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한테 바닥 보인 적 있죠? 사랑이란 내가 ‘최악’이 되는 것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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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 좀 어른 같아” 요즘의 입버릇이다. 이런 말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은 나이에 비해 자신을 어른으로 느끼지 못한다는 무의식의 반영이기도 하다. 음악을 들으며 운전할 때, 퇴근하고 술 한잔 마실 때, 보험비를 매달 꼬박 납부할 때, 새벽에 늦게 집에 들어가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을 때. 한편으로는 이런 게 과연 어른의 지표가 될 수 있을까 싶다. 실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기야 세상에 완벽한 어른이란 존재하지 않을 거다. 세상이 정한 어른의 기준은 이상에 가깝고, 현실의 어른들은 서투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언제든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선택지와 책임들. 그 앞에서 부서지고 ‘최악’이 될 때가 있다. 하물며 사랑도 그렇다. 사랑을 하다보면 그 상대보다 내가 얼마나 ‘최악’의 인간인지를 알게 된다. 그것도 아주 낱낱이. 어쩌면 사랑은 날 것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는 8월 25일 개봉하는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영어 원제는 <세상 최악의 인간(The Worst Person in the World)>이다. 그 제목처럼 주인공은 자신을 최악의 인간으로 느낀다. 신예 배우 레나테 레인스베에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의 영광을 안긴 이 영화는 그 주인공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그는 인생이 가져다줄 가능성이 아직 발밑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믿으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한다. 종착지는 도래하지 않았고, 지금은 그저 통과 과정이라고 믿으면서, 욕망을 따라간다. 서른을 앞둔 이의 종잡을 수 없는 마음처럼, 괜히 싱숭생숭해지는 가을을 앞둔 지금, 감각적인 노르웨이 오슬로의 풍경으로 당신을 데려갈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를 소개한다.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첫 장면. 오슬로의 아름다운 풍경과 낭만적인 음악에 압도된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영화이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느끼는 어른들을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노르웨이 출신의 요아킴 트리에(Joachim Trier) 감독이 연출했으며, 작년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또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과 국제영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 영화는 고전적인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지만, 기존 로맨틱 코미디와의 방향성은 좀 다르다. 무엇이 다르냐. 우선 이 영화의 목표는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이루는 데 있지 않다. 주목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과정’을 통해가는 주인공 율리에의 모습 그 자체다. 한계에 직면하면서도 스스로 자아를 찾아가는 이 여성을 통해 그곳에서 나오는 모든 코미디와 혼돈을 포착해낸다.

(영화 만든 계기는) 지금 당장 내 인생에서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다양한 관계를 겪는 친구들을 보며 사랑에 대해,

우리의 삶에 대한 환상과 현실 사이의 타협에 관해 말하고 싶어졌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

줄거리는 이렇다. 서른을 앞둔 스물아홉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는 의대생이다. 의대를 선택한 이유는 점수 컷이 제일 높아서 성적을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자신의 욕망은 아니었다. ‘이건 아니다’는 생각 속에서 그저 스마트폰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러다 깨닫는다. 자신은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그래서 심리학으로 진로를 바꾼다. 그러다 또 그만두고 포토그래퍼가 된다. 그의 욕망은 그 자신도 종잡을 수 없다.

분명 좋아서 선택한 일인데 막상 해보니 별거 없어서 싫어지고,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미련이 남는다. 이건 자신의 진로뿐만이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그러다 그는 파티에서 만난 만화가 악셀(안데스 다니엘슨 리 분)과 같이 살게 되지만, 율리에는 아직 이룰 것이 많다. 반면 악셀은 성공한 만화가로 어느 정도 인생의 안정을 꿈꾼다. 이들은 각자 인생의 다른 순간에 만난 것이다. 율리에는 연인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을지나 아이를 가질 것인지에 대한 미래의 질문들에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영화는 복잡하고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율리에의 시선을 따라간다.

진정한 자신의 욕망에 대한 물음

율리에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저 자신도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데 결정을 해야만 하는 상황들에 맞닥뜨린다.

마치 소설처럼 프롤로그, 12개의 챕터 그리고 에필로그로 된 구성 속에서 율리에는 계속 탐구한다.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일까?’ 여기서 공간은 어디든 될 수 있다. 일터, 사랑하는 사람의 옆자리, 새로운 장소. 그 공간을 찾아 헤맨다. 그래서 일이든 사람이든 하나에 진득하게 정착하지 못한다. “맨날 이거 했다가 싫으면 저거 했다가 끝까지 해내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고 말하는 서른을 앞둔 율리에. 그는 뭘 안다고 하기에는 너무 모르고 너무 모른다고 하기엔 아는 것만 같은 애매한 나이다. 가능성을 욕망하는 인간인 그에게 사랑은 자기 확인을 위한 도구에 가깝다.

“내 삶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율리에는 연인이 헤어지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한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만화가 악셀과의 관계에서 인생에서 많은 것을 이룬 그와 비교하는 자신을 마주한다. 내 삶임에도 그저 조연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혼란스럽다. 율리에는 영화 내내 실패자처럼 느끼고, 세상에서 가장 최악인 인간처럼 느낀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여성이기도 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한계를 직면하기도 한다.

악셀이 율리에에게. “내가 너와 헤어지고 나서 후회되는 한 가지는 니가 정말 멋진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지 못한거야”

이 영화가 율리에라는 인물은 다루는 방식도 꽤 입체적이다. 직업인, 여성, 가족 구성원, 사랑하고, 사랑받는 한 인간으로서의 삶. 이 모든 모습이 담겨있다. 12개의 챕터 중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제3장 ‘#미투 시대 속 오럴 섹스’다. 율리에는 ‘과연 페미니스트가 오럴 섹스를 할 수 있을까’는 고민을 녹인 에세이를 쓰고, 이로 주변과 온라인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다. ‘미투’라는 시대적 흐름과 사랑의 행위를 연결한 대목이다. 이런 에세이를 쓰는 모습은 진짜 ‘나’를 찾아가는 지난한 성장의 과정이다.

감독 ‘요아킴 트리에’만의 감각적인 연출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감각적 연출이 두드러지는 장면. 둘만 빼고 다 멈춘 오슬로의 풍경이 한 편의 뮤지컬 같다.

이 영화에서 요아킴 감독의 감각적 연출이 두드러지는 장면이 있다. 이는 포스터의 장면으로, 율리에가 에이빈드를 만나기 위해 모든 것이 멈춘 오슬로 거리를 가로지르는 꿈같은 때다. ‘해방감’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 법한 이 장면은 극의 전개에서는 일부이지만, 자신을 탐색하는 율리에라는 인물에게 결정적인 순간이다. 율리에가 오슬로의 거리를 지나는 동안 보이는 모든 사람과 자동차의 움직임은 멈춰있다.

이 장면에 대해 감독인 요아킴 트리에는 “모든 것을 멈추고 내 연인과 다른 시간 속에 있었으면”하는 궁극적인 로맨틱 판타지를 담기 노력했다고 밝혔다. 디지털 효과를 사용하지 않고, 실제 사람들이 가만히 서 있도록 해서 촬영했다고. 그래서 나무와 사람들의 머리카락에는 여전히 바람에 흔들리는데, 이 모습이 어쩐지 낭만스러움을 더한다.

이것은 ‘바람’인가 아닌가.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 그들의 ‘귀여운(?) 장난’.

율리에가 파티에서 에이빈드와 담배 연기로 만들어내는 장면도 흥미롭다. 충동적으로 아무런 지인이 없는 파티에 들어간 율리에는 우연히 그곳에서 만난 에이빈드와 ‘귀여운’ 장난을 친다. 각자 애인이 있으니 바람을 피우지는 말자며, 성적인 행동은 하지 않지만 깨물거나 서로 소변보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하는 식의 행동을 한다. 그러곤 ‘우린 서로 바람을 피지 않았다’고 하며 헤어진다. 여기서 질문이 남는다. 무엇이 ‘바람’이고 아닌가. 무엇이 허용되고 허용되지 않는가.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주체적인 삶이란 뭘까. 욕망을 따른다는 것은 뭘까. 그렇다면 바람이 주체적인 삶일까. 진정한 운명이라고 느껴지는 상대를 만나면 내가 내 삶의 주연이 될까. 내 삶의 주연이 된다는 것은 어떤 걸까.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공간은 노르웨이 오슬로다. 다채로운 연출적 시도로 유명한 요아킴 트레이 감독의 이번 영화는 이번 영화는 <리프라이즈>, <오슬로, 8월 31일>에 이어 노르웨이 오슬로의 3부작이다. 노르웨이만의 고유한 ‘빛’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밝힌 그는 “나는 영화에서 느껴지는 장소의 특수성을 좋아한다. 마틴 스콜세지나 스파이크 리의 영화를 볼 때 그들이 보여주는 뉴욕의 풍경을 보는 것이 좋다. 아주 친밀하게 알고 있는 장소가 있고, 또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영화 제작자에게 있어 큰 선물이다. 나에게 오슬로가 바로 이런 곳이다”말했다. 과연 그의 말처럼 오슬로 배경과 공들인 음악 하나하나, 그리고 그 속에 놓인 인물들이 한 편의 감각적인 뮤지컬처럼 다가온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순간의 욕망을 따라가는데 여념 없는 율리에. 그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까.

“제가 사랑이라는 주제에 매료되는 지점은, 사랑에 부과된 모든 문화적 기대들과 가치들이 실제 사랑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미국 최고의 에세이스트 수전 손택

미디어의 영향일까. 분명히 있다. 내게 딱 맞는 완벽한 사람이 세상에 있을 것 같은 환상, 그리고 모든 것이 적재적소에 준비된 순간이 올 것만 같은 기대가. 세상은 특정 시기에 누군가와 만나 영원한 사랑을 꿈꿔야 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타인과 관계 맺고 사랑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타인과 맺는 관계는 분명 지난한 과정일 수 밖에 없다.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한 인간이 치열하게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여기서 사랑은 달성해야 하는 무언가가 아니다. 그저 자기 탐색의 과정이다. 어떤 선택은 필연적으로 후회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시도를 멈출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최악의 인간으로 기억되면서 성장한다. 그래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지만, 그 사랑의 기억은 ‘최고’를 향해 나아가게 한다.


허프포스트코리아/ 씨네플레이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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