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자꾸만 엉망진창인 남자들과 결혼하는 이유는 뭘까?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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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에 이 장면을 복기하니 가슴 아프다.

대중문화에서 사랑을 그릴 때 빠지지 않는 두 가지 기둥이 있다. 영화 쪽에서 유명한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와 가요의 발라드와 트로트 분야에서 압도적 지분을 자랑하는 ‘사랑하니까 헤어진다’가 그것이다.

전자는 그것이 명확한 표현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마치 뜨거웠던 사랑이 식은 것처럼 들리는 이 표현은 실은 변화했다기보다는 원래대로의 모습에 돌아가는 것에 가까울지 모른다. 물은 조건에 따라 액체지만 때로는 결빙되어 얼음이 된다. 얼었던 것이 깨지고 녹으면 물이 되는 과정이 때론 낯설어 염려스러울 수 있다. 사랑을 느끼는 과정이나 변했을 때의 자신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누구나 사랑은 정감있게 여기지만 동시에 경계심을 동반한다. 자신과 주변이 변화하고 원래의 동선에서 벗어난다는 근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매몰되지 않을 만큼 적당히 좋아하면 되잖아? 대중문화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런 건 사랑의 반열에 오르기도 전에 낙마한다. 새엄마를 사랑했지만 이룰 수 없어 죽음을 향해 질주했던 <페드라> (1962)의 엔딩을 생각하자면, 적당한 감정이란 건 일종의 무례다.

이 장면에서 남자들은 마음으로 운다

신승훈의 노래에서 보일 법한 후자는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 헤어져도 사랑할 수 있잖아’라는 낭만적인 동시에 희대의 순환 논증의 오류 같은 가사를 낳기도 했다. 실은 이것은 현실적 이별에서 대표적인 변명이기도 하다. 변한 것은 자신이면서, 상대방을 배려한답시고 그럴듯한 이유를 만드는 것이다. 즉, 무책임한 결별의 클리셰다.

이것은 사랑을 그리는 영화 속에서 재현(혹은 재연)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물론 명작 반열에 오른 영화들은 일방적인 입장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핏빛 순애보인 <드라이브> (2011) 에서 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인과의 도주를 준비했지만 끝끝내 그녀 앞에 나타나지 못한다. 주인공은 연인 앞에서 악당의 머리를 으깨서 죽였고, 자신을 따라다니는 피비린내를 전염시킬 순 없었다. 그렇게 그는 사라진다.

버지니아 울프가 쓴 소설은 누구도 출판해주지 않지만 헌신적인 그의 남편이 출판사를 창립해 그녀의 소설을 발행한다. 그러나 신경쇠약을 이겨내지 못한 버지니아는 결국 자살한다. 애타는 남편의 마음을 뒤로하고 강물에 뛰어든 그녀는 남편에게 진 빚을 더 불릴 수 없다는 유서만을 남겼다. <디 아워스> (2003)를 관통하는 서늘한 정서가 남편의 대사에 애절하게 스며든다.

당신을 낫게하고 싶었어, 당신을 사랑하니까!

떠나간 자를 기억하는 (일종의) 유족은 어떤 마음을 가질까? 무성의하고 불성실한 도피행각에 실망하진 않을까? 떠난다는 마음으로 그냥 잘해볼 생각을 하면 안 되나? 하는 상념이 생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별하는 것만이 가장 온당하다는 도리를 보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원로 배우인 김지미는 스캔들후에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명언으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경고) 아래부터는 강력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헤어질 결심은 누가,언제 했는가

<헤어질 결심> (2022) 은 산에서 시작해서 바다로 끝난다. 필름 누아르 장르로 시동을 걸어서 멜로의 행선지에 도착한다. 멜로적 측면에서 1부는 부산에서 해준(박해일 분)이 서래(탕웨이 분)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2부는 가상의 공간 이포에서 두 사람의 주의가 오가는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부산에서 해준은 남편 살인 용의자였던 서래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스스로 감정을 막는다. 하지만 그녀의 무죄가 입증되자 마음놓고 다가간다. 그런데, 증거를 삭제하고 보니 진범이 맞다.

서래는 해준이 미결사건에 집착해서 불면증을 겪을 정도로 책임감이 강하며, 그 직업정신에서 비롯된 자부심에 대하여 알고 있다. 그는 용의자를 잡을 땐 폭력을 이용하지만, 취조과정에선 품위를 지킨다. 그러나 이것은 서래를 사랑하고 그녀의 범죄를 은닉하는 과정에서 참담히 손상된다. 해준에게 있어서 삶의 커다란 부분이 뜯겨 나가는 일이다. 이 행각을 계속하면 그의 훼손은 가속화될 것이다. 해준을 사랑하는 서래의 선택은 헤어지는 것밖에 없다.

해준은 서래를 지키며 자신의 파괴를 택한다. 서래의 범죄를 밝힐 핸드폰을 먼바다 깊숙이 수장시키라고 하는 것이다. 그의 긍지에 대해서 잘 아는 서래에게 이것은 사랑의 고백으로 들린다. 나한테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라고 후일에 말하게 되지만 해준에게 그런 기억이 없을 만도 하다. 그러나 이 고백은 공허하게 끝나버린다. 왜냐하면 서래에 의하면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했을 때 당신의 사랑은 끝나게 되었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자 나의 사랑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무너지는 남편을 지켜볼 수 없었던 버지니아 울프처럼, 서래 또한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멜로적 깊이는 살아있는 사랑의 화신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헤어졌지만 사랑할 수 있다면

해준의 아내인 정안(이정현 분)에 의하면 남편은 “아내만으론 부족하고 피와 살인이 있어야” 행복하다. 그 끔찍함이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라, 벽에 사진을 붙여놓고 영원히 탐구하려는 의지를 갖추려면 사건은 미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착점이 없어야 지속되는 아이러니인 셈이다.

부산에서의 이별 후 , 서래는 13개월이 지나서 이포에 있는 해준 앞에 나타난다. 서래가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해준에게 붕괴를 원복할 에너지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새로운 남편과 함께 나타나 해준을 안심시키려한다. 그리고 남편은 또 다시 죽고, 서래는 취조받는다.이때 해준이 물어본다. 넌 훌륭한 사람인데 왜 엉망진창인 남자들과 결혼하는 거야?

다른 사람과 헤어질 결심을 했기 때문에

이것은 붕괴 이전으로 해준을 되돌리기 위한 서래의 헤어질 결심이었던 것이다. 애틋함을 이어가려면 스스로가 미결화 되는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되면 당신은 내 사진을 붙여놓고 잠도 들지 못한 채 내 생각만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건과 사랑이 모두 미결됨으로써, 영원에 사랑을 봉쇄하는 것이다. 희생도 도주도 아닌, 영원한 미제가 되어 당신의 문신이 되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청야함을 넘어, 완연한 배우의 탈

서래의 시신은 발견될까?

서래는 마지막 예우를 다 지켜가며 자신의 ‘헤어질 결심’을 실천했다. 이것은 자신이 아니라 온전히 상대방을 위하는 행위다. 영화는 극의 형태를 띄어야 하므로 해준의 감정만을 남겨두고 철수한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는 머지않은 시일에 그녀의 행방불명을 받아들이며 망각의 도움을 받아 붕괴된 품위를 축조할 것이다. 해준의 자부심이 재건할 맹아가 지켜짐으로 인해, 서래를 향한 연모는 미결의 이름을 빌어 지속될 것이다. 그렇게 둘의 영원한 사랑이 완수된다.

만약 이야기가 시간을 머금고 먼 훗날에 서래의 시신이 발견된다면 어떻게 될까? 핸드폰의 수장과 그녀의 미결은 모두 실패한 격이 된다. 미지의 서래를 동경하던 마음이 멈춰 사랑은 중단된다. 게다가 해준은 품격 붕괴의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런 장면이 영화에 들어간다면 망자와 유족 모두에게 엄청난 폭력이 된다. 여기서 연출자의 태도가 나온다. 이야기 적으로도, 그 안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을 위해서도 영화는 격랑과 애절이 함께하는 그 순간에 마침표를 찍어야만 했던 것이다.

모두를 위해서, 서래의 백골이 진토되길 앙망하자. 엔딩크레딧 이후에도 인물들의 행복을 기원해주자.

엔딩에서 그렇게 툭 끊길 줄이야. 감정은 극대화하고 이야기는 열린듯 닫힌, 완벽한 지점.

사랑은 무엇일까?

그것은 상대방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지켜주는 것. 커뮤니케이션의 알파이자 오메가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당장 해준이 원하지는 않는 이별을 선사한 서래의 행동은 무책임일까? 수신자의 가장 중요한 것을 다시 다듬어준 그녀의 행동은, 온당하게 사랑하니까 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퇴장은 존중받을수 있을까? 우리 각자의 대답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던지고 싶었던 연출자의 질문은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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