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건달? 극과 극 캐릭터로 돌아보는 조진웅 필모그래피

*경고! <끝까지 간다>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사라진 시간>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를 꼽으라면 조진웅을 빼놓을 수 없다. 주연 배우로 발돋움한 2012년부터 거의 매년 최소 3편 이상의 작품을 쏟아내고 있다. 양보다는 질이라는 지적은 통하지 않는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용의자 X>, <끝까지 간다>, <명량>, <암살>, <시그널>, <아가씨>, <독전>, <공작> 등 작품성과 흥행 모두를 잡은 다수의 영화에 조진웅의 연기가 짙게 배어 있다.

이쯤에서 돌아보는 조진웅의 필모그래피. 유독 형사와 건달로 출연한 영화가 많다. 얼마 전 개봉한 <사라진 시간>에서도 형사 역할을 맡았다. 이렇게 형사나 건달 역할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조진웅을 특정한 이미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한정된 배역 안에서 캐릭터마다의 개성을 최대한 살렸기 때문. 극과 극 캐릭터를 연기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변주를 이뤄냈던 조진웅의 과거를 파헤쳐 보자.


좋은 깡패, 나쁜 깡패, 이상한 깡패

파파로티

감독 윤종찬

<파파로티>

사람답게 살으래이… 내처럼 살지 말고.

<파파로티>에서 조진웅은 조폭의 잔인함보다는 장호(이제훈)를 향한 인간적인 애정을 듬뿍 담은 연기를 선보였다. 노래에 재능이 있음에도 불우한 가정 환경으로 인해 어둠의 세계에 뛰어든 장호(이제훈). 조진웅은 이런 장호를 친동생처럼 챙기는 조폭 선배, 창수를 연기했다. 그는 <파파로티> 언론시사회에서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서는 ‘또 조폭이야?’라고 생각했다”며 “계속되는 건달 캐스팅에 난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내 창수라는 캐릭터의 특징을 파악하고 눈빛에 아련함을 담으려 노력했다는 후문. 영화를 보면 이러한 조진웅의 노력을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다. 장호를 바라보는 창수의 눈동자에 아련함 이외에도 사랑, 부러움, 후회 등 복잡다단한 감정이 비친다.

조진웅의 눈빛 연기가 돋보였던 <파파로티>.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감독 윤종빈

제가 다시 한번 사↗ 과↗드↗리↗겠↘습↘니↘다↗

개봉 후 9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음성지원이 될 정도로 조진웅의 김판호(조진웅)는 강렬했다. 판호는 과거 최형배(하정우)의 부하였지만, 독립하여 이제는 형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조폭 두목. 그는 홀로서기를 했다는 자부심과 형배에 대한 2인자 콤플렉스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연기만큼은 2인자에 머물지 않았다. 완벽한 부산 사투리와 주연들을 빛나게 하는 연기의 완급조절이 일품이었다는 평. 조진웅은 명배우들이 즐비했던 이 작품에서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었음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최민식이 조진웅의 반응이 궁금해서 사전 상의 없이 애드리브를 쳤는데 완벽하게 받아치며 연기력을 증명해냈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다.

애드리브로 갑자기 울어버리는 최민식

잠깐 당황하더니

자연스럽게 받아준다.


퍼펙트맨

감독 용수

<퍼펙트맨>

조진웅이 능한 것은 진지하고 무거운 연기만이 아니다. <보안관> 이후 3년 만에 선보인 코미디 영화 <퍼펙트맨>에서 익살스러운 깡패 영기 역을 맡았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로펌 대표 장수(설경구)는 영기(조진웅)에게 자신의 수발을 들어달라고 부탁하고, 그 대가로 자신이 죽으면 사망보험금을 주기로 약속한다. <퍼펙트맨>은 밑바닥 인생 영기가 장수를 만나 우정을 쌓고 변해가는 이야기. 조진웅은 처음에는 이 설정이 자칫 건달을 미화할 수 있다며 출연을 고사했다고 전해진다. <퍼펙트맨>은 프랑스영화 <언터쳐블:1%의 우정>과 플롯이 매우 흡사해 표절 의혹을 받기도 했다. 여러 논란 속에서도 조진웅의 유쾌한 코믹 건달 연기는 빛났다.


다 같은 형사라고?

끝까지 간다

감독 김성훈

<끝까지 간다>

배우 조진웅의 연기 커리어는 사실상 <끝까지 간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난 안 하면 안 하지, 하면 끝까지 하는 성격이다”라고 과거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던 조진웅이 연기로 진짜 끝까지 간 작품. <끝까지 간다> 이전의 조진웅을 돌아보면, 연기력에 있어서는 자타 공인 최고라고 정평이 나 있긴 했지만 정작 주연을 맡은 적은 별로 없었다. 그는 여기에 항의라도 하듯 <끝까지 간다>의 박창민 역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며 극 전체를 풀어냈다. 특히 건수(이선균)를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농락하던 영화 초반은 조진웅 전체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명장면으로 꼽고 싶을 정도. 이선균은 이런 조진웅을 두고 “곰 같은 덩치로 뱀같이 연기한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끝까지 간다>


시그널

감독 김원석

<시그널>

탄탄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만나 아직까지도 레전드 드라마로 회자되는 <시그널>. 조진웅의 연기 인생에서 <시그널>은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부패한 세상에 맞서는 형사라는 줄거리는 언뜻 보면 진부한 소재이지만, 김은희 작가는 실제 사건과 타임슬립이라는 설정을 절묘하게 섞어내 <시그널>을 명작 반열에 올려놓았다. 여기서 조진웅은 강직하고 정의로운 형사 이재한 역. 100번의 설명보다 이재한이라는 캐릭터를 더 잘 설명할 수 있 장면은 단연 이 부분이다.

<시그널>

절망적인 현실에 울분을 토해내는 무전기 신은 드라마라는 가상의 공간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듯 시청자들의 가슴을 묵직하게 울렸다. 조진웅의 선굵은 정극 연기를 볼 수 있었던 장면.


독전

감독 이해영

<독전>

‘약 빤 연기’의 향연이라고 해야 할까. 김주혁의 유작이기도 한 <독전>은 15세 관람가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선정적이다. 대본도 물론 자극적이었겠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생생하다 못해 징그럽게 다가올 정도. 마약 조직의 뒤를 쫓는 형사 원호(조진웅)는 조직의 보스 이선생을 검거하기 위해 진하람(김주혁) 행세를 한다. 진하림을 연기해야 하는 원호가 이선생의 부하 박선창(박해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마약을 흡입하는 조진웅의 연기가 압권이다. 사실 여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제작진의 실수로 통상 촬영에 쓰이는 코담배 대신 입자가 거칠고 굵은 소금을 코로 흡입한 것. 원래는 시늉만 하기로 돼 있었는데 컷 사인이 나오지 않아 그냥 들이마셨다고 한다. 조진웅은 이후 인터뷰에서 “순간 뒤통수를 ‘팍’하고 때리는 것 같았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잠시 촬영을 중단하고 화장실에 갔는데 거울을 보니 충혈된 눈과 핏줄이 정말 좋았다. 바로 돌아와서 지금 바로 찍자고 했다”며 해당 장면이 실제 고통을 참으며 완성됐다고 고백했다.

<독전>에서 형사 원호(조진웅)이 마약을 흡입한 장면.


씨네플레이 인턴기자 이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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