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문신하고 불도저 모는 소녀부터 엄마를 고소한 딸까지! 2022년 강렬한 잔상 남긴 여성영화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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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초부터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2022년 극장가는 지난 2년과는 다른 국면을 맞았다. 아끼고 아끼던 신작들이 개봉하는가 하면, 영화제 공개 이후 선뜻 개봉하기 어려웠던 영화들도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 특히 돋보였던 분야는 여성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올해 개봉한 여성영화 중 호평을 받고 관객들을 환기시킨 영화를 딱 5편 소개해보려 한다. 순서는 개봉 일자가 빠른 순으로 나열했다.


불도저에 탄 소녀

감독 박이웅|출연 김혜윤, 박혁권, 오만석|4월 7일 개봉

43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김혜윤) 수상

왼팔 전체에 용 문신이 새긴 혜영(김혜윤)은 무서울 게 없다. 폭행을 해 신고를 당하고도 자신을 신고한 학생들에게 보복하기까지 한다. 중식당을 운영하는 아빠 본진(박혁권)가 토토에 빠져 한심해보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독립해서 잘 살리라 다짐하고 살고 있다. 어느 날, 아빠 본진이 남몰래 외출했다가 교통사고를 내고 뇌사 판정을 받는다. 엎친 데 덮친 격, 혜윤에게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와 식당 건물을 내놓으라고 한다.

<불도저에 탄 소녀>에게 여성영화 카테고리가 적합한가 싶긴 하다. 혜영이란 캐릭터를 제외하면 사건을 조사하면서 진상에 다가가는 누아르 영화에 더 가깝기 때문. 영화도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할 뿐, 그 외의 사회상이나 인간관계를 그리는 데 치중하지 않는다(혜영이란 캐릭터가 사려 깊은 성격도 아니고). 대신 유일하게 사건을 물고 늘어지는 혜영을 그리면서 다른 영화와는 다른 청량감을 선사한다. 늘 공격적이고 다혈질인 혜영은 좋게 말하면 걸크러시, 나쁘게 말하면 개X마이웨이인데 그 성격 덕분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어떻게 보면 누아르 영화의 흔한 남성 캐릭터 같으면서도, 혜영을 맡은 김혜윤의 활약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오마주

감독 신정원|출연 이정은, 권해효, 탕준상|5월 26일 개봉

4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10선

영화감독이자 아내이자 엄마인 지완(이정은). 영화는 계속 찍는데 흥행을 하지 못하니 가족에게조차 눈치를 받고 한다. 결국 아르바이트 하나를 맡게 되는데, 60년대 여성감독 홍은원이 연출한 <여판사>의 필름 복원과 더빙이 그것. 지완은 <여판사>를 작업하면서 여성의 모습을 한 그림자와 만나고, 1960년대를 엿보게 된다.

오늘 정리한 5편의 영화 중 ‘여성’과 ‘영화’ 카테고리 모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영화는 이 <오마주>일 것이다. 중년 여성 영화감독이란 설정과 이정은의 모습은 누가 봐도 신정원 감독 본인을 그대로 모사한 듯하다. 즉 어느 정도 자전적인 설정을 반영했다는 것인데, 그걸 알고 보면 <오마주>가 관객 손에 쥐여주는 메시지가 유독 사무친다. 극중 중요한 소재로 나오는 고전영화 <여판사>와 한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영화감독 홍은원에 대한 이야기도 모두 실제 사실이다. 괜히 제목을 ‘오마주’라고 지은 게 아니란 것. 빛과 그림자라는 요소를 활용한 전개와 이미지 연출이 획기적이다. 이렇듯 신수원 감독에게 특별한 작품일 텐데, 이정은 또한 비슷한 것이다. 그의 첫 주연작이며 수상에 성공한 15회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드를 비롯해 여러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으니까.


경아의 딸

감독 김정은|출연 김정영, 하윤경, 김우겸|6월 16일 개봉

23회 전주국제영화제 CGV아트하우스 – 배급지원상 / 왓챠가 주목한 장편 수상

연수(하윤경)는 교사다. 엄마 경아(김정영)는 갑자기 영상통화를 걸어선 “혼자 있는 거 맞냐”며 깐깐하게 굴곤 하지만, 연수는 그래도 살갑게 안부를 전하곤 한다. 그런 연수의 전 남자친구는 연수가 이별을 고하자 지인과 인터넷에 연수와의 사적인 동영상을 공유하는 파렴치한 일을 저지른다. 경아는 생각도 못 한 딸의 모습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연수는 그런 엄마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경아의 딸>은 참 이상하다.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사건을 겪은 건 연수인데, 제목은 ‘경아의 딸’이라고 엄마 경아를 좀 더 강조한 느낌이다. 영화를 보면 이 제목에 공감할 수 있는데, 극중 시각화되지 않지만 엄마 경아 또한 (어쩌면 가장 사랑하고 믿었을) 남자에게 상처를 입은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요컨대 <경아의 딸>은 ‘경아의 딸’이 겪는 일을 통해 끝내 내려놓지 못한 경아의 짐마저 한꺼번에 털어내고자 한다. 그렇기에 영화는 모녀가 경험한 사건을 순식간에 촉발된 비극이 아닌, 장기적으로 삶을 잠식시키는 역경으로 묘사한다. 공감할 수 없는 고통을 전시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제는 ‘봄날의 햇살 최수연’으로 국민햇살이 된 하윤경과 영화·드라마·연극 등 전방위에서 활동 중인 베테랑 배우 김정영의 밀도 높은 연기가 돋보인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감독 김세인|출연 임지호 양말복 정보람|11월 10일 개봉

제 26회 부산국제영화제 KB 뉴 커런츠 관객상·넷팩상(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뉴 커런츠상·왓챠상·올해의 배우상 (임지호) 수상

엄마 수경(양말복)과 딸 이정(임지호). 같은 집에 살지만, 둘의 사이는 결코 좋지 않다. 언제나처럼 두 사람은 다퉜고, 집으로 향하려던 중 수경이 이정을 차로 치고 만다. 수경은 ‘차량 급발진’을 주장하지만, 이정은 수경이 고의로 그랬다고 생각해 소송을 건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첫 공개 당시부터 화제였다. 스쳐지나가기엔 너무 강렬한 제목부터 딸이 엄마를 고소한다는 스토리, 그리고 영화의 완성도까지. 상업·독립할 것 없이 쏟아지는 ‘가족 영화’에서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가 특히 눈에 띈 건 영화가 그리는 가족의 모습이다. 수경과 이정의 모습은 가족이란 단어에서 (사회적으로 암암리에 내포한) 낙관적인 이미지를 벗겨냈을 때, 가족이란 관계가 어떻게 폭력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두 사람의 관계를 그리는 방법 또한 탁월하다. 오랜 시간 지난한 갈등을 어떻게든 한 사건으로 풀어보려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고, 이정과 수영 개개인을 조망하며 ‘모녀 관계’의 정형성을 해체한다.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데 4년이나 걸렸다는 김세인 감독의 말이 허풍으로 느껴지지 않는 탄탄함이 영화를 받친다.


첫 번째 아이

감독 허정재|출연 박하선, 오동민, 박수민|11월 10일 개봉

22회 전주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출산 1년 후, 정아(박하선)는 회사에 복직한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 서윤이를 육아도우미 화자(오민애)에게 맡긴 건 마음에 걸리지만 업무 복귀에 내심 기쁘다. 복직의 즐거움도 잠시, 서윤이에게 안 좋은 일이 겹치면서 정아는 남편 우석(오동민)과 회사 사람들의 걱정과 짜증을 받아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출산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식을 낳아 가족을 꾸리는 부부가 있다. 그나마 사회적 풍토가 변화함에 따라 예전에 비하면 육아 휴식이나 출산 부부에 대한 배려가 좋아지긴 했는데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만이다. 그 이상은 ‘엄마’라는 명칭에 더 싸늘한 반응을 받기도 한다. 그냥 육아도, 그냥 직장 생활도 쉽지 않은데 엄마의 책임과 직장인의 의무를 다해야만 하는 워킹맘의 삶은 여전히 고되기만 하다. 그렇듯 <첫번째 아이>는 쉽지 않은 영화다. 복잡한 스토리나 전개가 아니지만, 정아가 받아내야 하는 심적 고달픔이 관객들을 매섭게 파고든다. 출산 이후 드라마 <산후조리원>과 <며느라기>, 영화 <고백> 등 엄마(내지는 유사엄마)의 얼굴을 자주 맡은 박하선이 워킹맘 정아를 연기하는데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정아가 감당할 짐을 짐작게 한다. 때로는 ‘워킹맘 사례집’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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