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껴안고 자던 곰인형 어디로 갔더라? 그 인형이 나를 찾아 헤매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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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flix 오리지널 <로스트 올리>

이따금 잠 못 드는 밤이면, 유년 시절 품에 안고 함께 잠을 청하던 조그마한 푸른 곰 인형을 떠올린다. 처음 그 인형을 접했을 때 기억은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은 그 곰 인형의 남루한 마지막이었다. 솜이 빠질 대로 다 빠져서 앙상하게 남은 팔다리. 너무 오래 안고 지내면서 푸른 빛을 잃은 채 바래버린 표면. 게다가 그 친구의 몸 위로는 항상 당황스러운 밤을 선사해준 코피와 곤히 잠들면서 언제 흘렸는지조차 모르는 침, 함께한 시간을 증명해주는 꾀죄죄한 때가 한꺼풀 덮여있었다. 이제는 그 인형의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종종 불면의 밤이 찾아오면 허름하지만 포근했던 푸른 곰 인형의 모습이 자꾸 아른거릴 때가 있다. 그 인형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인형의 마지막 모습은 떠올릴 수 있지만, 그가 어디로 가버렸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던 어린 시절의 곰 인형을 떠올리는 내 기억처럼, 유년 시절을 함께했던 존재에 대한 추억은 누구나 갖고 있다. 그 추억을 함께한 대상은 매일 밤을 껴안고 잔 인형일 수도, 어린 시절 선물 받은 장난감일 수도 있다. 성인이 된 지금도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면 그것은 매우 축복받은 삶일 것이다. 유년에서 성인으로 통과해가는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그들과의 여정을 같이 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문득 그때를 돌이켜 보면서, 반대로 남겨진 인형과 장난감의 입장을 헤아려 본다. 갑작스럽게 남겨진 존재들이 마주할 당혹감. 주인이 자신을 잃어버린 것인지 떠나보낸 것인지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그들은 주인을 그리워할까 아니면 원망하게 될까? 혹시라도 그리워한다면 우리를 찾기 위해 먼 여정을 되돌아오려 발걸음을 떼지는 않을까?

지난 8월 24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4부작 미니 시리즈 <로스트 올리>의 이야기는 이 물음에서 시작한다. 자신을 잃어버린 주인 빌리를 다시 만나기 위한 봉제 토끼 인형 올리는 험난한 여정을 떠난다. 이 여정의 끝에서 올리는 빌리를 만날 수 있을까? 이처럼 잃어버린 주인을 찾아 존재들의 이야기는 비단 <로스트 올리> 속 인형 올리에만 국한되어있지 않다. 올리의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장난감과 반려동물들까지 자신을 잃어버린 주인들을 찾으려는 존재들의 길을 좇다 보면, 남겨진 존재의 심리를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지 모른다.


언제 어디서라도 널 찾을 수만 있다면 <로스트 올리>

어느 날 흐린 기억을 뒤로한 채 정신을 차린 올리는 당황스럽다. 매일 함께 했던 사랑하는 주인 빌리의 집이 아닌 낯선 장난감 가게에서 눈을 뜨고 만 것이다. 언제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영문도 모르는 올리지만, 단 하나 명확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영원을 약속한 친구 빌리가 나를 사랑했다는 점이다. 분명히 자신을 아껴준 빌리라면, 나를 잃어버리고는 내내 슬퍼할 것이다. 올리는 장난감 가게 속 낡은 광대 인형 조조를 만나 이런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한다. 유일한 단서는 빌리와 올리가 서로 떨어지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가슴 속에 품었던 한 쌍의 자석 별 조각. 올리는 그 별 조각을 양손에 꼭 쥘 때마다 빌리와의 희미한 기억의 조각을 더듬을 수 있다. 그렇게 간신히 완성한 엉성한 지도를 들고 올리와 조조 그리고 분홍색 누더기 곰인형 로지는 빌리가 있는 오하이오로 길을 떠난다. 전혀 순탄하지 않은 여정 속에서 올리는 조조와 로지에게도 이런 아픔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Netflix 오리지널 <로스트 올리>

<로스트 올리>는 어쩌면 인형과 아이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이지만, 성인을 위한 작품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자극적이거나 수위가 강한 <보잭 홀스맨> 같은 종류의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작품을 관통하는 정서를 깨닫기 위해선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을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아무리 많은 사랑을 주어도, 어느 순간 쇠락하고 해져서 남루해진다는 슬픈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스트 올리>는 쇠락해가는 것들에 대한 한탄과 슬픔만을 다루려 하지 않는다. 올리가 빌리를 찾는 여정만큼 이 시리즈에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빌리가 올리를 찾으려 하는 여정이다.

이 지점에서 유년의 유약함을 버티게 만든 존재와, 한없는 사랑을 주었던 존재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 한쪽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서로가 느끼는 부재와 공백의 감정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이 둘의 관계를 연결하는 강렬한 연대의 정서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에 다다를 때면, 마주하는 두 존재가 비단 빌리와 올리만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다. 마침내 유년을 겪어내고 떠나온 우리와 우리가 떠나보낸 채 남겨진 유년의 것들도 서로 마주 본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의 유년에 완벽한 인사를 건네는 법 <토이 스토리 3>

<토이 스토리 3>는 이전 시리즈들과 달리 장성한 앤디의 서사로 시작된다. 대학생이 된 앤디에게 장난감은 더는 필요 없는 것들이 되었다. 이 전제로부터 시작하는 영화는 곧 오해와 실수로 둘러싸인 채 한바탕 모험을 겪게 된다. 자신들을 앤디가 버렸다고 느낀 장난감들은 잔뜩 실망한 채 스스로 보육원에 들어가 새로운 사랑을 받기를 고대한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의 상반되지만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입장을 듣게 된다. 이제는 유년을 뒤로하고 멋지게 그 시절과 작별해야 하는 어른이 된 주인과 여전히 사랑받아야만 그 가치를 인정받는 장난감의 입장 말이다. 그래서인지 언뜻 보면 장난감들이 보육원에 들어가는 선택은 두 입장 차이를 고려할 때 가장 완벽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영화 <토이 스토리 3>

하지만 이 둘 간의 관계에서 놓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서로의 추억을 되짚어가며 멋지게 작별을 고하는 법이다.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순간에 당도하게 된다면, 어떻게 인사를 건넬지가 가장 중요하다. 보육원에 들어간 장난감은 앤디를 오해하고 있고, 그것은 서로가 함께한 10년이 넘는 시간에 대한 추억을 지워버리는 감정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이 영화의 마지막 엔딩을 참으로 사랑한다. 서로가 눈을 마주치며 시간을 되짚어가듯 함께 그 시절을 추억하는 법. 어쩌면 남아있는 존재와 사랑을 나눈 존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작별 인사가 아닐까?


나를 떠나고 사랑해온 이름들에 대해 <환상의 마로나>

<환상의 마로나>는 세 명의 주인을 거쳐 가게 되는 강아지 ‘아홉’에 대한 이야기다. 아홉은 살면서 3번의 주인을 만나게 된다. 곡예사 마놀부터 건설업자 이스트반, 귀여운 소녀 솔랑주까지 이들은 그녀를 만나면서 각각 다른 이름을 불러준다. 마놀은 그녀를 아나라고 부른다. 궁핍하긴 하지만 꿈이 있던 그와의 첫 번째 삶은 낭만으로 가득했다. 아나가 거리를 배회하며 공사장을 전전할 때 두 번째 주인인 이스트반은 그를 따스하게 보살핀다. 그는 아나를 사라라고 부른다. 안정적이게 지내던 이스트반과 사라의 관계는 사라를 미워하는 이스트반의 여자친구로 인해 균열이 일어난다. 그렇게 숲으로 다시 떠나온 사라는 그곳에서 귀여운 소녀 솔랑주를 만나게 된다. 소녀는 사라를 마로나라고 불러준다. 그렇게 세 주인을 거쳐오며 그녀는 새로운 이름들을 얻게 된다. 마로나는 그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영화 <환상의 마로나>

<환상의 마로나>는 아홉이 떠나온 주인들과 아홉을 사랑했던 주인들, 그리고 아홉을 떠나보낸 주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인과 반려견으로 만나 서로가 자아냈던 하나의 소우주를 환상적인 이미지로 그려낸다. ‘아홉’의 삶은 하나의 직선이지만, ‘아홉’이 만난 주인과 그들이 붙여준 이름을 생각하면 그녀의 삶은 3×3 아홉 가지의 견생이 아닐까 한다. 마로나로 끝이나는 ‘아홉’의 삶은 그녀를 사랑해주었던 이와 그녀와 자신 사이에서 고뇌했던 이와 그녀를 끝내 사랑하는데 실패한 이의 여정이 섞여 있다. 외로워지고, 고독해지는 시간이 찾아오면 ‘아홉’은 남아있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남겨진 채 주인을 생각하는 것. 어쩌면 <환상의 마로나>의 아름다운 이미지 너머에는 외로움과 부재함이 서려 있는 게 아닐까?

끝으로 <로스트 올리>의 오프닝에 담긴 미국의 반전 시인 윌리엄 스탠리 머윈의 시 한 구절을 담아내겠다. 우리의 유년 혹은 우리의 삶을 지탱해준 존재들에게 마지못해 건네야만 했던 작별을 담아서.

당신의 부재가 나를 관통하였다 마치 바늘을 관통한 실처럼.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그 실 색깔로 꿰메어진다.

윌리엄 스탠리 머윈


최현수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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