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놓친 영화 전주에서 다시 보자’ 연상호 감독 추천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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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

넷플릭스 <지옥>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연상호 감독이 ‘올해의 프로그래머’로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았다.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래머로 선정된 영화인이 본인만의 관심과 관점에 따라 영화를 선택해 관객과 공유하는 전주국제영화제만의 특별 프로그램이다. 올해 연상호 감독은 자신의 장편영화 데뷔작 <돼지의 왕>, 실사영화 데뷔작 <부산행>을 비롯해 데이비드 린치, 구로사와 기요시 등 ‘연니버스'(연상호+유니버스) 구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감독의 작품 3편을 포함, 총 5편을 선택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하겠다는 감독의 ‘이기적 의도’가 포함된 강력 추천이라고 하니 영화가 궁금한 관객들은 빨리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아가 보는 게 어떨까? 혹시 모른다. 연상호 감독과 나란히 앉아 영화를 관람하는 행운이 우리에게 찾아올 지도!


‘감독 들의 감독’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블루 벨벳’ (1986)

아름답고 평화로운 미국의 소도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모범생 제프리 보몬트(카일 맥라클란)는 한낮의 풀밭에서 잘린 귀를 발견하고 윌리엄 형사(조지 디커슨)에게 사건을 신고한다. ‘블루 벨벳’을 노래하는 매력적인 여성 가수 도로시(이사벨라 로셀리니)가 사건에 연루되었음을 알게 된 제프리 보몬트. 묘한 이끌림과 호기심으로 그녀의 아파트에 몰래 들어가지만 이내 들키고 만다. 그때, 정체 불명의 남자 프랭크(데니스 호퍼)가 들이닥쳐 옷장에 숨게 되고, 프랭크와 도로시의 변태적이고 폭력적인 관계를 옷장에서 엿보게 된다. 이렇게 그는 기이한 관능과 폭력의 세계와 조우한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블루 벨벳’

컬트의 왕, 영화계의 카프카,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를 연출한 감독 등 데이비드 린치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화려하다. 연상호 감독의 ‘필수 관람 영화 리스트’에도 데이비드 린치 감독 작품이 항상 자리했다고 하니, 과연 ‘감독들의 감독’이라 할 수 있다.

연상호 감독은 ‘블루 벨벳’에 대해 “오프닝 시퀀스와 첫 번째 사건을 통해 우리가 늘 마주하던 일상에서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나타날 수 있는 기묘하고 두려운 사건을 향해 성큼성큼 접근하는 형식을 지닌 작품”이라 평하며 “영화라는 예술을 통해 우리는 그 두려운 발걸음에 동참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영화가 줄 수 있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고 선정의 변을 밝혀 기대감을 자아냈다.


봉준호 감독도 추천한 그 영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1997)

도쿄에서 연쇄 살인이 발생한다. 피해자의 가슴을 X자로 갈라 죽이는 동일 수법의 사건. 하지만 회사원, 초등학교 교사, 경찰 등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가해자들에게 특별한 살해 동기는 없어보인다. 이들 모두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설명하지 못 한다. 경시청에 근무하는 형사 다카베 켄이치(야쿠쇼 코지)는 이 엽기적인 살인 사건을 맡게 되고 곧 주요 용의자로 의과대학생 마미야(하기와라 마사토)를 지목한다.

최면술에 심취했던 대학생 마미야는 이곳저곳 방랑하며 만나는 사람에게 최면을 걸어 살인을 지시해 왔다. 그런데 그 방식이 묘하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같은 평범한 질문을 던진다. 마미야는 질문과 최면을 통해 사람들 속에 억눌려있던 분노와 살의를 끄집어낸다. 이런 마미야와 접촉이 잦아진 후 다카베의 심리는 더 불안해진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

1997년에 개봉한 <큐어>는 <회로>(2001), <절규>(2006)와 함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호러 3부작으로 불린다. 간결하고 정적인 화면 구성 속에 흠칫흠칫 들어가는 타이트하고 잔혹한 숏의 배치는 관객을 끝 모를 불안 속에 빠뜨린다. 그리고 그 결말 역시 흐릿하고 명확하지 않아 이 영화의 불길함 같은 것을 더욱 배가시킨다. 연상호 감독은 “(큐어는) 이유 없는 혐오와 폭력에 자주 노출되는 지금의 현대인들에게 더욱더 상징하는 바가 큰 호러 걸작 영화”라고 평했다.

버블 이후 실물 경제의 붕괴, 옴진리교 사건 등 현대사 속에서 굵직한 풍랑을 겪은 일본은 정신질환에 걸린 다카베 형사의 아내가 돌리는 텅빈 세탁기와 닮아 있다.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 세계, 살아있지만 미래에 대한 비전도, 낙관적 전망도 보이지 않는 진공의 상태를 살아가는 일본인. 영화는 그들이 만들어 낸 일본 사회의 현실을 충격적인 결말로 보여준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팬으로 유명한 봉준호 감독은 영화 <살인의 추억>이 이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살인의 추억>의 살인범 묘사에 큰 영향을 끼쳤고, 봉준호 감독은 “지금은 살인범이 밝혀졌지만 ‘살인의 추억’을 준비할 때는 사건에 관계된 분들을 만나 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가장 만나고 싶은 범인은 만날 수 없었고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큐어’에 나오는 살인마 캐릭터를 보며 실제 세계에서 만날 수 없었던 연쇄살인범의 캐릭터를 해소했던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과의 깊은 인연 가타마야 신조 감독의 <실종>(2021)

씩씩한 오사카 소녀 가에데(이토 아오이). 소녀는 별다른 의지가 되지 않는 아버지 사토시(사토 지로)와 특별할 것 없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사토시가 사라졌다. 연쇄 살인범을 봤다며, 그를 잡아 현상금을 받겠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딸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 아버지가 일하던 곳에서 그와 같은 이름을 쓰는 젊은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곧 그가 지명 수배 중인 연쇄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딸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가타마야 신조 감독의 ‘실종’

<실종>은 앞선 두 편의 영화와 거대한 맥락을 같이하는 작품으로 ‘불안’의 정서를 공유한다. 연상호 감독은 “세 편의 영화를 함께 봄으로써 시대를 초월한 장르영화의 매력과 동시에 장르영화의 변천까지도 같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히며 “(실종은) 단지 구성적 미학이나 장르적인 연출 외에도 가족과 진실에 대한 고찰이 진한 작품으로 스릴러 장르의 명작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고 추천의 변을 전했다.


올해로 스물세번째를 맞이하는 전주국제영화제는 오는 7일까지 전주 시내 5개 극장, 19개 상영관에서 진행되며, 전용 온라인 플랫폼 온피프엔을 통해 온라인 상영도 진행 중이다. 팬데믹 기간 2년 동안 오프라인 상영, 집단적 영화보기를 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컸던 탓일까. “영사기가 공간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행위를 온전히” 포스터에 담았다.

3년 만에 축제의 정상화를 선언한 만큼 전주를 직접 찾아가보자. 영화인들의 단골 가맥집에 앉아 치킨에 맥주를 마시다 보면 옆 테이블에서 영화 속 주인공을 만날 수도 있다.


문화기획자 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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