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칸토: 마법의 세계> – 비교 당하며 자란 모든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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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칸토: 마법의 세계>

누군가와 비교 당하며 자라는 건 영 성가신 일이다. 공부 머리는 영 별로였던 나와는 달리, 동갑내기 외사촌 여자애는 언제나 전교 1등을 놓쳐 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시험을 쳤다 하면 서울시 전체에서 순위권을 다투고, 취미로 배우는 수영으로 조차도 기록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명절 때마다 무슨 영웅설화처럼 전해져 왔다. 그리고 그런 소식 뒤에는 늘 생략된 문장이 있었다. “너는 쟤를 보고 자극 안 받아? 너도 좀 잘 해야겠다는 의욕 같은 게 안 생겨?”

사실 걔만 신경 쓰였던 건 아니었다. 외갓집 식구들은 모두 다 유쾌하고 상냥한 사람들이었으나, 큰 악의 없이 그 존재만으로도 내 기를 죽이는 구석이 있었다. 교육 공무원이었던 외할아버지는 자식들의 사회적 성공과 손주들의 학업 성취도를 체크하는 게 생의 보람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맏딸인 엄마를 제외하면, 두 명의 외삼촌과 한 명의 이모는 모두 서울대와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그런 곳에서 혼자 수학성적 31점을 받은 성적표를 들고 있으면, 누가 딱히 뭐라고 안 해도 나만 이상한 사람인 듯한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매 명절 때마다, 중간고사 시즌과 기말고사 시즌, 대학 진학과 취업 시즌마다 일평생 비교 당하는 일에 질려 있던 내가 내 동갑내기 외사촌의 속사정을 살피게 된 건 세월이 제법 흐른 뒤였다. 오랫동안 노환을 앓던 외할아버지가 먼저 간 외할머니를 만나러 세상을 떠난 뒤, 빈소를 지키던 나는 아주 오랜만에 동갑내기 외사촌과 재회했다. 두 사람 모두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은커녕 서로 연락도 안 하고 지낸 지 이미 너무 오래 되었을 무렵이었다.

200자 원고지 한 장에 얼마를 받는지를 두고 매체와 신경전을 벌이는 프리랜서 마감노동자로 사는 나와, 대기업 생명보험사에서 상품설계와 자금운용을 맡고 있는 그 친구의 삶은 이미 달라질 대로 달라져서 이렇다 할 접점이 없었다. 어쩌다가 시사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프리랜서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 친구는 자본을 다루는 사람 입장에서 이야기를 했다. 그랬으니 정치 이야기는 차마 꺼낼 엄두도 못 냈지. 현재에서 접점을 찾을 수 없었던 우린 자연스레 과거에서 접점을 찾았다. 할아버지가 늘 입버릇처럼 “아무쪼록 공부 열심히 하래이”라고 당부하시던 말투를 흉내 내며, 나는 늘 심중에 묻어뒀던 말을 꺼냈다.

“야, 내가 너 때문에 자라면서 얼마나 피곤했는지 아냐? 맨날 ‘쟤는 모의고사 성적이 몇 점이 나왔다는데, 이번에 OO대학교 들어갔다는데, 너는 왜 의욕이 없냐’ 같은 말로 비교당하면서? 너도 좀 적당히 잘 하지 그랬어.”

그러자 외사촌은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억울하다는 듯 내 말을 받아쳤다.

“너만 비교 당하고 산 줄 알아? 나도 엄마한테 매번 ‘승한이는 글을 그렇게 잘 쓰고 감수성이 뛰어나던데, 말도 어른스럽게 하고 표현력도 좋은데. 예술적인 기질이 뛰어난데 너는 왜 그런 게 없니’ 하면서 비교 당했어. 나도 피곤했어.”

세상에, 외숙모도 너무 하셨지. 쟤처럼 성실하게 열심히 산 아이랑, 나 같은 한량이랑 비교하면서 애를 다그치셨단 말인가. 하긴, 모두 저마다의 고충과 성장통을 겪으면서 자라왔던 거겠지. 쟤라고 사는 게 어디 쉬웠을까.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비교 당하면서 자라느라 피곤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나와 외사촌은, 빈소 한 구석에서 소리 죽여 키득키득 웃었다.

디즈니의 60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엔칸토: 마법의 세계>(2021) 속 한 장면, 마드리갈 가문의 혈족 중 유일하게 마법을 쓰지 못해 미운 오리새끼 같은 대접을 받던 미라벨(스테파니 베아트리스)은, 위기에 빠진 가족을 구하기 위해 맏언니 이사벨라(다이앤 게레로)를 찾아간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능력을 지닌 이사벨라는 그 미모와 자태가 아름답고 우아해서 모두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완벽하신 공주님이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재수가 없는데, 아무 능력도 없는 미라벨에게 툭하면 상처가 되는 모진 말을 던지는 건 더더욱 재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위기에서 구하려면 자신이 이사벨라와 화해해야 한다고 하니, 미라벨은 울분을 꾹꾹 눌러 삼키고 이사벨라의 방문을 두드린다.

미라벨이 몰랐던 건 이사벨라 또한 사는 게 괴로웠다는 점이다. 언제나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문을 빛내야 한다는 책무감에 시달리는 이사벨라는, 혼자서 완벽한 포즈를 연습하고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지어야 했다. 눈부신 성취로 온 가족을 자랑스럽게 만드는 대가로, 이사벨라는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기회를 빼앗겼던 것이다.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그저 행복하기만 한 줄 알았던 이사벨라도, 모두의 사랑과 기대라는 감옥에 갇혀 행복을 가장하는 불행 속에 있었으니까. 미라벨과의 말다툼 끝에 그 사실을 흔쾌히 인정하게 된 이사벨라는 마침내 완벽한 웃음을 지우고는 자신의 진짜 표정을 찾는다.

연휴를 맞아 아무 생각 없이 <엔칸토: 마법의 세계>를 다시 보던 나는, 문득 마드리갈 가문의 일상이 이상하게 낯이 익다는 생각에 잠겼다. 저거, 명절 때마다 내가 외갓집에서 느꼈던 감정인데 싶었던 것이다. 능력 있고 잘 나가는 형제들, 나랑은 달리 뭐든 척척 해내는 엄마와 이모. 삼촌들, 너는 누굴 닮아서 이런지 모르겠다는 듯한 눈으로 나를 보는 집안 어른들, 아직 한창 어린 애에게 “나도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공포를 안겨주는 압박감… 사실은 그 모든 게 다 사랑인 건데, 그걸 아는데,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은 갑갑함.

여느 가족이나 다 그렇듯, 마드리갈 가문의 위기 또한 서로에게 그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에서부터 조금씩 극복된다. 늘 아름답고 강인한 줄 알았던 자매들에게도 사실은 감추고 있는 상처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 그 두려움을 안아줄 때, 자손들을 한계치까지 몰아세우며 더 많은 것을 성취하고 이뤄낼 것을 기대하는 할머니의 냉정함이 사실 자신이 경험한 상처와 상실을 자손들만큼은 겪지 않게 하고 싶다는 절박한 사랑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 모두가 잘 되었으면 하는 자신의 마음이 가족들 모두를 상처 입히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침내 인정하게 되었을 때, 무너져가던 마드리갈 가문은 다시 서로를 바라보고 보듬기 시작한다. 서로에게 너는 너인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그 모든 게 사랑인 걸 이제 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지구 정반대편인 남미 대륙 콜롬비아를 배경으로 한 <엔칸토: 마법의 세계>에서 명절 한국 대가족의 진한 향기를 맡게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가족과 전통을 중시하고 대가족이 모여서 북적거리는 걸 좋아하는 문화권이라면 어디나 비슷하지 않을까? 한국이나 콜롬비아가 아니어도, 지금도 지구 어디에선 누군가 또 사촌들과 비교당하며 고통스러워 하고 있겠지. 나나 미라벨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지난 민족의 대명절 설을 맞아 다 함께 <엔칸토: 마법의 세계>를 보면 좋았을 것 같다. 각자가 억눌려 있던 속내를 나누며 화해하기로는, 가족의 빈소보다는 명절 거실이 훨씬 바람직하지 않나.


이승한 TV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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