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배우들은 진지한 편이다. 기자와 마주한 그들은 자신의 연기에 대해 가볍게 얘기하지 않는다. 어떤 캐릭터를 맡아도 그 역할에 진심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면에서 ‘취향존중 상명하복 로맨스’ <모럴센스>에서 남다른 성향의 정지후를 연기한 이준영은 특히 인상적이다. “연예인이라는 말을 불편해 하거든요. 부끄러워해요. 그냥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이 먼저 되고 싶어요.” 그가 기자의 눈을 똑바로 보고 전하는 말에 만들어진 진심은 없었다. 아이돌 그룹 유키스의 멤버로 데뷔한 뒤, 2017년 <부암동 복수자들>로 연기자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D.P.> <너의 밤이 되어줄게>를 통해 이준영은 배우로 거듭나고 있다. <모럴센스>는 영화 데뷔작이자 주연작이다. 지금 그에게는 ‘라이징 스타’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밝은 미래가 보이는 배우 이준영의 이야기를 전한다.
<모럴센스>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어땠나.
시나리오를 정말 재밌게 읽었다. 배우로서 도전해보고 싶은 장면들도 있었고 이런 부분에서 이렇게 하면 더 잘 보이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내 연기를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대본을 읽고 있더라. 그래서 ‘아유~ 열심히 하겠습니다’하고 출연하게 됐다.
<모럴센스>의 소재(BDSM)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나.
처음 약간의 물음표는 떴다. 시나리오도 보고 원작 웹툰도 보고 나니 나도 색안경을 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진짜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다음부터는 특별히 문제될 거 없겠다고 생각했다.
촬영 전, 체중을 많이 늘였다는 뉴스를 봤다.
기초대사량이 높다. 거의 국가대표 선수촌 선수들 수치와 비슷했다. 그래서 먹는 대로 소화가 돼버린다. <모럴센스> 첫 미팅했을 때 몸무게가 61kg였다. 촬영할 때는 76kg까지 몸을 불렸다. 주먹밥 같은 걸 싸 와서 계속 먹었다. 배고플 시간을 안 줬다. 그러다 보니까 살이 찌긴 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기초대사량이 부럽고 살 찌우기 어렵다는 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웃음) 촬영 전에 또 어떤 준비를 했나.
(홍보팀 대리라는 회사원 캐릭터를 연기해야 해서) 유동 인구가 많은 카페에 가서 회사원들을 관찰했다. 12시부터 1시가 피크 시간이다. 좋아하는 음악 들으면서 그분들을 지켜봤다. 왜냐하면 나는 양복 입을 일이 공식 스케줄 말고는 없었기 때문에 직장인들의 행동을 보고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의도에 있는 카페에도 가고 직장 생활하는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야, 너 대리님 어떻게 부르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원작 웹툰 등을 통해 지후의 성향에 대한 배경 지식 공부도 했을 것 같다.
그렇다. 기본적인 건 알아야 되니까. 작품에 쓰이는 용어들을 제대로 알고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여러 용어를 친절히 설명해주더라. 이번에 많이 알게 됐다.
그러 면에서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단편적으로만 보면 뭐라고 해야 할까, 약간 수위가 있다 라고 많이들 생각하고 나조차도 그랬는데 <모럴센스>는 성향 자체가 다른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다. 그러니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구나 라고 느꼈다. 보시는 분들도 아마 그러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후가 반대 성향의 캐릭터였다면 어땠을까.
그 역할에 맞는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어떤 성향인지가 중요한 건 아니다. 배우는 주어진 캐릭터를 소화해야 된다 라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만약에 지금과 반대 성향의 역할이 들어왔다면 거기에 맞는 고민을 철저하게 했을 것 같다.
준비된 배우의 자세다.
열심히 해야 한다. 열심히 해야 되기 때문에.
<모럴센스>에는 지후와 지우(서현)의 여러 ‘플레이’가 등장한다. 어떤 게 가장 힘들고 기억에 남았나.
현장에서 리허설을 많이 해서 그렇게 어려운 건 없었다. 굳이 꼽자면 탕비실 시퀀스가 힘들었다. 그 장면의 동선이 길었다. 넥타이를 잡혀서 끌려가는 몸 쓰는 연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연결되는 동작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
플레이 중에 등장하는 강아지 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어떻게 준비했는지 궁금하다. 감독의 주문이 있었나.
소형견의 소리였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그리고 플레이가 아닌 평상시에 지우와 있을 때는 대형견이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부합하는 견종이 뭘까 생각해봤는데 예전에 키웠던 말티즈가 생각났다. 시니컬하고 도도하기도 사나운 면도 있는 친구였다. 그 친구를 많이 떠올렸다. 대형견은 골든 리트리버를 생각했다. 덩치가 크니까 나도 무서워한 적이 있는데 온순하고 사람을 위해서 봉사하는 개라는 걸 알고는 편안해졌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감독님과 골든 리트리버 같은 느낌이면 어떨까 라는 얘기를 했다. 그 다음부터 골든 리트리버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얘기를 듣고 보니 지후 캐릭터의 소위 ‘멍뭉미’는 철저히 준비된 거였다. 스스로 볼 때 잘한 것 같나.
음… 잘 구현해낸 것 같다. (웃음)
영화의 후반부로 가면 지후의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이 많아진다. 특히 헤어진 여자친구 하나(김보라)와 함께 나오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하나와 함께 등장하는 그 장면은 내게 크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지후라는 인물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나니까 너무 외로웠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진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라는 느낌을 계속 받아서 실제로 연기했을 때 많이 울었다. 김보라 배우랑은 진짜 친하다. 데뷔작 <부암동 복수자들>에 함께 출연하고 5~6년 만에 재회한 건데 느낌이 너무 다르더라. 감정을 다 소모하면서 연기하고 오케이 사인을 받고 누나랑 마주 보는데 옛날 생각도 나고 그랬다. 아직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이제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을 만큼은 됐구나 싶기도 했다.
그 장면에서 나오는 지후의 대사가 떠오른다. “내가 잘못한 게, 내가 잘못된 게 아닐 수도 있잖아”라는 대사다.
나한테는 진짜 의미 있는 대사다. 사실 이 영화 안에서 지후의 마음을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대사이지 않나 싶다. 지후와 같은 사람들은 다른 거니까 특별한 거라고 생각한다. 또 그들과 다른 특별함을 내가 갖고 있고. 그런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사는 게 사회 아닐까.
조금 가벼운 이야기도 해보자. 영화에서 등이 많이 나온다. 등근육이 멋지더라.
턱걸이 매일 했다. (손바닥을 보여주며) 굳은 살도 생겼다. 등 운동을 좀 많이 했다. (웃음)
또 기억에 남는 게 지우의 단골 애견카페 사장인 혜미(이엘)가 지후를 보고 “잘생겼네, 잘생겼어”하는 대사다. 본인이 잘생겼다고 생각하나.
진짜 잘생겼다 라고 생각한 적 단 한 번도 없다. 왜냐면 주변에 잘생긴 사람이 너무 많다. 나는 그냥 만족한다. 내 얼굴이 싫다는 건 아니다. 내 얼굴 좋아한다.
역시 그렇게 대답할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옆모습이 진짜 잘생겼다라고 생각했다.
(좌우로 고개를 돌리면서 기자에게 보여주며) 번갈아 가면서 이렇게 이렇게…. (일동 웃음)
고백을 해버린 것 같다.
심쿵심쿵. (웃음)
<모럴센스>로 첫 주연을 맡았고 곧 영화가 공개된다. 어떤 기분인가.
일단은 너무 감사하다. 지금 이 자리가 과분한 건 아닌가 나한테 좀 이른 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진중하고 쓸데없이 생각도 좀 많다. 걱정은 그렇게 많이 없는 편인데 스스로 나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본질을 잃지 말아야겠다 라는 것도 항상 느끼면서 되내이려고 한다. 아직은 경험도 많이 부족하다.
아이돌부터 드라마, 뮤지컬, 영화까지 활동 분야가 다양하다. 각각의 매력이 있겠지만 그래도 더 애정이 가는 분야는 어딘가.
애정이 가는 건 연기다. 너무 재밌다.
그렇다면 배우로서의 미래를 그려본 적이 있나.
연예인이라는 말을 불편해 한다. 되게 부끄러워 한다. 그냥 사람 냄새나는 사람이 먼저 되고 싶다. 배우는 직업인 거고 그게 제 이름 앞에 붙기 위해서는 사람이 먼저 돼야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초심을 지키겠다는 의미인가.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들이 앞으로도 바뀌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 나중에 몇 년이 지나도,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날까지 그 마음이 안 바뀌었으면 좋겠다.
캐스팅 소식이 많이 보도가 됐다. 이 자리를 빌어 진행 상황을 살짝 공개해달라.
<용감한 시민>이라는 작품을 촬영하고 있고. <황야>라는 작품을 준비 중이다. <용감한 시민>에서는 무에타이 선수였던 캐릭터로 출연한다.
원래 운동을 잘하고 즐겨했을 것 같다.
어릴 때 장래희망이 직업군인이었다. 특공무술이랑 태권도를 어릴 때 배웠다.
무술 이야기를 하니까 <D.P.>가 생각난다. 부산 에피소드에 등장한 탈영병 정현민을 연기했다. 인터뷰 준비 때문에 다시 봤는데 <모럴센스>와는 전혀 다른 얼굴이여서 깜짝 놀랐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굉장한 희열을 느낀다. 또 속였다 라고. (웃음) 가능할 때까지 관객들을 많이 속이고 싶다.
그러면 또 다른 얼굴, 새로운 모습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 역할이 있나.
탈옥수 캐릭터를 한번 해보고 싶다. ‘희대의 탈옥수’ 이런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천재 탈옥수가 등장했다. 감옥에서 두 번인가 세 번 탈옥했는데 그걸 보면서 이런 역할을 한번 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모럴센스>는 로맨스지만 액션 쪽에 좀더 자신이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
몸을 쓰는 걸 좋아하지만 <모럴센스>를 해보니 상당히 감정적인 남자였다는 걸 알게 됐다. 사실, 뭐가 됐든 다 좋다.
출연 제의가 들어온 작품은 다 하겠다, 이런 마음가짐인가.
정말 기회가 되면 다 하고 싶다. 진짜로 너무 감사하다. 지난해부터 정말 꿈꾸고 있는 것 같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 인터뷰에서 늘 이 질문을 하곤 하는데 넷플릭스 추천작 하나 소개해달라.
<D.P. 2>?
속편에도 출연하는 건가.
그건 아무도 모른다. 감독님만 알고 있다. (웃음) 일단 <D.P.> 추천드리고 <지금 우리 학교는>를 어제 봤다. 친한 배우들이 몇 명 나온다. <모럴센스>에 같이 출연한 안승균 배우도 출연하고.
그렇다면 당연히 재밌게 봤을 것 같다.
친한 사람들이 나와서 그런게 아니고 진짜 재밌게 봤다.
혹시 독자들에게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나.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메시지를 <모럴센스> 촬영을 끝내고 느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그 메시지를 받으실 거라고 생각한다. 또 재밌게 웃으셨으면 좋겠다. 코믹적인 부분들도 많이 나오니까.
글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
사진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