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이순신 <한산>, 밀덕을 위한 나라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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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래를 잊지못하는 해준은 결국 바다로 가서 해군이 되었습니다.

고증과 허구

‘밀집 장착 보병대’ 라고 불리는 그리스의 팔랑크스 전술이 있다. 그리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의 군대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 말이다. 그게 뭐지? 하겠지만 사진 한 장으로 단번에 이해될 것이다.

역사 문헌이나 옛 서사문을 보면 팔랑크스에 대한 기록은 많다. 하지만 그것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운용을 했는지에 대한 묘사는 없다. 그러나 유물 상으로 남아있는 전투 장비와 당시 전투 지형을 고려하여 영화 <300> (2006)은 아주 설득력 있게 재현했다. 그것의 진가는 알 수 없으나 밀덕들의 심장을 때렸다. 사서의 틈을 메우는 영화적 장치를 고증만큼이나 중요하게 활용한 것이다.

<300>에 그거 있잖아요 왜

이와는 반대로 다가오는 두근거림이 있다. 현대 총격전의 아버지, 마이클 만이 만드는 액션 영화들이다. 그의 영화에 나오는 총기가 만약 윌디 매그넘 457이라면, 총을 든 인물은 탄창의 탄환 수에 맞는 8번의 격발 후 ‘반드시’ 탄창을 교환한다. 7발에 교환한다면 관객은 안타까울 것이요, 9발을 쏜다면 극장에서 나갈 것이다. 심지어 8발을 쏘는 시점은 항상 드라마틱한 사건이 치고 들어오는 순간이다. 실로 영화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누가 그를 총격씬 명예의 전당에 박제 좀 해주세요

<한산>의 인물들

<한산> (2022)은 난중일기에서 상상력만을 더 가져온 <명량> (2014)에 비해 여러 가지가 보태졌다. 인물 간의 관계에는 실사적인 부분이 많으며, 되려 전투에는 허구가 많이 가해졌지만 여름 블록버스터로써는 말쑥한 형태가 나왔다. 이 결과는 한국인 전체가 알고 있으니 과정만 즐기면 된다.

조선군 시점에서의 승리만큼이나 왜군 입장에서의 패배 또한 중하게 나온다. 그래서 아군 진영의 관계들은 생각보다 느슨하게 그려진다. 그러느라 이순신측은 원균 (손현주 분)과 대립하는 장면이나 적의 장수에 반해 전향하는 준사 (김성규 분) 정도만 주요 캐릭터의 느낌으로 그려진다.

반면 일본측은 <명량> 시절엔 조진웅 배우가 맡았던 역할인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이번엔 변요한 배우가 가져가면서 지략가적 면모를 강조하며 이순신과의 밸런스를 맞춘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일본은 봉건시대임을 감안, 원균 같은 느낌의 라이벌 가토 요시아키 (김성균 분) 를 설정하여 긴장감을 높인다.

때는 육지로 진격하는 일본군이 진주성을 함락하느니 마느니 하는 문제가 커지던 1592년이었다. 당시 수군들이 되려 바다를 포기하고 그 쪽으로 합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 또한 큰 텐션을 차지한다. 와키자카는 용인의 광교성 전투에서 1600명의 왜군으로 5만의 조선군을 와해시킨 경험이 있었다. 이에 유리한 형세를 업고 교만에 빠지는 모습이 곧 들이닥칠 운명을 모르고 준비운동 하는 손바닥 속 손오공을 보는 것 같아 후훗 거리는 재미를 제공한다. 기록된 역사 자체가 쾌감이 되는 순간이다.

<명량>에선 8년 뒤 영화인 <한산>의 스포가 나온다. 나 <한산>보려고 국사 포기했단 말야!

<한산>의 전투씬

<기생충> (2019)에서 대사로 나올 정도로 유명하고 이순신의 전기를 본 덕택에 전 국민이 알고는 있지만 학익진은 당시 새로운 전법이 아니었다. 일단 횡대, 종대, 장사진 등 육군이 기본적으로 쓰는 진영의 기본적 형태였다. 심지어 적장인 와키자카는 본국에서 학익진의 상대방을 깨부순 경력이 있는 장수였다. 그러나 <한산>에서 그를 무릎 꿇린 학익진은 실제 기록과는 좀 다르지만 당시엔 이순신에 의해서, 그리고 영화에선 김한민 감독에 의해서 훌륭하게 적을 물리치는 진법이 되었다.

이제 전세계인이 아는 전법이다!

왜군이 이순신과의 전투를 준비하며 똬리를 튼 곳은 지금의 신 거제대교가 자리하고 있는 견내량 근처였다. 그리고 이순신은 현재의 방화도에 위치하며 좌군인 이억기 (공명 분)에게는 통영에, 우군인 원균에게는 현재의 화도 쪽에 매복시킨다. 그리고, 용맹한 노병인 어영담 (안성기 분)에게 5척의 배를 주며 구석에 숨은 일본 배들을 한산도 앞 넓은 바다로 유인할 것을 명한다.

문제는 도요토미가 아끼는 일곱 장수인 칠본창 중 하나였던 와키자카는 평생 겪은 전국시대로 인하여 전투와 병법에 도사였던 것. 그런 그를 어떻게 꼬셔낼까가 흥밋거리인 것이다. 그런데 <한산>에서는 이를 바닥이 깊이 잠기는 일본선과 적게 잠기는 조선선의 차이를 이용하여 암초 근처의 얕은 바다에서 무너진 일본군의 배를 그들이 구하러 온다는 기막힌 설정으로 돌파한다. 기록의 구멍을 상상력으로 메꾼 것이다.

제 아무리 울트라 리스크라 한들 언덕위의 시즈탱크를 어찌 이기리오

그리고 학익진

그렇게 넓은 바다로 나온 왜군을 상대하는 우리의 전법은 익히 알려진 대로 학익진이었다. 일단 상대측 배에 근접하여 백병전을 주로 하는 일본군에게, 넓은 장소는 이미 진 게임이나 진배없었다. 그렇게 이순신의 본대를 잡기 위해 따라 나온 왜군의 배는 학익진의 한 부분을 격파하기 위해 쐐기같은 형태로 전진하다가 포를 맞는다. 원래는 1, 2진으로 나뉜 본 함대들이 교대로 포를 쏘는 형태를 취했다. 실은 밉상 원균도 학익진의 한 축을 능히 담당했다. 그러나 <한산>에서는 한방에 적을 물리치는 박력을 보여주며 쾌감을 더한다. 게다가 처음부터 참여했던 거북선과는 달리 등장 타이밍에 드라마를 부여하여 감격을 만들어 낸다. (극장에서 박수를 치는 관객도 있었다)

고증과는 거리가 있지만, 영화적 수사를 통해 ‘관객이 이 영화에 원하는 것’을 단박에 채우는 것이다.

실제론 조선의 판옥선이 포를 쏘기 위해 제자리에서 180′ 회전하는 것이 진짜 기예였다

그러나 전투가 끝난 이순신은 어떻게 됐을까?

전쟁이 소강에 들어갔고, 이제 포상이 남았다. 여기부터는 정치의 영역이다. 선조는 이순신을 해임한 경력도 있고 그 대체제로 원균을 기용하는 바람에 칠천량 해전에서 2만 명에 가까운 우리 군사를 죽게 했다. 책임은 왕에게 있는 것이다. 결국 선조는 원균의 희생을 업적이라 치하하며 밀어붙인다. 자신이 초래한 위기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정치가의 한계를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임진왜란 중의 의병 중에는 노비 출신도 많았다. 그들은 (명목상으론) 민족을 위해 싸웠고 승리를 쟁취했다. 그러나 기록을 찾아보면 그들에 대한 언급은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되려 전쟁이 끝난 후 그 공으로 자유인 신분이 되자 공노비가 모자라 사회문제로 대두된다는 이야기가 더 많다.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했던 조선은 승병(군대에 지원한 스님)의 존재를 부각하지 않는다. 승려들은 의병 부대의 큰 축이었고, 심지어 행주산성 전투에서는 승리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사회는 그들을 적극적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수준으로 치하하는 정도다.

유교를 받든다는 보이지 않는 주먹은 이후로도 조선 반도를 차지한 명분이었고 지금까지도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요즘에 ‘유교걸’ 이라는 단어가 희화화 될 수 있는 기믹은 그것을 이제는 놓아줄 때가 됐다는 반증같기도 하다.

국가를 지켜낸 밀덕이 원하는 나라는 어떤 곳일까? 적어도 이순신 같은 인재가 명분 때문에 외면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곳일게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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