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럽이 되고 싶은 ‘관종’ 시그네가 최악이지만 사랑스러운 까닭! <해시태그 시그네>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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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제대로 미쳐버리고 싶은 날. 세상의 중심에 서서 ‘내가 여기 있어요’라고 외치고 싶은 날. 문뜩 혼자인 것이 실감 나 펑펑 울어버리고 싶은 날. 여기 제대로 미쳐버린 영화가 있다. <해시태그 시그네>는 다른 이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를 파괴해나가는 관종, ‘시그네’의 이야기를 담았다.

토마스의 파티 디너 자리에서 거짓말을 한 시그네. ⓒ판씨네마

시그네가 관심에 목마르게 된 까닭은 남자친구 ‘토마스’의 공헌이 크다. 행위 예술가인 토마스는 시그네를 사랑의 대상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관심을 사기 위한 ‘도구’로 여길 뿐이다. 토마스의 파티 저녁 자리에서 시그네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고자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다며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이후 자신도 모르게 견과류가 들어간 음식을 먹고는 알레르기 증상이 도진 마냥 혼신의 연기를 쏟아낸다. 이때부터 시그네는 타인의 관심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을 시작한다.

*이 글은 영화 <해시태그 시그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찰나의 관심이 욕심으로 번진 순간

동네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시그네는 토마스와 달리 주변 인물들에게 큰 인정을 받지 못한다. 지루한 나날을 보내던 중 개에게 물려 피투성이가 된 카페 손님을 도우며 난생처음 관심을 받게 된다. 아무도 쉽사리 다친 손님을 돕지 못한 가운데, 자신의 흰 셔츠가 피로 물드는 지도 모른 채 시그네는 정신없이 손님을 끌어안으며 피를 막기 위해 애쓴다. 집으로 가는 길, 시그네는 세수를 하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버스를 타고 도로를 거닌다. 그런 그를 보고 놀란 동네 주민이 ‘괜찮냐’며 진심 어린 걱정을 건네고 시그네는 묘한 희열을 느낀다.

관심을 받기 위해 약물에 손을 댄 시그네. ⓒ판씨네마

사람들의 더 큰 관심이 고팠던 시그네는 급기야 약물에 손을 댄다. 작중 등장하는 가상의 약, ‘리덱솔’은 오남용 시 엄청난 피부 부작용을 일으킨다. 피부가 잔뜩 뒤집어진 복용자들의 사진을 보며 시그네는 다짐한다. 결국 리덱솔을 손에 넣은 시그네는 한 알씩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다.

언로맨틱 코미디의 탄생

결국 병원행. ⓒ판씨네마

그 사이 시그네는 토마스에게 몇 번의 시그널을 건넸다. 약의 증상이 피부에 보이자 ‘나 뭐 달라진 거 없어?’라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토마스의 시큰둥한 대답뿐. 참다못한 시그네는 주방에 있던 리덱솔 한 통을 입에 다 털어 넣어버린다. 다음날 충격적인 몰골로 등장한 시그네는 결국 병원으로 향한 후 온 얼굴을 흰 붕대로 휘감게 된다. 그제야 시그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듯한 토마스지만, 이마저도 ‘병든 여자친구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남자친구’ 코스프레를 하기 위해서였다.

토마스와 시그네. ⓒ판씨네마

시그네와 토마스의 관계에서는 도무지 로맨틱함을 찾아볼 수 없다. 토마스는 시종일관 잘난 체하기 바쁘고, 시그네는 그런 토마스와 주변 인물들의 관심을 사기 위해 거짓말을 늘어놓고 약을 오남용하는 등 자기 파괴를 감행한다. <해시태그 시그네>의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모든 것을 주인공 시그네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시나리오를 쓸수록 오히려 남자친구 토마스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라며 “세상 모든 이들의 관심을 독차지해야만 만족하는 시그네의 행동은 남자친구와의 경쟁적인 연인 관계로부터 출발했다”라고 전한 바 있다.

시그네, 최악이지만 사랑스럽다!

광고 모델이 된 시그네. ⓒ판씨네마

시그네가 사람들의 관심을 사기 위해 택한 방법은 최악에 가깝다. 스스로를 파괴시키는 약물 중독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얼굴이 붓다 못해 곪아 피부는 금세 떨어져 나갈 것만 같고, 급기야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더니 탈모까지 올 지경에 이른다. 이뿐인가, 길을 걷다 멈춰 서서 벽을 잡고 덜덜 떨기 일쑤다. 시그네는 자신의 병을 ‘원인불명’으로 규정짓고 셀카를 찍어 SNS에 업로드한다. 급기야 에이전시의 패션모델로 발탁되어 광고 촬영 모델까지 제안받는다.

남자친구뿐만 아니라 친구들, 그리고 다른 광고 모델에게까지 ‘시기’와 ‘질투’를 멈추지 못하는 시그네의 모습은 유치하다 못해 심히 걱정스럽다. 그럼에도 시그네는 사랑스럽다. 시기와 질투는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감정이지 않은가. 한없이 어리게 보이는 시그네의 행동과 표정, 말투가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건 나 역시 나도 모르게 시기와 질투를 느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관종’ 이야기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

약을 찾아보는 시그네. ⓒ판씨네마

<해시태그 시그네>를 보고 ‘미친 관종의 이야기’라고 치부하며 웃어넘길 수 없는 이유는 이미 관종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인스타그램 중독자이기도 한데, 게시물을 올리고 나면 나도 모르게 하트가 몇 개나 쌓였나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 평범한 카페도 인스타 핫플이 되면 그곳이 곧 성지가 되고, 근거 없는 루머도 빠르게 확산되며 ‘소문만 무성한 사실’이 되어버린다. 단순히 장소뿐만이 아니다. 패션, 운동, 식생활까지 모든 곳에서 SNS의 파급력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관종’이 되기를 자처한다. 인스타그램 속 네모칸 외에는 어떤 생활이 도사리고 있을까? 시그네처럼 약물 중독을 ‘원인불명의 병’으로 스스로 규정짓고 남들을 속이는 이들도 분명 있을 터. 스스로를 위한 삶이 아닌 보이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은 비단 작중 시그네뿐만이 아니다.

이처럼 이 시대 관종들의 문제를 다룬 <해시태그 시그네>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오래된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듯한 느낌이 든다. 현시대의 사회문제를 다루면서 옛날 필름 느낌을 준 것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은 이에 대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SNS 시대의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나르시시즘과 같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다루고 싶었다”라며 “스마트폰과 SNS가 등장하는 현대적인 배경을 옛날 영화의 느낌을 줄 수 있는 35mm 필름으로 촬영했고, 클래식 음악을 삽입해 끔찍한 것들로 묘사하는 이 작품이 아름답게 번역되길 바랐다”라고 설명했다.

주연 배우들의 남다른 이력

시그네 역을 맡은 크리스틴 쿠야트 소프. ⓒ판씨네마

시그네를 연기한 크리스틴 쿠야트 소프는 노르웨이 출신의 배우이자 프로덕션 디자이너, 그리고 베스트셀러 아동문학 작가로 활동했다. 덴마크 왕립 아카데미에서 건축과 디자인을 공부한 크리스틴 쿠야트 소프는 디자이너로 일하면서도 틈틈이 연기 생활을 이어왔다고 한다.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과 작업할 기회를 10년 넘게 기다린 크린스틴 쿠야트 소프는 “관객들이 차마 사랑하기 어려운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었다”라며 “’시그네’를 통해 자신과 닮은 점을 한 군데는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토마스 역을 맡은 아이릭 새더. ⓒ판씨네마

토마스 역을 맡은 아이릭 새더의 이력은 더욱 놀랍다.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 예술 학교를 졸업한 아이릭 새더는 설치미술과 영상을 결합한 종합 예술을 선보이는 비주얼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예술 이력을 살려 행위예술가 토마스 역을 누구보다 자연스레 소화할 수 있었다. 아이릭 새더는 극 중 토마스가 다른 이의 가구를 훔치는 장면에 대해 “잊어버리거나 묻고 싶었던 개인적인 역사마저 끄집어내어 연기에 투영했다”라고 밝혔다. 실제 예술가로 활동하며 생계의 어려움도 겪었다는 그는 <해시태그 시그네>를 통해 성공적인 연기 데뷔를 할 수 있었다.


씨네플레이 / 허프포스트코리아 남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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