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헌트>랑 배우가 4명이나 겹치는 첩보영화 있다고? 근데 피 한 방울 안 나와?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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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가 양호한 흥행력과 기대 이상의 작품성을 갖춘 한국형 첩보영화로 극장에서 선전하는 가운데, 함께 거론되는 몇몇 작품이 있으니. 바로 <헌트>에 나온 배우들 여럿이 함께 출연한 영화들이다.

먼저 ‘아수리언’이라는 팬덤까지 나오게 한 정치 피카레스크 영화 <아수라>(정우성·황정민·주지훈)가 1번. 다음으로 한국형 누아르의 신세계를 연 <신세계>(이정재·황정민·박성웅)가 2번. 코믹범죄드라마 <검사외전>(황정민·이성민·박성웅)이 3번.

마지막 4번 타자이자 오늘 다룰 작품은 황정민·이성민·주지훈·조진웅 주연, 윤종빈 감독 연출의 <공작> 되겠다. 남북 간의 긴장을 다룬 진지한 첩보물이라는 점에서 4개 영화 중 <헌트>와 가장 비슷한 것은 <공작> 아닐까 하는데. 비슷한 만큼 또 정반대인 것이 <공작>과 <헌트>다.

※스포주의: 아래부터 영화<공작>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무혈 액션과 “근래 보기 드문 호연(지기)”

<헌트>와 <공작>의 가장 큰 차이는 폭력의 유무다. 폭력을 미화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헌트>에서 발사되는 총알의 양은 어마무시하며 피곤하리만치 자주 등장하는 고문 장면은 이 영화가 15세 관람가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반면 <공작>은 ‘무혈지대’다. 북한에 침투한 남한 간첩이 주인공인데, 피 한 방울 안 나오니 오히려 불안해. 총을 뽑기는 하는데, 총을 안 쏜다(체홉이 들으면 무덤서 일어날 노릇).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나면 총성을 한 다발 들은 것처럼 먹먹하다. 그 이유가 뭘까.

<공작>에서는 인물의 말이 총알이고 눈빛이 칼이 된다. 피 한 방울, 탄피 하나 튀기지 않고 서스펜스와 액션을 구사한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 하나 없이 이토록 긴장되는 작품은 드물다. <헌트>와 <공작> 가운데 무엇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으나 <공작>의 방향성이 장르물로써 더 독특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긴장을 끝까지 유지한 데는 북한 측 명사 리명운을 연기한 배우 이성민의 역할이 컸다. 냉철함과 따뜻함, 난처함과 패색 어린 긴장, 간혹 드러나는 기쁨 등. 그 장면이 요구하는, 아니 그 장면을 가장 잘 표현하는 이성민의 디테일하게 설계된 연기가 <공작>의 톤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어색하면 관객의 집중력과 영화 전체의 핍진성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는 북한 1호 김정일 역에는 원로배우 기주봉이 장시간의 두꺼운 분장 작업을 거친 후 열연했는데, ‘그 자체’였다. 더 할 말은 없다.


북한으로 간 국정원 요원

<쉬리>부터 <간첩 리철진>, <이중간첩>을 지나 <의형제>, <간첩>, <은밀하게 위대하게>, <용의자>, <공조>에 이르기까지. 물론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도 있었지만 예외는 어디까지나 예외. 지금까지 한국첩보영화 대다수는 다양한 경로로 남한에 오게 된 북한 공작원의 이야기를 다뤄왔다. 그래서 남한 국정원 요원이 북한으로 간다는 설정의 <공작>은 일단 시작부터 신선하다.

북한이라는 생경하지만 익숙한 공간적 배경을 다루는 <공작>의 조심스러운 태도 또한 인상적이다. 그곳을 스크린에 마음껏 구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에도 최대한 절제했다. ‘배경을 위한 배경’ 만들기에 몰두하는 대신, 아사한 인민의 시체가 산을 이루는 살풍경과 김정일의 화려한 청사가 빚은 진풍경을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툭 던지듯 보여주는 것이 <공작> 연출의 세련된 지점이다.


정치의 탈을 쓴 사업, 사업의 탈을 쓴 우정

인물 관계는 또 어떤가. 리명운(이성민)과 박석영(황정민)이 서로 의심하고 이용하다가 이념을 넘어 우정을 나눈다는 낭만적 결론은. 실제 모델인 리철과 박채서가 본다면 코웃음칠지도 모르지만, 분명 어떤 감동을 남긴다. 이들이 남과 북, 혁명당과 국정원이라는 정치적 관계를 넘어 사업이라는 모험을 지평 삼아 함께 달리는 극의 후반. 누가 이들의 선택에 반대하겠는가. 누가 리명운을 ‘자본주의의 달콤함에 넘어간 반동분자’로, 박석영을 ‘빨갱이한테 잡아먹힌 놈’이라 욕하겠는가. 그저 북한을 배경으로 광고 하나 찍고자 한 것인데.

김정일의 결재까지 떨어진 ‘북한에서 광고 찍기’는 결국 간첩 활동을 위한 공작이었지만 크게 보아 공작과 광고는 별로 다르지 않다. 결국 ‘판짜기’와 ‘배우 싸움’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배우도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진심을 한 톨도 섞지 않을 수 있을까. 10년이 지나 마침내 재회한 리명운과 박석영의 관계는 최초의 남북 합작 광고의 두 모델-북한의 조명애와 남한의 이효리에게로 전이된다. 조명애에게 먼저 손을 내밀며 웃어 보이는 이효리. 그의 얼굴에서 털털하고 솔직한 호의가 느껴지는 것은, 비단 이효리가 호감형 연예인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공작>, 윤종빈 감독 전작과 비교하면?→👍

코드네임 ‘흑금성’, 박채서라는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 <공작>. 윤종빈 감독이 역사를 스토리텔링하는 팩션화 능력이 출중하다는 것은 이미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보여준 바 있다. 그의 팩션에서 인물들은 역사적 배경의 통제를 벗어나지 않는 한편 제 욕망에 충실해, 사실적인 동시에 드라마틱하다.

윤종빈 감독의 초기작과 구별되는 주제 의식도 돋보였다. 그가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를 통해 극사실주의적 묘사와 꿈도 희망도 없는 결말을 보여줬다면, <공작>에서는 이런 현실을 딛고 다른 미래를 희망하는 주인공을 제시했다. 그것은 윤 감독이 <범죄와의 전쟁>에서 <군도: 민란의 시대>로 넘어오며 확연히 변화한 지점이기도 하다. 희망을 부정하지 않는 그의 세계관이 다소 거친 소재와 어우러져 빛난다.

오락성과 재미를 잃지 않는 것도 포인트. “동무들 가서 딴스나 추고 오라우”, “아니 이거 롤락스 아닙니까!” 등, 쓰면서도 피식 웃게 되는 장면들이 적잖이 있었다. 웃길 줄 아는 자가 울릴 줄도 안다고. <공작>은 거칠지만 촉촉하고 진지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공작>과 <헌트>는 모두 영화제작사 사나이픽처스의 작품으로 그 결이 상당히 유사하다. 거칠고, 남성 배우 중심이며 다소 어두운 소재를 다루고 있다. 앞서 언급한 <아수라>, <신세계> 또한 사나이픽처스에서 제작했으니 대충 그 스타일이 파악될 것이다. 만약 <헌트>가 취향에 맞았다면, <공작> 또한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추천한다. 또 <공작>이 마음에 든다면 9월 9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윤종빈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 <수리남>을 놓치지 말길. 한국인 조봉행이 남미 수리남 공화국으로 건너가 마약왕이 되는 일대기를 그린 내용으로 하정우·황정민·박해수·조우진·유연석이 출연한다.


씨네플레이 유해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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