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장인 HBO의 에미상 11부문 수상작 <왓치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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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 포스터

대작 드라마 하나가 OTT(Over-the-top) 플랫폼 ‘웨이브'(wavve)를 통해 한국에 상륙했다. 그 주인공은 HBO의 2019년 작품 <왓치맨>.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간 리미티드 시리즈(단일 시즌으로 끝나는 드라마) <왓치맨>은 제작 발표 초기 우려와는 달리 훌륭한 완성도를 자랑하며 2020년 에미상에서 총 11개 부문을 휩쓸어 2020년 화제의 드라마로 자리 잡았다. 발간 이후 근 40년 가까이 ‘명작’ 반열에 있는 「왓치맨」을 어떻게 이어갔길래 <왓치맨>은 호평을 받았을까.

털사의 경찰과 제7기병대

2019년, 오클라호마주 털사는 경찰과 비밀단체 ‘제7기병대’의 대립이 날로 심해진다. 제7기병대가 경찰을 급습한 ‘백야’ 이후 경찰들 또한 마스크를 쓰고 신원을 가린 채 이들을 맞선다. 그러던 중 마스크를 쓰고 ‘시스터 나이트’로 활동하는 경찰 앤절라 에이바는 털사 경찰 서장 저드 크로포드의 죽음을 목격한다.

히어로 코믹스의 신기원, 「왓치맨」

원작 코믹북 「왓치맨」

<왓치맨>을 알기 위해 「왓치맨」을 간단히 살펴보자. 앨런 무어와 데이븐 기븐스의 「왓치맨」은 1987년 발간된 코믹북으로 오리지널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자경단의 활동을 금지한 ‘킨 법령’ 제정 이후 비밀리에 활동하는 자경단 로어셰크는 또 다른 자경단 코미디언의 죽음에 어떤 음모가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로어셰크는 당시 함께 활동했던 나이트 아울, 닥터 맨하튼과 실크 스펙터, 오지만디아스 등을 만나며 사건을 추적한다. 언뜻 평범한 스토리 같지만 「왓치맨」의 위력은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발휘된다. 배경이 되는 1985년은 우리가 아는 1985년과 조금 다르다. 소련과 미국이 대립하는 냉전은 그대로지만,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승리한 것이나 닥터 맨하튼의 등장으로 기하급수적으로 과학이 발전한 것 등 현실을 기반으로 한 일종의 ‘팩션’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영화 <왓치맨>

한국 사회에선 원작 코믹북 「왓치맨」보다 2009년 잭 스나이더가 연출한 영화 <왓치맨>이 더 익숙할 것이다. 잭 스나이더는 원작의 디자인을 최대한 활용하고 액션의 강렬함을 살리는 등 현대적인 감각으로 원작을 구현했다. 그러나 원작의 방대한 전개를 그대로 옮기기 어려워 클라이맥스를 대폭 수정했는데, 드라마 <왓치맨>은 원작의 결말을 그대로 이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왓치맨>을 여러 차례 관람한 팬이라도, 원작의 결말을 한 번씩 숙지해두는 편이 드라마 <왓치맨>을 보기에 수월할 것이다.


원작의 이해, 그리고 재해석

경찰 시스터 나이트로 일하는 앤절라는 서장의 죽음을 추적한다.

드라마 <왓치맨>으로 돌아오면, 일단 이 드라마가 정말 뛰어난 부분은 원작의 전개 양식을 제대로 숙지한 것이다. 「왓치맨」은 앞서 말했듯 한 사람의 죽음에서 시작하지만, 이야기를 거듭하며 인물들의 서사를 천천히 쌓아 올리고 현실과 다른 작품 속 세계로 독자들을 이끈다. 그러면서도 스토리 전체를 아우르는 복선이나 작품의 테마를 관통하는 메타포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래서 독자들은 세심하게 설계한 세계관에, 이야기의 막바지에서 작가들이 쌓아 올린 큰 그림에 무릎을 칠 수밖에 없게 된다. 드라마 <왓치맨> 또한 이와 유사하다. 누군가 털사의 경찰 서장을 목매달아 살해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여기서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을 다음 화에서, 혹은 그 이후에 작중 해답을 안겨준다. 시청자들은 사건을 수사하는 시스터 나이트/앤절라 에이바(레지나 킹)처럼 사건을 추적하는 입장에 몰입하고 또한 드라마의 낯선 세계로 한걸음씩 나아가게 된다.

뉴욕 사건의 원흉 오지만디아스/에이드리언 바이트

<왓치맨>은 「왓치맨」에서 30년이나 지난 시점을 그리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는 아니다. 실크 스펙터/로리 블레이크(진 스마트)와 오지만디아스/에이드리언 바이트(제레미 아이언스), 닥터 맨하튼/존 오스터만의 등장을 예고편에서 암시했었으니까. 심지어 명배우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오지만디아스는 분량 대비 상당한 임팩트를 남긴다. 원작 팬이라면 전작 캐릭터들 묘사에 다소 호불호가 갈리겠으나 30년 후인 2019년의 이들을 지켜보는 일은 그 자체로도 재밌는 편. 특히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남자’면서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오지만디아스의 행적, (원작의 한 챕터에 헌정하듯 거의 고스란히 가져온) 닥터 맨하튼의 에피소드는 향수를 자극하기까지 한다.


인간, 여전히 인간

「왓치맨」의 특징이라면 히어로 장르를 표방하지만 초능력자가 없는 세상을 그린다는 것이다. 순간 이동에 물질의 원자 배열을 바꿀 수 있는 닥터 맨하튼을 제외하면, 마스크를 쓴 자경단 모두가 인간이란 것이다. 거기에 이들은 완전무결한 선인들도 아니고, 모두 나름대로의 심리적 상흔이나 결점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 「왓치맨」은 히어로의 능력이 아니라 그들의 인간적 결함을 조명했기에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을 수 있었다. 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갈등이 상호확증파괴까지 다다른 시점에서 우리 인간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화두를 던지는 주제 또한 인가 자체를 바라보는 시선과 일치했다.

작품은 1921년 털사에서 시작하며 사실상 현대 미국 사회를 관통하는 질문을 던진다.

경찰 루킹 글래스/웨이드 틸먼

드라마 <왓치맨>은 이런 시각을 오랜 시간 해소되지 않은 분노의 연쇄고리, 인종차별로 가져온다. 1921년 털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털사 학살'(백인우월주의자들이 흑인을 학살한 사건)로 연 드라마는 백 년 전 일어난 이 사건이 <왓치맨>의 시대까지 내려오는 과정을 차근차근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앤절라 에이바, 루킹 글래스/웨이드 틸맨(팀 블레이크 넬슨) 등 털사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또한 드러낸다. 가상의 미국 사회를 통해 현 미국 사회 도처에 깔린 인종차별과 폭력을 적나라하게 끄집어내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왓치맨>은 원작과 다른 문제의식을 내세웠다고 격렬한 논쟁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종영 후 이듬해 5월.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이 발생하면서 인종차별은 다시 미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도리어 제작진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한 셈이다.


미드 장인 HBO 21세기형 히어로 장르

‘생명을 창조하겠다’고 떠난 닥터 맨하튼은 30년 후 어떤 모습이 됐을까.

<왓치맨>은 앞서 말한 특징들을 9개의 에피소드에 꾹꾹 눌러 담았다. 미국 현지 반응이 그랬듯,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있는 편이긴 하다. 그러나 세심한 복선과 예측불허의 전개를 드라마에서 맛보고 싶다면 <왓치맨>만한 작품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처음부터 리미티드 시리즈으로 기획한 제작진이 9시간 동안 보여주는 큰 그림은 단언컨대 여느 드라마에서 느끼기 어려운 만족감을 줄 것이다. 다만 호불호의 문제를 넘어 원작을 알수록 더 즐길 수 있는 작품이란 사실은 사람에 따라 벽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왓치맨>을 감상한 입장에선 에미상 여우주연상·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레지나 킹과 야히아 압둘 마틴 2세의 호연, 커다란 음모 앞에서 누구보다 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캐릭터들을 꼭 만나보길 적극 권하고 싶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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