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시 샬라메를 좋아하세요?
수다와 재즈, 그리고 뉴욕 뉴욕.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영락없는 우디 앨런 영화다. 티모시 샬라메-엘르 패닝-셀레나 고메즈 등 젊은 배우들이 전면에 나섰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배우를 활용하는 우디 앨런의 방식엔 변함이 없다. 은근 소심하고 사색을 즐기는 뉴욕 청년 개츠비(티모시 샬라메)는 ‘우디 앨런 유니버스’의 단골 캐릭터. 재즈 클래식으로 취향을 공유하고, 고전 영화를 입에 올리고, 미술관에서 예술품을 품평하는 개츠비와 챈(셀레나 고메즈)의 우연한 동행 역시 고전적이기 그지없다. 이 영화 배경이 언제였더라? 최신식 아이폰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시대를 혼동했을 게 자명하다.
우디 앨런의 세계관 반복이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치명적 결함은 아니다. 아쉬움은 그러한 세계를 다루는 정교함이 느슨하다는 점에서 나온다. 느슨한 서사에도 불구하고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것. 티모시 샬라메가 자아내는 어떤 정서다. 조물주가 섬세하게 깎아지른 듯한 예민한 턱선의 각도, ‘나, 사연 있는 남자’라고 말하는 듯한 불안한 눈빛과 해사한 얼굴 위로 종종 스치는 퇴폐적인 표정은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깡마른 몸과 만나 특정하기 어려운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미켈란젤로의 대리석에서 걸어 나온 21세기형 제임스 딘 같달까. 프랑스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의 DNA를 수혈한 이 배우의 얼굴엔 과거의 클래식함과 미래지향적인 기운이 동거하는데, 이 느낌과 기질이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밋밋한 서사 밀도를 보완해 낸다.
그의 이러한 매력을 일찍이 간파한 이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다. 열일곱 소년의 열병과도 같은 첫사랑을 그린 이 영화에서 티모시 샬라메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눈 뜬 엘리오의 감수성을 예민하게 표현해냈고, 위태로운 몸짓과 어찌할 바 모르는 구애의 눈빛으로 관객에게 통증과 아련함을 동시에 안겼다. 특히나 엘리오의 얼굴을 5분간 집요하게 파고든 이 영화의 ‘라스트 신’은 그 해의 ‘라스트 신’이었을 뿐 아니라, 티모시 샬라메의 인생을 일거에 바꿔 놓는 ‘스페셜 신’이기도 했다. 아카데미는 최연소 남우주연상 후보 지명으로 그런 그의 연기를 격려했다.
그의 역량을 보여 준 또 하나의 증거물은 복숭아. 복숭아를 볼 때마다 볼에 복숭아 물이 든다면, 응당, 이 영화에서 복숭아 하나로 에로티시즘을 구현한 티모시 샬라메 때문일 테다. 라면이 “라면 먹고 갈래요?” 이후 단순한 라면이 아닌 ‘은밀한 사회적 기호’가 됐듯, 복숭아 역시 티모시 샬라메의 손을 거치며 ‘밀어의 증표’가 됐다. 비슷한 시기 극장가에서는 그레타 거윅 감독의 <레이디 버드>가 상영되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 티모시 살라메가 연기한 카일은 여주인공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에게 최악의 첫 경험 흑역사를 안기는 자의식 충만한 학생. 엘리오와 카일 사이, 그사이 존재하는 커다란 온도 차는 그의 스펙트럼이 더 넓게 뻗어갈 것임을 암시하는 일종의 예고였다.
관객의 시선에 잡아끄는 첫 도약대는 중요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건 도약한 이후 얼마간의 선택들이다. 이어진 <뷰티풀 보이즈>에서의 마약에 취해 비틀거리는 소년 닉은 티모시 샬라메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계보에 올려놓았다. 금기의 사랑에 빠진 천재 시인 랭보를 연기한 퀴어 영화 <토탈 이클립스>와 10대 마약 중독자로 살아간 <바스켓볼 다이어리> 사이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말이다. 이 무렵 디카프리오가 러셀 크로우-샤론 스톤과 서부 영화 <퀵 앤 데드>를 찍었듯, 샬라메 역시 크리스찬 베일-로자먼드 파이크와 서부극 <몬태나>를 찍기도 했으니, 수많은 매스컴이 돌풍처럼 나타난 중성적 이미지의 티모시를 디카프리오와 견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티모시 샬라메는 ‘제2의 누군가’에 머무를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는 또 다른 ‘미남계 배우’ 브래드 피트가 그랬듯 블록버스터와 저예산 독립 영화를 경계 없이 오가며 지지를 획득할 수도 있고, 조니 뎁처럼 쇼비즈니스 세계의 유혹을 거스르며 실험적인 작품에 뛰어들 수도 있으며, 주드 로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외모를 종종 망가뜨리는 모험으로 아우라를 확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모르지. 디카프리오가 <타이타닉>이라는 거대한 운명과 부딪혀 배우 인생 항로가 바뀌었듯, 그의 앞에도 그런 작품이 나타날지. 확실한 건, 눈부신 외모 뒤에 성격파 배우의 면모를 숨겨놓은 이 청년에겐 선택지가 많다는 것이다.
최근 필모를 보면, 지금의 그는 훌륭한 감독들과의 작업을 통해 내공을 쌓는 방법을 선택한 듯하다. 차기작 <듄>의 수장은 무려 ‘할리우드 신흥 블루칩’ 드니 빌뇌브이고, <프렌치 디스패치>에선 범접하기 힘든 개성의 소유자 웨스 앤더슨과 협업했다. 우디 앨런과 함께한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역시 이러한 필모 가꾸기 일환의 하나였을 터. 변수는 영화 밖에서 터져 나왔다. 입양 딸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우디 앨런에 대한 애매한 발언으로 티모시 샬라메는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올랐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그는 무엇을 느끼고, 깨달았을까. 해답은 빨리 풀렸다. 그는 “좋은 역할만이 작품을 선택하는 유일한 기준이 아님을 배우고 있다. 부당함, 불평등, 침묵을 끝내려는 강력한 움직임의 탄생을 목격하면서”라는 말과 함께 출연료 전부를 성폭력 피해자 단체에 기부하며 ‘타임즈업(Time’s upㆍ한 시대가 끝났다)’ 운동에 연대를 표했다. ‘떠오르는 신성’ 티모시 샬라메의 이 폭탄 발언은, 할리우드의 해묵은 관행에 커다란 균열을 안겼다.
티모시 샬라메가 지닌 특징 중 하나는, 거친 남성성에 대한 압박에서 자유로워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여자들은 그에게서 내 것일 수 없는 ‘남자’의 모습뿐 아니라, 어깨를 나란히 할 ‘동지’의 모습도 본다. 여성 성장 영화 <레이디 버드> <작은 아씨들>로 이어진 그레타 거윅과의 작업은 그의 이러한 면모에 불을 지핀 요소. ‘마초적 남성성’ 보다 ‘예민한 감수성’에 가까운 그의 기질은 시대에 부합하는 경쟁력이기도 하다. 과거의 향수를 간직한 채,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목소리를 안고, 티모시 샬라메는 그렇게 시공간을 초월해 발을 옮기는 중이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