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는 테크노 음악인데, 공포나 스릴러로 느껴지는 건 왜일까? 배우 김용지 스크린 데뷔작 <둠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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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음악의 일부인 테크노 장르. 많은 이들에게 생소할 법한 이 장르는 음악 매니아 층에서 사랑받고 있다. 특히 이 장르의 본거지인 독일 베를린은 ‘테크노’의 성지로 꼽힌다. 영화 <둠둠>의 주인공 이나(김용지 분)에게 ‘베를린’은 한 줄기 희망의 땅이다. 자신에게 전부였던 음악을 놓고 앞이 보이지 않는 삶을 사는 그에게 갑자기 찾아온 베를린에서 열리는 디제이 오디션 기회. 그걸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나의 여정이 곧 <둠둠>이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식 초정받기도 했던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신선한 소재기도 하지만, 주인공을 맡은 배우 김용지가 처음 스크린 데뷔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둠둠> 포스터.

솔직히 말한다. 내게 이 영화의 장르는 공포, 스릴러에 가깝게 느껴졌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불안’이다. 주인공 이나의 불안 가득한 삶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숨이 턱 막힌다. 그는 불안을 통해 살고, 도리어 그 불안에 의해 움직인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엄마와 위탁 가정에 맡겨 놓은 아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다니는 직장. 그렇게 하루하루를 연명하듯 살아가는 이나는 한때 인정받는 실력을 갖춘 테크노 DJ였다. 길을 걷다 우연히 듣게 된 비트. 그를 통해 답답한 자기의 세계에 진정 필요한 건 음악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나는 말한다. “음악만 하고 싶은 거, 내가 이기적인 건가?”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현실에서 음악을 하려는 건 순전한 욕심처럼 느껴진다. 가장 가까운 사람인 엄마는 이나가 음악하는 것에 대해 “여자애가 평범하게 좀 살아”라며 타박줄 뿐이다. 회사는 입사할 때 미혼모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음을 전한다. 이나는 “제가 회사 일에 지장 준 적 없잖아요”라며 항변한다. 아무리 둘러봐도 출구 없는 버거운 현실이다. 이런 이나에게 찾아온 기회, 바로 베를린에서 2년 간 레지던트 디제이로 일할 수 있는 오디션이다. 게다가 그곳에서 지낼 집까지 준다니.

베를린이라는 새로운 곳에서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주인공 이나를 다시 디제이 덱 앞으로 데려다 둔다.

그렇게 시작된 이나의 오디션 도전기.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하필 많고 많은 음악 장르 중에 테크노일까. 미니멀한 사운드 디자인과 그 속에 강한 힘을 가진 테크노. 듣고 있노라면, 깊고 길게 울려 퍼지는 비트는 심장 소리를 닮았다. 이 비트는 이나의 마음 깊은 속에 있는 열망을 파고 들어가 일깨운다. 영화를 연출한 정원희 감독은 프랑스 유학 당시 일렉트로닉 음악과 디제잉을 접했고 묘한 분위기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정 감독은 테크노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테크노라는 음악은 리스너가 주체적으로 자신을 철학적 주제와 연결할 수 있게 만들어서 매력적이었다. 자기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음악 장르와 남다른 특징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답답한 현실에서 탈출구를 찾는 힘은 이나에게 있어 바로 음악이다. 그의 불안은 테크노 음악의 강렬한 비트와 함께 끊임없이 증폭되며, 그 음악의 소용돌이 속에서 더 뚜렷해지는 자신의 문제를 직면한다. 그와 동시에 지금의 현실과는 다른 멋진 삶을 살고 싶은 욕망도 고개 든다. 음악보다 더 시끄러운 주변 사건들 속에서도 온전히 음악에 집중하는 이나의 모습에서 절박한 탈출 의지를 엿보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날카로운 전자음에 집착하는 그의 욕망, 관객으로 하여금 이 음악이 이나를 어떤 곳으로 데려갈 수 있을지를 두고 보게 한다.

이나(김용지 분)와 엄마(윤유선 분) 사이의 모녀 갈등의 핵심에는 ‘불안’이 있다.

이나 엄마의 불안이 종 잡을 수 없는 어떤 증상들로 변하면서 이나에게도 그 감정들이 옮겨간다. 이나 엄마는 이나 아빠가 죽은 후 삶의 의지를 잃은 대신 불안을 얻었다. 실제로 지진이라는 재난이 일어날 가능성은 극히 낮음에도 엄마는 계속해서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는 그 어떤 추상적인 공포에 시달리며 산다. 삶에 대한 그 어떤 두려움이 지진에 대한 두려움으로 표출된 것이다. 이는 이나에게 견디기 힘든 무게로 다가온다. 이런 엄마의 상태 때문에 위탁모에게 맡긴 딸을 집으로 데리고 올 수도 없다. 그러나 이나는 자신의 꿈인 음악에 다시 열정을 쏟으면서, 입양을 앞둔 자신의 아이를 직접 키우기로 한다.

영화 <둠둠>에 아쉬운 점 분명히 있다. ‘테크노’ 음악이라는 대중에게 생소한 소재를 다루는 만큼,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불안을 다루는 데 감독의 불안이 투영된 것 같다는 인상이 있다. 많은 창작자가 자신의 경험으로 작품을 만들겠지만, 그 작품에 대해서는 적어도 일말의 확신이 보여야 한다. 그러나 <둠둠>에서는 그게 잘 보이지 않는다. 의욕은 넘치지만, 어딘가 확실치 않은 연출적 불안이 관객의 피부에 그대로 닿는다. 그러면 보는 관객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배우들의 연기에서 안 맞은 옷을 입은 듯 어색하게 느껴지고, 서사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의의가 없지는 않다. 기존에 없었던 마이너한 장르인 테크노 음악을 조명해 하나의 여성 서사를 만들어 낸 것. 그 자체만으로도 도전이었을 것이다.


이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둠둠>은 정원희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이는 그가 앞으로 보여줄 것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여성이 자신의 삶의 주체로 꿈을 좇는 여성 서사는 귀하다. 그래서 응원하고 싶다. 미혼모로 살아가는 이나는 자신을 혼자서 키운 엄마를 닮을까봐 두려워한다. 이는 이나의 엄마도 마찬가지다. 자기처럼 이나가 살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이렇게 이나와 엄마, 어린 딸과 이나. 두 모녀 관계는 서로의 불안을 먹고 자란다. 이 관계 속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 사회에서 직면하는 폭력적인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이 영화가 공포, 스릴러 장르처럼 느껴졌던 이유, 이제야 알겠다. 그건 바로 여성의 보편적인 불안을 목격하는 데서 오는 공포감이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씨네플레이 기자 김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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