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애, 존엄사 부담스럽다고요? 사랑을 다뤘으니 부담 없이 보세요” <나를 죽여줘> 최익환 감독

<나를 죽여줘> 최익환 감독. 사진 제공=목요일아침

작가로서의 삶을 포기한 채 선천적 지체 장애를 가진 아들 현재를 돌보고 있는 민석. 소년에서 성인이 되어가는 현재가 장애인 활동지원사인 기철과 독립을 꿈꾸며 민석과 갈등을 빚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예기치 못한 사고로 민석의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을 알게 되고, 현재와 가족들의 일상이 변하게 되는데….

시드니월드필름페스티벌 최우수 서사 장편영화상, 뮌헨필름어워즈 최우수 장편영화상, 부다페스트독립영화제 최우수 장편영화상, 암스테르담독립영화제 최우수 서사장편영화상, 오슬로국제영화제 최우수 외국영화상, 더반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안승균) 및 각본상 수상. 10월 19일 개봉한 <나를 죽여줘>(감독 최익환)가 획득한 수상 기록이다.

<나를 죽여줘>는 전 세계에 깊은 울림과 질문을 던진 캐나다 극작가 프레드 프레이저의 웰메이드 연극 <킬 미 나우>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성과 장애, 존엄사까지 쉽지 않은 주제를 아주 솔직하고 대범하게 풀어내는 동시에 유쾌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캐나다에서 초연된 이후 미국, 영국, 체코 등 세계 각지에서 성황리에 상연됐고, 국내에서는 2016년 초연되며 인터파크 연극 부문 랭킹 1위를 차지했다.

영화를 만들면서 ‘우리’란 무엇인지, 몸의 장애, 마음의 장애, 관계의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완벽하지 않은 우리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왜 사는가, 격을 지키고 사는 인간다운 삶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고 던지고 싶었다는 최익환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나를 죽여줘> 메인 포스터. 사진 제공=목요일아침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소리 죽여 훌쩍이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목놓아 울었다는 관객들도 있는데, 어떤 기분이세요? 영화 만들면서 이런 반응을 예상하셨나요?

이 정도일 줄은 몰랐죠. 그래서 시사회 때 많이 놀랐어요. 편집 단계에서도 함께 했던 몇몇 분들도 신기하다고 이야기했거든요. 물론 원작 연극을 봤을 때는 그런 뜨거운 경험이 있었죠. 그 뜨거움을 경험했는데,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도 그런 뜨거움이 전달될지 잘 예상하지 못했다가, 개봉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원작 연극을 처음 접한 건 언제였나요?

2017년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극이지만 영화로는 최초로 만들어졌어요.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연극을 보고 너무 좋았어요. 사실 그 당시에 저랑 함께 작업할 배우들이 그 연극을 하고 있어서 봤던 건데요.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제 작업과 상관없이 연극을 보러 몇 번을 더 갔습니다. 이 연극을 누군가가 영화로 만들어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만 있었죠.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 아무도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게 이 연극을 처음 보여줬던 친구인 김진수 배우, 지금은 저희 영화 제작사 대표죠(웃음). 김진수 대표와 이야기를 했어요. 영화, 우리가 하면 어떨까 라고요. 그게 출발점이었습니다.

<나를 죽여줘>에서 장애인 아들을 돌보며 작가의 삶을 포기한 채 살아가다 치명적인 병에 걸리는 아빠 민석 역을 맡은 장현성 배우. 사진 제공=목요일아침

연극 무대를 스크린으로 옮기면서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그 과정에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도 궁금해요.

좋은 원작을 다른 매체로 가져오는 건 어떤 식으로든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더 잘해야 한다는 것보다, 이 연극 안에 있는 내용이나 형식보다 엔딩에서 제가 받은 느낌을 관객들에게 동일하게 전달하려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감독이 원작의 좋은 번역자가 돼서 관객들에게 동일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변형의 과정에서 영화적 언어로 해석돼야 하는데요, 연극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긴다고 해서 반응이 그대로 나오는 건 아니니까요. 그 과정에서의 출발 지점들이 몇 개가 있습니다. 배우를 정확하게 보고 싶다는 것도 그중 하나였어요. 연극에서도 물론 훌륭하게 연기했지만, 이걸 스크린으로 가져오려면 다른 방법들을 동원할 필요가 있죠. 특히 사실성 측면에서요. 연극은 연기에 대한 허용치가 넓잖아요. 이걸 영화로 옮겨올 때, 사실적인 기반이 아니면 관객들이 받아들이지 않아요. 좀 더 정확하고 명확하게 그래서 관객들이 의심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영화화 과정의 기저에 깔린 숙제였죠.

장애, 성, 가족, 존엄사 등 하나만 다루기에도 벅찬 주제들이 <나를 죽여줘>에 모두 담겨있습니다. 먼저 ‘장애’ 주제부터요. 최근 종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덕분에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측면이 있죠. 선천적으로 장애를 얻고 태어난 자녀를 돌보는 부모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그 부모가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되는 점은 너무 가혹한 설정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물론 원작이 그렇겠지만요. 이런 설정이 현실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영화적, 연극적인 요소 같이 느껴지는데,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맞아요. 그 설정은 원작에부터 있었죠. 원작자 고향이 캐나다 밴쿠버에서 몇 시간이나 차로 가야 하는 외진 곳이래요. 가도 가도 주유소밖에 안 나오는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더라고요. 주민 대부분이 알콜중독자나 유색인종이었대요. 고향을 떠나고 나서야 그 사람들이 정상이 아니었단 걸 깨달았다고 해요. 처음부터 그런 환경에 있어서 그게 당연한 것처럼 살았던 사람들이었고, 후에 그런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 자신이 할 일이었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영화적으로는 가혹할지 모르겠으나 영화에서 보이는 너무 큰 주제들 그러니까 장애, 성, 존엄사 이런 큰 것에 주안점을 둔 건 아니었어요. 거기에 중심을 뒀다면 주제가 너무 강조돼서 추상적이거나 아름답지 못했을 거 같아요. 그것보다는 현재(안승균 분)가 우연히 장애인이었을 뿐인 거고, 아빠(장현성 분)도 살다 보니 더 이상 고통이 사라질 수 없는 병에 걸린 것뿐인 거죠. 자연의 일부 과정으로 생각하고 연출했습니다. 꼭 장애를 다뤄야겠다, 성을 다뤄야겠다고 한 건 아니고요.

원작자는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영화로 만들겠다는 설득은 어떻게 하셨고요?

이메일을 찾아봤어요(웃음). 찾다 보니 메일 주소가 너무 단순하더라고요. 원작자 이름이요. 설마 맞을까, 한국에서 영화로 만든다고 하면 허락해 줄까 하면서도 메일을 썼어요. 내가 이 작품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제가 경험한 작품 이야기를 구구절절 길게 써서 보냈는데, 바로 다음날 답변이 왔어요. 돈 있느냐고요(웃음). 그래서 아, 이거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얼마 전에 개봉 사실을 알리는 메일을 보냈더니 너무 흥분되고 가슴이 뛴다고 답장이 왔습니다.

<나를 죽여줘>에서 선천적 장애를 타고 난 아들 현재 역으로 분한 안승균 배우. 사진 제공=목요일아침

장애인 아들 ‘현재’ 역을 맡은 안승균 배우의 연기가 놀랍더라고요.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은(아이유) 배우의 절친 송기범 역을 맡아 신스틸러 연기를 보이기도 했고,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는 모범생 연기도 해 눈길을 끌었었는데, 동일 인물이란 걸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해맑은 아이와 아버지의 안락사를 결정하는 애어른의 모습이 공존하는, 힘든 역할을 했는데요. 현장에서 감독으로 어떤 주문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안승균 배우는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희가 기존에 장애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TV뿐 아니라 장애인단체들을 찾아다니며 많은 자료를 통해 접했어요. 그런데 좀 사실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더라고요. 휠체어를 탈 때도 이동할 때 다리를 슬쩍 짚는다거나, 누군가의 등에 업힐 때도 슬쩍 일어나는 모습들이 보이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이렇게 하지는 말자는 무언의 합의가 있었죠. 영화에서 현재는 오른손을 목 아래로 내릴 수 없어야 해요. 그 경직이 어디까지여야 하는지를 안승균 배우는 스스로 만들어 냈어요. 척추 어디까지가 장애이면 목은 어디까지 움직이는지 이런 것들을 대부분 자기가 만들더라고요. 똑같은 누군가의 연기를 쫓아간 게 아니라요.

일단 그렇게 익히고 났더니, 촬영장에서도 슛 들어가기 전에 먼저 안승균 배우가 자세를 잡아요. 그러고 나서 ‘이제 됐습니다’라고 말했어요. 자기의 근육을 준비시킨 거죠. 제가 ‘컷!’하고 나도 몸이 안 풀어져서 오랫동안 옆에서 주물러줘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준비를 많이 했어요. 스스로요. 이게 앞서 이야기한 사실성과 관련된 부분이죠. 안승균 배우는 그때그때 연기한 것이 아니라 촬영 기간 내내 현재의 삶을 산 거라고 보면 돼요.

점점 아파가는 아빠 ‘민석’을 연기한 장현성 배우는 이전에도 원작 연극 <킬미나우>에 출연했습니다. 감독님이 보신 연극에서의 연기와 영화에서의 연기 톤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빠 역할은 극중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급격한 변화가 있어야 하는 캐릭터죠. 제가 장현성 배우에게 일일이 연기 디렉션을 준 건 아닙니다. 다행히 원작 연극에서 설정된 아빠의 장애 정보가 있어요. 영화에서 가장 변화가 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 목표는 아들보다 더 아프게 보여야 하는 거였어요. 물론 관객 입장에서는 그 변화가 불편해 보일 수도 있죠. 그게 단점일 수도 있고요. 그 중간중간 단계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가 고민이었어요.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줄지, 계절의 상태에 따라 갑자기 건강 상태가 툭 변하는 게 좋은가 등등 이런 논의를 많이 했습니다.

아들의 성욕을 아버지가 해결해준다는 점에 대해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관객들도 있습니다. 영화를 찍을 때는 어떤 생각이셨나요? 또 관객들에게 이 장면이 어떻게 보이길 원하셨는지요?

피해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음, 예를 들면, 연극에서는 욕조가 되게 예뻐요. 그런데 우리는 저예산 영화였기 때문에 장소부터 찾아야 했거든요. 꾸밀 수도 없고요.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그런 장소에서 아빠와 아들이 나눴을 법한 대화, 아빠의 느낌을 그대로 담아내는 게 목표였어요. 자극의 요소나 중요한 순간으로 염두에 두고 찍은 건 아닙니다. 연출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이것이 아들에게 주는 아버지로서의 마지막 선물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 죽음이듯이요. 이건 어찌 보면 원작에서부터 세팅이 돼 있는 것이었기에, 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행위가 목적은 아니니까요. 과정을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그린 정도입니다.

<나를 죽여줘>에서 민석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수원 역으로 출연한 이일화 배우. 사진 제공=목요일아침

시나리오 작업에서부터 ‘수원’ 역에는 이일화 배우를 염두에 두고 썼다고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저보다는 촬영 감독님이 이일화 배우와 워낙 가까워요. 연극도 같이 봤었고요. 시나리오 쓰는 과정에서 이일화 배우가 나와주면 훨씬 더 균형이 맞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일화 배우라고 하면 야간 메이저한 느낌이랄까요? 큰 드라마에서 역할을 많이 맡았죠. 이일화 배우 역시 그런 익숙한 것들에서 벗어나 도전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나 봐요. 불편한 역할이어도 한번 해보시겠느냐고 제안했는데, 한 번에 오케이 하더라고요. 그런 도전과 욕망이 맞아 떨어졌던 거 같아요.

지적 장애인 기철(양희준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지적 능력이 없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캐릭터인데, 비장애인이 아닌 지적 장애인을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매개자로 등장시킨 이유가 궁금해요.

기철이 역할은 원작에도 있었어요. 이 영화는 인물마다 주제가 다 달라서 뭔가 하나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기철이에게 제가 설정했던 역할은 ‘집’입니다. 집이란 곳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친구죠. 기철이 대사 중에 “여기서는 사람 판단하지 않아요”라는 말이 있어요. 이게 결국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정상적인 거는 상대적인 것이란 것, 그런 모든 내용을 다 담아내는 대사라고 생각해요.

정상이란 건 누구의 입장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거잖아요. 집이란 누군가에게 일상적인 장소일 수 있는 거지만, 영화에서는 기철이만의 집이 생기는 거고, 가상의 아버지, 어머니, 연인이 생기는 곳이에요. 그런데 뭔가 이상한 거죠. 하나도 제대로 된 건 없어요. 아프고, 싸우고, 힘들고요. 그런데 갖긴 가졌어요. 그 집이란 걸. 어찌 보면 기철이에게는 너무나 정상적이고 감사한 일이에요. 기철이라는 캐릭터는 주제적으로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또 하나 말하자면요, 영화에서 두 사람이나 장애가 있으면 이야기가 굉장히 다운되고 느려질 수밖에 없어요. 정말 어둡고 내려앉을 수밖에 없는 걸 극복하기 위해서 스피디함, 가벼움, 넘치는 에너지를 기철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다 올려주고 있는 겁니다.

기철이를 캐스팅할 때나 역할을 논의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그럴 수 있는 성격, 에너지, 도발적인 부분들이었던 것 같아요. 이 부분이 ‘카운터 밸런스’를 잘 맞춰줘서 기철이가 굉장히 재밌는 친구로 보일 수 있어요. 그리고 원작에는 없고 영화에만 있는 기철이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현재와 사고치는 장면, 공동생활하는 시설 모습이 그런 시퀀스들인데, 이것들이 카운터 밸런스에 대한 사실성을 부여하죠. 기철이의 감정을 더 열어주고 싶단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냥 기철이 캐릭터를 쓰기보다 더 강조한 거죠.

<나를 죽여줘>에서 현재의 독립을 돕는 활동지원사 기철 역할을 맡은 양희준 배우. 사진 제공=목요일아침

선천적으로 아픈 조카와 후천적으로 아파가는 오빠를 돌보는, 그래서 자신의 삶은 없는 하영(김국희 배우)를 보면 두 가지 질문이 떠올랐어요. 안락사하자는 현재에게 “나한테는 하나뿐인 오빠”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던지는 안락사에 대한 큰 질문 하나, 그리고 기철과 술자리에서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기가 그렇게 힘든 것인가 라는 질문이죠. 장애인 가족이 있는 사람에겐 돌봄에 대한 무게감인 거죠. 감독님은 하영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이 두 가지를 어떻게 표현하려고 하셨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하영이가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관계에 병이 있는 사람이랄까요? 영화 뒷부분에 헤어졌던 남자도 살짝 나오잖아요. 그 남자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영화에서는 나중에 빠졌지만요. 마을버스 운전을 하는 에피소드도 빠졌고요. 다 찍었는데 말이죠(웃음). 제가 생각할 때 하영이는 관계 속에서 자신을 찾는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오빠에게는 여동생으로, 조카에게는 고모로, 또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관계 속에서 자꾸 자기를 정의하려고 하는 사람이죠. 영화에서도 관계 때문에 자신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내가 좀 더 버텨볼게”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도 그렇지 않나요?(웃음)

그런데, 하영의 이 대사가 있어야 현재의 말이 조응할 수 있는 거예요 “나의 아버지도 아니고, 고모의 오빠도 아니고, 아빠는 그냥 아빠일 뿐이야”라는 대사요. 이렇게 현재가 관계를 끊어주는 데서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거죠. 그렇게 관계를 존중해주는 것이죠. 그렇게 하영은 결국 정의되지 않은 관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사실 영화에서는 빠졌지만 기철이와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것도 있었어요. 원작에서는 알콜중독에, 과거에는 레즈비언이었다가 지금은 아니라는 관계 없이는 본인이 의미를 갖지 못하는 더 복잡한 캐릭터였는데, 영화적으로 너무 많은 요소가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좀 더 집중하고, 하영의 캐릭터는 적정한 수준으로 정리했습니다.

<나를 죽여줘>에서 장애인 조카와 아파가는 오빠를 돌보는 하영 역할의 김국희 배우. 사진 제공=목요일아침

장애인, 존엄사, 지극히 평범한 삶에 대한 갈망…. 많은 질문을 담고 있는 이 영화에서 결국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어렵네요(웃음). 하나가 아니어서 그렇죠. 저는 그래도 마지막에 현재의 입장이랑 비슷한 거 같아요. 현지가 마지막에 던지는 질문은, 진짜 사랑하니까 진짜 사랑하는 사람에게 약을 주는 거잖아요. 크게 보면,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인 거죠. 그러니까 <나를 죽여줘>는 성장영화에요. 나만 생각하고, 나만 돌보려 했던 현재, 실제로 혼자서는 무엇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던 아이가 아빠를 돌보겠다는 마음을 먹는 그 순간이 말이죠. 인생에서 나 이외에 남이 보이는 순간이 자신이 성장하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그 사람을 죽이는 것까지 간다? 그 사람을 위해서? 그건 아무나 던질 수 없는 이야기라고 봐요. 굉장히 비루한 데서 굉장히 큰 데로 가는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건, 현재의 용기 때문에 사랑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겁니다.

영화 중간에 나오는 존엄사를 물론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아닙니다. 다만, 초점이 존엄사의 의미로 끝나버리면, 그건 정치적인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죠. 그보다는 비구체적이어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배우, 스태프들과도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영화를 찍었습니다.

오랜 친구 김진수 대표와 의기투합하셔서 화제가 됐어요. 친구, 개그맨, 뮤지컬배우가 아닌 제작자 김진수는 현장에서 어땠나요?

아, 저 사람이 영화제작자구나, 대표구나 하고 느꼈던 순간이 몇 번 있었죠. 개봉하고 나서 김진수 대표가 완전히 제작자로 자리매김한 게 일단 너무 좋아요. 제 친구지만, 어리바리하게 같이 시작했다가, 어, 영화가 정말 나왔네! 하면서 관객들 앞에서 사회 보고, 손님들을 맞으면서 최선을 다해 영화를 알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친구로서가 아니라 대표로서 멋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현장에서 장현성 배우가 “밥이 이게 뭐니~”하고 핀잔을 줄 때면 뒤에 가서 “에이씨”하는 것들도 있긴 했지만요(웃음).

영화를 찍으며 가장 즐거웠던 기억은 무엇인가요?

어느 현장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긴 한데, 정말 즐거웠던 촬영이었다는 점이죠. 춘천이라는 공간도 모두를 기분 좋게 만들었어요. 중간중간 촬영이 없는 날이면, 장현성 배우는 아침 일찍 사이클을 열심히 탔고, 이일화 배우가 화사하게 메이크업하고 오면 손님처럼 맞아서 연기에 들어가기도 했고요. 김국희 배우는 분장도 안 한 부스스한 머리로 불쑥 나타나서 “감독님, 얼마나 찍었어요?”하면 깜짝 놀라서 “준비 빨리 안 해요?”라고 대답했죠. 그러면 “에이, 지금부터 하면 되죠. 근데 밥은 어딨어요?”하면서 웃고요. 다들 즐거웠어요. 배우들, 스태프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가 ‘소풍처럼 즐겁게 찍었다’는 말이었어요.

사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연습을 정말 많이 한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원작 연극이 있었고, 저예산 영화였다는 제작 여건상 영화의 퀄리티를 높이려면 배우들이 사전에 저와 함께 연습을 해야 했거든요. 그 과정이 한 달 정도 있었어요. 씬 순서대로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거죠. 모든 스태프가 촬영 장비 없이 그 모습을 지켜봤어요. 그러면서 음향팀은 마이크는 여기서 준비하자 하며 토의하고, 배우들은 여기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며 동선을 정했죠. 이 과정에서 약속이 다 됐기에 현장이 굉장히 잘 돌아갔어요. 20회차만에 다 찍었거든요. 오히려 실제 촬영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많이 나왔고요.

<나를 죽여줘> 스틸. 사진 제공=목요일아침

아까 영화적 설정으로 찍어두고 편집에서 덜어 낸 장면이 많다고 하셨잖아요. 편집기사님과 조율 과정에서 갈등은 없었나요?

편집기사님에게 사실 정말 감사해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많이 했거든요. 사실 제가 성격이 정말 급한 편인데요. 그분은 더 급해요(웃음). 영화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한데, 그 밀도를 유지하는 건 그냥 컷을 줄인다고 유지되는 건 아니거든요. 매번 정확하게 감정, 정보가 프린트된 다음에 그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는 건데, 급하게 한다고 그 밀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저와 이야기하면서 그만큼 정확하게 편집에 대한 밀도를 유지했고, 너무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줬어요. 무엇보다도, 저보다 영화에 애정이 없어서 가차없이 쳐낸 장면들이 참 많죠(웃음). 지금 와서 보니 감사한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부담 없이 와서 봐주셨으면 해요. 존엄사, 장애 같이 자꾸 큰 이야기들이 나오니까, 진입 자체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눈물이 많이 난다고 하는데 감정 소모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 테고요. 영화에 이런 걸 넘기게 하는 코미디적 요소가 많이 있어요. 그런 부분들이 재미있으니 쫓아가면서 볼 수 있거든요. 진입장벽이 있을 순 있지만, 특정 소재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마시고, 가족 이야기로 봐주셨으면 해요. 부담 없이요.


윤상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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