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직구, 상남자, 막가파 박해일? <한산> <헤어질 결심>과는 다른 반전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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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애매모호 신비롭고, 알 듯 모를 듯 미묘한? 칼로 무 베듯 명확하게 딱 떨어지지 않는? 박해일과 함께 <살인의 추억>과 <괴물>을 작업한 봉준호 감독은 그를 “선과 악이 공존하는 배우”라고 평했다. 올해 개봉한 <헤어질 결심>은 그의 비밀스러운 섬세함이 ‘마침내’ 전면화된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박해일의 다른 면모에도 주목하고 싶다. 선과 악의 경계를 밟고 뿌연 안갯속에 얼굴을 감춘 박해일이 아닌, 아주 단순하고 때로는 무모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마치 연못에 던져진 조약돌처럼 분명하고 선명한 파동을 일으키는 박해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그럼 아래로 따라오시라.


괴물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에서 박해일을 통해 범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인물을 그려냈다면 <괴물>에서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작중 괴물에게 납치당한 현서(고아성)의 삼촌이자 무능한 백수, 前운동권 에이스 박남일은 돌직구 그 자체기 때문이다. “민주화에 몸 바쳤더니 취직을 안 시켜주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늘 불만에 차 있고, 가족들과의 사이는 당연히 좋지 않다. 형인 강두(송강호)를 어리숙하고 칠칠치 못하다는 이유로 마구 패버리지 않나(물론 맞을만했다. 하나뿐인 딸을 잃어버렸으니까), 동생 남주(배두나)가 느리다는 이유로 거북이라 구박하지 않나. 하지만 절대 현서를 포기하지 않으며, 영화 후반부 가장 결정적인 증거인 현서의 휴대전화 위치를 찾아내고야 마는 그다.

망설임 없는 행동력으로 상황을 헤쳐나가는 남일. 그를 연기하는 박해일의 눈빛에는 마찬가지로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단호하고, 누구보다 재빠르다. 엽총으로 달려오는 괴물을 조준하고 순간의 기지로 경찰들을 따돌리며 택시 안에서 화염병을 제조하는 남일. 그의 용기와 민첩한 판단력, 그리고 날이 파랗게 선 성격은 박해일만 그려낼 수 있는 소시민적 영웅의 얼굴이 틀림없다. 과연 괴물을 처단한 박남일은 취직에 성공했을까. 성공했더라도 적응하지 못하고 금세 뛰쳐나오지 않았을까. 엔딩 이후의 미래마저 선명하게 그려질 만큼 물성이 있는 인물이었다.


최종병기 활

<괴물>에서 엽총을 잡았던 박해일이 <최종병기 활>에서 선택한 것은 ‘활’이다. 그러고 보니 그의 고요하면서 날카로운 눈매가 어쩐지 활이나 총 같은 사격 무기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헤어질 결심>의 예민한 형사 역이 자연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최종병기 활>에서, 박해일은 청나라에 포로로 사로잡힌 여동생을 구하고자 활 하나를 들고 국경을 넘는 남이를 연기했다. 역적의 아들이라고 신세 한탄만 하던 남이가, 갑자기 초인적인 각성을 하는 그 극적인 전환이 매끄러워 놀랍다. 초반에는 술만 주야장천 마시며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지만 상황이 바뀌자 누구보다도 표적을 날카롭게 꿰뚫는 궁수의 눈빛으로 돌변한 것이다. 강대국인 청나라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조선 민초들의 얼굴이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는 인조의 그것과 겹쳐지는 가운데,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는 그의 대사는 묵직하다. 최종병기는 대포도 왕도 아닌 한 사람의 의지임을, 박해일은 눈빛 하나로 설명한다. 그 매서움은 작중 청나라 장군 쥬신타(류승룡)와의 대결에서 더욱 빛을 발해, 그가 거침없는 액션도 소화하는 배우임을 보여주었다.

아, 재밌게도 2017년 박해일은 <남한산성>에 출연, 명분과 생존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조로 분해 청나라와 또 한 번 대립한다. 병자호란이라는 동일한 시대적 상황에서 전혀 다른 신분과 입장의 두 인물을 연기한 것이다.


나의 독재자

여기, 유명하지는 않지만 놓치면 후회할 영화가 한 편 있다. 제목은 <나의 독재자>. 나는 이 영화가 박해일이 그리는 아주 특별한 성장담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김일성이라고 생각하는 엉뚱한 아버지를 둔 탓에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는 어른이 된 소년의 이야기다. 박해일이 연기한 태식이라는 인물은 어두운 학창 시절을 보내며 자랐지만 침울하지도, 비밀스럽지도 않다. 솔직하고 명료하게, 속물이다. 다단계 회사에서 일하며 강연 도중에 “돈이 최고”라고 강조하고, “너 나랑 한두 번 잤다고…” 애인인 척하지 말라는 얘기도 막 하는 그런 성격이다. 그런 태식이 요양원에 들어간 아버지 성근(설경구)을 찾는 이유도 결국은 돈 때문이다. 수십 년이 지나서도 자신이 김일성이라 믿는 아버지와 다시 한집에 살면서 태식은 점차 그를 이해하게 된다.

영화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나의 ‘독재자'”, 즉 아버지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나의 독재자>에서 박해일은 두 팔을 걷어붙이고 전면에 나서서 연기력을 발산하지 않는다. 대신 김일성이라는 강렬한 인물을 재현하는 설경구의 앞에서 충실하게 ‘리액션 액션’을 펼치며 자기만의 속도로 변화해간다. 마치 지진계처럼. 부단히 흔들리고 충실하게 전달한다. 관객이 ‘나-태식’이 될 수 있도록 빈자리를 내어주는 그의 느슨하고 침착한 연기가 인상적인 작품, <나의 독재자>다.


고령화 가족

하류인생을 맛깔나게 그리기로 유명한 천명관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 속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주류가 못 된다. 박해일이 연기한 강인모도 만만치 않다. 한때 예술영화감독을 꿈꾸고 데뷔했지만 쫄딱 망하고 세 달치 월세를 밀린 가난한 예술가이자 철부지 아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내와는 사실상 이혼 중이니, 기댈 가족이 있어서 불행 중 다행이랄까.

<고령화 가족>의 박해일은 그 목소리부터 다르다. 웅얼거리는, 속으로 먹는 듯한 발성은 인생에 자신 없는 인물을 묘사하기 위함일까. 스마트해지기를 포기한 예술가의 자포자기한 심정일까. 작중 강인모는 눈꺼풀을 뜨고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인다. 그만큼 삶에 지쳐 있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잃지 않는, 그만의 태생적인 예리함이 있다. 어린 조카의 피자를 빼앗아 먹으려고 장황한 설교를 늘어놓을 때, 마음에 든 미용실 사장에게 작업을 걸 때, 또 귀신같은 촉으로 동생 한모를 찾아 나설 때 등등. 할 때는 하는 게 또 강인모다. 결국 그토록 원하던 대단한 예술가도, 남부럽지 않은 남편도 되지 못했지만 그는 나름의 살 길을 찾아 뚜벅뚜벅 걸어간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찌질하면 찌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라는 영화 후반부 강인모의 내레이션은 처음의 목소리와 달리 단단하고 믿음직스러워 안심이 된다.


씨네플레이 유해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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