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우리 곁을 떠난 영화인들

작년 한 해 훌륭한 작품들로 대중과 함께했던 여러 영화인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들의 생전 활약상을 되짚었다.


크리스토퍼 플러머

Christopher Plummer

1929.12.13.

~

2021.02.05.

<사운드 오브 뮤직>

캐나다 출신의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연극/뮤지컬 무대에서 10년간 경력을 쌓고 1958년 시드니 루멧 감독의 <스테이지 스트럭>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5)에서 주인공 마리아(줄리 앤드류스)를 사랑하게 되는 트랩 대령 역을 맡아, 영화의 어마어마한 성공에 힘입어 스타덤에 오르게 됐다. 촬영 당시 나빴던 경험 때문에 수십 년간 <사운드 오브 뮤직>의 흔적을 외면했던 플러머는, 50년 이상 꾸준히 무대 활동을 병행하며 필모그래피를 확장해왔다.

<비기너스>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연극이나 TV에 비해 영화계에선 유독 상복이 적었는데,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2009)의 톨스토이 역으로 처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시한부를 선고받고 75세 나이에 커밍아웃한 아버지를 연기한 <비기너스>(2011)로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82세에 받은 이 상으로 ‘오스카 최고령 수상자’는 플러머를 대표하는 수식어가 됐다. <올 더 머니>(2017), <나이브스 아웃>(2019) 등 아흔이 넘는 고령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지만, 낙상 사고로 머리를 다친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갑작스러운 비보가 전해졌다.


헬렌 맥크로리

Helen McCrory

1968.08.17.

~

2021.04.16.

지난 4월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영국 배우 헬렌 맥크로리 역시 연극 무대에서 경력을 시작해 TV와 영화까지 반경을 넓혀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의 단역으로 영화 작업을 시작한 맥크로리는 시대극에서 귀족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고, <더 퀸>(2006)과 <특별한 관계>(2010) 두 작품에서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의 아내 체리 블레어를 연기했다. 한국 대중에겐 ‘해리 포터’ 시리즈의 드레이코 말포이의 엄마 나르시사 말포이 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피키 블라인더스>

본래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2007)의 벨라트릭스로 캐스팅됐으나 아이를 갖게 돼, 벨라트릭스의 동생 나르시사 역으로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2009)부터 시리즈에 합류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또 다른 시리즈 ‘007’의 <스카이폴>(2012)에 출연했고, BBC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의 폴리 고모는 나르시사와 함께 맥크로리를 대표하는 캐릭터였다. 웨스 앤더슨의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2009)와 반 고흐의 삶을 그린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2017)에선 맥크로리의 목소리 연기를 만날 수 있었다.


리차드 도너

Richard Donner

1930.04.24.

~

2021.07.05.

리차드 도너는 명실공히 70~80년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감독이다. 1957년부터 수많은 TV 시리즈를 작업하며 연출 경력을 쌓은 그는 공포영화 <오멘>(1976)의 성공으로 흥행 감독 반열에 올랐고, 바로 다음 작품 <슈퍼맨>(1978)은 그해 최고 수익을 거둬 슈퍼히어로 영화의 지평을 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구니스>(1985)가 10대 타깃 모험 영화의 대표작으로 자리잡은 데 이어, 백인/흑인 배우 멜 깁슨과 대니 글로버의 콤비 플레이가 돋보이는 액션 버디 무비 <리쎌 웨폰>(1987)도 흥행에 성공해 이후 10년간 시리즈 4편의 감독을 전담했다. <슈퍼맨>, <구니스>, <리쎌 웨폰>의 성취엔 걸출한 작가 마리오 푸조, 크리스 콜럼버스, 셰인 블랙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리쎌 웨폰>

워쇼스키 형제가 각본을 쓴 <어쌔신>(1995), 페르소나 멜 깁슨과 줄리아 로버츠를 내세운 스릴러 <컨스피러시>(1997) 등 90년대 들어선 감독으로서 이전만 한 흥행력을 자랑하진 못했지만, 아내와 함께 설립한 ‘도너스 컴퍼니’를 통해 제작한 <프리 윌리>(1993), <유브 갓 메일>(1998), 그리고 <엑스맨> 시리즈 등이 크게 히트했다. 75%를 촬영하고 해고됐던 <슈퍼맨 2>(1980)의 감독판이 공개됐던 2006년 개봉한 <식스틴 블럭>이 마지막 연출작.


로버트 다우니

Robert Downey Sr.

1936.06.24.

~

2021.07.07.

로버트 다우니 부자

이제는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이름을 물려준 아버지로 더 유명한 로버트 다우니는 60년대부터 미국 인디 영화계에서 활동해온 감독 겸 배우다. 다우니의 60년대 대표작 <퍼트니 스워프>(1969)는 흑인 광고업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광고계와 할리우드의 인종 문제, 기업의 부정부패 등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작품으로 폴 토마스 앤더슨(<부기 나이트>와 <매그놀리아>에 다우니가 카메오로 출연했다), 짐 자무쉬, 루이스 C.K. 등이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퍼트니 스워프>

부조리극 <파운드>(1970)부터 당시 5살이었던 아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카메라 앞에 서서 1997년 작 <휴고 풀>까지 총 여덟 작품에 출연했다. 간간이 배우로도 활동했던 다우니는 아들이 주연을 맡은 <쟈니 비 굿>(1988)과 <헤일 시저>(1994)에 단역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른바 ‘흥행 감독’과는 거리가 멀었던 다우니가 연출한 마지막 영화는 필라델피아 소재의 리튼하우스 광장과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리튼하우스 스퀘어>(2005)다.


장 폴 벨몽도

Jean-Paul Belmondo

1933.04.09.

~

2021.09.06.

<네 멋대로 해라>

장 폴 벨몽도는 장 피에르 레오, 안나 카리나, 브리짓 바르도, 카트린 드뇌브 등과 함께 60년대 프랑스 영화를 상징하는 배우이다. 대표작 <네 멋대로 해라>(1960)와 <미치광이 삐에로>(1965)를 연출한 장 뤽 고다르를 비롯 장 피에르 멜빌, 르네 클레망, 루이 말,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를르슈, 알랭 레네 등 프랑스의 내로라 하는 명감독들이 벨몽도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았다.

<프로페셔널>

거장들의 예술 영화뿐만 아니라 당대의 수많은 흥행작에도 출연했던 벨몽도는, <공포의 도시>(1975)에서 처음 형사를 연기하기 시작해 이후 <프로페셔널>(1981), <에이스 중의 에이스>(1982) 등 여러 액션/코미디 영화에서 마초틱한 형사 역할을 소화했다. 주연과 제작을 맡은 클로드 를르슈 감독의 <여정>(1988)으로 세자르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7년 만에 <남자와 그의 개>(2008)로 복귀했지만 나빠지는 건강으로 더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고 2011년 은퇴를 선언했다.


스티븐 손드하임

Stephen Sondheim

1930.03.22.

~

2021.11.26.

미국 뮤지컬계의 전설적인 아티스트 스티븐 손드하임이 그의 작품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리메이크 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2021)가 처음 공개되기 3일 전 세상을 떠났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에 노랫말을 보탠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57)로 단숨에 업계를 평정한 그는 <집시>(1959)를 거쳐 <포럼으로 가는 길에 생긴 재미있는 일>(1962)부터 작사와 작곡을 병행하면서 브로드웨이의 절대자로 군림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초연되고 4년이 지난 1961년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영화로 제작된 이래 <집시>(1962), <포럼으로 가는 길에 생긴 재미있는 일>(1966) 등이 영화로 리메이크됐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영화 리메이크가 줄지어 이뤄지는 가운데, 손드하임은 앤소니 퍼킨스와 함께 <쉴라 호의 수수께끼>(1973)를 시나리오를 쓰고, <스트라비스키>(1974)와 <레즈>(1981)의 영화음악을 맡기도 했다. <레즈>에 이어 워렌 비티 감독과 작업한 <딕 트레이시>(1990)의 주제가 5곡을 만들어 마돈나가 부른 ‘Sooner or Later’가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리틀 나이트 뮤직>(1977) 이후 손드하임의 뮤지컬이 영화로 리메이크 되는 흐름이 뚝 끊겼다가 팀 버튼 감독의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2007)를 기점으로 롭 마셜 감독의 <숲속으로>(2014),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그리고 20년에 걸쳐 제작될 예정인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메릴리 위 롤 얼롱>까지 다시 리메이크됐다.


신정원

1974.12.20.

~

2021.12.04.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현장의 신정원 감독과 양동근 배우

다섯 개의 엔딩으로 화제를 모은 리치의 ‘사랑해 이말 밖엔’ 뮤직비디오로 이름을 알린 신정원 감독은 임창정의 도움으로 충무로 영화계에 입성할 수 있었다. ‘슬픈 혼잣말’ 뮤직비디오로 남다른 감각을 알아본 임창정이 주연을 맡은 <색즉시공>(2002)의 윤제균 감독에게 그를 추천한 것. 그렇게 윤제균의 <색즉시공>과 <낭만자객>(2003)에서 비주얼디렉팅을 담당한 신정원은 임창정의 추천을 통해 <시실리 2km>(2004)의 감독까지 맡게 됐다.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소동극을 호러와 코미디를 접목한 화법으로 풀어낸 <시실리 2km>는 개봉 당시 흥행 성적과 관객의 반응 모두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후 “시대를 앞서간” 한국영화 중 하나로 손꼽혀왔다.

<시실리 2km>

식인 멧돼지 소재의 괴수 블록버스터 외피를 쓴 지독한 블랙코미디 <차우>(2009)와 무속 신앙과 히어로 무비의 설정이 뒤섞인 <점쟁이들>(2012) 모두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렸지만, 신정원 감독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점쟁이들> 이후 오랫동안 신작 소식이 뜸했던 신정원은 이정현, 김성오, 서영희, 양동근 주연의 <죽지않은 인간들의 밤>을 2020년 추석 시즌에 발표했지만 이전보다 싸늘한 반응을 마주해야 했다.


장 마크 발레

Jean-Marc Vallée

1963.03.09.

~

2021.12.25.

<데몰리션> 현장의 장 마크 발레

캐나다 출신의 감독 장 마크 발레 또한 뮤직비디오 연출로 경력을 쌓고 1995년 <블랙 리스트>로 영화감독 신고식을 치렀다. 첫 영화를 고향 퀘벡에서 만든 발레는 미국 LA로 건너가 서부극 <로스 로코스>(1997)와 로맨스 <루저 러브>(1999)를 찍고, 데뷔작을 함께 했던 배우이자 친구인 미셸 코테가 설득해 퀘벡으로 돌아와 만든 <크.레.이.지>(2005)로 흥행/비평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뒀다. <크.레.이.지>를 본 마틴 스콜세지의 제안을 받고 영국의 시대극 <영 빅토리아>(2011)를 연출한 데 이어 60년대 파리와 현대의 몬트리올을 잇는 절절한 사랑 이야기 <카페 드 플로르>(2011)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발레의 남다른 연출력을 만방에 알린 작품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2013). 에이즈 진단을 받은 남자의 파란만장한 마지막 나날을 그린 영화는 흥행은 물론 아카데미 시상식에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남우주연상(매튜 맥커너히), 남우조연상(자레드 레토), 분장상을 수상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과 마찬가지로 주연배우 리즈 위더스푼, 제이크 질렌할의 커리어 최고 연기를 이끌어낸 <와일드>(2014)와 <데몰리션>(2015) 역시 호평받았다. <와일드>를 제작한 위더스푼과 다시 의기투합한 HBO 드라마 <빅 리틀 라이즈> 첫 번째 시즌(2017)은 2017년 골든 글로브와 에미 어워드를 휩쓸었다. 성공적으로 TV 시리즈로 활동 반경을 넓힌 발레는 HBO에서 <몸을 긋는 소녀>를 연출하고, 또 다른 HBO 작품 <고릴라 앤 더 버드>의 감독에 내정돼 있었으나, 크리스마스를 보내던 중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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