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예상 못한 충격적 결과!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1위는? (ft. <기생충> 공동 90위)

In

2022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연말은 회고와 정리의 시간이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모든 분야가 분주해진다. 각종 단체와 사모임은 송년회를 하느라 바쁘다. 가요계, 방송계는 어김없이 올해 최고의 작품을 선정하여 시상식을 개최한다. 언론도 올 한해 이슈가 된 사건을 정리해 돌아보는 기사를 연이어 내고 있다. 영화계도 매한가지다. 각종 영화 매체는 앞다투어 2022년 올해의 영화 리스트를 정리하고 있다.

영화 <시민 케인>: 1962년부터 2002년까지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2022년 가장 주목할 영화 리스트는 따로 있다. 영국영화협회 (BFI: British Film Institute)에서 발간하는 영화 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 (Sight & Sound)』에서 1952년부터 10년에 한 번씩 발표하는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The Greatest Films of All Times)’ 리스트다. 세계 각국의 평론가, 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 연구자 등 1,639명에게 설문지가 돌아갔다. 설문에 참여한 이들은 각각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10편을 선정하여 『사이트 앤 사운드』 측에 다시 보낸다.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리스트는 각 투표자가 선정한 영화를 모아서 최다 득표순으로 총 100편을 선정한다.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 (1941)>가 역사상 최고의 영화라고 평가받는 근거 역시 <시민 케인>이 1962년부터 2002년까지 5번 연속으로 이 리스트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여러 영화 리스트 중 가장 전문적이며 권위 있다고 평가받는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리스트는 2022년 공개와 함께 파격적인 결과로 화제를 모았다.


새로운 역사의 시대! 샹탈 애커만 <잔느 딜망> 1위를 찬탈하다

영화 <잔느 딜망>: 히치콕의 <현기증>을 누르고 새로운 역사를 썼다.

사이트 앤 사운드의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리스트에서 1위를 차지한 영화는 여태껏 단 세 편에 불과했다. 1952년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 (1948)>, 1962년부터 2002년까지 1위를 차지한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 2012년 <시민 케인>의 아성을 무너뜨린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 (1958)>이 전부다. 다른 매체에서도 올타임 베스트를 선정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위 ‘클래식’에 가까운 남성 감독들의 영화다. 하지만, 2022년 리스트 공개와 동시에 1위에는 의외의 이름이 등장했다. 바로 벨기에 출신의 여성 감독 샹탈 애커만의 <잔느 딜망 (1975)>이다. 샹탈 애커만의 영화는 앞서 언급된 비토리오 데 시카, 오손 웰스, 히치콕의 영화보다 난해하고 실험적이기에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녀가 후대의 여성 영화인에게 끼친 영향을 고려해보면 <잔느 딜망>의 1위는 충분히 가치있는 결과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12년 처음으로 샹탈 애커만과 클레르 드니 두 명의 여성 감독이 『사이트 앤 사운드』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여성 감독 9명의 11작품이 리스트에 수록되었다. 미국의 실험영화 기수 마야 데렌, 누벨바그의 기수 아녜스 바르다, 체코 뉴웨이브의 선두주자 베라 치틸로바 그리고 파격적인 장편 <완다 (1970)>를 연출하고 세상을 떠난 바바라 로든까지 샹탈 애커만의 이전 세대와 동세대 감독 4명의 이름도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더불어 샹탈 애커만의 영향을 받은 후대의 감독들 <파워 오브 도그 (2021)>로 유명한 제인 캠피온,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19)>로 국내 영화 팬들에게 큰 지지를 받은 셀렌 시아마, 흑인 여성 영화인의 새로운 역사를 쓴 줄리 대쉬 그리고 <아름다운 직업 (1993)>을 통해 7위에 이름을 올린 클레르 드니도 리스트에 포함되었다. 이전까지 영화사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던 여성 영화인들의 업적이 드디어 조명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2022년의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리스트는 큰 의의가 있다.


젊은 피들의 등장! 최신작도 리스트에?

영화 <기생충>: 한국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리스트에 선정되었다.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리스트는 1972년 이래로 2012년까지 줄곧 고전 위주 작품이 순위권에 들었다. 상대적으로 최근에 공개된 작품은 영화사의 역사적 측면에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너무 이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2022년 공개된 리스트에는 2010년대 후반 작품이 4편이나 포함되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공동 90위에 이름을 올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2019)>이다. 대한민국 감독으로는 최초로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칸의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어워드 4개 부문을 석권하며 전세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준 만큼, 봉준호의 <기생충>이 리스트에 포함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영화 <문라이트>: 공동 60위를 차지하며 새 지평을 열었다.

앞서 언급한 셀렌 시아마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30위를 차지하며 2010년대 이후 영화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이외에도 흑인 퀴어 영화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 배리 젠킨스의 <문라이트 (2016)>가 공동 60위를, 최근에도 <놉>으로 호평받고 있는 조던 필 감독의 <겟 아웃>이 공동 95위를 기록했다. 리스트에 거론된 2010년대 이후 작품 네 편의 작품은 각각 여성, 인종, 성 소수자, 계급 등 사회적 담론 형성에 이바지하는 날카로운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기존 리스트에서 자주 보인 백인 남성 중심의 영화사가 아닌 여성영화사, 성 소수자 영화사, 흑인영화사 등 다양한 층위의 영화사를 포함하려는 능동적인 경향성이 두드러진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오래된 격언처럼 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영화사를 써 내려가려는 영화인들의 태도가 리스트에 반영되었다.


유명 감독들이 뽑은 영화 탑 10은?

지금까지 기사에서 다룬 리스트는 1,600명이 넘는 평론가들의 리스트다. 하지만,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리스트는 1992년부터 감독들의 리스트도 공개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480명이 넘는 실험, 예술, 상업, 장르영화 감독이 투표에 참여했다. 눈에 띄는 이름으로는 <아마겟돈 타임 (2022)>의 제임스 그레이, <언컷 젬스 (2020)>의 샤프디 형제, <히트 (1995)>의 마이클 만, <매드 맥스> 시리즈의 조지 밀러, <택시 드라이버 (1976)>의 마틴 스콜세지 등이 있다. 국내 감독으로는 봉준호 감독과 홍상수 감독이 투표에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BFI는 올해의 리스트를 공개한 이후 매일 유명 감독들의 탑 10을 SNS를 통해 소개했다.

차이밍량은 무려 자신의 영화를 리스트에 포함시켰다!

자신의 영화를 탑 10에 선정한 대범한 감독도 있다. 주인공은 바로 대만 뉴웨이브의 대표주자 차이밍량이다. 그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 (1959)>, F.W 무르나우의 <선라이즈 (1927)>같은 걸작의 이름 옆에 호기롭게 자신의 영화를 포함했다. 2003년 발표한 <안녕, 용문객잔>을 세 번째로 꼽으며 눈에 띄는 자기애를 보여줬다. 한편, 생각지도 못한 영화를 골라 모두를 놀라게 만든 감독들도 있다. 마이클 만은 명작들로 가득 찬 리스트에 나카시마 테츠야의 <고백 (2010)>을 골랐고, <빅쇼트 (2015)>의 감독 아담 맥케이는 위트있는 그의 작품답게 주성치의 <쿵푸 허슬 (2004)>을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한편으로 선정했다. 미국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는 도저히 10편만 꼽을 수 없었는지, 혼자 15편의 영화를 선정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영화 <하녀>: 봉준호는 김기영의 <하녀>를 포함시켰다.

봉준호의 리스트 역시 많은 화제를 모았는데, 단연 눈에 띄는 영화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 (1960)>다. 평소에도 김기영 감독의 광적인 팬을 자처한 그가 <하녀>를 리스트에 꼽은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이외에도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2015)>, 앨리스 로르와커의 <행복한 라짜로 (2018)>, 데이비드 핀처의 <조디악 (2007)> 등 2000년대 이후 작품을 3편이나 꼽으며 고전 영화로 가득한 리스트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봉준호 감독이 선택한 10편의 영화는 다음과 같다.

큐어 (1997, 구로사와 기요시)

싸이코 (1960, 알프레드 히치콕)

하녀 (1960, 김기영)

조디악 (2007, 데이비드 핀처)

로코와 그의 형제들 (1960, 루키노 비스콘티)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2015, 조지 밀러)

행복한 라짜로 (2018, 앨리스 로르와커)

비정성시 (1989, 허우 샤오시엔)

분노의 주먹 (1980, 마틴 스콜세지)

복수는 나의 것 (1979, 이마무라 쇼헤이)

한국영상자료원은 이번 12월 29일부터 1월 19일까지 봉준호 감독이 『사이트 앤 사운드』 에 제출한 10편의 영화 중 6편을 골라 상영할 예정이다. (자세한 링크는: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445를 참조하기를 바란다.)

<큐어 (1997)>, <싸이코 (1960)>, <하녀>, <조디악>,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행복한 라짜로>가 상영 목록에 포함되었다. 평소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그가 어느 대목에서 이 영화를 사랑했는지 이유를 생각하며 상영회에 참여하는 것도 좋다. 이 기사를 읽고 난 후 여러분이 고를 10편의 리스트도 궁금하다. 생각보다 10편만을 추려내는 일이 어려울 것이다.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

Must Read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