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영화라니! 이탈리아 토스카나를 배경으로 한 또 하나의 힐링 영화가 탄생했다. 아예 지명을 영화 제목으로 전면에 내세운 넷플릭스 영화 <토스카나>(감독 메흐디 아바즈)에서 차가운 덴마크 남자와 열정 넘치는 이탈리아 여자가 만났다. 낭만이 가득한, 아니 절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도시 토스카나에서 두 남녀의 이야기는 뻔한 예상대로 우릴 미소 짓게 할까, 아니면 기대를 저버리고 토스카나를 배경으로 한 최초의 비극으로 치달을까?
덴마크에서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쉐프 테오 달(아네르스 마테센)은 루틴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남자. 새 레스토랑 개업 투자를 받기 위해 새 둥지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이를 해체하는 형식으로 새로운 요리를 개발한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그의 모습은 티끌 하나 없는 상태로 가지런하게 정리된 조리도구부터 완벽한 수치로 계량하고 접시마다 똑같은 형태의 요리를 재현해내는 화면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늘 화가 나 있는 것 같은 테오는 결국 투자자와의 만남을 엉망으로 만들며 계약에 실패한다. 그의 평정심을 무너뜨린 건 3주 전 아버지가 작고했고, 토스카나의 작은 고성 리스톤키를 유산으로 남겼다는 변호사의 편지. 자, 이제 테오는 날려버린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토스카나로 향한다. 그토록 미워하던 아버지가 물려준 성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물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던 카메라는 테오가 토스카나에 도착하면서부터 원경에서 토스카나의 자연에 더 가깝게 다가간다. 마치 생명력의 원천에 다가가는 것처럼, 행복이란 멀리서 찾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알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토스카나의 아름다운 풍광은 싱싱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식재료들과 연결된다. 좋은 사람들과 도란도란 둘러앉은 테이블에서 보이는 화려한 색채의 이탈리아 요리들. 아름다운 토스카나 전경과 딱 맞아떨어지는 오르넬라 바노니의 노래 ‘L’appuntamento’(약속)까지 곁들여지니, 아무리 ‘랜선’ 여행이라고 해도 이만한 힐링이 또 있을까? 지금이라도 당장 비행기 티켓을 끊고 이탈리아로 날아가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며 타인의 평가에만 매달렸던 테오는 토스카나의 여유로운 분위기와 리스톤키 성 언덕을 둘러싼 풍성한 자연에 자기도 모르게 빠져든다. 그리고 토스카나에서의 운명적인 첫 만남은 바로 소피아(크리스티아나 델안나)다. 까탈스러운 외국인 손님인 줄 알았던 사람이 테오란 사실을 알게 된 소피아의 기류가 묘하게 바뀐다. 아버지의 후견인으로 리스톤키 성에서 평생을 살아온 소피아와 테오 사이에는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살게 되면서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감정 때문에, 테오는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추구했던 아버지와 정반대로 최고의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쉐프로 살아왔다. 그런 테오에게 아버지가 스크랩한 아들의 기사를 보여주는 소피아. 자신의 과거와 화해할 수 있도록 돕는 소피아에게 테오는 점점 끌린다. 엄격하게 정량을 고집하던 테오의 요리 방식도 자연스러움, 조화를 추구하는 소피아의 웃음에 그 경계가 서서히 무너진다. 하루하루를 함께 보내며 테오는 아버지와 함께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던 어린 시절의 소피아를 마침내 떠올린다.
성을 팔아야 덴마크에서 새 레스토랑을 열 수 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토스카나는 테오를 더 따뜻하게 품어준다. 설상가상으로 소피아는 테오의 성을 팔아줄 변호사와 결혼식을 앞둔 상황. 두 사람은 결혼식 전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만, 용기를 내지 못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토스카나>는 아예 지명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다. 르네상스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토스카나는 영화감독들의 오랜 세월 끊임없는 구애를 받아온 공간이다. 토스카나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많은 이유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화 주인공들은 이곳에서 치유를 경험한다.
<투스카니의 태양>에서 남편의 바람으로 결혼 생활의 종지부를 찍은 프란시스(다이안 레인)는 토스카나로 여행에서 우발적으로 구매한 황폐한 빌라를 꾸미며 다시 인생을 시작할 힘을 얻었다. 그 유명한 <전망 좋은 방>에서 루시(헬레나 본햄 카터)는 피렌체에서 우연히 만난 죠지(줄이안 샌즈)를 통해 소유품으로서의 여성이 아닌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았다. <레터스 투 줄리엣>에서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 역시 대를 이은 진정한 사랑을 만났고,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러셀 크로우)는 죽음으로 사이프러스 나무가 줄지어 선 발도르차 평원을 지나며 꿈에 그리던 가족과 재회했다.
어디 이뿐인가, <메이드 인 이태리>에서 리암 니슨은 실제 아들 마이클 리처드슨과 함께 토스카나 한 달 살기를 하며 영화인지 현실인지 구분되지 않을 부자지간의 화해를 이뤄내기까지 하니, 이쯤 되면 토스카나는 모두가 사랑에 빠지는 마법의 공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오자. 테오의 아버지가 고된 하루를 마감하고 매일 밤 노을진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아 와인 한 잔을 마시며 하는 말은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 소피아는 테오에게 이 말의 뜻을 ‘힘들이지 않고 우아하다’라고 설명해준다.
여기서 잠깐 스프레차투라라는 단어의 어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스페레차투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장인 정신의 뿌리가 스며 있는 단어다. 작가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가 1528년에 쓴 ‘궁정의 책’에서 ‘어떤 행동이나 말하는 것을 특별한 노력과 아무 생각 없이 표현한 것처럼’이란 뜻으로 사용했다. ‘경멸하다, 거만하게 굴다’ 등의 본뜻에서 르네상스기를 거치며 ‘힘든 일을 쉽고 노련하게 해내는 천재의 방식’을 지칭하는 말로 진화했다. 이탈리아 장인 정신의 세 단계인 ‘데코로(Decoro)-스프레차투라-그라치아(Grazia)’ 중 두 번째 단계이며, 수많은 이탈리아인이 예술, 건축, 가구, 패션, 식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이룩한 위대한 업적들에는 이 장인 정신이 녹아 있다.
“비범한 사람도 행복해야 해. 누구도 특별하지 않아. 하지만 누구나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단다. 날 그렇게 봐주는 사람을 만나면.” 엄마의 말을 들을 때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소피아 덕분에 어른이 되고서야, 아버지의 땅으로 돌아와서야 어린 시절 미워했던 아버지와 화해하는 테오. 자신이 부숴버린 아버지 석상을 늘 아버지가 앉았던 벤치에 놓고는 함께 말 없는 긴 대화를 나눈다.
드디어 테오는 토스카나에서 행복한 삶을 장을 연다. 치열하게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덴마크 레스토랑을 청산하고 토스카나의 작은 성으로 함께 온 스탭들과 함께. 그렇게 스페레차투라의 경지에 도달한 테오에게 이제 남은 건? 사랑뿐이다. 테오와 소피아는 어떻게 됐을까? 행복한 재회의 해피엔딩일까, 비극의 여운으로 남을까? 넷플릭스 <토스카나>에서 확인하시길!
윤상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