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공개한 2021년 베스트 영화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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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한국 영화잡지 <필로>를 통해 2021년 베스트 영화 리스트를 공개했다. 그가 선택한 영화 9편을 소개한다.


돈 룩 업

Don’t Look Up, 2021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아덤 맥케이의 신작 <돈 룩 업>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티모시 샬라메, 케이트 블란쳇, 메릴 스트립, 그리고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까지 화려한 캐스팅진으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6개월 후 어마어마한 소행성이 지구에 떨어질 거라는 걸 발견한 두 과학자가 세상에 이 사실을 알리고자 고군분투하는 소동을 깨알 같은 위트로 그려냈다. 시종일관 옆구리 쿡쿡 찌르는 듯 젠체하는 농담조에 기가 질리다가도 끝끝내 타협하지 않은 엔딩을 보면 맥케이의 고집에 탄복하게 된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

Flee, 2021

덴마크 감독 요나스 포헤르 라스무센의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감독이 10대 시절 만난 친구 아민의 지난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따뜻한 화풍의 애니메이션과 방대한 영상 자료를 통해, 아민이 아프간 난민으로 덴마크에 홀로 정착하기까지 20여 년의 시간을 재구성했다. 선댄스 영화제와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모두 수상한 이 작품은 작년 발표된 애니메이션 가운데 가장 열띤 지지를 받았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장편 다큐멘터리, 외국어영화 부문에 노미네이트 돼 세 부문 모두 후보에 오른 최초의 작품으로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오는 3월 말이나 4월 초 개봉 예정.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

Mitchells vs the Machines, 2021

로버트 패틴슨 주연의 차기작 다음으로 바다 생물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연출할 예정이기 때문일까, 봉준호는 이번 리스트에 두 편의 애니메이션을 선정했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와 더불어 리스트에 오른 애니메이션은 <그래비티 폴스>의 크레이티브 디렉터 마이클 리안다의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이다. 각자 한 개성 하는 미첼 가족이 로봇들이 덮친 세상을 구한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몬스터 호텔> 시리즈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의 소니 픽처스가 제작해 2020년 초 극장에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개봉이 미뤄지다 작년 4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레벤느망

L’evenement, 2021

2017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2018년 <로마>, 2019년 <조커>, 2020년 <노매드랜드> 등 근래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은 그해 최고 화제작들의 차지였다. 작년 베니스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봉준호와 클로이 자오, 비르지니 에피라 등 심사위원은 만장일치로 감독과 배우의 인지도가 미약한 프랑스 영화 <레벤느망>에 황금사자상을 안겼다. 프랑스 대문호 아니 에르노의 소설 <사건>(L’evenement)을 각색한 영화는 프랑스에서 12주 이내 임신중지가 합법화되기 12년 전인 1963년, 고등학생 안느가 아이를 가진 걸 알고 온갖 불이익과 혐오를 감수하고 중절을 감행하는 과정을 담았다. 3월 초 개봉 앞두고 있다.


썬다운

Sundown, 2021

봉준호가 지난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선택한 또 다른 작품 <썬다운>은 2020년 <뉴 오더>로 베니스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멕시코 감독 미셸 프랑코의 신작이다. 멕시코의 아카풀코 해변에서 한가롭게 휴양을 즐기는 두 남매를 (전작 <크로닉>의 주연이었던) 팀 로스, 샤를로뜨 갱스부르가 연기했다. 닐(팀 로스)은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고 동생과 그의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혼자 남아 너무나 태연히 시간을 보낸다.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시간이 지나가고 유혈이 낭자하는 총격전이 벌어지는 갑작스런 전개가 인상적인 작품이라고.


드라이브 마이 카

ドライブ・マイ・カー, 2021

2021년은 일본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가 신작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으로 전 세계 영화 팬들을 사로잡은 해였대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루아침에 아내를 떠나보내게 된 40대 남자가 몇 년이 지나 제 상처를 직면하고 치유하는 시간을 펼쳐 보인다. 한국에서 반응도 굉장하다. 요즘 시국에 다양성 영화로서 5만5천 명이 넘는 관객을 만났는데, 이와 같은 열렬한 반응에 하마구치의 팬임을 공공연히 드러낸 봉준호가 큰 영향을 미쳤다.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드라이브 마이 카>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 감독상 외국어영화상 각색상 후보에 올라 2년 전 <기생충>의 봉준호가 누린 영광을 다시 한번 재현하리라는 기대가 일고 있다.


해피 아워

ハッピーアワー, 2015

하마구치 류스케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2015년 작 <해피 아워>도 봉준호의 리스트에 포함됐다. 일본 고베를 배경으로 30대 후반 여성들의 결혼과 연애를 둘러싼 고민을 5시간 17분에 걸친 방대한 러닝타임에 새긴 작품이다. 하마구치가 고베에서 진행한 연기 워크숍을 통해 만난 비전문 배우들을 캐스팅해 로카르노 영화제 공동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어마어마한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작년 12월 9일 정식 개봉해 3천 명이 훌쩍 넘는 관객을 동원해, 한국 내 하마구치 인기를 제대로 증명했다.


미안해요, 리키

Sorry We Missed You, 2019

영화뿐만 아니라 여러 행보 중 노동자 계급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내 온 봉준호는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영국 좌파 감독 켄 로치의 최근작 <미안해요, 리키> 역시 리스트에 포함시켰다. 원제 ‘Sorry We Missed You’는 영국 택배 기사가 고객이 집에 부재중일시 남겨놓는 문구. 영화는 택배 회사에 취직한 주인공 리키가 쉴 틈 없이 업무에 열중하지만 금전, 가정, 건강 모두가 악화되기만 하는 과정을 사실적인 터치로 묘사한다.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라는 너무나 흔한 말을 절절히 실감할 수밖에 없는 처절함이 서려 있다.


미싱타는 여자들

2020

다큐멘터리 <미싱 타는 여자들>은 봉준호가 리스트에 올린 유일한 한국영화다. 그는 <미싱 타는 여자들>을 “근래 본 가장 아름다운 다큐”라 소개하고, 시사회에 참석해 영화를 추천하는 무대인사까지 진행한 바 있다. 70년대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졸음예방약을 먹어가며 중노동을 감당해야만 했던 미싱 노동자들이 노동교실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과거를 회고하는 모습을 기록했다. 적게는 15살 많게는 21살, 여자라는 이유로 공부하지 못하고 가족의 생계를 등에 업어야만 했던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교실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기쁨을 알게 되고, 그 공간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며 싸웠던 시간. 그 기억을 가슴에 묻고 꿋꿋이 살아남아 이제 중년이 된 여성 동지들이 그동안 역사가 지나쳤던 순간을 이야기하는 모습들이 더없이 아름답다. 지난 1월 20일 개봉해, 아직 절찬 상영 중이니 꼭 극장에서 만나보자.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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