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이해와 공감의 범주 안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많은 영화가 관객을 공감과 몰입의 자리로 초대하는 반면, 어떤 영화는 도무지 이입하기 어려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영화도 있다. 이런 영화들은 러닝 타임 내내 설명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운 행위를 반복적으로 제시한다. 관객이 이입을 위해 인물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려 아무리 노력해도, 오히려 상식 밖의 일만을 저지르는 그에게 답답함만을 느끼게 된다. 고구마 백 개를 입 안에 욱여넣고 물이나 사이다는 하나도 허락하지 않는 갑갑함만이 영화의 유일한 정서이다. 굳이 그들이 ‘악인’일 필요는 없다. 그들도 저마다 나름의 사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사정이 보편적인 공감의 영역 밖의 일이거나, 자세히 영화에서 다루어지지 않을 뿐이다.
공감을 자아내지 못한다고 해서 영화가 실패한 것 역시 아니다. 인물과 관객이 충분히 거리를 두어야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속성이 있다. 한 인물의 몰락이나,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삶의 중독적인 면모, 폭력의 작동 방식 등은 너무 가까우면 볼 수 없다. 마치 자동차의 사이드미러에 적힌 안내 문구처럼 말이다. ‘Objects in mirror are closer than they appear’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충분히 멀리 있어야 거울에 상이 가깝게 보인다. 너무 가깝다면 온전히 그 대상이 담기지 못한다. 공감할 수 없는 인물을 담은 영화가 그러하다. 멀어져야 비로소 보이는 속성을 담은 것이다.
1월 25일 개봉하는 우르슬라 마이어의 <라인 (2023)>도 이처럼 인물에 이입하기를 거부하는 영화다. 다혈질의 마르가레트 (스테파니 블랑슈 분)은 철없는 어머니 크리스티나 (발레리아 브누리 테데스키 분)을 때린다. 화병은 깨지고, 레코드 판도 부서지며, 악보는 휘날리는 슬로우모션의 오프닝 시퀸스는 마르가레트의 폭행 장면을 파격적으로 묘사한다. 폭행의 여파로 마르가레트는 크리스티나의 집 반경 100m에 접근 금지 명령을 받는다. 흰 페인트로 큰 원을 그린 접근 금지선을 마르가레트는 끊임없이 넘으려고 노력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어머니를 향한 애증으로 가득한 마르가레트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면 이성을 잃고 폭력성을 보인다. 마치, 오은영 박사와의 상담이 시급해 보이는 주인공 마르가레트는 그 선을 지킬 수 있을까? <라인>의 개봉 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두 편을 살펴보자. 주의를 주자면, 이 글을 읽기 전 곁에 사이다나 물 한 잔 정도는 두어야 한다.
<언컷 젬스> dir. 샤프디 형제: 하워드 래트너
인간관계를 최악으로 몰고 가는 지름길은 채무 관계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언컷 젬스 (2019)>의 주인공 뉴욕의 보석상인 하워드 레트너 (아담 샌들러 분)은 빚을 돌려막으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원한을 사고 있다. 빚은 빚을 낳고, 100만 달러가 넘는 거액의 돈을 상환해야 할 위기에 처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에티오피아에서 17개월 만에 수급받은 오팔 원석이 도착한다. 때마침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이적 보스턴 셀틱스에 우승을 안겨준 NBA 스타 케빈 가넷이 그의 오팔에 관심을 보인다. 그는 오팔을 빌리는 조건으로 셀틱스의 우승 반지를 하워드에게 빌려주기로 한다. 하워드는 우승 반지를 담보로 셀틱스의 승리에 전 재산을 올인한다. 거대한 채무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한탕을 노리는 하워드. 과연 그는 100만 달러를 모두 탕감하고, 돈방석 위에 앉을 수 있을까?
하워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캐릭터다. 빚을 상환하기 위해 도박을 벌인다니. 그에게 삶은 배팅과 같아서 전 재산을 모두 걸어 수십 배를 따거나, 모두 잃어 길바닥에 주저앉는 선택지만이 존재한다. 적은 돈을 성실하게 벌어서 빚을 갚는다는 옵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언컷 젬스> 속 하워드는 끊임없이 돈을 좇고, 그 돈이 돈을 낳기를 초조하게 기도한다. 그가 마지막에 배팅을 건 보스턴 셀틱스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의 11/12 시즌 플레이오프 7차전은 희대의 명승부다. 3:3 타이를 이루고 마지막 한 경기에 팀의 운명이 갈린 것처럼 하워드는 매 순간을 벼랑 끝에서 살고 있다. ‘오늘만 사는 사람’이라는 명칭이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 <언컷 젬스>의 빼어난 연출과 별개로, 주변에 하워드 같은 한탕주의의 인물을 곁에 두고 싶지 않다. 매 순간 짜릿한 삶을 사는 그가 재밌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빌려준 돈을 모두 도박에 쏟아붓는 친구는 하루라도 빨리 연을 끊는 게 정답이다.
<분노의 주먹> dir. 마틴 스콜세지: 제이크 라모타
마틴 스콜세지의 걸작 <분노의 주먹 (1980)>은 미국의 프로 복서이자 세계 미들급 챔피언이었던 실존 인물 제이크 라모타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제이크 라모타 역은 영화사상 가장 공감하기 어려운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는 모든 걸 가진 존재다. 복서로서 챔피언 타이틀을 따냈고, 새로운 여인 비키 (캐시 모리어티 분)와 사랑에 성공하며, 든든한 조력자인 동생 조이 (조 페시 분)은 그의 선수 생활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있다. 물론 마피아 시대의 불공정 판정과 승부조작 같은 시대의 추한 면모들이 그의 선수 생활과 함께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많은 것들을 이루고 누려왔다. 하지만, 라모타의 일대기를 다룬 <분노의 주먹>은 완벽하게 몰락의 길을 걸은 뒤 쓸쓸히 자신의 황금기를 회고하는 늙은 라모타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는 어쩌다 처참한 모습으로 모든 것을 다 잃게 되었는가.
그는 전처를 버리고 만난 비키를 향한 과도한 질투에 눈이 멀었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남자와 말을 섞으면 분노했고, 그때마다 그는 주먹을 링 위가 아닌 의심의 상대를 향해 뻗었다. 그렇게 그의 주변에 함께했던 동생 조이, 부인 비키, 그를 지지하던 마피아 살비 (프랭크 빈센트 역) 모두 그의 곁을 떠난다. 그가 타인을 향해 휘둘렀던 폭력은 승부조작 제안을 거부할 수 없는 함정으로 다가온다. 승부조작으로 복싱계에서 제명당했고, 조이에게 가한 폭력은 동생과 의절하는 계기가 된다. 비키는 그와 이혼하고 아이들의 양육권을 모두 가져가 버린다. 제이크는 이제 싸울 수 있는 몸이 아니다. 급격히 체중이 불어난 그는 뇌물과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등의 죄목까지 겹쳐 교도소에 수감된다. 챔피언의 영예는 없고, 이젠 늙고 뚱뚱해진 채 자신의 오래전 영광만을 중얼거리는 사람이 되었다. 아름다운 영상으로 담은 복싱 신도, 로버트 드 니로의 호연도 결국 제이크 라모타라는 질투에 가득 차 몰락을 자초한 아둔한 남자를 더 미워하게 만든다. 많은 것을 얻었음에도 많은 것을 잃은 사람에 대한 텁텁한 정서가 영화 전반에 흐른다.
우르슬라 마이어 감독의 <라인> 속 주인공 마르가레트는 앞선 두 남자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다. 분명히 그녀가 자행하는 가정 폭력에 대해서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욕심과 질투에 눈이 먼 아둔한 존재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영화 속에 서술되지 못한 모종의 계기가 그녀와 가족 사이를 갈라놓았다고 추론할 수 있다. 다만, 그녀가 이해가 안 될 만큼 그 선을 넘으려는 처절함에 관객들은 이를 의아하게 느낄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저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방식을 아직 모르는 존재일 뿐이니깐. 많은 것을 손에 얻고도 그것을 놓친 두 남성과 달리, 마르가레트는 하나라도 손에 얻고 싶지만, 어느 것도 얻을 방법을 알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일 뿐이다. 그녀에게 감정을 잘 표현할 방법만 누군가가 알려줄 수 있었다면, 하는 씁쓸함이 맴돈다.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