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면을…? 아이폰으로 촬영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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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춘몽>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단편 영화 <일장춘몽>이 애플 공식 유튜브를 통해 공개됐다. 애플과 박찬욱 감독이 손을 잡고 만든 영화 <일장춘몽>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폰 13 프로(Pro)로 촬영된 작품이다. <일장춘몽>을 보고 있노라면 현재의 스마트폰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됐는지, 얼마만큼 놀라운 것인지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데. 그만큼 모든 장면이 놀랍도록 매끈하다. 이제 장비가 없어 영화를 찍지 못한다는 말은 정말이지 편리한 핑계가 돼버린 것은 아닐까. 박찬욱 감독의 <일장춘몽>에 더해,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시도한 영화 몇 편을 함께 소개한다.


일장춘몽 Life is But a Dream

감독 박찬욱 러닝 타임 21분 출연 유해진, 김옥빈, 박정민 등

박찬욱 감독의 첫 번째 사극 영화이자 첫 무협 영화. <일장춘몽>은 박찬욱 감독의 도전이 담긴 작품이다. “장편 상업영화는 실험적인 시도를 하기가 쉽지 않고 돈도 크게 들어가고, 부담이 큰 반면, 단편 영화는 시도할 수 없는 걸 마음껏 해볼 수 있어”서 이번 프로젝트를 기꺼이 참여하게 된 박찬욱 감독은, <일장춘몽>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펼쳐냈다. 아이폰 카메라의 성능을 홍보하는 캠페인 가운데 하나인 ‘아이폰으로 찍다’(Shot on IPhone)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된 <일장춘몽>은 한 편의 마당극이자 무협 로맨스 영화다. 마을의 은인, 흰담비(김옥빈)를 묻어줄 관을 만들 나무를 구하기 위해 장의사(유해진)는 무덤을 파헤치게 되는데, 영화는 그 바람에 무덤 주인의 혼백이 깨어나 자신의 관을 되찾기 위해 한바탕 소란을 벌이는 과정을 정신없이 담아낸다.

<일장춘몽>은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 여러 가지 맛을 녹여내려 한 박찬욱 감독의 욕심과 야심이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박 감독의 말을 직접 인용하자면, “<일장춘몽>은 호러 영화인 것처럼 시작해서 판타지, 무협,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로까지 발전해나가는 그런 영화.” 박찬욱 감독은 아이폰으로 촬영을 했기 때문에 “특정 장르 영화가 아니라 마음대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잔치판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영국 BBC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을 함께한 김우형 촬영 감독이 카메라를 잡았는데, 김우형 감독은 “카메라를 세팅하는 데 드는 시간이 크게 줄어 찍고 싶을 때 바로 찍을 수 있는 기동성에 만족감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의 <일장춘몽>은 애플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파란만장 Night Fishing

감독 박찬욱 러닝 타임 33분 출연 이정현, 오광록 등

사실 박찬욱 감독이 스마트폰을 들고 영화 촬영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무려 11년 전. 2011년에 박 감독은 이미 아이폰4로 찍은 단편영화 <파란만장>을 세상에 내보인 적이 있다.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으로만 촬영된 상업 영화’라는 타이틀이 설명하듯, 영화 <파란만장>은 스마트폰 보급이 완전하게 자리 잡기 전 만들어진 단편 영화로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영화 리스트를 꼽을 때면 맨 위에 자리 잡는 중요한 작품. <파란만장>은 박찬욱 감독의 동생이자 미디어 아티스트로 잘 알려진 박찬경 감독이 각본과 연출에 참여한 작품이기도 한데, 최근 <일장춘몽>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박찬욱 감독은 “<파란만장> 당시 기억이 너무 좋아서 새로운 단편 영화를 또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파란만장>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모호한 낚시터를 배경으로 이생과 현생을 넘나드는 한 남자의 뒤를 따르는 판타지 영화로, 당시 오광록에 빙의된 이정현의 신들린 연기가 화제를 모았다.

당시 박찬욱 감독은 “이제는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박찬욱이 될 수 있는 시대”라는 말을 하며 작품을 선보였는데. 강산이 변한 지금, 그의 말마따나 이제 누구나 영화감독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으니. <파란만장>과 <일장춘몽>은 어쩌면 10년 사이 변화한 산업의 흐름을 목격할 수 있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파란만장>은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 부문 황금곰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탠저린 Tangerine

감독 션 베이커 러닝 타임 88분 출연 키타나 키키 로드리게즈, 마이아 테일러, 미키 오하간

2015년 선댄스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이라고 불린 션 베이커 감독의 <탠저린>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폰을 사용해 찍은 작품이다. 아이폰 5s로 모든 장면을 촬영했다. 션 베이커 감독이 아이폰 촬영을 감행하게 된 건 예술적인 이유라던가 애플과의 협업 때문이 아니었다. 영화 촬영을 준비하며 재정적으로 부족함을 느낀 션 베이커 감독은, 우연히 아이폰으로 찍은 영상들을 본 후 스마트폰만으로도 영화 촬영이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탠저린>은 트랜스젠더 신디(키타나 키키 로드레기즈)의 이야기다. 자신의 남자 친구가 다른 여성과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LA 거리를 휘젓고 다니는 신디의 뒤를 담는다. 영화에서 신디와 알렉산드라를 연기한 두 배우는 모두 신인 배우다. 길거리에서 캐스팅된 두 배우는 연기 경력이 전무후무한데. 두 배우가 지닌 날 것의 느낌은 영화의 소재, 촬영 방식과 어우러지며 극대화된다. <탠저린>이 아이폰으로 촬영한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이 작품이 가진 의미가 더욱 돋보이는 이유다. 션 베이커 감독은 <탠저린>을 통해 꾸미지 않은 현실을 담아내고 싶었고, 스마트폰을 통해 그 현실을 더욱 적나라하게 꺼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디즈니월드 시퀀스) The Florida Project

감독 션 베이커 러닝 타임 88분 출연 윌렘 대포, 브루클린 프린스, 브리아 비나이트

아마도 많은 이들이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통해 션 베이커 감독의 이름을 저장하지 않았을까. <탠저린>으로 마니아 팬층을 다진 션 베이커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영화 팬이라면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이름으로 떠올랐다. <탠저린>에 이어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도 소외된 이들을 조명한 션 베이커 감독은 이번에도 아이폰을 들었다. 대부분의 장면을 35mm 필름을 사용해 촬영했지만, 엔딩 신에서는 전작에서 사용했던 아이폰을 다시 꺼내며 본인만의 흔적을 더했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와 젠시(발레리라 코토)는 손을 꽉 잡고 내달리기 시작하는데. 디즈니 기념품 아웃렛, 주차장을 지나 비로소 디즈니월드 속 복잡한 인파 안으로 스며드는 두 아이의 뒷모습을 아이폰 6s로 담아냈다. 이전의 장면들보다 더 선명하게, 그리고 생동감 있게 시퀀스를 완성하며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최고의 엔딩을 완성했다는 평을 얻었다. 션 베이커 감독에게 아이폰이란 재정적 문제로 인한 타협점이었지만, 이젠 하나의 인장(印章)이 된 듯하다.


우회 Détour

감독 미셸 공드리 러닝 타임 10분 출연 델핀 드파르디외, 벤자민 부르구아, 사샤 보르도 등

미셸 공드리 감독 역시 광고 캠페인의 일환으로 아이폰을 들었다. 아이폰 7 플러스와 함께 10분가량의 짧은 단편 영화 <우회>를 촬영했다. <우회>는 해변으로 휴가를 떠나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마치 한 편의 동화책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미셸 공드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말과도 같다. 아이폰의 기술력을 녹여내야 하는 임무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면서도 그에게 거는 기대감을 200% 충족시켰다. 타임랩스, 슬로 모드, 수중촬영 등과 같은 기능을 적절하게 활용하며 감각적인 연출을 선보였다. 휴가를 떠나는 와중 길을 잃어버린(!) 세발자전거의 여정을 놀랍도록 사랑스럽게 완성했다.


서칭 포 슈가맨 (일부 장면) Searching for Sugar Man

감독 말릭 벤젤룰 러닝 타임 86분 출연 말릭 벤젤룰, 로드리게즈

많은 영화 팬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작품 <서칭 포 슈가맨> 역시 일부 장면이 아이폰으로 촬영됐다. 슈퍼 8(Super 8) 카메라로 촬영을 시작한 말릭 벤젤룰 감독은 촬영 후반부가 되자 자금난에 시달렸고, 결국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아이폰5를 카메라로 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릭 벤젤룰은 스마트폰에서 8mm 빈티지 카메라 앱을 발견했는데, 그 순간 촬영을 마무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꼈다고 한다. 물론 아이폰으로 촬영한 장면들은 후반 보정 작업을 거치긴 했지만, 작품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서칭 포 슈가맨> 초반부, 디트로이트 술집에서 슈가맨을 만나는 장면이 아이폰으로 촬영된 장면이라고 한다. 이후 <서칭 포 슈가맨>은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이로써 <서칭 포 슈가맨>은 아이폰으로 촬영한 장면이 삽입되어 있는 최초의 오스카 수상작이란 타이틀을 달기도 했다.


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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