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트 특급살인> 뛰어 넘을까? 미리보는 <나일 강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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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명적인 스포일러는 없지만 스포일러에 민감하다면 주의를 바랍니다.

추리 소설계의 전설이란 말로도 부족한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가 생전 가장 사랑한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나일 강의 죽음>이 1978년 이후 44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오리엔트 특급살인>(2017)의 후속작이지만, 사실상 개별적인 작품으로 봐도 전혀 무리가 없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보지 않아도 <나일 강의 죽음>을 감상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과도 같다. 그럼에도 <오리엔트 특급살인>과 <나일 강의 죽음>은 한 몸으로 언급되어야 하는 작품이 맞다. 두 작품이 포와로 시리즈 하에 있다는 이유를 제외하고도, 영화 <오리엔트 특급살인>과 <나일 강의 죽음>을 한 선상에 올려놓는 매듭과도 같은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전작에 이어 <나일 강의 죽음>에서도 탐정 에르큘 포와로를 연기하는 배우 케네스 브래더가 그 주인공이다. 케네스 브래너는 <오리엔트 특급살인>에 이어 <나일 강의 죽음>에서도 감독과 주인공을 도맡으며 두 작품을 ‘케네스 브래너 표’ 아가사 크리스티 영화라는 수식어로 묶이도록 했다.

<오리엔트 특급살인>

<나일 강의 죽음>

케네스 브래너가 연기하는 에르큘 포와로는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극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나일 강의 죽음> 속 케네스 브래너의 연기는 <오리엔트 특급살인> 속의 모습과는 아주 미묘하게 달라졌다. 일상 속 모든 물체의 대칭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에르큘 포와로 탐정의 기민함과 예민함을 원동력 삼아 <오리엔트 특급살인>이 사건을 해결해 나갔다면, 이번 작품에서 케네스 브래너는 거기에 더해 포와로의 인간적인 내면까지 꺼내어 보이며 작품의 감정선을 일렁이게 한다. 너무나도 냉철해 거만하다고까지 느껴지는 에르큘 포와로가 <나일 강의 죽음>을 통해 일말의 뜨거운 감정을 드러낼 수 있었던 건 <나일 강의 죽음>이 로맨스 장르가 자욱하게 깔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미 원작을 통해 혹은 1978년판 <나일 살인사건>을 본 이들이라면 잘 알고 있겠지만, <나일 강의 죽음>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 사랑, 사랑. 로맨스 장르보다도 사랑이란 단어를 자주 입에 올린다. 역시나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되지 않아 탐정 에르큘 포와로가 내뱉는 한 마디, “Ah, love. It is not safe. (아, 사랑. 사랑은 위험해)”는 <나일 강의 죽음> 서사 전체를 가로지르며 이 영화의 파국이 어디서부터 출발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끝을 맺게 될지 또렷하게 외친다.

<나일 강의 죽음>이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이번 영화에서 그 경향은 더욱 또렷하다. 영화 <나일 강의 죽음>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바로 오프닝이다. 화려한 이집트의 색채가 펼쳐지는 오프닝을 기대한 이들은 잠시 눈을 의심할 수도 있을 만큼 영화는 잔잔한 흑백 시퀀스로 문을 연다. 짧은 프롤로그가 담고 있는 내용은 원작에서도 다뤄지지 않았던 에르큘 포와로 탐정의 전사다. 양쪽으로 길쭉하게 뻗어있는 에르큘 포와로 수염의 기원을 보여주는 짧은 시퀀스를 통해 영화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포와로 탐정의 과거를 살짝 들춰낸다. 수염의 기원은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인 마이클 그린이 새롭게 창작한 이야기로, 포와로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았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에피소드다. 결국 오프닝부터 관객들은 벽처럼 단단하게만 느껴지던 포와로와 한 발 짝 더 가까워 질 수밖에 없고, 그를 향한 한 가닥의 동정은 <나일 강의 죽음>이 그리는 사건과 얽히기 까지 하며 관객에게 더욱 풍성한 감상을 전한다.

에르큘 포와로의 사랑 이야기로 시작한 <나일 강의 죽음>은 오프닝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새로운 인물들을 소개한다. 앞서 에르큘 포와로가 언급한 “위험한 사랑”은 세 남녀를 향해 있는 것이었는데. 비극이 예견된 것처럼 보이는 삼각관계를 조명하며 <나일 강의 죽음>은 항해를 시작한다. 그 출발점엔 리넷(갤 가돗)이 있다. 부는 물론이거니와 아름다움과 사교성까지. 뭐 하나 빠지는 데 없이 완벽한 상속자 리넷은 우연히 들른 파티에서 오랜 친구 재클린(에마 매키)의 약혼자인 사이먼(아미 해머)를 소개받는다. 얼마 후, 영화는 예상대로 재클린이 아닌 리넷과 사이먼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담는다. 친구의 약혼자와 사랑에 빠진 리넷은 얼마되지 않아 사이먼과 결혼을 결심했고, 두 사람은 이집트로 신혼 여행을 떠난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두 사람 모두에게 버림 받은 재클린은 쉽사리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거다. 재클린은 두 사람의 신혼 여행을 쫓아다니며 스토커짓을 일삼는다. 리넷과 사이먼이 어디있든, 그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 결국 리넷의 신혼 여행은 공포와 불안으로 물들고 만다.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만큼 치에 떠는 리넷은 한 가지 묘수를 생각해낸다. 두 발로 이집트를 여행하는 대신 초호화 여객선에 몸을 실어 재클린을 따돌릴 계획을 삼는다.

자신의 일행까지 모두 태운 초호화 여객선에서 부부는 이제 진정한 허니문을 누리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재클린은 여객선까지 리넷을 쫓았고 여객선은 낭만이 아닌 긴장과 스트레스만이 부유하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결국, 술에 취한 재클린은 사이먼과 격렬한 말다툼을 벌이게 되고 그 날 여객선에서는 살인 사건까지 벌어진다. 우연히 만난 부크(톰 베이트먼)와 함께 여객선에 몸을 실었던 에르큘 포와로(케네스 브래너)는 이번에도 여객선에 탄 면면들을 쭉 훑어보며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나선다.

사랑으로 항해를 출발한 <나일 강의 죽음>의 끝은 결국 살인, 죽음이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의 범죄현장이 열차였다면, <나일 강의 죽음>은 여객선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파헤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배우진들이 캐릭터들을 메우며 관객은 범인을 예측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영화는 이 혼란을 가중 시키기 위해 원작과 마찬가지로 캐릭터 소개에 꽤나 긴 시간을 할애한다. 리넷의 죽음을 둘러싼 사람들의 전사를 저마다 설명하며 모든 캐릭터에게 살인의 동기를 부여한다. 원작을 충실하게 따른 결과라고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관객들의 호불호 갈리는 지점을 마련해준 셈이기도 하다. 사건을 해결하기까지 특별한 서사의 반전이 있다기 보단, 용의자의 면면을 소개하는데 정성을 들이며 다소 긴장감을 떨어 뜨린다. 영화는 용의자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범인을 밝히는 일명 ‘푸아로 피날레’를 향해 비장하게 달려갈 뿐. 중간 중간 관객들의 심장을 움켜쥐게 만드는 영화적인 설정을 창조해 내는데는 다소 안일한 모습을 보였다. 이 아쉬움은 영화 <나이브스 아웃>과 비교되며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창조한 고전적인 클리셰들을 현대적으로 버무린 <나이브스 아웃>을 이미 경험해 버린 관객들은, ‘범인이 누구게’라는 말만 반복하며 한 방향으로만 걸어가는 <나일 강의 죽음>의 문제 풀이 방식이 다소 잔잔하게 느껴질 수밖에.

<나일 강의 죽음> 에마 매키

그럼에도 <나일 강의 죽음>을 지루한 영화라고 이야기할 순 없다. 복잡한 추리를 해결해 나가는 재미가 다소 떨어질 순 있어도 캐릭터 간의 촘촘한 갈등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제 값을 한다. <나일 살인사건>과 원작 소설을 통해 이미 <나일 강의 죽음>을 스포일러 당했다고 생각하면 금물이다. 케네스 브래너가 만들어 낸 <나일 강의 죽음>은 두 작품과는 분명한 차별점을 지닌다. 원작과 1978년 작을 본 이들이라도 <나일 강의 죽음>을 한 번 더 볼 법한 이유는 많다. 고전은 그만의 힘을 지닌다. 결국 <나일 강의 죽음>만이 할 수 있는 그리고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와 분위기는 <나일 강의 죽음>을 쳐지지 않게 만들었다. 원작이 워낙 탄탄하기도 하지만, 여러 인물들의 속내를 선명하게 수면 위로 떠올린 배우들의 공이 컸다. <나일 강의 죽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놀랍게도 갤 가돗이 아니다. 재클린을 연기한 에마 매키다. 1978년 <나일 살인사건>에서 재클린을 연기한 배우 미아 패로에 버금갈 만큼, 에마 매키는 질투에 몸서리치는 재클린의 광기를 적절하게 표현해내며 영화 속 가장 매혹적인 캐릭터로 남았다. 갤 가돗, 케네스 브래너, 레티티아 라이트, 톰 베이트먼 등 굵직한 배우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주며 그의 다음 얼굴을 기대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다만 에마 매키라는 이름이 기억되는 동시에, <나일 강의 죽음>은 잊고 싶은 이름 역시 공존하는 작품이다. 아미 해머다. 예고편에서 많은 비중을 드러내지 않던 아미 해머는, 극중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며 긴 시간 관객 앞에 선다. 그가 연기하는 사이먼이 재클린과 리넷의 맘을 쥐고 뒤흔드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아미 해머를 향한 불편감은 더욱 짙다. 여러 사정상 재촬영이 불가능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아미 해머의 흔적은 아쉬움을 남긴다.


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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