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 박찬욱 감독. 그는 수상 이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줄곧 “칸영화제 세 번째 수상이라는 것보다도 한국 관객분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제일 궁금하고 긴장된다”고 밝혀온 바 있다. 또한 박 감독은 “<헤어질 결심>은 제가 만든 어떤 영화보다 더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점이 많다”며 이어 “탕웨이의 한국어 대사가 매우 중요하고 특별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헤어질 결심>은 변사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품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박 감독은 이 영화를 두고 “100% 수사 영화이자 100% 로맨스 영화”라고 정의했다. 또한 그전 영화에서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던 박 감독은 “전작들은 관객의 눈앞에 바짝 가져다 대는 류의 영화였다면, 이번엔 좀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며 “감정을 숨긴 사람들의 이야기인 만큼 인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관객 스스로가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게끔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듣도 보도 못해 더욱 상상하기 어려운 박찬욱 감독의 ‘미~묘하고 더딘’ 진행 방식이 어떤 매력을 품고 있을지 기대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2일 진행된 제작보고회에서 박 감독은 배우 탕웨이, 박해일과 함께 영화에 대한 긴밀하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70분에 걸쳐 풀어냈다.
<헤어질 결심>, 그 시작은?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은 3~4년 전에 읽은 스웨덴 추리소설 ‘마르틴 베크’ 시리즈 속 형사, 경찰 캐릭터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읽은 뒤 ‘여기 나오는 형사처럼 속이 깊고 상대방을 배려해 주는 신사적인 형사가 나오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생각했다고. 딱 이 아이디어 하나만을 두고 오랜 파트너인 정서경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박찬욱 감독. 이 과정에서 박찬욱 감독은 형사 역을 맡을 배우로 박해일을 떠올리게 된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저는 특정 배우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쓰는 법이 없다. ‘실제로 그 배우가 캐스팅 안 되면 어떻게 하나’란 걱정 때문이다. 그렇기에 캐스팅할 심산으로 박해일을 떠올린 건 아니었고, 시나리오를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정서경 작가에게 이미지를 던진 것”이라 설명했다.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을 만들 때 영감을 받은 건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끝이 아니다. 그는 가수 정훈희의 ‘안개’라는 곡에서도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안개’가 정훈희가 부른 버전, 송창식이 부른 버전 두 가지 버전으로 발매됐다는 특징을 따와 안개를 두 번 사용하는 영화를 만들겠다 다짐했다고. 박 감독은 “안개라는 곡을 사용하는 로맨스 이야기와 형사 이야기를 합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형사가 등장하는 로맨스 영화’라는 형태가 갖춰진 것”이라 덧붙였다.
“100%의 수사극과 100%의 로맨스를 보게 될 것”
<헤어질 결심> 제작 당시 박찬욱 감독은 각본가와 함께 ‘수사극과 로맨스 중 어느 한 쪽으로 균형이 기울지 않게 하자’는 원칙 하나를 세웠다고. 이와 관련해 박 감독은 “칸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누군가 ‘50%의 수사 드라마와 50%의 로맨스로 이 영화를 표현하면 될까?’라고 묻기에 제가 ‘그보다는 100% 수사극과 100% 로맨스라고 표현하는 게 더 낫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형사가 용의자를 만나는 관계, 형사의 업무가 이 영화에서는 연애의 과정인 거다. 신문 과정에서도 정말 보통의 연인들이 할 법한 모든 일이 벌어진다. 유혹과 거부, 밀고 당기기, 원망, 변명 등. 이런 일련의 이야기가 심문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두 가지를)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이 핵심이다”라며 이 점을 재차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서경 작가는 “멜로로 진행되는 플롯이 수사의 플롯과 일치하다”란 의견을 내기도 했다.
특이점 온 인물 설정 : 비밀스러운 ‘서래’, 예의 바르고 청결한 형사 ‘해준’
형사 해준은 박해일이 용의자 서래는 탕웨이가 연기한 가운데, 박 감독은 서래 역을 아예 탕웨이로 캐스팅할 것을 고려해두고 중국인으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전작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 <박쥐>(2009) <아가씨>(2016) 등에서 여성 캐릭터를 강렬하게 그려내는 연출로 호평받은 바 있다. <헤어질 결심>이 서래라는 인물이 끌어가는 이야기인 만큼 이 인물이 어떤 매력을 보여줄지에 관심이 모인다. 박 감독은 서래를 두고 “내 이전 영화 여성 주인공 못지않은 인물”이라며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게 쉽지 않음에도 서래는 누구보다 당당하게 소신껏 살아간다. 그는 자기 원칙대로, 자기 욕망대로 살며 본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존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형사 역할을 처음 소화한 박해일은 자신이 연기한 해준에 대해 “친절하고 청결하다. 정장에 구두와 가까운 검정색 운동화를 신는 것과 같은 디테일한 장치는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해줄 것”이라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해준이 열심히 살아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봐주시면 다양한 매력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박해일과 호흡을 맞춘 탕웨이는 그의 맑은 눈빛에 대해 언급하며 “일단 박해일의 눈빛 속에서 자신의 삶을 대하는 철학적인 분석을 느낄 수 있었다”며 “<살인의 추억>을 비롯해 그가 출연한 작품을 몇 편 봤는데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이번 <헤어질 결심> 속 해준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고 첨언했다.
<헤어질 결심>에 등장하는 장소의 비밀
박찬욱 감독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헤어질 결심>에 등장하는 이포라는 도시가 어디냐’, ‘거기 놀러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말 아쉽게도 ‘이포’는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가공의 도시라고. 박 감독은 “특정한 장소에서 촬영한 게 아니고 여기저기(동해와 서해 등)에서 찍은 뒤 한 장소처럼 보이게 후반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제가 이 영화에서 누릴 수 있던 커다란 사치 중 하나였다. 이 영화는 <아가씨>처럼 세트를 지을 성격의 영화가 아니라서 그 제작비로 로케이션을 다녔다”고 밝혔다. 이어 “자연 현상들, 눈·비·안개·태양 이런 것들을 실제로 물리적으로 만들기도 했고, 후반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많이 더하기도 했다. 그런 곳에 예산이 많이 사용됐다. 물론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여기저기 보여드리기도 하지만 특정한 한 곳은 아니다. CG 작업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를 전한다”라고 덧붙였다.
씨네플레이 황남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