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마담>을 통해 보는 양자경의 액션 유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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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의 루소 형제가 제작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대니엘 콴, 대니엘 샤이너트, 2022)가 비수기 극장가를 평정하고 있는 중이다 (‘대니얼스’ 감독들은 박찬욱 감독이 미국에서 연출하고 있는 드라마, <더 심페타이져, The Sympathizer> 의 공동 연출자이기도 하다). 영화는 다양한 유니버스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에블린’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양자경은 마치 본인이 여태까지 참여한 50여 편의 출연작 속 캐릭터들을 총망라하는 듯한 활약을 펼친다. 아시아인 최초의 본드걸로 위촉(?) 되었던 <투머로우 네버다이즈> (로저 스파티스우드, 1997)를 비롯해 아시안 캐스트로만 구성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와호장룡> (이 안, 2000),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존 추, 2018) 등 각기 다른 종류의 기록을 남겼던 대작들에서 그녀는 늘 영화의 중추를 담당했다. 그럼에도 40년 가까이 영화작업을 해오고 있는 양자경의 진정한 대표작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예스마담> 시리즈를 꼽을 것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에블린, 출처: A24]

그녀의 수려한 액션을 떠올리면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양자경은 미스 말레이시아 출신으로 발레를 꿈꾸었던 소녀였다. 런던의 로열 아카데미에서 춤을 시작했지만 부상으로 중단하고 드라마로 전공을 바꾸었다. 홍콩으로 돌아와 드라마와 텔레비전 광고를 전전하던 중 함께 광고 촬영을 했던 성룡이 양자경에게 자신의 제작사 ‘D & B Films’에서 제작되는 영화들의 액션 캐릭터를 제안했다.

작은 역할이지만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예스마담> (원제는 ‘황가사저’, 1985)의 주인공으로 발탁된다. 원규 연출, 홍금보 제작의 <예스마담>은 1980년대에 황금기를 거치던 홍콩 액션 영화에서 여성(경찰)을 주인공으로 하는 스핀 오프로 기획되었지만 곧 홍콩 액션 장르뿐만 아닌 전 세계의 여성 액션 영화 장르를 주도하는 원형이 되었다.

[<예스마담>, 양자경과 그녀의 콤보, 신시아 로스록]

영화는 범죄 조직의 중요한 증거가 될 마이크로필름을 갖고 있던 리처드 노먼이 호텔에서 살해되는 사건으로부터 전개된다. ‘오낙천 팀장’ (양자경)은 자신의 멘토였던 노먼과 저녁 약속이 있어 그의 호텔에 방문했다가 사건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홍콩 경찰은 사건 해결을 위해 영국 경제범죄 조사국에서 파견된 형사 ‘캐리’ (신시아 로스록)의 도움을 요청하고 캐리와 오낙천 팀장은 범인을 잡기위한 공동수사에 착수한다.

성룡이 자신의 작품에서 그러하듯, 양자경 역시 적지 않은 액션/무술 씬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모든 액션을 스턴트 없이 완수했다. ‘오낙천’의 수려한 액션 장면을 위해 하루에 8시간씩 트레이닝을 받아야 했지만 발레와 스쿼시 등 다양한 종류의 운동을 오랫동안 해왔던 그녀에게 <예스마담>은 장점을 살려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결국 <예스마담>은 ‘최초의 여성 액션 영화’ (“girls with guns”) 라는 우려와 기대 가운데 개봉년도인 1985년 한 해의 홍콩 박스오피스에서 21위를 기록하는 성취를 얻어냈다. 홍콩 뿐만 아닌 한국과 다른 아시아 시장에서 역시 큰 성공을 거둔 <예스마담>은 곧 시리즈 프로젝트로 확장했고 양자경은 <예스마담 2: 황가전사>, <예스마담 3: 중화전사>, <예스마담 4: 통천대도>까지 활약을 이어 나갔다.

<예스마담>은 단순히 현재의 양자경을 만든 대표작으로서의 지위 뿐만 아니라 현재 관객들에게는 친숙한 여성액션장르 (주로 액션과 권총을 위주로 한) 의 초석으로서 역시 의미를 갖는다. 성룡이 주도했던 네오 쿵푸 영화들 (예. <사제출마> (1980), <용소야> (1982) 등), 즉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코믹 액션영화들이 1980년 초중반 홍콩 영화의 주를 이루는 가운데 ‘여성 수사반장’을 앞세운 액션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성룡의 아이디어도, <예스마담>의 프로듀서인 홍금보의 기획에 의한 것도 아닌 ‘양자경’이라는 새로운 이미지의 배우의 출현에 의한 것이었다.

양자경은 전통적인 컨셉의 수동적, 혹은 남성캐릭터의 사이드 킥 정도의 여성 캐릭터를 기획했던 성룡과 홍금보에게 남성 캐릭터와 동등한 수준의 화려한 액션을 구사하는 여성 캐릭터를 제안했고, 그녀의 제안에 기반한 ‘예스 마담’이 탄생한 것이다. 그녀의 제안대로 양자경은 다리로 유리벽을 깨고 높은 벽에 부딪혀 쓰러지는 하드코어 액션을 직접 소화했다. <폴리스 스토리 3>에서 트럭 끝에 매달려 몇 마일을 달리는 추격씬은 양자경이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찍은 가장 위험했던 스턴트 액션들 중 하나다. 이 장면을 촬영하던 중 함께 출연했던 성룡이 양자경의 상태를 몇 번이고 확인해야 했을 정도로 위험했던 장면이지만 양자경은 스턴트를 쓰지 않고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폴리스스토리 3>의 메이저 스펙타클: 양자경의 트럭 추격씬]

<예스마담>의 기록적인 성공 이후로 홍콩 시네마는 <예스마담>의 수많은 스핀오프들, 그리고 <땡큐마담>, <지존 마담>, <황가마담> 등 각종 <마담> 시리즈로 넘쳐났다. 특히 ‘호혜중’이라는 또 다른 걸출한 여성 액션스타를 탄생시킨 <땡큐마담>은 4편까지 후속편을 거듭하며 <예스마담>과 견줄 만한 흥행을 기록했다.

[호혜중 주연의 <땡큐마담> (전승위, 1988) 한국 개봉 포스터]

궁극적으로 <예스마담>의 성공은 90년대 후반부터 부상하기 시작한 여성주도의 할리우드와 메이저 시장의 액션 영화들과 무관하지 않다. 90년대에 탄생한 <니키타> 시리즈, 여성캐릭터의 동양 액션을 서양화시킨 <툼레이더> (2001) 등의 작품들은 모두 작든 크든, 홍콩 여성 액션 시네마에 빚을 지고 있는 영화들이다. 물론 이 레거시의 주인공인 양자경과 함께 말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에서 양자경은 평범한 가정주부의 역할로 등장하지만, <예스마담>의 신화를 창조한 그녀 답게 영화 곳곳에서 그녀의 액션을 볼 수있다. 에블린의 인생이 그녀가 택한 작은 선택에 따라 맹인 배우로, 한 가정의 주부로 혹은 할리우드의 스타로 변할 수 있었지만, 현재 주부로 살고 있는 에블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어디에서든 (everywhere), 무엇이든 (everything), 한꺼번에 (all at once) 필요한 일을 해결 할 수 있는 수퍼우먼이다. 에블린의 ‘전지전능함’은 어쩌면 40년 가까이 액션배우로써 스크린 안팎을 넘나드는 양자경의 또 다른 멀티버스 캐릭터인지도 모르겠다.


김효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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