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빛나는 것, 캐릭터가 돋보이는 것. 어느 하나 성취하기 어려운 것인데 황석정은 언제나 그걸 해낸다. 그가 작품에서 연기를 펼칠 때마다 독특한 캐릭터가 인기를 얻고 그걸 맛깔나게 소화한 황석정 또한 박수를 받는다. 그의 존재감과 연기, <이공삼칠>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발적인 사고로 살인자가 된 윤영(홍예지), 그리고 그의 동료 수감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황석정은 다혈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캐릭터를 탁월하게 소화했다.
시사회를 앞두고 만난 황석정과 대화를 나누며, 어쩌면 그의 탁월한 캐릭터 소화력은 자신을 규정하지 않는 스스로의 성격 덕분일 거란 생각을 했다. 할 말은 다 하면서도 결코 망설임이 없는 그는 배우와 기자란 벽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 자리를 이끌었다. 6월 8일 개봉하는 <이공삼칠>로 돌아온 황석정에게 직접 들은 작품과 연기,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주길 바란다.
<이공삼칠>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연락이 먼저 왔죠. 왜 나를 캐스팅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그렇게 감독님하고 관계자 두 분을 먼저 만나서 그냥 편안하게 얘기를 했고, 저도 감독님에 대해 묻고 각자 삶을 서로 얘기했어요. 영화보다는 그런 얘기를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이 원작자이기도 하니까 감독님의 세계관이나 삶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이 작품의 알 수 없는 어떤 슬픔이나 사랑에 대해, 사람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가 이 작품을 하고 또 감독님하고 같이 호흡을 하면 되게 좋은 일이겠다 이런 마음을 먹게 됐어요. 나중에 술을 마시고 취해서 기억은 잘 안나는데 “제가 감독님 옆에 있어드릴게요” 했대요.(웃음) 감독님께서 이 작품은 어머님한테 바치는 거라고 하셨거든요. 그 짦은 만남에서 감독님의 삶을 다 알 순 없었지만 그게 어떤 마음인지 느껴져서, 그래서 그런 기억도 안 나는 약속까지 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영화 대부분이 수감생활에 대한 이야기인데 감독님은 이런 부분을 어떻게 설명했나요?
설명은 따로 없었어요. 보여지는 건 수감 생활인데 사실은 그 안에 있는 모습들이 삶의 군상, 상처받은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서로 어울리고 또 사랑을 깨달아가는 하나가 되는 모습이잖아요. 그게 어떻게 보면 은유적인 거죠. (이 수감실이) 작은 세상일 뿐이니까 그래서 어떤 지시도 안 하셨던 것 같아요.
이번엔 맡은 캐릭터 리라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사투리도 쓰고 욕도 좀 하고, 그러면서 정이 많은. 시나리오에 설정된 부분과 본인이 직접 짠 부분이 따로 있을까요?
시나리오를 통해 제가 받는 인상이라는 게 있잖아요. 되게 놀라웠던 건 이 여자가 지금 포주 출신으로 여기(교도소)까지 왔는데 되게 따뜻한 거예요. 오히려 순진하고. 그런 생활을 하면 그런 사람일 것이다, 라는 정형화된 생각과 편견을 갖게 되잖아요. (이번 캐릭터가) 그것과 다른 면을 던져준 게 되게 흥미롭고 이거야말로 리얼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정형화돼 있지 않은 사람이다 보니까 학교에서 ‘너 공부 못하지’라는 소리 많이 듣고, 심지어는 연기과 다닐 때도 선생님들이 너는 브라운관에 못 나올 거라고 그러는데, 이런 편견 속에서 되게 슬펐거든요. 그래서 이 역이 나한테 왔나 보다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그외에는 어떻게 연기해야지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안 해봤어요. 그게 나의 모습이고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에. 제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거는 방금 얘기한 그런 면하고… 내가 아무리 준비했더라도 실제 배우가 와서 그 역을 하면서 같이 어우러졌을 때 내가 예상치 못한 색깔이 또 나오는 거였죠. 다른 배우들과 같이 하면서 저절로 그게 나오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여기는 이러이러한 색깔이 있는데 이 색깔을 내가 해야 되겠구나라고 저절로 그 캐릭터의 색깔들이 채워지는 게 있어요.
말씀하신 대로 되게 앙상블이 많이 빛나는 영화인데 혹시 촬영장에서 기억에 남는 게 있으신가요?
항상 즐거웠어요. 사실 굉장히 짧게 찍었거든요. 저희들은 한 10회차에서 다 마무리됐어요. 제가 찍어본 영화 중에 가장 짧게 찍었어요. 영화가 자칫 없어질 뻔했는데, 우리 모두 개런티나 이런 부분 일절 없이 다같이 참여해서 찍었어요. 이 영화가 가진, 이 스토리가 가진 사랑, 치유, 그런 것에 기꺼이 이 과정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들이 모아져서 가능했어요. 그것도 기적인데 그 짧은 기간에 찍은 것도 기적이고.
배우들이 이미 그런 마음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너무나 달랐어요. 배우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그 소중한 마음들이 딱 모여서 찍기 시작할 때부터 서로 앙상블을 맞추려고 하고, 또 그 짧은 시간이지만 스스로 ‘어떻게 할까’ 하면서 서로 합을 너무 잘 맞췄어요. 그래서 그 따뜻한 마음들 때문에 항상 즐거웠어요. 지치고 힘들다 이런 거 없이, 지친 와중에도 ‘야 우리 이렇게 해볼까’ ‘언니 이렇게 해볼까요’ ‘잠깐만요, 우리 한 5분만 시간 주세요’ 해서 같이 얘기하고 찍고. 찍으면서 행복했던 기억밖에 없어요. 촬영하면서 그러기 힘들걸요? 이런 촬영 경험은 다신 없을 거예요. 작품이 가진 힘이 너무 강했어요. 찍는 과정 자체가 감동이었어요.
저도 보면서 되게 오랫동안 함께했던 사람들의 연극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저도 찍으면서 놀랐어요. 저희들 다 처음 만난 애들(인데). 어디 가서 말도 못 해요. 안 믿을까 봐.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순간들도 1초 1분도 안 즐거웠던 순간이 없고, 그 순간이 너무 생생하고 너무 즐거웠기 때문에 옛날 동창들 오랜만에 만나서 소풍 온 느낌이었어요. 아마 저만 그렇지 않을 거예요. 되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스태프들, 감독님도 다 그렇게 따뜻했고. 그리고 처음 이런 연기에 도전한 (홍)예지를 다 같이 도와서 예지가 더 잘 할 수 있게. 이게 가능하지가 않거든요, 짧은 시간에. 빛나는 시간을 만들었던 거죠. 배우들이 참 감사해요. 스태프들, 감독님한테도요. 뭘 바라고 찍은 영화가 아니었는데 여기까지 올지 몰랐어요.
홍예지 배우 얘기가 나와서 질문드리면, 홍예지 배우와 윤미경 배우가 같이 한 배우 중 특히 어리잖아요. 현장에서 배우들이 많이 예뻐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뻐했다기보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저도 배우 생활을 오래 해봤으니까 그 긴장감을 안단 말이에요. 그게 얼마나 두렵고 힘들고 그런 순간인지. 그런데 우리 영화가 아까도 얘기했지만 상처와 치유 이런 것들을 말하려면 그 친구들이야말로 이번 영화를 통해 성장하길 바랐어요. 그 성장에 필요한 것이 하나 되는 거잖아요. 최대한 그 긴장감 없도록 우리가 무서운 매의 눈이 아니라 ‘네가 힘들면 언제든지 다시 해도 돼’라고 얘기할 수 있는, 추우면 언제나 들어와서 쉴 수 있는 따뜻한 방처럼 그랬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또 그 친구들이 그렇게 하려는 의지가 있고. 그리고 저는 그런 거 정말 싫어해요. 딱딱한 분위기. 안 그래도 힘든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렇게 긴장감이 안 없어지거든요.
그런 분위기를 많이 겪으셨을 것 같긴 해요. 옛날 극단 분위기는 그런 게 많았으니까.
그럼요. 저 그거 싫어해요. 왜냐하면 그 친구들이 원래 가지고 있는 매력이나 잘할 수 있는 부분이 편하게 나올 수 있게 해줘야 그게 나오는 거지, 억압적인 분위기를 한다고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우리 모두 그냥 으쌰으쌰했던 것 같아요. 솔직히 얘기하면, 동료 배우일 뿐이지 내가 연기를 하면 뭐 얼마나 잘한다고. 연기라는 게 오랫동안 연기했다고 잘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 사람의 매력인 거예요, 그 사람만이 가진. 그리고 작품이 그렇게 (화합)하길 바라고 있잖아요. 작품 주제가 그걸 원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는 게 또 즐겁고 또 훨씬 보람되고. 그리고 다른 배우들도 너무 좋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동료가 잘 되는 게 영화가 잘 되는 건데.
다른 배우들하고도 애드립이 좀 있었던 편인가요?
어떻게 보면 작품은 큰 틀이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세세하게 담고 있진 않아요. 그러니까 저희도 그 안에 들어가서 찍다 보면 발견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걸 최대한 장점으로 활용하려고 우리들끼리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하다가 만들어진 것들이 많죠. 배우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되고요. 뭘 했는지도 모르겠어요.(웃음)
촬영할 때 힘들었는데, 결과물로는 잘 나왔다 하는 장면이 있을까요?
원래 있는 장면이 아닌데 갑자기 새로운 장면이 됐을 때, 원래 있는 장면 대신 새로운 장면으로 대체하게 됐을 때, 이런 갑작스러운 장면을 여러 명이 채우게 될 때. 그럼 그 장면 안에 모든 인물들이 가진 생각들이 다를 거 아니에요. 그 다양함이 한 장면 안에 담겨야 될 때는 그것이 담겨야 그 장면이 의미가 있어지는 거거든요. 하다못해 그냥 ‘밥을 먹는다’ 이렇게 돼 있어도 밥을 먹는데 평상시하고 다르게 먹을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각자 심경이 드러날 때 그 장면이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그럴 때 배우들이 잠깐만 촬영을 멈추고 우리들끼리 같이 합을 맞추고 ‘이렇게 이렇게 하자’ ‘오케이’ 하고 찍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 나왔을 때 그럴 때가 되게 인상적이죠. 배우들 스스로 주체가 돼서 그 장면을 훨씬 의미 있게 만들려고 같이 노력했는데 그것이 그런 의미를 가지게 됐을 때 배우들은 되게 기쁨을 느껴요. 단순히 그림을 만든 게 아니라 살아있는, 의미 있는, 가치 있는 장면을 만들어냈을 때 그것이 배우들을 보람 있다고 느끼는 하죠.
<천변카바레>를 준비하면서 커버 음원을 발표하셨잖아요. 이번 음원도 배우 활동의 연장이긴 하지만 그외에 커버해보고 싶은 음악이 있으실까요.
지금은 사실 배호 선생님 이외에는… 배호라는 너무 대단한 아티스트에 대한 구름으로 가득 차 있어요, 제 안에는. 이런 말씀을 드리면 말도 안 된다고 하실지 몰라도 겨우내 목숨을 바쳐서 살았기 때문에, 선생님 음악에 대해서. 그렇게 제가 프로듀싱을 해서 나온 그 세 곡. 그게 산고의 고통을 겪어서 나온 거예요.
사실은 저는 음악이나 노래를 한다기보다는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거예요. 배우니까. 앞으로도 그런 작업을 했으면 좋겠어요. 네 번째 곡이 이제 나왔어요. 제가 배호 선생님에 대한 그 마음을 가사로 많이 썼었고 그것 중에 하나를 골라서 육중완이 곡을 써서 이번에 ‘나비’라는 곡이 나와요. 제가 나비 시리즈를 세 편을 써놨는데 그중 하나가 이번에 나온 거고 다른 한 편을 (육중완에게) 맡겼는데 안 하더라고요, 이 자식이.(웃음)
나비가 부활·재생·환생·윤회를 뜻하잖아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스물아홉에 돌아가셨는데, 지금 이 시대에 새로 산 듯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시 신나게 춤추면서 못 다 한 삶을 세상에 다시 살아오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쓴 거예요. 만일 앞으로 또 그런 작업을 하라고 그러면 언제나 배호 선생님이 있을 것 같고, 배호 선생님처럼 살았던 아티스트들이 우리나라에 많거든요 1930년대에. 1930년대 노래를 가지고 좀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제가 <천변카바레> 전에 하림의 <천변살롱>이라는 밴드랑 한 8년간 1930년대 노래를 했었어요. 1인 악극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그걸 계기로 알게 된 1930년대 아름다운 노래가 많아서 그런 걸 좀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죠. 물론 지금 노래도 좋은 게 많지만 예전 대선배들 노래 중에 많이 안 알려진 좋은 노래도 굉장히 많아요. 제가 뛰어난 가수의 자질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제 음색으로 제가 할 수 있는 곡들을 찾아내서 하고 싶어요.
이제 식물을 가꾸는 취미도 있으신데.
취미 아니예요, 직업이지. 좋아해서 하다가 지금은 농업인으로서 농업경영체도 하고 있어요.
그 식물 중 아끼는 식물이 있다면? 농업경영체는 무슨 말이에요?
안 아끼는 식물은 없는데 못 해줘서 미안하죠. 하도 많이 키우니까. 올해 비닐하우스를 만들어서 거기서 다양한 화초 묘목들을 키우고 있어요. 원래 하던 조그만 손바닥만 한 정원, 옥상, 1층, 그리고 산에서 키우는 애들이 있는데 처음부터 키워온 애들 중에 장미부터 시작했어요. 식물에 대한 애정은 장미부터 시작됐어요. 지금 나를 제일 기쁘게 하는 그 장미 중에 시골 장에서 사와서 키우던 장미가 있는데 지금 만개했어요. 집에서 나오기가 싫어요. 그동안 힘들어서 신경을 많이 못 쓰다가 올해 들어서 장미나무들을 신경 좀 썼더니 꽃으로 보답을 하더라고요. 지금 계속 피어나고 있거든요. 처음부터 나와 같이 했던 그 장미들한테 너무 감사하죠. 이만한 장미가 지금 대가 이만해져서. 저만 기쁘게 하는 게 아니고 저희 집을 쳐다보고 지나가는 사람들, 옆에 양로원도 있고 아파트 주민들도 있고. 누군가가 기쁘게 보고 있을 테니 너무 감사해요.
요즘 배우들의 유튜브 진출이 많아졌는데, 혹시 농업인으로서 유튜브 같은 건 해볼 생각 없으신가요?
제가 원래 유튜브가 있어요. 제가 직접 찍고 편집까지 했는데, 시간이 너무 모자라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은데, 한 6개월 간 넘고 있었거든요. 짧게 짧게라도 이제 해야겠다 싶은데, 특히 식물 유튜버로 하고 싶은데, 키우는 게 많아서 벅차더라고요. 그냥 단순하게라도 시작해야겠다 생각했고요. 지금 화원을 하고 있으니까 화원에 초대하고 일도 같이 하고 이런 걸 찍고 싶어요. 근데 혼자서 다 하기에는 너무 벅차서 지금 어찌 할 바를 모르겠어요. 제가 백남준 탄생 90주년 퍼포먼스도 해야 되고, 또 극단을 만들어서 공연도 해야 되고, 드라마도 찍어야 하고, 농업도 해야 하고, 집에 있는 식물도 돌봐야 되고, 예능도 해야 되니까 너무 벅차더라고요. 그래서 누가 도와줄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솔직히. 제가 지금 산나물도 다 키우고 있으니까 그 맛도 같이 느껴보고 싶은데, 제가 이제 타로도 공부를 계속 하고 싶은데, 노래도 하고 싶고, 아~ 머리야. (웃음)
진짜 열정적이시네요.
열정은 아니에요. 열정은 아니고 호기심이에요.
새로운 걸 배우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신가요?
일부러는 아닌데 오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그게 싫으면 하겠어요, 얼마나 고생하는데요.
혹시 MBTI는 해보셨나요?
안 해봤어요. 이게 뭔지도 몰라요 저는. 나를 그런 걸로 규정하기에는 좀 이상하잖아요. 내가 나를 알려고 노력하는 것만큼 내가 나에 대해 또 열어놔야 되는 것 같아요. 내가 굉장히 부드럽기도 하고, 굉장히 남성적이기도 하고, 굉장히 뭘 아는 것 같지만, 아무것도 모르기도 하고 그런 거 아닙니까. 내가 나를 규정할 수 없는 것에서 오는 혼란. 그거 자체를 견디고 견디고 이해하는 게… (그걸) 규정하면 내 나이 되면 그대로 살게 돼요. 나는 이러니까 이렇게 해야지 그렇게 하게 되고. 아무 생각 없는 거, 저는 아무 생각 없는 게 저의 MBTI인 것 같아요.
활동을 막 시작하는 배우들한테 어울릴 법한 질문이긴 한데 배우님은 정말 많은 걸 하고 있으시잖아요. 지금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그런 목표 같은 게 있을까요.
늘 똑같았어요. 내가 나를 진짜 잘 알고 싶어요.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기 트라우마라는 게 있고 상처가 있잖아요. 자꾸 그거에 휘둘려요. 평생 살아가야 되는데. 그리고 이제 마음의 병도 얻고 그것 때문에 강박증도 있고 불안하기도 하고 미래를 모르니까 나를 모르니까. 저는 저를 잘 알아서 어떤 거에 편중되거나 시달리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자유롭고 싶어요. 내가 날 알면 자유로워지잖아요. 그러면 제가 항상 꿈꾸던 평화와 자유가 저한테 찾아올 것 같아요. 제가 저를 아직도 잘 모르고, 저 자신에 대한 편견들 때문에 불안하고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고, 지금도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게 저의 목표죠. 그래서 지금 계속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하고 있는 거고. 제가 저를 정말 잘 알면 뭐 하러 그렇게까지 하겠어요.
돌이켜 봤을 때 내 인생에 큰 변화였구나 싶었던 순간이 있을까요.
난 변화가 너무 많았어서(웃음). 아직까지 없어요. 아직까지는 없어요. 앞으로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변화는 그런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엄청난 큰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라고. 그게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어떤 계기를 통해서 확~ 달라지게 되잖아요. 그게 올 것 같아요. 지금 해온 모든 일은 그 순간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거, 대나무가 마디 마디 지어지듯 그런 거고 곧 올 것 같아요.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