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 <런던 프라이드>, <우리, 둘>로 무지개 깃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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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지난 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일명 ‘아이다호 데이(IDAHOT :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 Transphobia)’였다.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가 국제 질병 분류에서 정신질환으로 분류되던 동성애를 삭제하면서 동성애를 질병이나 치료의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올해로 32번째를 맞이한 ‘아이다호 데이’는 이제 단순히 질병코드 삭제에 대한 기념일이 아닌 많은 이들의 노력과 투쟁, 변화에 대한 상징이 되었다. 오늘은 ‘아이다호 데이’를 기념하며 영화로 성소수자와 연대해보면 어떨까?


사회적 인정과 제도적 지지는 확대되어야 한다. <우리, 둘 (Two of Us)>(2019)

마도(마틴 슈발리에, 왼쪽)와 니나(바바라 수코바)는 오랜 연인이다.

니나(바바라 수코바)와 마도(마틴 슈발리에)는 아파트 복도를 사이에 두고 따로 또 같이 살고 있다. 가까운 이웃처럼 보이지만 사실 둘은 20년째 사랑을 이어온 연인. 은퇴 후 한가한 날들을 보내던 둘은 집을 정리하고 처음 만났던 로마로 이주해 여생을 보낼 계획을 한다. 다만 마도는 가족들에게 오랜 시간 숨겨왔던 연인의 존재를 고백해야 한다. 마도의 생일, 쉽지 않은 고백 과정에서 그녀는 결국 충격으로 쓰러지고 후유증으로 거동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니나는 마도가 걱정되어 그녀 주위를 맴돌지만 외견상 그저 이웃에 불과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인다.

한 매체에서 <투 오브 어스>를 ‘노년 레즈비언의 특별한 로맨스’로 홍보하는 것을 봤다. 모든 사랑은 특별하므로, 그래, 두 사람의 이야기도 특별하다. 하지만 영화 속 두 여인의 모습, ‘노년의 로맨스’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나에게 니나와 마도는 편견의 두려움에 망설이고,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앞에서 좌절하고, 현실에 저항하기 위해 스릴러의 주인공도 돼보지만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고 슬픈 춤을 추는 불안한 커플의 이미지다.

니나와 마도는 복도를 사이에 둔 아파트 이웃이자 20년 넘은 연인이다.

이 불안의 이미지는 성소수자인 주인공들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제도적 지지의 부재 때문이리라. 홀로 쓰러진 마도를 발견한 것은 니나였지만, 마도가 쓰러진 순간, 니나는 마도에게 철저한 타인이 된다. 흔적을 남기지 않았던 사랑은, 아니 흔적을 남길 수 없었던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과 아픔을 나눌 권리마저 앗아간다. 정상 가족 밖에 위치한 관계들은 수술 동의서 보호자란에 사인을 할 수도, 장례를 치러 줄 수도 없다.

한국이 아닌 프랑스에서조차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란 이렇게 단단하다. 때로 ‘가족’이라는 형식만 갖춰지면 내용은 무시된다. 마도와 남편의 관계처럼.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용이며, 그것을 채우는 것은 혈연도 이성애의 결합도 규범에 매인 가정도 아니다. 로마에서 여생을 함께 보내기로 결심한 니나와 마도, 두 사람 (Two of Us)의 사랑이 본질이다. 1인 가구 증가, 초고령사회 진입 등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가족의 형태를 상상해 본다. 이제는 이성애에 기초한 결합만을 인정해서는 주변부의, 포섭되지 않는 관계들이 너무 많다. 사회적 인정과 제도적 지지는 반드시 확대되어야 한다.


편견보다 강한 연대의 힘! 연대의 깃발을 올려라. <런던 프라이드>(2014)

광부들의 시위에 성소수자가 나서고 성소수자의 집회에 광부들이 앞장선다. 상대방을 위한 연대가 아니다. 나를 위한 연대이다. 어느 투쟁에서 이기든 ‘우리 모두’ 승리자가 되기 때문이다

1984년 영국. 경제 위기를 이유로 민영화와 복지 축소, 대량 해고를 우직하게 밀어붙여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대처가 수상으로 집권하고 있다. 탄광 폐쇄와 해고에 맞서 석탄 노조는 파업을 이어간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 했던가. 오랜 싸움은 노조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투쟁 의욕은 시나브로 사라져만 간다.

마크(벤 슈네처)는 탄광 노동자들의 투쟁을 접하고 LGBT* 친구들과 LGSM(Lesbians and Gays Support the Miners)이라 부르는 단체를 만들어 광부들을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한다. 작은 탄광 마을로 가 연대의 의지를 보여주지만 LGSM의 L이 런던 London이라 으레 생각할 정도로 성소수자는 손을 잡기 낯선 존재들이다. 게이 레즈비언에 대한 거부감으로 연대를 거절하지만 함께 대화를 나누고 먹고 마시며 점차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LGBT :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저 멀리서 들려오는 기사나 풍문, 또는 숫자로 표시되는 “무엇”이 아니라 손을 마주 잡고 살을 비비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단순한 진실을 알게 되리라.

아이다호 데이를 맞이해 몇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여성이 국민의 대표자가 된다면 성차별이 해소될까?

흑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인종차별이 극복될까?

지도자의 정당색이 바뀌면 소수자가 온전한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까?

어쩌면 우리는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경험해 봤으니까.

그렇다면 이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는 무엇이 담보할 수 있을까. 영화 런던 프라이드는 대답한다.

이질적인 부류 사이의 관용과 이해, 그리고 연대.

연대란 주고받는 거래가 아니다. 지지해 준다고 우월하거나 지지 받는다고 열등한 것이 아니라 서로 배우고 스스로 지평을 넓혀 성장하는 과정이다.

광부들과 성소수자들의 첫 만남은 어색했지만 함께 싸우고 책임을 다하겠다는 진지함이 서로의 마음을 움직였다. 1984년을 살던 광부들은 스스로 인정하든 안 하든 사회적으로 고립된 소수자와 다름 아니었다. 소수자란 확실한 정의나 범주가 있지 않다. 지배자에 따라, 시대, 사회구조, 또는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그 테두리는 늘고 준다.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 차별과 혐오가 우리 모두의 문제인 이유다.


차별의 벽은 여전히 공고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역사의 흐름은 성소수자들 편이라는 것. 성소수자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개별 성소수자의 입장에서 보면 변화는 더디고 인생은 짧다. 아이다호 데이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한 참가자는 말한다. “지금 우리 주위에서 거리를 지나는 성소수자들이 오늘만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인간은 ‘오늘만이라도 행복한 삶’이 아닌 ‘자신의 행복을 통제할 수 있는 매일’을 살아야 한다.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존엄한 존재로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마땅한 권리, 이 권리가 성소수자들에게 하루빨리 인정되어야 한다. 그 권리를 위해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연대하자’.


문화기획자 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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