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어, 1등 로또가 북한으로 날아갔네?” <공동경비구역 JSA> 코미디 버전 <육사오>가 띵작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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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영화 <육사오>의 내용을 포함한 글입니다.

아직도 <육사오>의 마지막 장면이 생생하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아마 <육사오>를 본 사람이라면 그 장면이 뭔지 대충 예상할 것이다. 영화 속 유일한 악인인 북한 측 ‘광철'(윤병희)이 돈가방을 코에 건 멧돼지를 쫓다가 지뢰를 밟고 문자 그대로 밤하늘을 향해 날아가던 장면은. 애초부터 유치해지기로 작심한 <육사오>가 그때까지 지켜오던 어떤 선을 넘는 장면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달까지 날려보내나.

그런데 한편으로는 납득이 됐다. 유치한 판타지지만, 왠지 그럴싸하다. 일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면 외에 어떤 장면이 마지막에 왔어도 이상했을 것이다. <육사오>의 군인들이 서로를 향해 총을 쏘아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이상하다. 그렇게 하는 건 <육사오>답지 않다. 그러니까 다소 엉뚱하고 말이 안 되는 이 마지막 장면은, 사실 가장 현실적인 결말이었던 거다. <육사오>에서.


<JSA>가 슬펐던 만큼 <육사오>가 웃겨준다

1등 로또를 주운 남한의 병장 ‘천우'(고경표)

<육사오>여서,라고 해볼까. 다른 영화가 아닌 <육사오>이기 때문에 그런 판타지적인 결말이 가능하고 또 필요했다고. 여기서 ‘다른 영화’라면 딱 하나다. 군사경계지역을 배경으로 남한과 북한의 군인들이 어두컴컴한 장소에 모여 친구가 된다는 내용의 <공동경비구역 JSA>. 바로 <육사오>가 패러디하는 원작인 동시에 그와 반대의 노선을 걷는 비극적 드라마다.

알려졌다시피 <공동경비구역 JSA>는 비극이다. 경계 초소에 모여 남북한 군인들이 쌓아올린 우정은, 작은 충격에도 무너질 만큼 위태롭다. 그것은 분단국가라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남북의 군인들이 함께 웃고 떠들고 닭다리 싸움을 하는 장면에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경필과 수혁, 우진과 성식이 크게 웃을수록 결말부의 슬픔은 커진다.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불가피한 파국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경계선에서 마주친 ‘천우'(고경표)와 ‘용호'(이이경)

<JSA>가 비극적인 만큼 <육사오>는 희극적이다. 웃기고 발랄하고 귀여운 데다가 무엇보다 해피엔딩이다. 남북의 병사들이 서로 총을 겨누는 순간에도 우리는 크게 긴장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끝에 <JSA> 같은 파국은 없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JSA>를 보지 않은 관객에게도 <육사오>는 웃긴 영화지만, <JSA>를 본 관객에게 <육사오>는 “절대 어설프게 눈물샘 자극하려 해서는 안 되는 영화”다. 이미 그 눈물은 <JSA>에서 충분히 흘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육사오>는 기대에 부응한다.

그런 <육사오>의 서사와 코미디를 구성하는 것은 ‘우연’이다. 초반부 <육사오>의 사건 진행은 상당수 ‘우연’에 기대고 있다. 이야기의 발단은 이렇다. 우연한 장소에 우연히 놓인 로또가, 우연한 바람에 휘날려 군용 지프에 달라붙어 말년 병장 ‘천우'(고경표)의 손에 우연히 들어간다. 천우는 마침 내무반 티비로 방영되던 로또 추첨방송을 보고 그 로또가 1등 로또임을 알아차린다. 그런데 그 1등 로또는 우연한 바람 때문에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병사 ‘용호'(이이경)의 손으로 우연히 들어간다. 우리는 이 우연에 우연이 중첩되는 전개에 별다른 이의 제기를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로또에 있다.


로또, 존재 자체가 개연성!

로또 사건에 끼어든 남한 병사 ‘은표'(음문석)과 ‘만철'(곽동연)

<육사오>에서는 로또를 둘러싼 일련의 우연이 모두 하늘의 뜻인 것처럼 비범하게 이뤄진다. 로또는 스스로 의지를 가진 생명처럼 정해진 이의 손으로 정확한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다. 위의 문단에서 “우연히”라고 쓴 것을 전부 “때마침”이라고 바꿔도 좋을 정도다. 용호는 몇 번이나 로또를 지나치려 했지만 로또는 그의 발치를 집요하게 따라가 결국 ‘주워진다’. 그리고 그 덕에, 천우와 용호 그리고 남한과 북한의 병사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이처럼 우연이 난무하는 전개가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육사오>가 생각 없이 봐도 되는 코미디 영화여서가 아니다. 이는 영화의 대전제가 ‘우연히 로또 1등에 당첨됨’이라는 보편의 욕망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로또에 당첨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거부할 수 있겠지만, 나를 포함 대다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관이 유치하고 감정이 과잉이고 어떤 개그 코드와는 불화해도 ‘로또 1등 당첨’은 달콤하다. 이 끌림은 우연보다 필연에 더 가깝다. 로또 당첨은 곧 행복이라는 공식, 누군가는 당첨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나’여야만 한다는 욕망이 <육사오>의 모든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다. 말이 안 되는 것들이, 말이 되고 만다.


<육사오>, 비현실적 결말이 최선인 이유

<육사오>의 <공동경비구역 JSA> 패러디 포스터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남한의 병장 수혁이 북한 병사 경필과 우진을 처음 만난 계기는 ‘지뢰’였다. 야외에서 변을 누던 수혁은 자신이 지뢰를 밟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하는데, 마침 개를 쫓아 나온 경필과 우진에게 구해진 것이 우정의 시작이었다. 그 우정은 차근차근 발전되고, 순리대로 깨졌다. ‘총’에 의해. 무기로 시작된 병사들의 우정이 무기로 끝난 것이다.

<육사오>는 어떨까. 남한의 천우는 ‘로또’가 날아간 자리를 수색하다가 그것을 가진 북한 병사 용호와 만난다. 남북 병사들이 서로 갈등을 겪으며 친해지게 된 계기는 ‘로또’다. 만철(곽동연)이 돈을 찾아오는 동안 북한에 인질로 잡혀 있던 용호는 멧돼지 새끼의 다리를 치료해 놓아주는데. 바로 결말부에 등장하는 야생 멧돼지의 새끼였다.

남한 병사 측의 리더 ‘은표'(음문석)

보는 이들의 찾는 재미를 위해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겠지만 <육사오>는 <JSA>의 다양한 장면을 패러디한다. 하지만 주제의식이 아닌 겉모습만 따라한다. <육사오>는 <JSA>와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나간다. 공동급수구역을 발판 삼아 분단 국가의 비극을 등지고 희망과 낙관, 그리고 폭소를 이야기한다. ‘지뢰’가 아닌 ‘로또’로 시작해 ‘총’이 아닌 ‘멧돼지’로 끝맺는 <육사오>의 흐름은 그래서 걸림이 없다. 판타지지만 그 세계관 속에서는 현실적이다. 그렇게 <육사오>는 빵빵 터지는 코미디, 그리고 남북한 병사들 간 따뜻한 유대를 그려냈는데 심지어는 ‘진짜’ 현실로 안착하는 결말에까지 이르고 만다.


“40만 불도 큰 돈이지!” 욕심없이 “소확행”하는 인물들

북한의 병사 ‘용호'(이이경), ‘승일'(이순원), ‘철진'(김민호)

다시 로또 얘기로 돌아와보자. 만철은 당첨 로또를 미 달러 400만 불로 바꿔서 남북의 병사들이 기다리는 공동급수구역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뒤따라온 광철이 이들을 총으로 협박해 돈가방을 갈취하려고 할 때, 우연히 그곳에 야생 멧돼지가 들어온다. 돈가방을 자기 새끼로 착각한 멧돼지는 이를 낚아채 달려나가고 광철은 총을 들고 그 뒤를 쫓는데. 진짜 대단한 일은 그다음에 일어난다.

병사들이 모두 당황한 사이, 만철이 옷에서 돈다발을 꺼내며 말한다. 가방에 다 안 들어가서 한 40만 불 정도는 주머니에 넣어 왔다고. 나는 이 장면에서 ‘겨우 10%군’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는데 <육사오>의 주인공들이 하는 말은 놀랍다 못해 대단하다. “40만 불도 큰돈이지!”

‘용호'(이이경)의 동생이자 대남방송을 진행하는 ‘연희'(박세완)

그렇다. 40만 불도 큰돈이다. 한화로 약 5억 7천만 원. 그걸 n분의 1해도 인당 8천만 원씩은 가질 수 있다. 8천만 원은 큰돈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을 만한, 흔히 말하는 ‘평생 놀고 먹을 돈’은 못 된다. 57억 원에 비하면 푼돈처럼도 보인다. 결국 1등 로또를 주웠고 별의별 일을 다 겪었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천우는 북으로 갔다가 사랑에 빠진 연희(박세완)와 서로 “좋은 사람 만나세요”라고 말할 뿐 마음을 고백하지 않는다. 병사들은 통일을 기대하지 않는다. 따라서 재회를 약속하지도, 이 만남 계속 이어가자고 괜한 말을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냥 헤어진다. 40만 불을 나눠 갖고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로또가 사라진 일상을 살게 된다. 여느 때처럼 부대에는 대남방송이 울려 퍼진다. 우리 남조선 동무들… 천우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연희의 목소리다. 로또라는 우연이 빚은 감동과 우정은 그렇게 현실의 땅에 안착했고, 요행은 일상에 흡수됐으며 판타지는 백일몽으로 남겨두는 이 영화의 결말에 나는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렬루” 띵작.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는 북한의 오경필 중사를 제외한 3명의 병사가 모두 사망한다. 그것이 극장판 결말이다. 그런데 박찬욱 감독은 다른 결말을 원했다고 한다. 오경필과 이수혁이 살아서 제 3국인 나이로비에서 훗날 재회하는 것으로. 하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결말이 <JSA>의 공식적인 엔딩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런 <JSA>의 더없이 비극적인 결말이 <육사오>를 탄생시킨 것은 아닐까,하고.


씨네플레이 유해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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