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법정 드라마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로맨스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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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은 아니다. 지하철을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타고 내린다. 똑같은 생활 패턴을 가진 듯한 사람들의 얼굴은 길에서 마주치면 무심코 인사를 건넬 수 있을 만큼 눈에 익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건 퇴근길 열차 안 노약자석 한 자리를 반드시 지키고 있는 한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눈에 띄었다. 매우 건장한 체격의 남성임에도 굳이 노약자석에 앉는 건 내가 모르는 다른 사정이 있으리라 감히 짐작했다. 하지만 그는 줄곧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을 허공에 뱉어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가끔은 갑자기 큰 소리를 내서 시선을 집중시키기도 했고, 옆자리 사람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불편한 시선으로 봤다. 개중엔 대놓고 면박을 주는 승객도 있었다. 나 역시 신경이 쓰였다. 왜 보호자가 옆에 없을까 싶기도 했다. 그는 내가 살면서 만났던 ‘자폐증 환자’들과 거의 동일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주 3일 이상은 그가 열차에서 내릴 때까지 비슷한 상황을 봤다. 처음 몇 달은 그가 하는 말들이란 그저 굳이 이어폰 틈새까지 비집고 들어오는, 거슬리는 소음이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부턴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의 말들을 딱히 거슬려 할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종류의 소음은 갑자기 옆 사람이 통화를 시작해도 따라 붙는 것일텐데, 그와 비슷한 사람들에게만 유독 눈길이 가고 불편을 느꼈다. 그냥 평범한 승객이 아니라 열차 안이라는 ‘보통’, ‘일상’의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어떤 존재로 그를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분명히 편견이었다.

영화 <맨발의 기봉이>, <말아톤>

‘자폐 스펙트럼 장애’란 말이 보급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전엔 이 장애를 가진 이들을 ‘자폐증’을 앓는 ‘환자’로 봤다. 겉모습은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자폐 스펙트럼이 장애로 인정받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사회 전반적인 이해도도 낮았다. ‘스펙트럼’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증상의 자리는 영화 <말아톤>의 초원이나 <맨발의 기봉이>의 기봉이의 이미지가 대체했다(이 영화들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이미지에 치명적 악영향을 끼쳤다는 건 아니다). 특히, 이들에게 로맨스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외면당했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고기능 자폐인이자 변호사인 우영우(박은빈)가 대형 로펌에 들어가 벌이는 고군분투를 다룬다. 우영우는 고래와 법과 자신의 이름을 집착적으로 좋아하지만 막상 키워준 아버지는 레고를 밟아 아파서 울든 말든 관심이 없는 아이였다. 유달리 머리가 좋아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을 만점 가까이 받았지만 회전문 하나를 통과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컸다. 이런 대칭적 설정은 우영우가 비현실이라 말하는 이들에게 그의 실존을 선언한다.

ENA, 넷플릭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 작품은 우영우가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해 왔다는 사실과 함께, 그의 로맨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져 둔다. 대놓고 법정 드라마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대놓고 로맨스 드라마이기도 하다. 송무팀 이준호(강태오)는 등장부터 우영우와 발을 맞추려 한 인물이다. 흔한 연민 같았던 시작이 사랑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회전문을 함께 통과하고, 시도때도 없이 쏟아지는 고래 이야기를 싫은 내색 없이 듣고, 아름다운 낙조의 순간을 공유하는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게 되리란 걸 예상하지 못하는 K-드라마 시청자들은 없을 것이다.

우영우와 이준호가 만드는 사랑의 계기들은 보통의 비장애인 로맨스 속의 것들이다. 결정적 대목은 두 사람이 웨딩업체 조사를 위해 예비 신혼부부를 가장했을 때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우영우를 본 이준호는 넋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클리셰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이 고전적 연출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의도적으로 등장해, 장애인의 로맨스가 비장애인의 것과 다르지 않다는 증거로 기능한다.

그럼 우영우의 사랑은 비장애인 로맨스의 클리셰로 점철돼 있는가? 그렇지 않다. 우영우와 이준호, 이 두 캐릭터의 ‘합’은 이 사랑 이야기를 매우 특별하게 만든다. 자폐인 우영우는 스스로 말했듯 ‘나와 너로 이루어진 세계’가 아닌 ‘나로만 이루어진 세계’에 더 익숙하다.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잘 이해시키지 못한다. 그런 우영우가 자기 세계 바깥으로 꺼내 놓는 말들은 대개 상황에 맞지 않는 어색한 것으로 여겨진다. 고래는 물 속에서 다른 고래와 음파로 소통하지만, 우영우는 고래도 물 속도 아니다. 그의 목소리는 부딪힐 곳을 잃고 허공에서 사라지곤 했다.

ENA, 넷플릭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런 우영우의 말이 부딪혀 모양을 갖도록 하는 존재가 이준호다. 그 역시 물 속의 고래는 아니지만, 우영우에게 주파수를 맞출 줄 아는 사람이다. 우영우의 고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유일한 인물이지만 그 말들이 버거울 땐 시간을 정해서 대화하자는 합의점을 기어이 찾아낸다. 용기 내 고른 선물을 우영우가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했을 때, 이준호는 구구절절 생색내거나 설명하지 않고 그저 이해했다.

이준호가 자폐인과 변호사의 정체성 사이 좌절감을 느끼던 우영우에게 “변호사님 같은 변호사가 내 편을 들어주면 좋겠다”라고 한 건 그저 위로의 말이 아니었다. 지금껏 크고 작은 노력들로 맞추려 했던 우영우와 이준호의 주파수가 노력 없이 맞아 떨어진 순간에 나온 진심이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이 특별한 사랑에 현실적 역경이 있음을 매우 섬세하게 포착한다. 비장애인 남녀였다면 연인 혹은 그 전 단계로 봤을 우영우와 이준호는 장애인과 봉사자로 여겨진다. 누가 봐도 ‘썸 타는’ 남녀로 보여야 할 둘이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이준호의 고백에 권민우(주종혁)는 우영우를 배제한 채 상대를 추측한다. 장애인의 로맨스를 상상 속에조차 넣어두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들에게 자폐인인 우영우는 사랑을 모르고 관심도 없어야 하는 대상이다.

ENA, 넷플릭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우영우는 딸의 결혼을 막연히 꿈 꿔 보는 아버지에게 자폐 때문에 결혼은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결혼을 하게 된다면 미혼부라 결혼식을 올린 적 없는 아버지에게 부케를 주겠다고 선언한다. 이건 우영우의 세계에도 사랑과 결혼이 존재한다는 외침이기도 하다. “누군가 날 좋아하는 건 쉽지 않아”라는 우영우의 말은 그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하지 않다는 어떤 희망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당장 고백하라고 재촉하는 권민우에게 이준호는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라며 눈을 감고 만다. 불의를 변호하는 데 그토록 사랑하는 법을 이용하고 말았다며 자책하는 우영우에게 이준호는 뻗으려던 손을 내려 놓고 만다. 이런 이준호의 조심스러움이 더욱 빛난 건 우영우에게 평범한 사랑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던 이들의 존재를 위해서라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는 반드시 로맨스가 있어야 한다.


칼럼니스트 라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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