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라운드> 삶이 그대를 취하게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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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꿈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꿈의 내용이다.’ <어나더 라운드>는 덴마크 실존주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의 말을 인용한 자막으로 시작한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을 ‘나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라고 정의했고, ‘절망할 줄 아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정상적이고 정신이 더 건강한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절망을 느끼는 마음은 비정상이 아니라 실존적인 고민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절망이란 결국 삶을 무너뜨리는 한 방이 아니라 무너진 삶을 일으키기 위해 바닥을 짚는 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나더 라운드>는 ‘술 한 잔 더 돌려(Another round)’ 정도의 의미로 해석되는 영어 제목처럼 술에 관한 영화다. 원제 <Druk> 역시 술을 의미하는 덴마크어이며 음료를 마실 때 내는 ‘꿀꺽꿀꺽’ 같은 의성어 자체를 표현하는 의미로도 쓰인다고 한다. 그러니까 역시 술에 관한 영화인 것이다. 다만 술이 주인공인 영화는 아니다. 돌아갈 수 없는 어떤 시절을 꿈꾸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돌아가고 싶은 어떤 감정에 관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달리 감정은 회복할 기회가 있다. 다만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어나더 라운드>는 그 용기가 필요했던 한 남자가 술을 통해 빌린 용기로 인해 겪게 되는 어떤 절망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학생에게도, 가족에게도, 그저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존재로 여겨지던 마틴(매즈 미켈슨)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동료 교사 세 사람과 함께 저녁 모임을 갖던 중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노르웨이 철학자이자 정신과 의사 핀 스코르데루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에게 부족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채우면 보다 대담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제하던 술을 들이켜던 마틴은 함께 잔뜩 취한 일행과 함께 오래간만에 애들처럼 왁자지껄하게 어울린 뒤 이론을 실행해보기로 한다. 네 사람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유지하며 그 경험을 공유하기로 한다. 그렇게 취중 수업과 취중 일상이 시작된다.

앞선 내용만 보자면 언뜻 네 얼간이들의 꽐라 소동극을 다룬 코미디 같지만 영화는 그렇게 가볍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술의 적당한 취기를 빌려 삶을 회복하는 네 남자는 점점 자신감이 붙는다. 늘어지던 일상에 탄탄한 근력이 생긴 것처럼 활기가 샘솟는다. 항상 어색하기만 하던 수업을 활발하게 주도하며 학생들을 매료시킨다. 그렇게 모든 것이 다 잘될 것만 같다. 하지만 자기 것이 아닌 용기를 빌려 쓴 대가는 점차 일상의 발목을 잡는다. 일방통행길을 역주행하듯 달려드는 취기에 중독된 일상이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0.05%만 유지하면 적당한 자신감도 유지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을 바라는 순간이 잦아진다. 자꾸 선을 넘는다. 그때마다 삶도, 머리도 바닥을 친다. 잘 살고 싶어서 선택한 취기에 빠진 삶이 점점 헤어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취기로 빌려 쓴 용기는 채무처럼 쌓여 있던 삶의 체증을 모두 치워주지 않는다. 잠시 가릴 뿐이다. 취기로 삶을 이기는 것인지, 취기가 삶을 잡아먹는 것인지 점점 구별하지 못하고 거듭 선을 넘는 상황에서 자아는 점점 미망해진다. 술이 삶을 중독시키는 것인지, 삶이 술에 중독되는 것인 것 몰라도 이젠 실험을 멈추고 술을 끊은 채 일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취기의 족쇄를 풀고 제정신으로 다시 떠올라 삶을 대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족쇄에 빠져들어 맥없이 침전하기도 한다. 그 사이 술의 힘을 빌려 회복했다고 믿었던 관계도 무너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계절도 바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또다시 나아간다.

<어나더 라운드>의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는 어린 딸로부터 덴마크 10대들의 음주 문화에 대해 듣게 됐고 영감을 받아 희곡을 썼다. 그리고 아버지가 쓴 희곡을 읽은 딸은 시나리오 각색을 강권했고, 딸의 압박에 이기지 못한 빈터베르그는 시나리오를 썼고 영화를 만들게 됐다. 그리고 딸로 인해 시작한 영화이니 딸을 출연시키려고 했다. 매즈 미켈슨이 연기할 캐릭터의 딸 역할을 맡길 예정이었다. 하지만 촬영이 임박할 무렵 불의의 사고가 찾아온다. 교통사고로 딸이 죽어버렸다. 빈터베르그는 영화는 물론 삶까지 놓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 잡았다. 시나리오를 고쳐 썼고,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딸에게 영화를 헌정했다. ‘이다를 위하여(Til IDA)’라는 엔딩 시퀀스 이후의 자막은 감독의 그런 사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영화는 어느 한 사람의 눈물로 빚어서 환희로 숙성되는 기이한 세계이기도 한 법이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매즈 미켈슨이라는 배우의 매력을 통해 깊고 너른 흥미를 자아내는 작품인데 특히 엔딩 시퀀스에서 매즈 미켈슨이 보여주는 놀라운 춤은 평소 그의 춤 실력을 확인해보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로 연출된 장면이라고 한다. 배우로 데뷔하기 전인 유년시절에는 기계체조 선수로, 고등학생 시절에는 발레 무용수로 활동한 바 있었던 매즈 미켈슨의 전력을 잘 아는 감독은 그의 육체를 빌려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로 끌어올린다. 오랜만에 안무가의 지도에 맞춰 춤 연습에 매진해야 했지만 대역을 일절 쓰지 않고 직접 모든 안무를 소화한 매즈 미켈슨이 장식한 열정적인 피날레는 <어나더 라운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온몸으로 대변하는 열연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까 삶은 결국 어떻게든 살아지는 법이다. 그리고 취할 수 있다는 건 결국 살아있다는 것이다. 비틀거리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가끔씩 운이 좋으면 누군가가 내미는 손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일어나 다시 누군가와 함께 취하고 싶고, 깨어나고 싶고, 살고 싶게 만든다. 비록 삶이 절망으로 취하게 할지라도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다시 희망할 수 있음을 꿈꾸게 만든다. <어나더 라운드>는 끝내 부딪히고 비틀거릴 수밖에 없는 삶을 일으키는 인생의 건배 같은 영화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오는 문장처럼,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삶이여… 다시!”


글 민용준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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