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렉 비욘드>가 개봉했습니다. <스타트렉>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스페이스 오페라(space opera) 프랜차이즈입니다. 물론 <스타워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쌍두마차, 용호상박’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제발 <스타워즈> 덕후님들, <스타트렉> 덕후, 트레키(Trekkie)님들 싸우지 마세요.
네? <스타워즈>를 본 적도 없고, <스타트렉>은 뭔지도 모른다고요? 그럼 미드 <빅뱅이론>에서 <스타트렉>에 등장했던 3차원 체스하는 장면도 모르겠네요. 헉! 스페이스 오페라가 무슨 말인지 모른다고요? 아이고 이를 어째. 그 재밌는 걸 아직도 모르고 살다니. 아래 글을 정독하길 강력하게 권하고 싶군요. 스페이스 오페라가 뭔지부터 알아봅시다.
용어 정리부터 시작합니다. 부끄럽지만 사실 에디터도 정확하게 몰랐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어떻게 나온 말일까요. 1941년으로 거슬러 가겠습니다. 작가이자 평론가인 윌슨 터커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툭하면 조어가 뚝딱 만들어지는 시대에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서부극은 ‘말 타고 돌아다니는 오페라’(horse opera)라 불리고 아침 시간 주부들이 눈물짓게 만드는 드라마는 ‘소프 오페라’(soap opera)라고 한다. 그럼 아마추어처럼 어설픈데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뻔한 패턴을 반복하는 고리타분하고 구태의연한 우주선 이야기 또는 이와 관련된 세계 구원의 이야기를 스페이스 오페라(space opera)로 부르면 어떻겠는가.”
네. 이렇게 해서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가 명명됐습니다. 소설에 한정된 표현이었지만 스페이스 오페라는 말은 한마디로 SF 장르 가운데 후진 작품을 비하하는 용어였습니다. 실제로 초기 <스타트렉> TV 시리즈는 조악하기 그지 없습니다. 아래 영상의 격투신은 전설로 남았습니다. 구글 두들에서도 스타트렉 방영 46주년을 맞아 패러디하기도 했습니다. 네이버도 로고 바꾸는 거(1994년 7월 23일 우리나라 첫 CG 영화 개봉 로고) 잘하더군요.
이렇게 비하적인 표현이었던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는 <스타워즈> 이후 대접이 달라졌습니다. 트레키들의 원성이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스타워즈>의 엄청난 성공으로 스페이스 오페라를 더 이상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스타워즈>보다 먼저 등장한 <스타트렉> 역시 엄청난 덕후들을 양산한 프랜차이즈입니다. 미국에서 개발한 최초의 우주 왕복선 이름이 원래는 ‘컨스티튜션’이었는데 엔터프라이즈(<스타트렉>에 등장하는 함선)로 변경된 건 순전히 트레키들 때문이었습니다. 포드 대통령에게 40만 통의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스타워즈>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소프 오페라’에 상대적으로 가까운 느낌입니다. 왜냐면! 출생의 비밀이 있는 드라마잖아요. “내가 니 애비다”(I am your father)라는 대사가 괜히 유명한 게 아니죠. 제국군과 반란군의 전쟁이 영화의 주된 서사의 기둥이지만, 스카이워커 가문의 출생의 비밀이 없었다면 <스타워즈> 시리즈가 이렇게 인기를 얻었을까요. 섹시한 남자 한 솔로와 레아 공주의 로맨스가 없었다면 <스타워즈> 시리즈가 이렇게 인기 있었을까요. <스타워즈> 덕후님들의 원성이 들리는 것 같군요.
<스타트렉>은 역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호스 오페라’에 상대적으로 가까운 느낌입니다. 왜냐면! <스타트렉> 시리즈 속 23세기는 우주 개척 시대니까요. 미국의 19세기 서부 개척 시대의 우주 버전이라는 말입니다. 오리지널 TV 시리즈의 오프닝 내레이션을 들어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우주, 마지막 프론티어. 엔터프라이즈호의 5년 사명: 신세계를 탐험하고, 새 생명과 문명을 찾고,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담대하게 간다.”(Space, the final frontier. These are the voyages of the starship Enterprise. Its 5-year mission: to explore strange new worlds, to seek out new life and new civilizations, to boldly go where no man has gone before.)
영어 공부 좀 할 걸 그랬네요. 대충 번역했지만 의미는 아실 거라 믿습니다. <스타트렉>의 커크 선장의 저 내레이션처럼 <스타트렉>은 우주 개척 시대의 탐험을 그립니다. 그들의 탐험은 끝이 날 줄 모릅니다. <스타트렉 비욘드>에서도 시원하게 엔터프라이즈호 부셔먹고 영화가 끝날 때쯤 새 엔터프라이즈호를 건조합니다. 새로운 모험을 떠나기 위해서죠. 속편이 또 나올 여지를 열어두는 겁니다. 게다가 커크 선장의 성격은 막무가내에다 ‘내가 다 해결할게’ 스타일인데 딱 서부의 카우보이 느낌입니다. 물론 커크 선장이 나서면 대부분 해결되긴 합니다. 스팍과는 정반대입니다. 이번 <스타트렉 비욘드>에선 그나마 덜 싸우더라고요.
<스타워즈>와 <스타트렉> 말고 다른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는 없냐고요? 많죠. 그런데 혹시 <마션> <그래비티> 떠올렸다면 틀렸습니다. <아바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같은 걸 떠올리셔야 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SF(Science Fiction)의 S와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과학적인 검증은 무시합니다. <스타워즈>의 오프닝을 한번 볼까요. “오래 전 멀고 먼 은하계에…”(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 오프닝에 미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스타워즈> 오프닝 자막은 앞으로 보게 될 영화의 내용이 다 허구라는 걸 깔고 있습니다. ‘외계인과 말이 통하고, 광선검이 등장하고, 포스를 이용해 손도 안 대고 부하의 목을 조르고’ 이런 거 다 그냥 설정이라는 겁니다. 따지기 시작하면 머리 아픕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에는 <마션>이나 <그래비티>의 과학적 검증이 없습니다. 대신 신화가 있습니다. <스타워즈>는 냉전 시대의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다스베이더의 헬멧을 떠올려 보세요. 독일군의 철모와 비슷하잖아요. 레아 공주의 의상은 어떤가요. <스타워즈 에피소드 6: 제다이의 귀환>에서 입은 황금 비키니 말고 늘 입고 다니는 흰색 드레스를 생각해보세요. 그리스 신화 속 여신이 연상되지 않나요. 제다이들은 어떻습니까. 닌자나 사무라이를 연상케 합니다. <스타워즈>는 신화가 없는 미국에서 탄생한 현대판 영웅 신화입니다.
<스타트렉>은 그나마 <스타워즈>보다는 더 과학과 밀접합니다. ‘커뮤니케이터’라는 승무원들의 통신수단은 지금의 휴대전화와 유사합니다. 플립형이죠. 1990년대의 모토로라 스타텍을 기억하시는 사람(‘딸깍’ 하는 소리가 좋다며 아직도 “스타텍, 스타텍” 하는 씨네플레이의 다스베이더 같은 아재들)은 이해가 바로 되실 겁니다.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 PC도 과거 TV 시리즈에 등장했습니다. <스타트렉>이 미래를 예견한 셈입니다. 아, 물론 “빔 미 업, 스코티”(beam me up scotty) 같은 유명 대사에서 등장하는 트랜스포터(사람이나 물건을 다른 장소로 순간적으로 이동하는 장치)는 아직 불가능하긴 합니다.
자, 이제 스페이스 오페라의 개념을 잘 이해하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최고의 스페이스 오페라 <인터스텔라>”라는 표현을 듣거나 보시거든 “<인터스텔라>는 과학적 검증이 된 SF 장르이면서도 후반부로 가면 약간은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속성이 있긴 하지” 하면서 잘난척할 수 있을 겁니다.
휴우~. 스페이스 오페라 얘기가 엄청 길어졌네요. 이제 개봉영화 <스타트렉 비욘드> 얘기를 본격적으로 해야 합니다. 우선 2명의 배우에 대한 묵념 시간이 있겠습니다. 체코프 역을 맡았던 안톤 옐친이 얼마 전에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했고(▶씨네플레이 추모 기사 보기) 지난해에는 스팍을 연기한 레너드 니모이가 83세로 별세했습니다. <스타트렉 비욘드>에서 안톤 옐친과 잠깐 등장하는 레너드 니모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흐음. 이제 진짜 본격적으로 <스타트렉 비욘드> 얘기를 해야 하는데 너무 길어졌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극장에서 확인해주세요. 광고 같이 끝났지만 절대 광고는 아닙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