바 있다. 지난 5월 한국을 찾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을 직접 만나 <큐어>에 관해 물었다.

** 영화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


<큐어>는 일본의 저명한 영화 스튜디오 ‘다이에이’(大映)와의 첫 작업입니다.

맞습니다만, 정정할 부분이 있습니다. 50년대에 다이에이는 분명 큰 스튜디오였지만 70년대에 도산하고 말았습니다. <큐어>를 제작한 다이에이는 90년대에 복구한 새로운 다이에이였고 그때는 이미 큰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감독님은 다작일 뿐만 아니라, 영화를 빨리 찍는 걸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큐어>는 며칠 만에 촬영을 마치셨나요? 옛날 같은 다이에이가 아니었더라도 <큐어> 이전에 작업하던 환경보다 나아서 더 여유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4주 내내 촬영했습니다. 제가 그 즈음 작업했던 야쿠자 소재의 비디오 영화 <복수> 시리즈를 2주 동안 찍었으니 그와 비교하면 긴 편이었죠. 당시 일본 영화 대부분이 4주 만에 촬영을 마치는 식이었습니다. <큐어>는 그때 일반적인 영화들보다 예산적인 여유가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지금도 촬영기간은 비슷합니다. 짧게는 3주, 길게는 5주, 대부분 4주 안에 촬영을 마칩니다.

<복수>

<큐어>는 어떻게 시작된 작품인가요?

<양들의 침묵>이 1991년에 개봉했을 때 영화관에서 너무 감격하면서 봤습니다. 끔찍한 살인마 한니발 렉터는 이미 붙잡힌 상태인데, 잡혀 있는 범인과 FBI 수사관이 대화를 하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캐묻는 전개가 소름끼치는, 아주 훌륭한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와 커피숍에서 이런 영화가 재미있지 않을까 구상했던 게 처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양들의 침묵>

그때 구상하셨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타카베와 마미야 모두 너무나 강렬한 캐릭터인데, 둘 중 누가 먼저였나요?

어떤 형사가 범인을 잡는 게 전반부, 잡은 범인을 취조하는 과정이 무섭고 범인과 대화를 이어가면서 형사도 영향을 받아 점점 이상해지는 게 중반부입니다. 후반부는 범인이 도주를 하고, 형사가 다시 범인을 쫓아서 따라갑니다. 이런 3부 구성이긴 한데 후반부에 형사가 범인을 따라가는 것은 전반부에서 범인을 잡는 것과는 전혀 분위기면 영화가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아마 지금 완성된 <큐어>의 가장 가까운 초기 형태였던 것 같습니다. 이 구조를 먼저 떠올렸기 때문에 형사와 범인은 동시에 탄생한 셈입니다.

<큐어>

강연을 모은 책 『구로사와 기요시, 21세기의 영화를 말하다』에서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를 두고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존재”라고 언급하셨습니다. 비단 <큐어>의 마미야뿐 아니라 감독님 영화엔 그런 인물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인간에 대해서 어떻게 묘사하고 표현할지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연기라는 건 살아 있는 배우가, 하나의 인간이 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각본에 그려낸 캐릭터, 연출하고자 하는 의도를 다 합해서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도저히 하지 않을 행동을 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냅니다. 그럼 그것을 표현해 줄 배우라는 사람의 힘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영화 속에서는 배우가 생생하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보여주고 있고, 그걸 카메라에 담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항상은 아니지만 종종 저는 배우들에게 인간으로서는 하지도 못할 것 같은 일을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당신은 할 수 있어, 기대 좀 할게” 이야기 하면 그럼 배우가 해내는 거죠.

타카베의 아내가 의사와 상담하는 첫 장면에서 <푸른 수염>을 사용한 이유가 있을까요? 푸른 수염이 아내를 죽인다는 설정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내를 대하는 타카베의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듭니다.

깊은 의도가 있어서 <푸른 수염>을 넣은 건 아닙니다. 치료 받는 사람의 정신적인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서 이 책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식으로 정신분석에서 자주 쓰인다고 들어서 쓰게 됐습니다.

<큐어> 야쿠쇼 코지

페르소나라고 할 만한 야쿠쇼 코지와 작업한 첫 작품입니다. 처음부터 야쿠쇼 코지를 굉장히 캐스팅 하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구상하고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엔 특정한 배우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90년대 초 야쿠쇼 코지는 굉장한 인기 스타여서 그가 제 영화에 출연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이에이와 영화를 만들면서 좀 넉넉한 예산이 생기면서 야쿠쇼 코지에게 제안을 해볼까 생각했습니다. 같은 나이의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데, 저와 야쿠쇼 씨가 동갑입니다. 마침 <큐어>의 타카베가 저랑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여서 대스타였던 그를 캐스팅 했습니다. 처음 각본을 보낸 후에 감상을 말해달라고 했더니,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타카베보다는 마미야가 더 매력적이라 내가 마미야를 할 가능성은 없느냐 묻길래, 곧바로 “아뇨, 당신은 타카베입니다”라고 설득했습니다.

<큐어> 하기와라 마사토

마미야 역의 하기와라 마사토는 어떻게 캐스팅 하게 됐나요?

하기와라 마사토는 섭외 막바지에 정해진 배우입니다.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일단 마미야는 무조건 젊은 배우가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하기와라 마사토는 그때 매우 인기 있는 스타였습니다. 후보 배우는 하기와라 외에도 여럿 있었는데, 왜 결국 그와 하기로 결정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하기와라 마사토가 이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런 역할을 전혀 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게 가능성이고 신선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매우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언제 하기와라 마사토의 연기를 확신할 수 있었습니까?

당시만 해도 그는 감정이 고양된 연기를 많이 하던 배우였습니다. 감정 표현을 모두 배제하고 그냥 텅 빈 상태로 연기해달라고 지시도 했지만 과연 가능할까 걱정됐습니다. 그런데 처음 촬영한 날 연기하는 걸 보니 “이 사람이 뭔지 알고 있구나” 느꼈습니다. 본인도 많이 불안해 했지만 이 배역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 연기에 전혀 문제가 없어 첫 촬영부터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가 그런 연기를 하는 건 처음 보았기 때문에 감독으로서도 신선했고, 배우 본인도 처음으로 도전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 것 같습니다. 영화를 완성해서 보니 하기와라 마사토는 마미야 역을 완벽하게 해냈더군요.

마미야는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을 현혹시킵니다. 그만큼 대사의 내용은 물론 리듬이나 호흡 역시 중요해 보입니다. 대사 하는 데에 있어 감독님이 타이트하게 통제 했을 법한데요.

<큐어>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작품에서 연기는 배우에게 자유롭게 맡깁니다. 각본에 쓰여 있는 대로 대사를 해야 한다는 디렉션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기와라 마사토는 각본에 쓰여진 대사 그대로를 따랐습니다. 아무리 배우에게 자유롭게 해도 된다고 말해도 마미야 자체가 상당히 한정된 느낌의 캐릭터고, 원체 말수가 적기 때문에 각본대로 해준 것 같습니다. 야쿠쇼 코지 역시 시나리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큐어>의 공간은 도쿄라고 설정되어 있었던 건가요? 마미야가 처음 등장하는 시라소토 해변을 제외하곤 도쿄 주변부라고 특정 지을 만한 지표가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제 대부분 영화는 도쿄나 도쿄 근교에서 찍어 왔고, <큐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설정에 있어서 확실히 이곳은 도쿄라는 걸 알 수 있게 찍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일본이긴 한데 어느 도시 어느 동네인지 상관없고 알지도 못하게 찍는 경우가 있습니다. <큐어>는 도쿄인지 아닌지 상관 없긴 하지만, 분명 도쿄라고 생각하고 찍기는 했습니다.

마미야는 발견되는 건가요, 직접 찾아가는 건가요? 교사와 경찰과의 시퀀스에서는 발견된다고 확신했는데, 경찰서를 뜨고 나서 병원에 앉아 있는 걸 보면 의지를 가지고 찾아가는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적어도 영화 전반부에서 마미야는 적극적으로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오히려 외부에 있는 남이 그에게 흥미를 갖죠. 처음에 나오는 학교 선생님의 경우 해변가에서 마미야가 그 사람을 향해 다가갔던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괜히 이 사람이 관심을 갖고 말을 겁니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도 생각해보면 마미야가 체포되고, 타카베가 그와 적극적으로 대화하기 위해서 먼저 다가가지, 마미야가 찾아가는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여자 의사와의 신들이 유독 도드라져 보입니다. 교사나 경찰과는 달리, 마미야를 만나기 전에 여자 의사에 관한 신이 하나 있고, 마미야를 낮에 만나고, 대화를 할 때도 불을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보통 마미야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데, 여자 의사의 경우엔 “여자는 남자보다 하등한 생물이다”라며 고압적인 태도로 그녀의 말을 저지하며 자기 말을 이어갑니다. 왜 여자 의사의 신은 다른가요?

영화를 세세하게 봐주셔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긴 하네요. 정확하게 무엇을 생각해서 그렇게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분명 그 대목만 다른 건 맞습니다. 여자 의사가 나오는 장면에서 마미야가 상대를 대하는 수법이 달라집니다. 여태까지 했던 방식을 깨고 마미야가 적극적으로 말을 합니다. 똑같은 패턴에 맞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미야는 분명 로봇이 아닌 인간입니다. 때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거죠. 명확히 본인의 의도를 가지고 있고, 그 의도를 위해서는 상황이 달라졌을 때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을 전혀 다르게 바꿀 수 있는 예측 불허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병원이 이상하리만큼 많이 나옵니다. 타카베가 끊임없이 병원으로 빨려 들어오는 것처럼 보여서, 도쿄가 곧 병원 그 자체가 아닌가 생각마저 듭니다.

병원이 많이 나온다는 건 처음 들어보는 지적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 종류의 병원이 나오는 것 같네요. 굳이 의도한 건 아닌데, 영화 제목이 ‘큐어’이고 치료된다는 흐름에 그렇게 됐는지 몰라도, 자연스럽게 많은 병원을 찍게 된 것 같습니다. 촬영할 때 어느 병원에서 찍을지 고심을 많이 했습니다. 분명 서로 다른 병원이라는 설정인데 같은 곳에서 찍을 순 없으니까요. 작은 병원, 큰 병원, 오래된 병원, 새로 지어진 병원 그렇게 여러 병원을 찾아 굉장히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가장 오래된 고심 끝에 편집된 장면은 무엇인가요?

당시엔 굉장히 고민해서 잘라낸 부분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오래돼서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꽤 오랜 시간 찍어 놓고 아주 일부만 사용한 장면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엔딩입니다. 레스토랑에서 애매한 부분에서 영화가 끝나는데 실은 뒤에 신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레스토랑 직원이 식칼을 들고 프레임 아웃 하는 데서 끝나는데, 선배를 찔러 죽이는 것까지 다 촬영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인이 또 일어났다고 설명하는 게 아무래도 지나치다고 느껴져, 칼을 들고 가는 것까지 보여주고 뒷부분은 상상에 맡기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대목은 레스토랑 신 바로 직전, 병원에서 어떤 여자가 목이 잘려 매달린 채로 다가오는 장면입니다. 타카베의 부인일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한 채로 1초 정도 지나가는데, 실은 그 장면도 꽤 오랫동안 촬영했습니다. 간호사가 복도 끝을 돌아보면, 타카베가 마미야 집에 가서 발견하는 원숭이처럼 X자로 묶여서 목도 X자로 잘려진 타카베의 부인이 서서히 일어나서 덜덜덜 다가오는 것까지 힘들게 찍었습니다. 너무나 그로테스트한 걸 넘어 누군가는 이걸 보고 웃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통째로 잘라낼까 고민하다가 결국 1초 정도만 집어넣어서 이도저도 아니게 영화에 삽입됐습니다.

<큐어>를 찍었던 시절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굉장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그동안 사회는 많이 변했고, 저 스스로도 나이가 들면서 여러모로 변했기에, 90년대를 바라보던 감각으로 현재를 볼 수가 없습니다. 90년대에 사람들은 고독했고, 앞이 안 보인다고 생각했고, 세계 어디에서 어떤 무서운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사회적인 불안이 있다는 걸 실제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표현이긴 하지만, 실은 그걸 즐기는 마음도 있긴 했습니다.

지금도 역시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제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지, 예전과 유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이 나에게 있을 수도 있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처럼 사회의 불안을 즐길 수가 없는 거죠. 90년대에는 이 불안한 상황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하고 지냈는데, 지금은 확실히 내 책임이야 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해,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런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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