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이 이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박찬욱 영화 속 여성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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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리틀 드러머 걸>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여성 주인공이다. 그동안 박찬욱 감독 영화 속 여성 배우들은 분량이 상관없이 커다란 존재감을 보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에겐 기존의 이미지를 지우고 새로운 얼굴을 부여했으며, 신예 배우를 발굴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지금까지의 박찬욱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을 정리했다. 덧붙여 각 배우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코멘트를 함께 소개한다.


이영애

공동경비구역 JSA (2000) ▶소피 E 장 소령

친절한 금자씨 (2005) ▶ 금자

원작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이영애가 맡았던 소피 E 장 소령 역할은 원래 남성이었다. 중립국 스위스 육군 소속의 냉철한 인물이다. 남북한 군인들의 우정을 그린 영화에서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중립적인 여성 캐릭터는 신선했다. 그럼에도 박찬욱 감독은 극중 이영애의 캐릭터 쓰임에 아쉬움이 남았다. 몇 년 후, 친절해 보일까봐 눈에는 빨간색 아이섀도우를 칠하고 마음 깊은 곳 복수를 품은 ‘금자씨’ 캐릭터를 건넸다. 산소 같은 여자, 착한 장금이로 대중에게 어필했던 이영애의 180도 다른 얼굴을 발견해낸다. 무표정한 얼굴로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을 내뱉고 락스를 먹여 사람을 죽여놓고 해맑게 “빨리 죽어”라고 말한다. 그동안 대중이 알던 이영애의 얼굴과 이질감 있는 낯선 대사들은 극의 유머와 긴장감을 자아냈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찍고 미안했다. 남북한 병사들의 우정이 드라마의 중심이다 보니 이영애 씨가 계속 나오긴 하는데 무게가 그쪽으로만 쏠렸다. 이후 <봄날은 간다> 영화를 봤는데 이영애 씨와 유지태 씨의 호흡이 정말 좋더라. 저렇게 잘하는 사람인데 진가를 다시 세상에 보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이영애 씨도 이제껏 한 영화와 다른 걸 해보고 싶어 할 때였다.

JTBC <방구석 1열>

영애 양의 의지나 상상력으로 새롭게 창조된 것들이 많다.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그녀의 역할에 대해 더 인정해줘야 한다. 내가 열 가지를 얘기하면 스무 가지 생각해와서 자기 생각 밝히고 의견을 조율했는데 그 강도는 송강호나 최민식보다 더했다.

<씨네 21>


배두나

복수는 나의 것 (2002) ▶ 영미

“세상엔 착한 유괴와 나쁜 유괴가 있다”라는 대사를 내뱉는 순간부터 평범하지 않다고 느꼈다. 아이를 납치해 죽이지 않고 잘 데리고 있다 우리에게 딱 필요한 돈만큼만 요구하고 아이를 반납하면 아무 문제 없지 않냐면서, 이를 자본의 이동이라고 표현한다. 방구석에서 심드렁하고 권태로운 궤변을 늘어놓는 조금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주인공 애인에 불과한 캐릭터인가 싶었지만 무정부주의 세력을 조종했던 과격한 면모를 점차 드러내며 영화의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범죄를 부추기기만 하는 작은 역이었던 영미의 비중이 캐스팅 이후 야금야금 커졌다. 그건 전적으로 배두나 책임이다.

<씨네21>


강혜정

올드보이 (2003) ▶ 미도

<올드보이>는 이제 갓 스크린 데뷔를 한 강혜정의 두 번째 작품이었다. 외롭고 가난한 평범한 캐릭터지만 강혜정이 맡으면서 모호함과 새로움을 더했다. 커다란 눈망울과 살짝 돌출된 입매는 아이와 어른, 소녀와 소년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흥미로운 이미지를 탄생시켰다. 영화 후반부 미도와 대수(최민식)의 진짜 관계를 알고 나면 강혜정의 캐스팅이 더욱 찰떡이었다고 느끼게 만든다. 여담이지만 강혜정은 오디션장 건물 1층에 있는 참치 횟집에서 사시미 칼을 빌려 오디션에 들고 들어갔다고.


연기에 군더더기가 없다. 불필요한 동작, 쓸데없는 표정을 만들어서 하지 않는다. 핵심만 간결하게 표현한다, 그 나이에 그렇게 연기하려고 노력하는 배우, 드물다.

<씨네21>


임수정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2006) ▶ 영군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박찬욱 감독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아쉬운 평가를 받긴 했지만 임수정의 파격 변신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정지훈과 임수정. 영군(임수정)은 모나리자처럼 눈썹을 탈색하고 사물에게 말을 건넨다. 자신을 싸이보그라고 생각해 식사도 거부하는 이상하고 독특한 캐릭터다. 안 그래도 작고 왜소한 임수정은 39kg까지 감량하며 깡마른 모습으로 변신해 비현실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을 강조했다.


원래 임수정이란 배우를 좋아했다. 우연히 <학교 4>라는 연속극에서 임수정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김지운 감독이 <장화, 홍련> 오디션 심사를 해달라고 해서 갔었는데 임수정이 참여해서 얼마나 연기를 잘 하는지 직접 확인하게 되었으며, 김지운 감독에게도 적극 추천했었다.

<이동진닷컴>


김옥빈

박쥐 (2009) ▶ 태주

<박쥐>는 박찬욱 감독이 여러 인터뷰 자리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공공연하게 밝혔던 작품이다. 무엇보다 여주인공 태주 역 캐스팅에 곤욕을 치렀다고. 여러 배우들이 거절했고 촬영 임박 시기까지 캐스팅이 안 되었던 상황에서 정정훈 촬영 감독의 추천으로 김옥빈을 알게 되었다. 영화를 찍을 당시 김옥빈의 나이는 22세. 유부녀 설정에 송강호와 멜로 호흡을 펼쳐야 했던 터라 선뜻 캐스팅하기 어려웠지만 김옥빈은 되려 ‘자신이 노안이라 괜찮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영화를 보면 그녀의 나이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서서히 내면의 욕망을 깨닫고 숨김없이 표출하는 뱀파이어 역에 김옥빈 외에 다른 배우를 떠올리기 쉽지 않게 만들었다.


김옥빈은 극중 태주와 실제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었다. 틀이 잡히지 않은 불안정한 느낌. 그로 인해 보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태주와 닮은 기운을 풍겼다. 함께 일해본 결과 김옥빈이란 배우는 매우 모순적인 면이 있다. 선머슴 같은 모습이 있는가 하면 여성스럽기도 하고, 스포츠를 즐기는 강한 남성의 느낌이 있는가 하면 예민하고 감정 기복이 심한 여성스러운 면도 있다. 매우 변화무쌍하고 예술적 기질이 강해 영화계의 새로운 종자라고도 표현이 가능할 것 같다.

<박쥐> 제작 보고회 현장


미아 와시코브스카

스토커 (2013) ▶ 인디아 스토커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 <스토커>는 감정적으로 예민한 18세 소녀의 성장담을 그린 영화다. 당시 미아 와시코브스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제인 에어>로 한창 인지도를 얻기 시작한 호주 출신 라이징 스타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스토커 집안의 주요 인물들은 겉모습과 달리 이중성을 갖고 있다. 주인공 인디아(미아 와시코브스카)는 엄마와 삼촌, 자신을 둘러싼 이상하고 묘한 기류와 균열까지 예민하게 감지하고 흡수한다. 러닝타임 대부분 건조한 무표정을 지은채 감정을 숨기지만 언뜻 보여주는 미묘한 감정 표현은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간혹 젊고 욕심이 많은 배우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한 번에 발휘하고 싶어 하는데 미아 와시코프스카는 기다리고 판단할 줄 안다. 그런 절제된 연기가 관객을 계속 궁금하게 하는 것 같다. 그 점에서 관객과의 만남에서 우위에 설 줄 아는 배우였다. 눈동자만 미세하게 움직여도 관객의 주목을 확 끌어당기는 표현력을 지녔다.

<씨네21>


김민희, 김태리

아가씨 (2016) ▶히데코, 숙희

히데코(김민희)는 화려하게 꾸민 외양,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귀족 ‘아가씨’로 박제된 인물처럼 살다가 하녀 숙희(김태리)를 만나고 자유의지를 갖고 행동하게 되는 인물이다. 연예계 패셔니스타인 김민희는 일단 외모 면에서도 히데코와 찰떡이다. 한때 발연기라 평가받았지만 연기력을 쌓아가며 자신만의 개성으로 승화시킨 독특한 발성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히데코의 매력을 살리는 데 한몫했다.

숙희는 박찬욱의 다른 여성 캐릭터에 비해 감정을 숨기지 않고 본능적인 반응을 드러내는 다소 수다스러운 캐릭터다. <아가씨>는 공개 오디션 조건으로 ‘최고 수위’, ‘노출에 대한 협의 불가’를 내세우며 캐스팅 단계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다. 14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나 최종 후보 중에 김태리는 없었다. 박찬욱 감독은 최종 단계까지 오른 후보 중 완벽하게 숙희와 어울리는 캐릭터를 찾지 못했다고. 그러던 중 뒤늦게 김태리의 테스트 영상을 보게 된다. 이후 개별 오디션을 통해 그녀를 캐스팅했다.


김태리는 눈이 맑고 시원해서 끌렸다. 어떤 맥락에 놓이느냐에 따라 다양한 감정과 사연을 전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눈이다. 성격이 차분하고 긴장을 잘 하지 않는다. 말의 뜻을 금방 이해하는 데 할 말을 거리낌 없이 해버린다. 분명하고 똑 부러진 스타일이라 군소리가 필요없다. 연기가 미흡해서 한 소리 들을 경우에도 변명 따윈 없었다.

<씨네21>

<뜨거운 것이 좋아>를 개봉 당시 봤더라면 즉시 반했을 거다. (김민희는) 목소리도 말투도 그야말로 무심한 듯 시크한 매력이 있고 코믹한 순간을 탁 포착하는 센스도 뛰어나다.

<씨네 21>


플로렌스 퓨

리틀 드러머 걸 (2018) ▶찰리

박찬욱 감독이 자신의 첫 드라마로 선택한 이야기는 여성 스파이물이다. 박찬욱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여성 주인공이 스파이물 장르로 대변되는 남성적인 대립과 폭력 세계에 휘말려든 뒤, 그 안에서 무엇을 관찰하고 배워나갈 것인지 다뤄보고 싶었다”고 언급했다. 플로렌스 퓨는 극단에서 무명 배우로 살던 현실적 인물에서 국제적인 첩보 활동에 뛰어들게 되며 겪는 모험과 사랑을 겪는 입체적인 스파이 캐릭터를 완성했다. 박찬욱 감독은 찰리 캐릭터를 두고 “적극적이고 사랑에 헌신해 뛰어드는 긍정적 욕망이 가득한 캐릭터”라고 표현했다.


<레이디 맥베스>를 보자마자 플로렌스 퓨의 연기에 반했다. ‘찰리’ 역으로 제일 먼저 떠올린 배우였다. 그녀의 에너지와 활발함, 예상을 벗어나는 기발함이 ‘찰리’를 완성해주었다.

<OSEN>


씨네플레이 조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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