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가 1968년에 발매한 아홉번째 앨범인 ‘White album’에는 <glass anion> 이라는 제목의 곡이 있다. 항상 자신들의 곡을 오버해서 해석하는 평론가들을 조롱하기 위해 아무런 의미없는 가사들로 곡을 가득채웠다. 그러나 <나이브즈 아웃 ; 글래스 어니언>(2022)은 언뜻 텅빈 것 같아도 마치 벗길수록 새로운 매력을 발하는 양파같은 상큼함을 숨겨놓았다. 연출자인 라이언 존슨 감독은 데뷔작인 <브릭> (2005)에서 1930년대 필름 느와르의 스타일을 고등학교로 옮겨와 저예산으로 걸출한 수사물을 뽑아냈다. 그런 감독이 이번엔 퍼즐이 아닌 롤러코스터에 가까운 추리극을 선보인다.
앤디(쟈넬 모네) 는 마일즈(에드워드 노튼 분)의 거대한 사업을 일구는 단초를 제공했다. 그러나 양파처럼 껍데기 뿐인 마일즈는 앤디를 내치고 현재의 위치에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일즈의 탐정놀이 친구들 파티에 초대된 앤디, 그리고 누구도 초대하지 않았지만 초대장을 받은 진짜 탐정 브누아 (다니엘 크레이그) 는 뭔가 요상한 분위기를 읽으며 파티에서의 음모를 파헤친다. 앤디는 마일즈와 함께 알던 친구들의 배신으로 자신도 함께 창립한 회사를 뺏기게 된 사연이 밝혀진다. 억울한 앤디가 제소하는 과정에서 친구들이 거짓 증언을 하여 마치 마일즈 혼자 만든 회사가 돼버린 것이다. 이렇게 앤디처럼 최악의 재판을 접하며 삶이 파탄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소송이 일상이라는 미국에서도 회자되는 저급한 재판들이 있다. <나이브즈 아웃 ; 글래스 어니언>의 앤디가 겪는 것처럼, 미국내 최악의 재판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드레드 스콧 사건
미국은 1783년 파리조약 이후 독립된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6년 뒤에는 각 주가 연합된 연방국가인 USA로 재탄생 한다. 그런데 지방 분권을 주장하는 세력과 중앙 집권을 중요시하는 세력이 충돌한다. 북부에선 공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자유로운 임금노동자가 필요한데 반해, 남부에선 대농장이 성행하여 노예가 필요했다. 아시다시피 이 문제는 미국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전쟁까지 하게 만드는 사안이 되어버린다. 와중에 1846년 흑인 노예였던 드레드 스콧이 자신의 주인을 상대로 소송을 한다. 백인 주인은 출장을 자주 다녔는데, 그 때마다 스콧을 데리고 다니면서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주에도 갔으므로 자신은 자유의 몸이 라는 것이 그 골자다. 그냥 스쳐간 것이 아니라 12년 동안이나 그 곳에 거주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무려 11년간이나 진해되며 대법원에까지 올라가며 최종 판결을 내린다. 그런데 그 선고가 골 때린다.
흑인은 미국의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법원에 소송을 제기 할 수 없다.
노예는 사유재산에 불과하다. 이것은 사유재산권의 침해다
이윽고 스콧은 패소하게 되고 이 일은 미국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판결로 기록된다. 결국 이 판결을 위해 여당 측에서 판사를 설복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당시의 경쟁 세력이었던 공화당이 힘을 받는 계기가 된다. 결국 정치적인 세력을 키운 야당은 다음 대선에 승리하였고, 그렇게 링컨 대통령이 탄생하여 지금 우리가 아는 남북전쟁의 결과가 나왔다.
O.J. 심슨 사건
O.J. 심슨은 1970년대 미국의 가장 인기 좋은 흑인 미식축구 선수였다. 헌데 1994년 LA에서 심슨의 전처가 포함된 남녀 한쌍의 시신이 발견된다. 심슨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경찰서로 출두중에 자신의 차를 몰고 그대로 도주해 버린다. 그와의 추격전은 생방송으로 방영되어 당시 NBA경기보다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렇게 스스로 용의자로서 제 발을 저린 그는 변호팀을 꾸린다.
심슨을 기소한 검사는 현장에서 심슨의 혈흔이 묻은 장갑을 가장 강력한 증거로 내밀었다. 그러나 당시의 LA는 백인 경찰이 흑인을 인종차별하여 과격 진압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그로인해 LA흑인 흑인 폭동이 발생한지 불과 2년 밖에 되지 않은 시기였다. 즉, 당시는 ‘인종차별’의 단어만 나와도 모두가 민감하고 날카롭게 굴던 시절이었다. 당시 심슨의 드림팀이었던 최고의 흑인 변호사 자니 코크란은 이 민감함을 전략적으로 차용한다. 그 피묻은 장갑을 채집한 경찰관이 인종 차별로 유명한 백인 경찰이었던 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변호인단은 이 사건을 살인 사건이 아닌 ‘흑인을 혐오하는 백인 경찰의 증거 조작’으로 몰아갔다. 그러면서 이미 피를 먹어 수축해버린 가죽 장갑을 심슨이 착용하여 맞지 않으면 그는 무죄라고 주장한다. “If it dosen’t fit you must acquit”라는 재판중의 이 발언은 생방송으로 미 전역에 퍼졌으며, 드라마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에서 재구성되며 역시 명대사가 되었다.
결국 심슨은 무죄가 되었고, 이는 미국의 법치와 자본주의가 지저분하게 승리해버린 더러운 단면이 되었다. 그러나 심슨은 유족들로부터 민사소송에서 패소해 300억대의 배상금을 물어주게됐다.
시카고 폭력사태
60년대의 세계는 혼돈 그 자체였다. 멀리 유럽에선 프라하의 봄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미국에선 존 F 케네디, 로버트 F 케네디, 마틴 루터 킹, 말콤 X 등등 암살된 사람만 줄줄이였으며, 민권법이 제정되고 선거권법이 통과되면서 베트남전의 발발과 더불어 반전운동의 기미도 컸다. 당시 미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의 린든이었다. 그리고 1968년, 시카고의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연설장엔 린든 대통령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연합하여 거대한 시위세력을 이루었다. 이 때 시카고의 시장은 이들을 폭력으로 진압하고 각 단체장 8명을 체포하여 재판을 받게 한다. 그런데 검찰, 경찰, 주 연방경찰은 한 마음이 되어 수 많은 거짓 증언을 하고, 판사는 피고인들의 이의 제기는 묵살한 채 철저히 연방 검찰측에서 재판을 진행한다. 여기서 클리쉐처럼 인권 탄압, 인종 차별등이 자행된다.
대선에 당선된 닉슨 대통령은 폭력사태의 책임을 물으며 주동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린다. 결국 이들 8명 중 흑인 인권 운동가인 바비 씰은 재판을 받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영화 <트라이얼 오브 시카고 7> (2020) 으로 재탄생 했다. 8명의 이야기지만 7명만 재판을 받았던, 미국 법치주의의 암울한 면을 다뤘다.
그러나 여러가지 사회적 부조리에 대항하면서 미국만의 시대정신과 문화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60년대 였다. 당시의 저항과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해결지점을 만들어 낸 것이 오늘날의 최강대국 미국을 만든 것이 아닐까하는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