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에 1도 관심없던 나는 어쩌다 <나는 솔로> 과몰입러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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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고, 영식이랑 정숙이랑 결혼하자!!!!!!!!!!!!!

수요일 밤이면 나는 TV 앞에 앉아 남의 연애를 응원하기 바쁘다. 오랜만에 집으로 놀러 온 남자친구가 바로 내 옆에 있지만, 내 눈에는 영식이와 정숙이만 보일 뿐이다. 남자친구가 서운해하든 말든 내게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최종 커플이 되느냐, 마느냐다. 그렇다. 나는 ‘나는 SOLO(나는 솔로)’ 과몰입 시청자다.

‘나는 SOLO’ MC 데프콘이 몰입한 표정=내 표정 @SBS Plus

‘나는 솔로’는 데이팅 프로그램이다. NQQ와 SBS Plus라고 잘 알지도 못했던 채널에서 수요일 밤 10시30분에 방송되고 넷플릭스에서도 즐길 수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는 “결혼을 간절히 원하는 솔로 남녀들이 모여 사랑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극사실주의 데이팅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한다. 과대 포장이 아니라 진짜 그렇다. ‘나는 솔로’는 주변에 있을 법한 비주얼과 스펙의 비연예인들이 출연하는데 대부분 30대다. 출연자들은 연애만큼이나 결혼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태초에 ‘짝’이 있었다

극사실주의 데이팅 프로그램의 원조는 따로 있다. 지난 2011년부터 3년 동안 방송된 SBS ‘짝’이다. 익명의 남녀 출연자들이 한옥 민박집(애정촌)에 모여 서로를 “n호님”이라고 부르면서 짝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꾸밈이라고는 1도 없는 연출로 ‘짝’은 예능이라기 보다는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가 녹화 도중 숨지는 비극으로 불명예 퇴장하기 전까지 온갖 패러디가 나올 만큼 센세이셔널한 인기를 누렸다.

‘짝’을 패러디한 무한도전의 ‘짝꿍’ @MBC

이제와 고백하건데, 나는 ‘짝’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짝’은 22살 대학생 눈에는 너무 너무 너무 촌스러웠다. 그때의 나는 대학교에 가면 송중기 같은 선배가 강의실에 당연히 앉아 있는 줄 알았다. 물론 입학하고 일주일 만에 차가운 현실을 깨닫긴 했지만 캠퍼스 로망을 졸업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아저씨와 아줌마로 보인 30대들의 현실 로맨스가 눈에 들어올리 없었다. 그때는 내가 뭘 몰랐다.

사실 ‘짝’과 ‘나는 솔로’ 제작 PD는 동일 인물이다. 남규홍 PD가 SBS 퇴사 후 짝류의 연애 프로그램인 ‘스트레인저(2020)’를 만들었고, ‘나는 솔로(2021)’로 대박을 터뜨렸다. ‘나는 솔로’도 11년 전 ‘짝’이 그랬던 것처럼 화려한 편집이 전혀 없다. 촬영 장소부터 소박하다. 솔로나라는 어디에서 본 것 같이 생긴 펜션이다. 거실 소파에 늘어져서 솔로나라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에는 ‘가보고 싶다’는 욕망보다 ‘가본 것 같다’는 공감이 일렁인다.

남규홍 PD @나는 SOLO

베테랑 PD가 노린 포인트였다. 남규홍 PD는 지난 2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에서 존재하는 평균 펜션 모습이다. 너무 화려하고 희소하면 리얼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남 PD가 말하는 리얼리티는 진짜 같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 그 자체였다. “요즘 같은 시대에 사람들은 더욱 진짜를 원한다. 가장 현실적으로 그릴 때 시청자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다”

30대가 되어보니 판타지는 무쓸모다

과연 정답이다. ‘짝’에는 관심조차 없던 내가 어느새 30대 직장인이 되어 ‘나는 솔로’를 본방 사수까지하는 건 지극히 현실적이다. 채널A ‘하트시그널’, 티빙 ‘환승연애’, MBN ‘돌싱글즈’, 넷플릭스 ‘솔로지옥’ 등등등. 언젠가부터 데이팅 프로그램이 넘쳐나지만, 역시 ‘나는 솔로’만한 게 없다고 자신하는 이유는 ‘짝’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현실 DNA다.

제작비 걱정까지 될 정도로 단출해 보이는 ‘나는 솔로’에는 없는 것도 참 많다. 연예인 뺨치는 미모도, 우리 엄마가 절대 몰랐으면 좋겠는 저 세상 스펙도, 나는 평생 일해도 가지지 못할 수준의 재력도 없다. 그런데 그게 나의 현실이기도 한 걸. 이 세상과는 동떨어진 드라마틱한 카메라 움직임도 없어서 나는 TV 속 정숙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빙의한다. 넷플릭스 글로벌 톱10까지 찍은 ‘솔로지옥’ 프리지아에게서 느껴지는 멀찍한 거리감과는 차이가 있다.

‘솔로지옥’에 출연했던 프리지아 @넷플릭스

솔로나라 님들이 부러운 코시국

“반갑습니다~” 어색했다가 슬슬 뜨거워지는 단체 술자리. ‘나는 SOLO’ 6기의 첫 술 @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TV

없는 게 많은 ‘나는 솔로’에 자랑할 만한 게 있다. 우리네와 다를 게 없는 출연자들의 술 자리다. 왠지 있어 보이는 위스키, 데킬라, 와인이 없는 대신 소주와 맥주가 가득하다. 안주는 뭐니뭐니해도 삼겹살이다. 소맥과 삼겹살이란, 대한민국 펜션 국룰이지. 각자 잔을 채우고 술이 흘러넘치도록 “짠”을 위치는 솔로나라의 님들. 모임을 잃어버린 코로나 시대의 현대인으로서 솔로나라가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솔로나라 님들도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서로에게 한껏 취하는 모양이다. 3월30일 기준, 6기까지 방송된 ‘나는 솔로’가 배출한 부부가 무려 네 쌍이다. 절반은 이미 결혼했고, 절반은 올해 결혼할 예정이다. 연애 중인 커플은 더 많다. 웬만한 결혼정보업체보다 높은 성공률이다.

‘나는 SOLO’ 6기 영식-정숙의 웨딩 화보 @NQQ

바쁜 일상을 떠나 4박5일 동안 오직 사랑에만 집중한다면 영 안될 일도 아니다. 비록 짝을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소중한 인연을 이곳에서 얻는 모습이다. 사람이 그리운 방구석 시청자들에게도 어쩐지 위안이 되는 장면이다. 대형 로펌 변호사인 6기 광수는 솔로나라에서도 노트북을 붙잡고 일을 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종종 보여줬는데, 최종 선택을 앞두고 광수는 아쉬움보다는 고마움을 전했다. 울컥하는 목소리에는 진심이 녹아 있었다.

‘나는 SOLO’ 6기 광수 @SBS Plus

며칠간 광수로 살아볼 수 있어서 좋았고 광수가 된 저를 처음 만나준 사람들이 여러분이어서 더 좋았습니다. 이곳에서 저의 마음이 닿기를 바랐던 분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광수의 목소리가 좀 작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최종 선택을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게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연애를 남부럽지 않게 하고 있으면서 왜 남의 연애를 들여다 보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남의 연애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라고 답하겠다. 2년차 ‘나는 솔로’ 과몰입러가 최애하는 에피소드는 6기 영식과 정숙의 첫 번째 데이트다. 첫눈에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이지만 어쩐지 조심스러운 식사 자리였다. 평소에 까불거리기 좋아하는 정숙은 영식 앞에서도 시크릿의 ‘마돈나’ 춤을 추며 내면의 끼를 대분출하고 말았는데, 영식은 브레이브걸스의 ‘롤린’ 춤을 추며 화답하는 극강의 센스를 보여줬다. 이후 두 사람은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코드가 잘 맞아서 너무 좋았다”라는 공통 대답을 내놨다. 보는 사람까지 흐뭇하게 만든 최고의 데이트 장면이었다.

요즘 내 인생의 낙은 맥주를 마시면서 남자친구와 ‘나는 솔로’를 다시 보는 거다. “안녕하세요. ○○님, 저는 □□이라고 해요. 퇴근하시고는 보통 뭐하세요?” 난데없이 남친과 소개팅 상황극을 하다 보면 잊고 있었던 첫 만남까지 떠오른다. 랜선으로 느껴지던 설렘이 현실에 안착하는 순간이다. 사랑의 힘은 이토록 위대하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이 충만해진다. 모두의 사랑을 위하여! ‘나는 솔로’여 영원하라!


씨네플레이 도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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