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을 벌써 n차 관람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말을 빌려본다. “<듄>은 실제 찍은 영상과 CGI의 가장 완벽한 만남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원작을 읽어본 적 없는 팬을 ‘듄’ 세계관으로 초대하고, 책을 읽도록 자극하는 영화다. 몇 번을 봤는데 볼 때마다 새로운 디테일을 발견한다. 큰 스크린으로 보도록 만들어졌다. <듄>은 전세계 영화팬을 위한 진정한 선물이다.” IMAX, 돌비시네마, 여러 포맷으로 계속 체험하고 싶은 <듄>은, 잘 짜인 ‘듄’ 세계관 입문서와 같은 영화였다. 파트1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북미 개봉 4일째 되는 10월 26일, 파트2 제작이 확정됐다. 다음이 있음을 축하하며 <듄>, 그리고 <듄>을 만든 이들과 관련한 뒷이야기를 전한다. (* 큰 스포일러는 없지만 <듄>을 보고 읽기를 권한다.)
── ‘듄’ 40년 팬이 만든 영화
드니 빌뇌브는 처음 원작을 읽은 14살 때부터 ‘듄’을 영화화하고 싶어 했다. <컨택트> <블레이드 러너 2049>라는 훈련을 거치고 <듄>을 만들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생겨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는, 베네 게세리트의 대모 모히암(샬롯 램플링)이 폴(티모시 샬라메)을 시험하는 일명 곰 자바 장면. “처음으로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어요. 그건 바로 저예요. 40년 전 원작을 처음 읽었고 곧 사랑하게 됐죠. ‘듄’의 하드코어 팬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중 가장 두려운 관객은 저였어요. 전 십대였고 몽상가예요. 오만했고 허세도 좀 있었죠. 솔직히 말하건대 다른 여느 영화처럼 잘한 부분도 못 한 부분도 분명 있는 영화예요. 하지만 곰 자바 장면은 14살의 제가 확실히 만족했을 장면입니다.” 장면에 대한 빌뇌브의 코멘터리를 더하자면, 그는 악몽을 꾸는 듯한 느낌을 주려 어둡게 담았다고 했다. 베네 게세리트와 어머니의 역할 사이에서 내면 갈등을 겪어야 했던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는 아들을 시험에 빠뜨렸고, 폴은 인생 처음 함정에 빠졌다는 걸 알게 된다. 폴이 두려움을 해탈하고 퀴사츠 해더락으로서의 자질을 가졌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장면이다.
── 유일한 폴 아트레이데스
티모시 샬라메는 드니 빌뇌브의 유일한 폴 아트레이데스였다. 과거 감독의 전작 <프리즈너스>에서 휴 잭맨이 연기한 켈러의 아들 오디션에서 떨어졌던 샬라메지만, 감독에게 그는 플랜B 없는 플랜A였다. 빌뇌브가 샬라메와 샬라메가 연기한 폴을 깊이 사랑한다는 것은, 폴의 눈동자를 통해 정신의 심연까지 비추는 긴 클로즈업과, 그의 귀공자 비주얼을 십분 담은 아주 짧은 클로즈업 숏들에서 쉽게 느낄 수 있다. 샬라메는 오디션 없이 <듄>에 합류했다.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 된, 이제 막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려 하는 소년, 그리고 행성 세계의 미래를 책임질 예지자. <듄> 파트1은 둘 사이를 오가는 폴의 여정이었고, 15살의 얼굴을 한 티모시 샬라메는 그를 더할 나위 없이 훌륭히 표현해냈다. 폴이 자신이 원흉이 될 미래의 종교 전쟁을 보고 불안에 떠는, 사막 텐트 장면에서의 퍼포먼스는 특히 놀랍다. 곰 자바 장면은 빌뇌브와 샬라메가 거의 처음 호흡을 맞춘 장면이었다. 이때 감독은 카메라 뒤편에서 속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래, 내가 틀리지 않았어. 티모시가 바로 폴이야” 했다고. <듄>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로 독립영화에서 활약하던 티모시 샬라메의 첫 블록버스터 주연 영화다.
── ‘칭찬할 거니까 귀 막아’
지난 9월 있었던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프리미어를 시작으로, 몇 달째 홍보 일정을 함께 소화하고 있는 빌뇌브와 샬라메. 앞서 말했듯 빌뇌브에게 샬라메는 폴 그 자체였기에, 감독은 인터뷰에서 주연 배우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애정 어린 답변을 쏟아내곤 했다. 그리고 샬라메는 칭찬에 아주 약하다. 빌뇌브도 본인이 칭찬 시동을 걸기만 해도 샬라메가 극도로 민망해한다는 것을 알아서, 이제는 아예 말을 시작하기에 앞서 옆에 있는 샬라메에게 귀를 막으라고 먼저 신호를 주는 경지에 이르렀다. 작품 안에서도 밖에서도 호흡이 좋은 감독과 배우다.
── <듄> X <프렌치 디스패치>
2018년 7월 <듄> 합류가 확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샬라메는 <프렌치 디스패치> 촬영차 프랑스 앙굴렘에 갔다. 폴은 어려서부터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로 훈련받았다. 거니(조슈 브롤린), 자미스(뱁스 올루산모쿤)와의 결투 장면에서 폴의 숙련된 검술 실력이 드러난다. 샬라메는 <프렌치 디스패치>의 학생운동가 제피렐리를 연기하면서도 폴이 되기를 준비했다. 그는 <듄>의 액션 코치 로저 유안과 앙굴렘의 버려진 와인 창고에서 훈련을 계속했다고.
── 젠데이아는 단 4일 현장에 있었다
젠데이아가 촬영 현장에 있었던 시간은 단 4일이다. 러닝타임 155분 중 그가 나오는 분량은 7분으로 아주 적지만, 오프닝에서 아라키스를 안내한 가이드도 그가 연기한 챠니였고. 꿈꾸는 소년, 폴의 예지몽에 내내 등장하기에 영화 내내 함께한 것처럼 느껴진다. 빌뇌브는 젠데이아와 촬영 할수록 영감을 받아서, 그와 같이 있는 동안 나중에 꿈 시퀀스에 쓸 여러 장면을 즉흥적으로 찍었다고 한다. 폴이 자주 떠올리는 크리스나이프를 들고 있는 피 범벅된 여자의 손은, 앞으로 폴의 여정에 있을 고통과 폭력을 암시하는데. 이 장면도 그렇게 탄생했다고.
현장에 있는 시간은 짧았지만, 젠데이아와 샬라메는 곧 절친이 되었다. 서로의 유머를 이해하고 소위 인싸력을 감당해줄 또래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것이 꽤 반가웠나 보다. 홍보 현장에서의 둘의 티키타카를 보고 있으면, 챠니의 분량이 늘 파트2가 더 기대될 뿐이다. 젠데이아는 프로모션에 입을 의상을 오래전부터 준비했는데, 매번 아라키스의 사막을 온몸으로 흡수한 스타일링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그린스크린에서 촬영한 것은 단 두 번
영화를 본 이들이 <듄>에 체험형 영화라는 꼭 맞는 별명을 붙이는 가장 큰 이유는 스크린을 꽉 채우는 황홀한 전경이다. 샬라메는 그린스크린에서 촬영한 것이 단 두 번뿐이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장면을 실제 로케이션에서 찍었다고. 자연 그대로의 스펙터클을 담고자 했던 빌뇌브의 집념 덕에, 배우들은 보다 쉬이 연기에 몰입했고, 관객도 절대 가 봤을리 없는 1만 년 후 세계의 우주 행성에, 언젠가 와본 듯한 익숙한 느낌을 받게 됐다. 모래의 행성 아라키스는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요르단의 와디 럼 사막지대에서, 물의 행성 칼라단은 노르웨이의 스타드 반도에서 찍었다.
── 샌드웜 디자인에만 1년을
400m까지 자라는 거대 생물로 번식 활동으로 스파이스를 생성하는 샌드웜. 프레멘어로는 사막의 노인이라는 뜻의 ‘샤이 훌루드’. 제작진은 샌드웜 구현을 위해 1년을 투자했다. 피부 재질, 입을 벌리는 방법, 먹잇감을 빨아들이는 방법 등을 고민했고, 동시에 고대의 느낌을 주려 했다고.
── <블랙 스완> 안무가가 만든 샌드워크
규칙적인 진동은 샌드웜을 부른다. 아라키스 사막에서 보통의 걸음걸이로 걸었다가는 샌드웜을 마주하는 수가 있다. 극중 폴과 제시카는 프레멘이 걷는 방식, 일명 샌드워크로 듄을 가로지르는데. ‘한 발… 끌고… 끌고… 한 발… 한 발… 기다렸다가… 끌고… 또 한 발…’ 소설에 글자로만 존재했던 샌드워크를 살려낸 게, <블랙 스완>의 안무가 벤자민 마일피드였다.
── 세계관에 충실한 각본가, MS-DOS로 <듄>을 쓰다
‘듄’ 세계에는 인공 지능이 없다. 인간 정신의 승리에 관한 이야기인 <듄>은 10191년을 배경으로 하는 SF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도, AI 로봇도 나오지 않는 영화다. 영화 밖에서도 세계관에 충실했는지, 각본가 에릭 로스는 30년도 전에 사용되던 소프트웨어, MS-DOS로 <듄>을 썼다.
── “미친 과학자” 한스 짐머
한스 짐머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랜 파트너다. 빌뇌브의 파트너는 요한 요한슨이었다. 2018년 세상을 떠난 요한슨 대신 빌뇌브 못지않은 <듄> 덕후, 짐머가 <듄>의 음악을 맡게 됐고. 짐머는 <듄>에 집중하기 위해 <테넷>을 (정중히) 거절했다. 짐머는 루드비히 고란손을 직접 <테넷>의 음악감독으로 추천했다.
짐머는 영화에서 어떤 새로운 외계 세계를 소개하는 장면에 왜 다 똑같이 프렌치 호른, 트럼펫을 쓰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행성의 속성이 다 다른데 같은 악기를 쓰는 게 그에겐 어색한 일이었고. 미래 세계가 우리가 지금 가진 악기를 그대로 쓸 거란 보장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인간의 목소리는 인간이 살아있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그가 목소리를 악기로 쓰게 된 이유다.
아이디어를 끝없이 떠올리던 짐머는 빌뇌브에게 새 음악을 계속 보냈다. 빌뇌브가 후반 작업까지 끝났으니 그만 보내도 괜찮다고 말했을 때 짐머의 반응은 이랬다. “알아! 근데 우리 파트 2 할 거잖아. 속편에 필요할 거야. 들어봐.” 영화가 개봉한 지금까지도 짐머는 빌뇌브에게 새로운 음악을 보내고 있다. “1시간 반짜리 새 음악을 썼어요. 요즘도 드니와 많이 만나요. 드니에게는 지금 영감이 필요하죠. 파트2를 쓰고 있으니까요. 술 한 병을 보내는 수도 있겠지만, 새 곡을 보내 계속 써서 보내고 있어요. 드니가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빌뇌브는 이런 짐머를 보고 “한스는 아직도 자기만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며 “미친 과학자 같다”고 했다.
── Special thanks to 기예르모 델 토로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을 끝까지 봤다면, 빌뇌브가 특별히 고맙게 여기는 이들 리스트에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이름을 찾았을 것이다. 빌뇌브와 함께 <듄> 편집본을 가장 먼저 본 사람이 기예르모 델 토로였다. 빌뇌브는 믿어 마지않는 델 토로에게 조언을 구했고 델 토로는 사랑과 존경을 가득 담아 화답했다고.
── 2부작 중 1편
<듄>은 2부작 중 1편이다. <듄>은 방대한 세계관을 가진 6권 분량의 원작 소설 중 1권, 1권에서도 반을 영화화 한 것이다. 공식적으로 제작사에서 아직 속편을 확정하지 않았을 때도, 감독은 당당하게 ‘파트1’이라는 글자를 오프닝에 박아뒀다. 빌뇌브는 2017년 <듄>의 연출 계약을 할 때부터, 제작사 레전더리 픽쳐스에 영화를 2부로 나눠 만드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당초 워너 브라더스는 흥행 성적에 따라 제작 여부를 정할 것이라고 했는데. <듄>은 드니 빌뇌브 감독 영화 중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고, 현재까지(10월 26일 기준) 전 세계 약 2억 2천만 달러 수익을 올리며 막 파트2 제작을 확정했다. 감독은 이미 각본을 쓰고 있고, 2023년 10월 개봉 예정이다.
── HBO Max 오리지널 <듄: 더 시스터후드>
베네 게세리트는 우월한 혈통 교배로 만들어진 여성 초능력 집단이다. ‘보이스’라는 암시 능력으로 타인을 조종하며 진실을 판단하고, 태어날 아이의 성별을 결정할 수 있으며, 시공을 초월한 완전체 여성인 퀴사츠 해더락의 탄생을 계획해왔다. 이 집단의 실상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베네 게세리트를 더 자세히 다룰 <듄>의 스핀 오프 시리즈, HBO Max 오리지널 <듄: 더 시스터후드>의 제작이 확정됐다. 에릭 로스와 함께 <듄>을 쓴 존 스파이츠가 연출을 맡기로 되어있었으나, <듄> 파트2에 집중하기 위해 하차했다.
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