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장르적 쾌감! <헌트> 상업영화의 어떤 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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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 첩보+액션+스릴러로 완성된 수작

첩보물 spy film이나 스파이 장르 Espionage의 역사는 20세기 중반까지 올라간다. 1940년대 나치 스파이 스릴러에서 시작하여 60년대 007 제임스 본드의 영화, 냉전 종식 후 오늘 날 국제무대를 배경으로 한 블록버스터로 크게 나뉜다. 이는 슈퍼히어로 장르와 섞여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저>(2014) 처럼 변용되기도 하고, 심플하게 설정을 틀어 <본 시리즈> (2002~2007)처럼 응용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첩보 이야기를 펼칠만한 무대는 어디가 있을까? 아직도 전쟁중인 북한과의 정보전을 그린 <쉬리>(1998)나 <베를린>(2013), 혹은 <밀정> (2016) 처럼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상대하는 배경을 떠올릴 수 있겠다.

<헌트> (2022)는 북한과 80년대 한국현대사의 엄혹한 분위기를 차용하여, 첩보의 플롯을 스릴러의 장르아래 액션의 외피를 입혀 완성한 수작이다.

<암살>(2015>에서도 스파이로 분하신 이정재 님. 총알 구멍을 자랑하고 있다.

배경은 안기부가 존재하던 제 5공화국 전후

영화는 1983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79년 박정희가 피격당한 10.26.부터 시작해서, 79년 12.12. 군사반란을 지나 당시 굵직한 사건이었던 장영자 7천 억 사기사건, 북한 이웅평 대위의 미그기 귀순 사건, 그리고 83년 10월의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등을 배경으로 제시한다.

안기부 내에는 ‘동림’이라는 이름의 북한 첩자단이 있다. 이를 색출하기 위해 부장 (김종수 분)은 안기부 해외팀장 평호 (이정재 분)와 국내팀장 정도 (정우성 분)에게 각자 은밀하게 지령을 내려 둘을 서로가 감시하게끔 한다. 영화는 83년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부터 시작해서 방일일정을 지나 클라이막스에서 태국까지 가는 (실제로는 버마-현재의 미얀마-지만 극 중에서 대체함) 이야기가 두 주인공이 서로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한 방첩활동과 함께 쉴새 없이 진행된다.

그러면서 평호의 부하인 주경(전혜진 분)은 정도의 라인이자 북에 자금을 댄것으로 의심받는 최규상(유재명 분)을, 정도의 부하인 철성(허성태) 은 평호의 지인이자 일본에서 조총련계 학교를 졸업한 유정(고윤정 분)을 각자 잡아놓고 가혹한 고문과 함께 누가 먼저 자백을 받아내느냐에 따라 서로의 목숨이 달린 제로섬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의 안기부가 만들어냈던 사회상을 떠올리며 씁쓸한 회상에 잠기거나 서로 이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스피디하게 넘어가는 속도감등은 중반의 소반전 이후 결말을 향하는 큰 에너지가 된다. 시종일관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긴박과 압박이 들어와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 한다.

동림 = 東林 = east wood.

훌륭한 감독이자 배우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바치는 헌사 아니겠는가

연출의 디테일은 아쉬운 부분

연출이 기본적으로 해야하는 카메라의 위치 선정, 그리고 다음 컷의 느낌, 이것을 편집으로 어떻게 이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컨셉은 와닿지 않는다. 예를 들어 총격씬에 있어서 기본적인 피아 세력의 좌우 방향이 일정하지 않아서 헷갈린다. 그러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총을 쏘던 인물들이 다음 장면에선 반대 방향으로 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혼돈을 표현하기 위해 흔히 쓰이는 기법이지만, 그 장면에서는 무질서나 불안을 표현하기 이전에 우선 총알이 오가는 긴장 아래 적과 아군의 상태를 전달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상황을 세팅하고 혼란을 연출해야하는 순서가 뒤바뀌니 당장 아군이 총에 맞고 쓰러지는 급박함과 빠른 템포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강조되어야 할 것이 엉뚱하다는 인상이 있다.

평호와 정도의 대립은 초반부터 후반이후 서로의 정체를 알게되기 까지 주요한 갈등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무드를 잡고 이야기를 거의 멱살잡듯이 끌고 가는 것은 반템포 빠른 편집과 속도를 늦추지 않는 음악이다. 음악은 감상적인 곳에서 극의 진행을 도와주는 기능등으로 작용하지는 않지만, 두 주인공과 밀접한 수하와 그들이 잡아들여 고문하는 장면에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1등 공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역시 촬영 단계에서 계산됐다기 보다는 후반에서 결정된 인상이 있어서, 밀어 붙이기만 하는 해결방식이 따라가기에 벅찬 서사를 만들어 낸다. 같은 촬영감독이 똑같이 헨디헬드 촬영으로 만들어낸 <비상선언>(2022)의 초반부를 생각하면 정교함에 대한 비교가 될 것이다.

많은 유명 까메오를 한꺼번에 출연시켜 시선분산을 막는다. 그럴거면 무명 배우를 기용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원식 (이성민 분)의 활용은 좋은 사례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쉬움을 상쇄하는 장점 : 논조와 정교한 인물관계

그러나 아쉬운 측면을 덮고 남을 정도로 <헌트>에는 장점이 많다. 가장 큰 것은 메세지 전달을 위한 이야기의 내재적 논조와 엔딩을 위해 정밀하게 짜여진 인물관계라고 할 수 있다.

평호와 정도는 다른 사람이다. 인질 생포를 위해 위험에 몸을 던지는 방식과 바로 사살하는 대응부터 시작하여 입고 있는 의상, 국내/외를 담당한다는 설정, 밀접한 부하의 성별까지 다르다. 그러나 그들은 대통령이라는 반란수괴를 죽이기 위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치 <영화는 영화다>(2008)에서 두 주인공이 갯벌에서 진흙을 뒤집어 쓰며 동일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처럼, <헌트>의 두 남주 또한 폭탄테러가 터졌을 때 잿더미를 뒤집어 쓰며 동일한 존재로 변해간다.

평호와 정도는 우정과 적의를 동시에 품고 있다. 이것은 취조실에서 매직미러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노려보는 장면으로 이미지화된다. 서로가 의심을 품고있으면서도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가 강조되는 것이다. 거울을 보면서 서로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자기 얼굴만 보이는 상황에서 ‘그 둘이 서로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관객인 우리 뿐이다. 이 더블 아이러니의 정보값으로 인해 이야기는 깊어지고 긴장은 올라간다. 이런식으로 이미지화 된 요소들이 곳곳에서 이야기의 진행을 도우며 긴박감을 높인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원했던 평호의 굳게 믿는 마음은 속속들이 이용만 당한다. 그리고 독재자의 죽음을 원했던 정도의 최후 또한 쓸쓸했다. 그리고 가장 아끼는 직속부하를 계획에 걸림돌이 되자 죽이거나, 간첩으로 위장 시키면서 이들 또한 어떤 개인을 희생시킨다. 가혹한 권력의 테두리에서 결국 값싸게 사냥당하는 것은 개인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엔딩의 진짜 의미가 나온다. 평호는 유정에게 은수라는 가명이 기입된 새로운 여권을 넘기며 ‘넌 다르게 살 수 있어’ 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평호와 정도의 소신은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 세대를 향한 구제라는 꿈과 기대로 이어진다. 오늘날 독재가 없이 살아가는 땅은 그 때 신념을 무기로 죽어나간 수 없이 많은 개인들의 탑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이 죽음으로 빚은 두 주인공의 끝과 새 명의를 얻은 유정의 출발로 담아낸 메세지이자, 그 당시를 바라보는 연출자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얼티메이텀> (2007)을 보면서 놀라웠던 점은 기억을 찾아갈 수록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희생하며 속죄한다는 요소였다. 정체성이 의미를 가지는 과정은 기독교 속죄의 테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제이슨 본은 수정주의 서부극에서나 봐오던 자아성찰을 스파이 장르에서 해낸다.

<화려한 휴가>(2007), <택시운전사>(2017)등, 80년대의 비극을 그린 영화를 보며 늘 안타까웠던 점이 있다. 그 날 일어났던 일을 알리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이제는 해석의 광주를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헌트>는 스파이 스릴러에서 장르적 힘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해냈다. 연출이 형식적으로는 편집과 음악에 영광을 양보하면서도 서사적 부분의 뚝심을 기어코 이루어낸, 프로듀싱과의 협업을 준수히 일구어낸 상업영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이 장면과 카피를 되뇌이면 홍보가 스포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전두환

그의 자연사는 한국 현대사의 최대 치욕이라 할 수 있다. 모욕은 거름이 되어 창작자에게 양분이 된다. 이 단죄가 미디어라는 구천을 영원히 떠돌면서 몇 천번이고 상상속에서 난도질 당하고 참변에 이르기를 기원한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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