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하게 또 다르게, 스필버그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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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어떤 영화든 다시 만든다는 건 쉽지 않다. 특히 그 작품이 오래됐고, 팬층이 두꺼우며, 지금까지 칭송받는 작품이라면 더욱더. 하지만 동시대 최고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새로 만든다면? 1월 12일 개봉하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과연 원작의 전설적인 명성에 걸맞은 리메이크에 성공할 수 있을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초연 실황 앨범 커버

우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전설적이라고 표현했는데, 이건 과장이 아니다. 1957년 초연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이하 뮤지컬판)는 지휘자로 유명한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하고 미국 뮤지컬계의 거성 스티븐 손드하임이 가사를 붙였다. 거기다 이 뮤지컬의 원전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로미오와 줄리엣>. 숙적인 두 가문의 자제가 첫눈에 반해 불같은 사랑을 한다는 스토리는 아서 로렌츠의 손을 거쳐 1957년 뉴욕 맨해튼, 폴란드 이민자와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간의 로맨스로 각색됐다. 발레와 현대무용 등 무용에 일가견이 있는 제롬 로빈스는 ‘샤크’와 ‘제트’ 두 갱단의 싸움과, 토니와 마리아의 사랑을 아름다운 무용으로 승화시켰다. 주요 제작진부터 올스타팀급인 뮤지컬판은 초연 이후 1959년 6월까지 732회의 공연을 마쳤고, 전국투어까지 이어졌으며 토니 어워즈에서 최고의 안무상과 신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1961년판

뮤지컬계에서의 성공으로 끝났다면, 바다 건너 우리에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낯선 작품이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MGM이 뮤지컬을 잽싸게 영화화하면서 그 전설은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다. MGM은 <사운드 오브 뮤직> 로버트 와이즈 감독과 뮤지컬판의 연출 겸 안무가 제롬 로빈스를 공동 연출로 선택했고, 영화는 원작 뮤지컬의 버금가는 퀄리티로 완성됐다. 뮤지컬판의 주역 제롬 로빈스의 합류로 인물들의 군무는 음악과 완벽하게 호응했고, 베테랑 감독 로버트 와이즈는 인물 간의 감정적인 드라마를 카메라에 담았다. 두 사람의 호흡은 아카데미 사상 최초의 감독상 공동 수상으로 이어졌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군무와 특유의 화사한 색감 등으로 지금까지도 독보적인 뮤지컬 영화 중 하나로 남았다.


원작과 1961년판을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한 건 작품이 오래됐기에 보충 설명하는 것도 있지만, 스필버그가 리메이크를 발표했을 때 당시 팬들이 받았을 충격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이처럼 전설적인 행적을 가진 작품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스필버그가? 심지어 생애 첫 뮤지컬 영화 도전? 기대만큼 걱정이 컸을 수밖에 없다. 다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 스필버그는 진작부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광팬이었다. 그는 10살 때 뮤지컬 OST를 처음 들은 이후 모든 넘버의 가사를 외울 정도로 작품을 사랑했고, 특히 뮤지컬판을 다시금 영화로 옮기고 싶었다. 거기에 그는 영화의 샤크와 제트 같은 대립이 현대에 점점 심화되고 있다고 느꼈으니, 지금이야말로 이런 갈등을 다룬 (자신의 최애) 작품을 리메이크하기 적당한 시점도 없었다.

뮤지컬판과 1961년판이 닮았듯, 스필버그의 2021년판 또한 이것들과 닮았다. 영화의 큰 줄기는 거의 복붙 수준으로 같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맨해튼 젊은이들의 갱단 제트와 샤크가 대립하고, 제트의 우두머리 베르나도의 여동생 마리아와 샤크 소속이었던 토니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가 오래 꿈꿨던 프로젝트답게, 디테일하게 들여다보면 영화 속 요소들을 수정해 1961판보다 개연성에 힘을 줬다. 넘버의 순서나 화자를 바꿔 전체적인 틀 안에서 감정선이 유지되도록 하거나 장면의 타당성을 높였다. 스필버그와 <뮌헨>, <링컨>에서 작업했던 각본가 토니 커쉬너가 이런 변화에 힘을 실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1961년판(왼쪽), 2021년판

‘원작 뮤지컬의 영화화’라는 말처럼, 이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현대적인 영화 형식에 맞춰졌다. 1961년판에 있는 서막(Overture), 막간(Intermission)의 삭제가 단적인 예시다. 과거 할리우드 대작에선 보편적이었으나 현재 거의 사용하지 않는 막간·오프닝 크레딧 대신 서사와 캐릭터를 보충하는 방향을 택했다. 1961판에서 제롬 로빈스를 공동 연출로 삼아 발레와 현대 무용을 극대화했다면, 2021년판은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액션’처럼 보이는 안무들을 내세웠다. 전자가 뮤지컬 시퀀스마다 아름답다는 느낌을 준다면, 후자는 작품의 정서에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그렇다고 1961판과 2021년판이 완전히 다른 것은 또 아니다. ‘영화’라는 테두리 안에서 2021년판은 1961판의 향수를 짚어낸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35mm 필름으로 촬영했는데, 그 덕분에 고전영화의 질감이 스크린에 그대로 묻어난다. 또 1961년판 아니타를 연기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리타 모레노를 이번 리메이크에서 재창조한 발렌티나 역으로 섭외해 1961판에 대한 예우와 신작만의 특징을 모두 잡았다. 이런 식으로 원작 뮤지컬의 영화화와 1961년판의 리메이크, 두 가지 영역에서 교집합을 찾아낸 스필버그의 영리한 감각이 2021년판을 보다 풍성하게 만든다.


뮤지컬 장르는 연출자의 감각 이상으로 배우들의 능력이 중요하다. 노래와 연기를 소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처럼 안무가 가득한 작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2021년판은 배우들의 역량을 한껏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모든 배우들이 넘버를 모두 소화한 것은 물론이고, 안셀 엘고트와 레이첼 지글러는 몇몇 넘버를 현장에서 라이브로 불러 연기의 깊이를 더했다. 특히 레이첼 지글러는 무대에서 마리아를 연기했던 경력자이자 스필버그가 “오디션에서 레이첼 지글러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보장한 것처럼 제 몫을 다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가장 화려한 시퀀스 ‘아메리카’를 소화한 데이비드 알바즈, 아리아나 데보스 등 조연들의 열연도 열정적인 제트와 샤크의 에너지를 관객들에게 전한다. 군무 리허설만 4개월을 했다는 제작 후문처럼 앙상블들의 군무와 고도로 계산된 카메라 동선이 에너제틱한 순간들을 포착했다. 원작을 봤다면, 이 영화가 어떻게 1961년판과 다른 구성으로 뮤지컬 시퀀스를 구현하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충분할 것이다.

물론 이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장점만으로 꽉 찬 걸작이라곤 할 수 없다. 오래된 원작처럼 구태의연한 스토리나 1961판의 화려한 색감과는 정반대의 투박함이나 관객마다 호불호가 갈릴 지점이 명확해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1961판에서 다소 빈약했던 토니와 마리아의 감정선과 캐릭터 묘사는 이번 리메이크에서 확실히 챙기고 가는 부분. 섬세하고도 뜨거운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거나 수십 년간 사랑받은 뮤지컬의 비결이 궁금하다면 이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챙겨보라고 권하고 싶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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